(우)32414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학교길 19 ☎(041)334-4865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H.P 010-5452-4865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 2024.3.17. 주일오후예배 설교문 【사순절 제5주일】 본 문 : 마가복음 15 : 21 - 24 제 목 : 시몬이 진 십자가 찬 송 : 144, 250, 252, 259, 339. 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도 예배를 드리는 우리 사랑하는 ○○교회 성도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우리 다 같이 찬송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찬144장>예수 나를 위하여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아멘 십자가의 형벌은 당시 로마 정부가 노예들이나 반역자에게 가했던 가장 가혹한 사형의 수단으로써 수욕과 비참과 최고의 고통을 주는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이 형벌을 받으심으로 십자가는 다시없는 희생과 숭고함과 거룩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십자가를 목걸이로 걸고 귀에다 달고 뺏지를 만들어 달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십자가의 모양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십자가를 위시하여 도마가 달려 순교하였다는 T자형, 베드로가 거꾸로 달려 죽은 十자형, 안드레가 달렸다는 X자형 등을 우선 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 나라와 스위스, 덴마크 등의 나라에서는 국기에 십자가가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적십자회에서도 십자가를 쓰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병원 표시를 할 때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모양과 사용 용도가 다양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모양이 다양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여한 사람들도 여러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기사입니다. 1. 시몬이 진 십자가는 예수님 대신 진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기로 한다면 구레네 에서 온 시몬이 질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당연히 저야 하고 아니면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았던 사람 중에 지든지 그도 아니면 예수님께 떡을 얻어먹은 사람이라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기는커녕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1) 십자가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줍니다.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할 죄수는 자신이 달려 죽을 십자가를 자신이 짊어지고 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이미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가는 것 자체가 죽을 고비를 겪는 형벌입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리면 빨리 운명하지 않습니다. 산채로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십자가에 달려서 피와 몸의 체액이 다 빠져나가 죽기까지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2) 십자가는 정신적인 고통을 줍니다. 주님은 좌우에 강도와 함께 매달려 강도의 똑같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또 유대인, 로마인,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예수님을 향하여 조롱하고 저주를 했습니다. 주님은 이 십자가의 극형을 받을 아무 죄도 없습니다. 유대 교권자들은 예수의 죄를 발견하지 못해서 거짓 증언자를 동원하였고(막14:55-56),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의 무죄를 선고했던 것입니다.(요18:-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졌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바로 내 죄 대신 진 십자가였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구레네 시몬은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의 그 뜻과 가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1:24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며 육체적인 고통을 받을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과 바울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주님의 사업에 충성하며 주님 때문에 희생과 고통을 받으면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이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마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습니까? 2. 시몬이 진 십자가는 억지로 진 십자가였습니다. 아마 그날 아침까지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것은 생각조차도 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북방, 지금은 리비아 나라의 트리폴리라고 불리는 구레네 에 거주한 유대인으로 이때 유월절을 지키러 올라온 순례자입니다. 이때 그는 예수의 처형되는 광경을 구경하러 나온 수많은 시민들 사이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무 지쳐 십자가를 지시고 가지 못하는 것을 본 로마 병정이 그때 길가에 서 있던 시몬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웠던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는 타의에 의해서 진 십자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재수 없는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시몬이 주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후에 그 자신도 신자가 되고 그의 아들들도 저명한 성도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① 오늘 본문 21절 말씀에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라고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루포는 로마 교회의 저명한 인사요 신자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 롬16:13에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고 한 것을 보아서 시몬의 아내는 로마 교회에서 충성된 성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보아 시몬이 잠시 동안 억지로나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은 그와 그 자녀들에게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억지로라도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기왕이면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지기 바랍니다. 기쁨과 감사로 십자가를 질 때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과반수가 목사의 후손들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찬송가 144장 2절>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3. 오늘의 우리들도 반드시 나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1)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제자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을 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나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부인한다는 것은 나의 고집과 교만과 나의 생각이나 모든 것을 주님에게 과감하게 버리고 오직 주님 말씀대로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그리고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를 질 때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2) 교회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교회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헌신과 충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 그리고 여건이 좋을 때는 누구든지 충성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나, 교회가 큰일을 할 때에 한 몫을 담당할 수 있는 그런 성도가 바로 교회의 십자가를 지는 성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평소에는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는데도 따라가겠다고 하였지만 정작 예수님이 잡히시고 재판 받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제자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없이 사명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명 감당하지 않을 때 그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줍니다. 마25장26절 말씀의 달란트 비유 중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고 책망만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있는 것도 빼앗기고 어두움에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25:30)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왕으로 등극하였던 사울 왕은 그가 사명 감당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치는 소년 다윗을 예비하고 키우고 계셨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사명 감당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키우고 계셨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 대신 다른 사람을 남몰래 키우고 계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두움에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참된 교인은 교회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알 수가 있습니다. (3)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사랑과 봉사)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4-38) 고 하였습니다.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온 가족이 구원받지 못하였을 때 얼마나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가족들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한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가족을 구원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내 가족 내 가정을 누가 구원시키겠습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이제는 내 가정을 구원시키는 십자가를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예기치 않았던 사건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진 사건도 예기치 않았던 사건입니다. 삼상 9장에는 사울이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선지자 사무엘을 만나서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 사건도 이런 경우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도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와서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고 또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갔을 때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예비한 사건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사건은 억지로 진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몬의 억지로 진 십자가를 축복으로 바꿔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대신 질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진 십자가를 오늘 우리가 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절대로 떠나지 않고 죽는데 까지라도 따라가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 놓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가고 한 사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지지 않았던 십자가를 오늘 우리가 져야 합니다. 여인이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였을 때 그것을 허비한다고 여인을 나무라던 제자도 십자가 질 때는 없었습니다. 그 제자가 지지 않은 십자가도 우리가 져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 “네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고 물으시는 주님의 질문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고난의 길을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외람된 말씀이오나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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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한응 목사의 설교나눔 원문보기 글쓴이: 아모스박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