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에 관한 시모음 3)
겨울날 /설원 이화숙
기온이 뚝뚝 떨어져
한겨울이 되니 곰탕이 먹고 싶네
곰탕집에 들러 한그릇 시켜 놓고
입맛 녹여줄 분위기에 취해 있네
곰탕을 한그릇 앞에 놓고
밥 한그릇 말아 한입 한입 떠 먹는데
이보다 더 구수한 맛은 없어
고기를 씹는데 꼬들꼬들 쫀득쫀득하여
김치랑 얹어 먹는데 내 자존심이 녹았네
뜨거운 국물 들이키니
진한 육수가 목구멍에 고소한 향을 날리며
추위를 녹여주네
한그릇 뚝딱 다 먹고 길을 나서는데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려
배는 따습고 등 뒤로 겨울비를 맞으며
진한 육수에 취해 땀이 찔끔 나네
젖은 옷을 털며 현관에 들어서니
꾸르륵 하고 마지막 항변이라도 하듯
기트름이 나
곰탕에 함빡 빠졌다 나온 듯 하네
겨울날의 소나기 /최홍윤
마치, 만인(萬人)의
얼굴을 그리는듯 하는
흰구름의 모습이 밀려오고
천둥 번개 빗발치더니 정신마져 산만 하다.
초겨울날의 난동
대기 불안전이라지만
우리네 정서불안정이다
온통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가을걷이 하는 농부들,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
오늘같은 날은 애처롭다
내일 아침에는 아마도
대관령 준령은 이마에
하이얀 머리 띠 드리우고
동해 바다에 오르는 해를 맞이할 거다.
어느 겨울날 /은파 오애숙
계절 바뀌어서 겨울이 오면 그리움의 꽃
아름다운 설경이 카톡으로 전송오고 있는
고국의 설국! 설빛에 매료에 넋 잃습니다
그 어린 날 그 풍광들 무릎까지 찼던 흰눈
그 시절 무섭게 느껴진 겨울 함박눈 내려
포근함으로 가슴속에 살포시 나래 폅니다
엘에이 겨울이 되면 백화점에서 인공 눈
옥상에서 뿌려주거나 간혹 눈을 퍼와서
공원에 함박눈 뿌려 놀 수 있게 합니다
그런 까닭 망부석같은 그리움 똬리 틀고
고국의 겨울 함박눈의 풍광들이 가슴에
그리움의 연가 되어 노래 부르게 합니다
이런 겨울날에는 /정심 김덕성
겨울이 오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를 품는
저녁 풍경은
멋진 한 폭의 수채화였다
넉넉하지 못한 때라
밤이면 아랫목에 이불속에 발을 넣고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면서
가끔 아궁이에서 군고구마를 구어
호호 불면서 먹던 추억들
순수하고 순정어린 시절
비록 눈물 나도록 가난하였지만
즐겁고 행복하였다
눈이 내리는 이런 날이면
그리던 머나 먼 고향으로 떠난다
추억을 안고
너무 좋다
어느 겨울날의 회상 /임숙희
창가에 앉아
진한 향기 풍기는 차 한 잔을 마주하고
포근한 의자에 기대고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오늘처럼 흐린 날엔 눈이 왔으면 좋겠다
함박눈 소복이 쌓이고 달동네에 퍼지는
해맑은 웃음소리, 강아지 반기는 소리
날 저무는 줄 모르고
비탈진 언덕길에서 썰매를 타고
눈사람 만드는 아이가 되어 뒹굴고 싶다
꽁꽁 언 손과 발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그레한 얼굴로 마냥 즐거워하던 아이들과
눈밭에 발자국 남기고 싶다
어느새 거리엔 땅거미 내리고
선율을 타고 흐르는 옛 노래에
추억의 책장을 덮으며
식은 커피 한 모금 삼킨다.
겨울날의 회상 /전선희
바람도 쉬어가는 시린 겨울날
앙상한 가지에 눈꽃이 피고
시간의 빈터에 침묵으로 서있다
모든 날이 비 내리고 바람 불지 않듯
인생이 늘 춥거나 쓸쓸한 건 아니라고
내 삶을 토닥인다
햇살 드는 창가에 줄지어 앉은 겨울날
고요의 중심에서 긴 여운을 남기며
빛나던 날들을 돌아본다
겨울날 찬 바람 대신에 부르는 연가 /정민기
가을바람이 이직하고
육아 휴직했던 겨울바람이 복직한 날
눈구름 울 듯 그렇게 펑펑 울었다
낙엽은 점점 골목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담장의 그늘이 우거진 숲에 들어간 길고양이가
야옹거리다 발밑에서 들리는 바스락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재빠르게 뒷걸음친다
손을 쓸 수 없도록 차가워진 사랑에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살얼음이 얼고
낭만을 몰라 실성한 나뭇가지가
아무 罪 없는 잎을 순식간에 다 떨구고 말았다
모래사막 같은 별 밭을 낙타처럼 터벅터벅
걸어가는 달의 눈빛은 강물이 되어 반짝거린다
강바닥 골목길을 바스락거리며 흐르는 낙엽
도저히 식별할 수 없이 허물어진 바람의 나이테
몸짓에 엎드리는 풀잎의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너를 떠날 수밖에 없는 나의 변명 같은 사랑
간이역에 자주 멈추지 않는 기차처럼
나도 사랑이 추운 이 계절에는 멈추고 싶지 않다
어느 겨울날 단상 /김덕성
겨울에는 마음이 한가로워서일까
잠간 여유만 생기면
꿈처럼 찾아오는 그리움이 있다
오늘은 생각지도 않았던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떠오르며
모나지 않게 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사악한 세상에 모나게 살면
외톨이가 되니 어울려 살라는 말씀
난 지금도 늘 기억하면서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지금은 어디 계실까
뵙고 싶은 생각 간절하고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찾아뵙지 못했으니
이 시로나마 용서를 빌고 싶다
겨울날 /신경림
우리들
깨끗해지라고
함박눈 하얗게
내려 쌓이고
우리들
튼튼해지라고
겨울 바람
밤새껏
창문을 흔들더니
새벽 하늘에
초록별
다닥다닥 붙었다
우리들
가슴에 아름다운 꿈
지니라고
겨울날의 향수 /정심 김덕성
고즈넉한 저녁
겨울비가 내리는 창가에 앉아
커피 향에 취해 향수에 저저
꿈처럼 그녀를 그린다
맑은 햇살처럼 빛나는
고운 눈빛에서 사랑의 정이 가득
웃음 밖에 모르던 그 얼굴
세월이 흠처 가고
뜨거운 장미 빛 고운 가슴
희생을 사랑으로 대처한 그녀
지금 그 빈자리만 고스란히 남아
오롯이 떠오르는 그리움뿐
영영 지워질 수 없어라
그리움뿐 남아 있는 하나의 흔적
차 잔속에 그려진 보물
향기로 떠오르는 나의 어머니
겨울날의 염원 /정심 김덕성
눈을 내린다
그렇게 기다리던 눈이 새벽부터
하늘이 열리며 펑펑 내려 삽시간에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하이얀 눈도 우리 못지않게
지상에 오기를 기다렸는지 너무 좋아
춤추며 나부끼며 내려오면서
행복한 세상을 이룬다
마치 내리는 눈은
세상 검은 죄악의 그림자를 말끔히
하이얀 세마포로 덮어
천상의 나라를 이룩해 놓은 듯싶다
하이얀 눈은 슬며시
푸른 소나무에 앉으며 사랑의 꽃인
황홀한 순백의 눈꽃을 피운다
이 땅에 눈꽃 설국이 이루었으면
겨울날의 행복은 /정심 김덕성
숨어드는 매서운 삭풍
냉혹 속에 엄습하는 엄동의 물결
봄으로 접어드는 입춘인데
추위는 여전하고
은은하게 녹아내리는
따뜻하게 감싸는 주듯 품어 주며
그윽하게 피어오르는 향긋함
차 한 잔이 그리운 날
정답게 얼굴을 감싸며
떠오르는 곱고 황홀한 사랑의 빛
진한 다홍색 빛 향내음
설렘으로 다가온다
추운 엄동설한 머문 곳엔
사랑이 흐르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얼음장 녹 듯 온 몸을 녹이는
사랑이 주는 행복메이커
어느 겨울날 추억 /정심 김덕성
어느 겨울 해안가
거센 해풍에도 불꽃 피는 황홀한 자태
내 생애에 처음 만난 꽃 중에 꽃
곱다란 빨간 얼굴의 미녀
해 마다 겨울이 오면
그림처럼 떠오르는 빨간 정열의 미소
소박하면서 은은한 사랑의 동백꽃
잊어지지 않고 떠오른다
눈보라치고 거친 풍파에도
당황치 않고 누굴 그리도 사랑 하는지
곱게 단장하고 들어 낸 빨간 얼굴
너무 사랑스럽고 정겹다
청렴한 옷을 말끔히 입고
신념을 굽히지 않는 지조를 겸비하고
나를 기다리며 피어있을
화답하던 백설 속에 그 빨간 미소
너무 그립고 보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