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People
가수 한명숙 '헌정음악회'
2010년.10월.20일, KBS홀
눈이 나리는데는
1962년 HLKA(현KBS)의 라디오 연속극 <어느하늘아래서>주제가로
샹송가수최양숙이 처음 부른 노래로 1964년 우리나라 최초 TV일일 연속드라마인 <눈이나리는데>주제가로 리바이블 되었다.
이 주제곡은<노란샤스의 사나이>한명숙에 의해 발표되었으나 이어서 패티김 문주란 유익종 홍민등 여러가수들이 재취입한 바 있다.
얼마전 방송에서 생활고로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방송을 보는데 수원어느 단칸세방에서 20만원 월세로 생활하며 아들 작곡가는 공황장애가 왔다는 !!!!!! 그방송을 보며 착찹한 심정이었는데
2010년 10월 20일 저녁. 한류의 원조가수로 기록된 원로가수 한명숙(75)선생의 음악인생을 기리는 '헌정음악회'가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이 무대는 최근 창립한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가 마련했고 문화관광부와 신한금융에서 후원했다.
한명숙선생은 300여 곡을 발표하며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이지만
오래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힘겹게 자식들을 키웠고 노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가요계 후배들이 선배를 돕기 위해 뜻을 모았던 것.
이후 옮겨왔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 지방자치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문화가 있다.
지역을 배경으로 했거나 지역이 배출한 중요 가수의 노래비 건립이다.
배호의 경우는 이미 4개의 노래비가 건립되며 국내 최다 노래비 보유가수가 됐다.
생존가수인 최백호도 ‘영일만 친구’ 노래비가 있다.
그리고 복고문화가 활성화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후대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뮤지션을 위한 트리튜브
그러니까 헌정공연과 음반을 발매하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지난 10월 20일 저녁.
한류의 원조가수로 기록된 원로가수 한명숙(75)선생의 음악인생을 기리는 '헌정음악회'가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이 무대는 최근 창립한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가 마련했고 문화관광부와 신한금융에서 후원했다.
한명숙선생은 300여 곡을 발표하며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이지만
오래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힘겹게 자식들을 키웠고 노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가요계 후배들이 선배를 돕기 위해 뜻을 모았던 것.
싱어송라이터협회 부회장인 가수 최백호가 총 연출한 ‘한명숙 헌정음악회’에는
프로젝트 보컬그룹 포커스, 임희숙, 최백호, 송창식, 박상민, 인순이를 비롯해 아이들(idol) 그룹 포미닛까지 모두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최백호는 "저희가 일본에 공연을 가서 '노란 쌰스의 사나이'를 불렀는데 일본 분들이 따라 부르는 것이에요. 깜짝 놀랐죠."라고 말했다.
헌정음악회에 앞서 공연을 기획한 백순진 싱어송라이터협회장이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고
모철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한명숙선생에게 장관 명의의 감사패를 전달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히트곡 ‘노란 샤쓰의 사나이’ 등을 통해 한국 대중가요의 발전에 큰 공로를 세운 점을 평가해
한명숙선생에게 유인촌 장관 명의의 감사패를 수여한다. 대다수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일반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사회적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 그들이 처한 현실은 연 평균 소득 1천만 원 이하가 약 70%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
정부포상 확대를 통해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위상과 명예를 높이고자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광부는원래 문화훈장을 수여하려고 했는데 한명숙선생은 이미 훈장을 추서받았기에 감사패로 대신했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원로 코미디언 고 백남봉씨에게 화관문화훈장을, 패션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 바 있다.
앙드레 김의 경우 외국에서도 훈장을 수여했고 국내 문화훈장을 무려 2번이나 수여받은 대중문화인이다.
대단한 일이다.지적해야 될 문제가 있다.
백남봉의 화관문화훈장과 앙드레김의 금관문화훈장 수여에서 보듯 가수, 코미디언, 배우, 패션디자이너등 대중문화 각 장르에는 수여되는 등급이 차별화되어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코미디언의 경우 3등급 이상을 받을 수 없는 점은 시대착오적 산물이라 생각한다.
왜 정부에서는 대중문화 각 장르에 차별을 두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장르에 보이지 않은 가치기준으로 그 가치를 차별하는 조항은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
여하튼 문화체육관광부는 11월22일을 ‘대중문화예술인의 날’로 선포해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사회적 위상과 명예를 높이고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라 하니 반갑다.
하지만 장미빛 발표만 계속되고 실행여부는 지지부진한 사항이 너무 많은지라
앞으로는 시행을 한 후 발표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꾸는 것은 어떨지^.^
또 무대에 오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인사말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원로예술인들의 처우개선과 대중문화예술 진흥대책을 마련하도록 당부했다. 이번 헌정음악회에도 문화부가 1000만원을 지원했다“며 대중문화예술과 헌정공연에 관심을 표명했다.
지원을 약속하는 말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헌정음악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참관했다는 사실이다.
이 공연을 그저 단순한 행사로만 보지 않았고 있다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관심표명이라 느꼈다.
그동안 인사만 하고 사라지는 관행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유관 정부기관에서 한명숙 헌정공연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 점은 감사한 일이다.
공연을 진행한 관계자들은 이에 어떻게든 감사하고픈 마음을 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번 헌정공연은 한명숙의 음악인생을 기리는 음악회다.
어쩌면 관 행사처럼 비춰질지 모르기에 사전 행사는 백순진회장의 공연에 대한 의의 소개에 그쳤으면 좋았을 것 같다.
정부관계자들을 관객에게 인사시키는 순서는 객석에서 진행했더라면 어떨까 싶다.
이 헌정공연의 가치는 노개런티로 참여해준 후배가수들의 따뜻한 마음과 너무도 행복해 하는 노가수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음악적으로는 아쉬움이컸다.
우선 음향이 너무 벙벙거려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였고
무엇보다 한명숙의 노래를 재해석한 음악작업이 전무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정공연의 음악적 가치는 참가 가수들이 헌정가수의 음악을 탄탄하고 빛나게 할 때 더욱 빛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공연장 입구에 마련된 한명숙 선생의 음악인생을 전해주는 자료사진들과
과거 활동에 관한 자료화면을 보여주는 구성은 적절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헌정공연의 첫 무대는 프로젝트 보컬그룹 포커스가 열었다.
박학기, 강인봉, 박승화, 이동은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그룹이다.
그리고 한명숙선생이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밑에서 등장했다.
이 연출은 나름 극적 효과가 있는 좋은 연출이었다.
감격에 겨워 약간 상기된모습의 한명숙선생은 얼굴에서도, 목소리에서도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순 없지만 무대를 향한 열정은 여전했다.
"오랜만에 여러분 앞에 제가 나타났습니다.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핑 돕니다.
사랑하는 팬 여러분들 덕분에 다시 설 수 있게 돼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파란 드레스에 꽃무니가 수놓인 무대의상을 차려입은 한명숙선생이
자신의히트곡 '사랑의 송가'를 부르면서 헌정공연은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내 어린 날의 우상 임희숙선생의 무대.
그녀는 어려운 가수들을 돕는 무대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의리의 여가수다.
과거 봄비의 박인수 선생 돕기 공연때도 임희숙은 주도적으로 도움을 줬었다.
나 하나의 사람은 가고 등 자신의 대표곡을 선사한 임희숙의 보컬은 전성기에는 못 미쳤지만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내며 헌정공연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헌정공연의 연출을 맡았던 멋진 가을남자 최백호선생의 무대.
그는 제2의 전성기를 안겨다 준 '낭만에 대하여' 단 한 곡을 불렀을 뿐이지만 앵콜 요청이 쇄도할 만큼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어 등장한 걸그룹 포미닛의 무대.
관객층이 중장년세대들이라 호응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포미닛의 참여는 한명숙 헌정공연의 의미를 더한 값진 것이라고 평가해주고 싶다.
기타의 달인 함춘호의 연주와 함께 흥겨운 무대를 선사한 송창식선생의 무대.
송창식은 무대에서 한씨를 가리켜 "한국에서 팝송을 기반으로 노래했던 모든 가수들의 어머니 역할을 한 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빨간 드레스로 무대의상을 갈아입은 한명숙선생이 미8군 활동 당시 즐겨 불렀던 팝송 메들리를 열창했다.
그 장면은 잠시 휴식을 취하러 공연장 밖으로 나가있었던지라 모니터 화면으로만 봤다^.^
이 날 퇴행성 관절염으로 불편한 몸임에도 한명숙선생은 여전한 노래실력을 뽐냈고 감사의 마음이 컸기에 관객들에게 참으로 여러 번머리숙여 인사를 올렸다.
최근 기부천사로 화제를 모은 박상민이나 인순이 역시 남을 돕는 일에 적극적인 아름다운 가수들이다.
그리고 한명숙선생이 엔디무대를 장식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나왔다.
이때 백순진회장이 문광부의 감사패를 전달했고 이 자리에는 윤항기 선생이 함께 했다.
감사패를 대신 전하는 백순진회장이나 한명숙선생 모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을 것 같다.
한명숙 선생은 양 손을 번쩍 들어 기쁨을 표시했고 공연장은 박수소리로 가득찼다.
한명숙선생은 손녀같은 걸그룹 포미닛 멤버들의 헌정음악회 참여가 무엇보다 감동스러웠던 것 같다.
일일이 포옹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선생은 인순이의 손을 은근히 잡고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대단원을 장식할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다.
마지막 엔딩곡으로 한명숙선생이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후배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자
객석은 후끈달궈졌고 공연은 절정을 향해 내달렸다.
자식뻘, 손자뻘 되는 후배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무대는 불편한 다리도 잊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까지 추게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노 여가수는 무대 위에서 나이도 설움도 잊고 어느덧 희망의 노래를 불렀다.
거동도 불편하신 분이 어떻게 저토록 흥겹게 춤까지 추며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시던지 보는 이의 마음이 다 훈훈해졌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파격적인 리듬으로 6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화를 이끈 노래다.
이 노래가 일본과 대만, 말레이시아, 태국까지 알려지면서동남아 순회공연했을 정도였다.
노란싸스의 사나이가 한류의 원조라는 평가는 여기에 기인한다.
1935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난 한명숙은 17세이던 52년 '태양악극단' 단원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한국전쟁 때는 군예대의 일원으로 위문공연도 다녔다.
이후 미8군가수로 활동하면서 친분을 맺은 가수 최희준의 소개로 작곡가 손석우를 만난 뒤
1961년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공식 데뷔했다.
그후'센티멘털 기타', '눈이 나리는데'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70년대 말까지 활발히 활동했다.
트럼페터 이인성과 결혼했으나 남편이 41세로 숨진 뒤 2남 1녀를 혼자 키워왔다.
장남 가족과 경기 수원의 두 칸짜리 월셋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알려져
뜻있는 후배가수들에 의해 헌정공연이 마련되었다.
한명숙 헌정음악회는 시종 따뜻하고 감동적인 분위기속에 진행되었고 마무리되었다.
비록 한명숙의 음악이 후배들에 의해 재해석되는 시도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한없이 행복해하는 노 여가수의 얼굴에서 이미 이 헌정공연은 모든 걸 뛰어넘고 있음을 증명했다.
아마도 75세의 고령인 한명숙선생의 노래하는 모습을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무대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사진으로 기록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아낌없이 박수를 봰 관객들의 마음도 출연한 가수들 모두 하나가 되었다.
공연이 끝난 후 포토세션이 이었는데 객석에 있던 금사향 선생이 경호원의 등에 업혀 무대위로 올라왔다.
옛날 생각에 눈물이 났다며 감격스러워하셨다.
원로가수분들이 모여 이렇게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공연을 함께 만든 고마운 분들의 단체기념촬영.
사실 이런 단체기념사진은 잘 찍지 않는데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어주신 분들이 고마워 기꺼이 찍사가 되었다..ㅎㅎ
그리고 백순진회장을 좋아하는 사월과 오월 팬카페 회원들의 단체까지 까지~
이번 공연의 수익금으로 한명숙 선생님이 편히 사실 수 있도록 전세집이라도 마련해드릴 예정이라고 한다.
싱어송라이터협회의 첫 사업 앞으로도 이같은 의미있게 계속되길기대한다.
[출처]노란 샤스의 사나이 한명숙 헌정음악회를 기록하다|작성자절판소장
출처: https://wonn1234.tistory.com/837 [평보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