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한국의 탄생화와 부부 사랑 / 모람
♧ 1월 8일. 오늘의 역사와 기념일.
* 1932년 - 이봉창 의사, 히로히토 일본왕 암살 시도
* 1642년 -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사망
♧ 1월 8일. 한국의 탄생화
* 겨울에도 푸르른 남부지방의 상록수 : 뽕나무과 무화과나무속 3종
* 대표탄생화 : 모람
* 주요탄생화 : 왕모람
※ 1월 8일 세계의 탄생화
보랏빛 제비꽃 (purple Violet) → 4월 1일 한국의 탄생화
오늘 한국의 탄생화는 [뽕나무과 무화과나무속]의 나무 중 [늘푸른잎을 가진 상록수]인 [모람]입니다. 3종이 등록되어 있는데 [모람]과 [애기모람]이 자생식물이고 [왕모람]은 사람들이 식재하는 재배식물입니다.
[뽕나무과]는 전세계적으로는 40여속에 약 1,000여 종의 식물이 있다고 하나 현재 한국의 탄생화에는 5속에 25속이 등재되어 있고, 이 중 자생식물은 오늘 한국의 탄생화인 모람을 비롯하여 뽕나무, 꾸지뽕나무, 뽕모시풀, 천선과 등 14종으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꽃이 없다는 뜻의 무화과이지만 실제로는 꽃이 열매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중 [무화과나무속]은 크게 4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낙엽이 지는 나무인 [무화과나무류]와 [천선과나무류]는 열매가 익기 시작하는 6월 14일 한국의 탄생화로 정했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무화과]는 최근들어 남부지방 특히 목포, 나주, 영암 지방에서 각광받는 과실수가 되었고, 천선과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살던 나무인데 열매가 무화과에 비해 훨씬 작고 맛도 별로이지만 특이한 맛 때문에 과일이 귀하던 예전에는 양반들이나 맛볼 수 있는 고급과일에 속했다고 합니다.
낙엽이 지지 않는 상록수 중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종류로는 [모람류]와 [고무나무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같은 무화과나무속의 사촌지간이지만 전혀 다른 생태를 가졌습니다. 상록수인 까닭에 겨울 한국의 탄생화로 선정하였는데, 모람류는 오늘, 고무나무류는 열흘 뒤인 1월 18일입니다.
모람류의 [모람]과 [왕모람]은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부지방의 상록난대림의 주요 품종으로 나무나 바위 등에 뿌리가 흡착하어 살아가는 덩굴나무입니다. 말이 나무이지 풀보다 조금 더 굵고 질긴 덩굴가지를 가지고 있답니다.
[왕모람]은 [모람]에 비해 열매는 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역시 무화과보다는 작지만 비슷한 형태의 열매를 맺는데 먹을 수는 있지만 맛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무화과나무속] 나무들의 공통된 꽃말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꽃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보잘 것 없는 꽃들이 피지만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열매 속으로 들어가 열매의 일부가 되는지라 이런 꽃말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리 부부들의 사랑이 이런 것이지요. 오늘의 탄생화인 [무화과나무속] 나무들이 꽃이 열매에 녹아 있는 것 처럼, 사랑이 삶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평생 함께 사랑하며 함께 살아 가기로, 서로 다른 길로 걸어 왔지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부부가 되는 순간, 죽음이 갈라 놓을 때까지 평생 같은 길을 가기로 사랑의 맹세를 한 동반자이며 동지이며 친구입니다.
함께 길을 가다가 슬픔과 고통을 만나면 서로를 의지해 위로하고, 함께 노력해 이겨나가며, 기쁨과 행복을 만나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부부]의 또 다른 이름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1932년 오늘은 이봉창의사가 일본 도쿄에서 일본왕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일입니다. 거사는 비록 실패했지만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기개를 만 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의사께서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그 해 10월 10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시고, 해방 후 유해를 모셔와 현재 용산 효창공원에 안중근, 윤봉길 등 독립 투사와 함께 삼의사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1642년 오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타계하신 날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위대한 과학자에게 너무나 가혹하였습니다. 1633년 로마교황청 종교재판소는 그가 출판한 우리 행성의 움직임에 관한 책에 대하여 신성모독과 이단의 죄를 물어 유죄 판결을 내립니다. 그나마 이 가엾은 과학자가 다시는 교회의 뜻에 반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덕에 사형은 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활동은 중지되었고 피렌체의 가택에 죽을 때까지 연금되었습니다. 1638년 두 눈이 완전히 실명되고 건강이 악화된 갈릴레오는 1642년 오늘 발열 등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의 우주, 그의 하느님에게로 돌아갑니다. 그의 형벌은 어리석은 교회가 위대한 예언자에게 행한 무지의 폭력이었습니다.
길릴레오. 그는 교회로부터 단죄 받았지만 당시 어떤 신학자와 성직자도 그보다 더 하느님과 가까이 있었던 자는 없었습니다.
갈릴레이가 죽은 지 100년 쯤 지난 1757년, 교황청은 비밀리에 그의 유죄를 취소하였으며, 이 후 1835년 그의 저서를 금서 목록에서 해제하였습니다. 199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annes Paulus II)가 갈릴레이는 교회에 의해 박해받았으며 갈릴레이는 위대하다고 선언함으로써, 갈릴레이에 대한 완전한 명예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하느님을 교회의 독점적 존재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온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이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교회 안에 하느님의 영역을 가두어 버립니다. 교회의 힘이 세었을 때에는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이 이방인이었지만, 과학 기술이 세상을 이끄는 중심이 되자 교회가 오히려 세상 속 이방인이 되어갑니다.
갈릴레이의 타계일. 종교와 과학이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의 기원으로 여기는 빅뱅이 하느님의 신성한 창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라는 것은 진화할 존재의 창조가 있어야 가능하다"
- 2014년 10월 28일 교황 프란치스코 1세
과학의 발달로 우리는 우리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고, 우리 생명은 어떻게 만들어져 어떤 과정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를 대략 알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과학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러한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 오직 수천 년 전에 그 시대의 지식과 깨달음으로 쓰여 진 경구에 매달려 현대 인류의 진리와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다.
- [유레카3] 중에서
♧ ME부부 꽃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