數者二一三畵也卽(수자이일삼화야즉)
夫一之參書者也(부일지참서자야)
毋計展開明徹(무계전개명철)
第且非開落(제차비개락)
反復道也(반복도야)
수(數)라는 것은
둘 하나 셋을 그린 것으로
하나가 참여함을 써놓은 것이다
펼쳐서 밝힐 셈이 아니다
또 열려서 떨어지는 셈이 아니다
반복하는 진리다
[다석일지 1958. 11.16]
류영모가 말한 수(數)는 수학적인 개념의 수가 아니라, 주역에서 언급되는 운명이나 예언의 수를 의미한다. 펼쳐서 밝히는 것은 예언이고, 열려서 떨어지는 것은 운명이다. 주역의 수는 궁극적으로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一)’가 천지와 세상에 참여하는 것을 밝혀놓은 것이라고 본다.
주역에서 뭔가 비밀을 좀 알아내서 ‘요행수’나 진리를 피해서 갈 수 있는 묘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셈은 열려질 셈(열려져서 나갈 셈)도, 열려서 떨어질 셈도 아니고, 하나 둘 셈 뿐.” 하나 둘 셈은, 하나(한얼님)를 둘(모실) 셈(계획)일 뿐이라는 것이다.
수는 주역의 원리를 이루는 한 요소다. 주역은, 象(형상) + 辭(말씀) + 數(숫자)로 이뤄져 있다. ‘상(象)’은 음양을 부호로 그린 괘효(卦爻)다. ‘사(辭)’는 괘와 효를 푼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다. ‘수(數)’는 음양 작용(천지의 이치)을 설명하는 것이다.
수(數)는 숫자의 개념과 이치-기술-솜씨의 개념, 운수-방법의 개념을 지닌다. 천수(天數)라고 할 때는 수명이나 천운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역 계사전에는 ‘數(수)’라는 단어가 네 군데에서 모두 아홉 번 등장한다.
極數知來之謂占(계사 상 제5장).
극수지래지위점
수를 분석하여 미래를 아는 것을 점(占)이라 한다.
天數,地數,凡天地之數,大衍之數,萬物之數也(계사 상 제9장).
천수, 지수, 범천지지수, 대연지수, 만물지수
* 대연지수는 크고 넓게 펼쳐지는 수(크고 넓게 작용하는 수)라는 뜻으로 음양을 낳는 태극이 실제로 부리는 수이다.
參伍以變, 錯綜其數, 通其變,遂成天下之文, 極其數,遂定天下之象(계사 제10장).
참오이변 착종기수 통기변 수성천하지문 극기수 수정천하지상
다섯 번 변하는 절차를 세 차례 (되풀이 하여 한 효를 만들고), 그 수를 모으고 섞어서 그 변화에 통함으로써 마침내 천하의 문채(이치)를 이루고, 그 수를 다하여 마침내 천하의 상(괘)이 정해진다.
古之葬者, 厚衣之以薪, 葬之中野, 不封不樹, 喪期无數(계사 하 제2장)
고지장자 후의지이신 장지중야 불봉불수 상기무수
옛적엔 장례라는 것은 들 가운데에서 지냈는데 두꺼운 옷 [수의(襚衣) 대신에] 잡풀로써 덮고 나무로써 덮어 봉하지도 않고, 장례기간도 (따로) 없었다.
주역에서 쓰인 수(數)는, 시초(蓍草)로 효와 괘를 짓는 절차에 쓰이는 숫자를 가리킨다. 그 수를 점(占)이라고도 한다. 수를 분석하는 것을 극수(極數)라 하는데, 이것이 효와 괘를 짓는 일이다. 효는 천지변화를 표현하는 음양으로 표시한다. 효 6개로 괘가 결정된다. 양효는 1획이고 음효는 2획으로 구분된다.
괘를 짓는 가운데 태극(太極), 육효지변(六爻之變), 양의(兩儀), 삼재(三才), 사상(四象), 사시(四時), 윤달을 고려해 천지의 움직임을 숫자로 풀어낸다. 양수(陽數,홀수)와 음수(陰數, 짝수), 천수(天數)와 지수(地數), 범천지지수(凡天地之數), 대연지수(大衍之數), 천책(天策)과 곤책(坤策), 만물지수(萬物之數)가 이에서 비롯된다.
주역의 수는 천지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그것이 결코 신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지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신의 진리를 미리 알아채서 인간이 삶이나 운명에서 어떤 유리함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신의 존재를 뚜렷이 하는 ‘하나 둘 셈’이라고 강조한다.
인간 운명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주역에서, 한얼을 향한 신앙의 독실(篤實)을 찾아내는 류영모의 근원적 통찰은 굳센 믿음이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모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