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정우성의 감독 데뷔 여부는 억측과 추측이 난무한 충무로에서도 벌써 몇 년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FILM2.O은 지난 2월 '충무로 7대 궁금증,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특집기사(62호)를 통해 그의 영화감독 데뷔설에 얽힌 전말을 취재했는데 당시 그의 매니저는 "조만간 한가지가 나올것"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오히려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은 슈퍼 35mm 포맷에 조인성과 신민아라는 톱스타가 출연하는 god뮤직비디오 '바보' '슬픈 사랑' '모르죠' 세 편을 정우성이 연출하게 된 것이다. 조인성만으로도 흥분인데, god만으로도 감격인데, 정우성이 "레디, 액션!"을 외친다니.
'설마 국물까지 다 들이킬줄이야..." 수천만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는 외제차가 드물지 않게 지나가는 새벽 4시의 청담동 카페 골목. 정우성과 조인성이 작은 접이의자에 앉아 7백원짜리 사발면을 먹고 있다.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으리으리한 카페를 바라보며 드문드문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라면 먹기에 속도가 붙자 말수를 줄인다. 정우성이 사발면을 심상치 않은 각도로 그의 입술에 걸치기를 몇 번, 마지막으로 턱을 힘껏 젖히고 난 후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뱀가죽 재킷 위에 담요를 뒤집어쓴 채 면발을 건지는 조인성도 뜻밖이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카페 골목 여기저기를 점령하고 있는 촬영과 조명 장비, 그리고 옷 속으로 파고드는 새벽 찬바람은 이들의 낯선 모습에 궁색하지 않은 변명을 제공한다.
정우성 연출, 조인성, 신민아 주연의 god 뮤직비디오 마지막 밤샘 촬영현장. 며칠째 이어진 강행군 활영에 감독 정우성과 주연배우 조인성은 사발면이라도 먹고 기운을 내야 했다. 하지만 야참을 먹은 조인성이 조명이 떨어지는 곳으로 나가 번쩍거리는 가죽옷을 자랑하는 반면, 정우성은 여전히 접이의자에 앉아 모니터 불빛에 콘티 뭉치를 들여다본다. 호형호제하며 사발면을 나눠먹던 배우와 감독은 그렇게 카메라 앞과 뒤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다음날 오후까지 찍어야할 분량만 줄잡아 50컷.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동원한 엑스트라들이 예정보다 일찍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정우성은 마음이 다급하다. 해가 뜨기 전에 야외 신을 찍어야 하고 아침이면 이 카페의 내부로 설정된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겨 실내신도 찍어야 한다. 이동과 조명 세팅, 식사 시간에 소요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97년 비로소 배우로 인정받은 <비트>의 개봉 직후부터 "연출을 하고 싶다"고 말해온 정우성은 지난 2월 소속사인 싸이더스의 정훈탁 이사로부터 god 뮤직비디오의 연출을 제안 받았다. 이미 2000년 god의 '그대 날 떠난 후로'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바 있는 그로서, 소속사의 제안을 승낙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4집 수록곡 '모르죠' 한편이었던 것이 '바보' '슬픈 사랑'까지 세 편으로 늘어나면서 작업은 자연스럽게 세 편의 뮤직비디오가 하나의 드라마로 엮이는 15분짜리 단편영화의 모양새를 갖춰갔다. 정우성은 <비트><유령>에서 호흡을 맞춰원 임희철 프로듀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초면인 스탭들과 팀을 이루게 됐는데 심지어 연출부 중에는 정우성이 감독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다가 깜짝 놀란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현장에서는 모두들 그를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정우성도 감독처럼 행동했다. 1백명이 넘는 스탭과 배우를 거느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컷을 찍었고 촬영이 지난 까페엔 담배 꽁초 하나 남기지 않았다.
오랫동안 정우성과 일을 해온 임희철 프로듀서는 "정감독은 충무로 스탭들 사이에서 평판이 가장 좋은 배우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다가 스탭과 함께 현장 쓰레기를 주울 정도로 팀워크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이번 연출에서는 침착하면서도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까지 보여줬다. 특히 연기 연출이 뛰어났다"고 말한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 촬영을 마치고 이번 뮤직비디오를 찍게 된 박용수 촬영감독도 "정감독은 거의 콘티대로 찍었다. 카메라와 배우 동선을 잡는 능력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우성 감독은 "다들 고생이 너무 많았다"며 11회에 걸친 촬영이 무사히 끝난 것을 고마와했다.
그렇다면 스타 감독에 스타 배우가 성공리에 촬영을 마쳤다는 god뮤직비디오는 언제쯤 볼수 있을까? 여기서 유선방송이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는 독자들에게 안타까운 소식 한가지를 전해야겠다. 4월 말부터 방영 예정인 god의 뮤직 비디오 '바보' '슬픈 사랑' '모르죠' 는 지상파 방송에서는 방영되기 힘들지 모른다. 영화와는 달리 방송을 타는 뮤직비디오는 심의기준이 엄격한 편인데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god뮤직비디오는 심의에서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이 여럿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고아 출신의 특수경찰 N(조인성)이 국내 최대의 마약조직에 위장 잠입했다가 조직보스가 가장 아끼는 '소유물'인 애인I(신민아)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의 이번 뮤직비디오에는 마약 흡입장면과 문신 시술 장면이 포함돼 있고,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이 있는 등 전체적으로 표현 수위가 높아 제작진과 제작사는 '19세 관람가'를 예상하고 있다. 정우성 감독은 "콘티를 짤 때부터 어느 정도 '방불'을 예상했다. 작품을 포기하지 ㅇ낳기 위해 유선 방송대의 심야 시간대나 인터넷 방송 등의 상영을 고려하고 있다. 지상파를 포기해도 채널은 무척 다양하다"며 심의 결과에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긴 분당 어디에선가는 백주 대낮에 도둑 촬영까지 했다는데 누가 정우성 감독의 뚝심을 막으랴?
특별히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극장에서 멋지게 상영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충무로가 연출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는 뮤직비디오 연출에 정우성이 이다지도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그 '무엇'에 목마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