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기/홍일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허공에 게시된 색색의 표정들
너, 누구니?
대답이 없는, 가까이 다가가면 흩어져 사라지는
있는 듯 없는 방향을
몰래 훔쳐다가 항아리 속에 넣고 조금씩 꺼내 써야겠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때
나는 나를 증명하지 않고
희미한 숨결로 떠돌다가 함박눈으로 흩날려야겠다
외눈박이 태양에 발각되지 않고
세상에 몰래 잠입하여
밤의 얼굴을 하얗게 칠해놓고 흰 장미처럼 웃어야겠다
밤은 나를 소비하는 일이 즐거워서 발목이 사라지는 줄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나를 아무도 찾지 않을 때
가난한 문장에서 흘러나온 숨결이 유리창에 성에로 얼어붙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