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황영
영화 촬영 도중에 키우던 야호(강아지) 가 집을 나간 일이 있었다. 촬영 기간 집을 비워야 해서 상주에 사는 지인에게 야호를 맡겼다. 첫날은 지인이 보낸 사진에서는 야호가 잘 지내는 듯 보였다. 문제는 둘째 날에 터졌다. 야호가 열린 현관문 밖으로 탈출한 것이다. 들개 출신의 사회성 없는 야호는 그나마 마음 붙였던 주인을 찾기 위해 도망쳤다. 울먹이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촬영은 제쳐두고 논산에서 상주로 향했다. 차로 두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지인은 야호의 사진을 온 동네에 붙였고, 지인의 친구들까지 동원해 야호를 같이 찾아다녔다. 겁이 많은 야호는 사람들이 근처에 오면 무작정 달렸다. 그리고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내가 도착했을 때 멀리서 공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게 보였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야호가 멀리서 나를 봤는지 숨지 않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야호를 끌어안았다.
아내는 예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전국의 유기견 보호센터 홈페이지에 매일 드나들며 유기견들을 살폈다. 선호하는 강아지가 계속 바뀌더니 한 날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 강아지로 정했어!” 경남 고성 유기견센터에서 구조한 강아지였다. ‘들개 출신, 겁이 많음’ 홈페이지상에 짧은 설명이 적혀있다.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해 강아지 입양날짜도 정했다. 벌써 이름도 지어 놓고 예약해 둔 날짜가 오길 기다렸다. 입양 당일 케이지를 챙겨 이른 아침부터 나섰다. 야호는 꼬리 흔드는 여느 개들과는 달랐다. 잔뜩 겁먹고 움츠린 체 곁눈질로 우리를 살폈다. 입양 서류를 작성하고 야호를 차에 실었다. 야호는 집으로 오는 내내 헛구역질을 해댔다.
야호가 집에 와서 첫 산책을 하기까지는 5개월이 걸렸다. 처음에는 먹질 않아서 먹이 훈련부터 목줄 훈련, 산책 훈련을 거쳐 결국 첫 산책까지 해냈다. SNS에서 알게 된 들개 전문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러 사회화훈련을 거치면서 지금은 산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만 아직도 만지는 걸 싫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야호를 데리고 아내와 산책할 때면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에서는 서로 연관 없는 사람들끼리 가족을 이뤄 살아간다. 할머니가 타오는 연금으로 어렵게 살긴 하지만 평범한 여느 가족 못지않게 화목하고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도 살아가는구나. ‘했다.
어렵게 완성한 영화가 정동진 독립영화제에 처음 상영되었다. 정동진 독립영화제는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밤하늘의 별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낭만적인 영화제이다. 3일 동안 여러 편의 영화가 끝나고 해당 영화의 팻말이 적힌 통에 동전을 넣어 가장 많은 동전을 획득하는 영화에게 주는 ’땡그랑 동전상‘이라는 특별한 상이 있다. 금액은 많지 않지만, 관객들이 주는 의미 있는 상이었다. 영화제가 시작된 이후로 최대 관객이 들었다는 소문과 함께 누가 ’땡그랑 동전상‘을 탈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모든 영화가 끝나고 감독들의 영화 어필과 동시에 장기 자랑이 시작되었다. 어떤 감독은 배우들과 기타를 치며 노래하였고, 어떤 감독은 랩을 하였다. 우리 팀은 준비해 간 것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야호와 그동안 해왔던 개인기를 선보였다. 정동진 영화제 25년 역사상 강아지가 무대에 등장한 적이 없었기에 모두 환호했다. 사회자는 관람객들에게 모두 야호를 부르게 했다. 모두가 “야호~”라고 외치자, 야호가 깜짝 놀라 동그란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야호 덕분이었을까. 그해 ’땡그랑 동전상‘은 우리 팀에게 왔다.
야호 탈출 사건 이후로 영화를 찍을 때 야호를 현장에 데리고 다닌다. 그냥 데리고만 다니는 게 아니라 가끔 출연도 시킨다. 야호가 은근히 카메라 체질이라며 주책 떨기도 하지만 막상 어디 맡길 때 없는 속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된 바에야 그냥 계속 달고 다니는 게 편한 셈이다. 함께 있어야 가족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