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여행중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첩첩산중, 그야말로 하늘과 강물,
산만이 함께하는 오지에 있는 단촐한 시골 간이역인 승부역.
봉화읍에서 승부역으로 가려해도 2차선 국도를 휘휘돌아 계곡을 두서너번 건너고
높은곳에 위치한 산촌의 시골길을 달려가야 할만큼 산중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은 겨울철 눈꽃열차를 운행하는 환상적인 풍경이 일품인
해발 855m에 위치한 태백 추전역이다. 하지만 추전역은 현재 일반열차는 달리지 않는
눈꽃열차만 운행하는 역이라면 승부역은 지금도 강릉과 부산을 연결하는 영동선이 다니는 작은 간이역.
승부역은 출렁다리를 건너 가면 큰 비석에 써 있는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란 40여년전 이곳 승부역에 근무하던 직원이 썼다는 글귀처럼,
소박하지만 주변 환경과 함께 어울려있는 기차가 서는 가장 높은 역이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자리한 승부역은 열차가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첩첩산중에서 사람들을 맞이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50여년을 넘긴 1956년이다.
당시 경상북도 영주와 강원도 철암을 잇는다 해서 '영암선'으로 불렸던 철길은
승부역 부근에서 가장 힘들게 공사를 벌여야 했다. 그리고 강원도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경남지역의 공업지대에 나르고 수출하기 위해서는 이 철도가 꼭 필요했단다.
기술도 별로 없고 험준한 고봉과 바위들이 가득한 산을 가로질러 철도를 연결해야 하니
얼마나 그 공사가 힘들었을까.
그 때문인지 당시의 대통령인 이승만이 이곳 승부역에서 열린 영암선 개통식에 참석해
기념비를 제막하기도 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 탄광지대에서 석탄을 실어나르는
화물열차가 하루 60번 이상 오갔지만 지금은 스무편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해발 500m 높이 산골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장날을 맞아 인근 춘양이나
영주장을 찾던 발길도 지금은 거의 끊겨버렸다. 현재는 승부역에 하루 7번 정차하는
무궁화 열차를 오르내리는 승객은 어림잡아도 열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 1998년부터 한 겨울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해 강원도 추전역까지 오가는
'환상선 눈꽃열차'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바로 경북 봉화의 승부역이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기껏해야 1시간 30분 가량에 불과하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머물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역이 됐다. 강원도 태백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영동선은 철암천을 거쳐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가며 이어져, 낙동강 여행을 겸한 기차여행코스로 으뜸이다.
특히 태백의 철암역에서 봉화의 임기역까지 구간이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며
낭만을 함께 흘려보낸다. 이 구간은 열차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매력과 낭만을 여행객들에게 듬뿍 안겨준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곳이 바로 봉화 승부역.
열차가 아니면 접근이 어려운 곳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역무원들도 모두 기차로 출퇴근할 정도였다.
기차로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승부역이지만 자동차로는 다소 접근이 어려운 편이다.
봉화읍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태백방면으로 향하다 청옥산자연휴양림을 지나
육송정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석포역을 지난다. 계속 직진하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철교 아래를 통과하면 '승부 가는 길 12km'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승부역에 가면 고즈넉한 풍경에 취해 하늘, 꽃밭, 계곡에 넋을 잃고 기차역의 벤치에 앉아
그냥 멍하니 바라본다. 이곳에 있으면 세상의 모든 욕심과 근심이 사라진다.
이곳에서 만나는건 어디론가 자유롭게 떠나고 내리는 그리움과 설레임이다.
솔직히 잘 꾸며놓은 간이역을 생각했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작은 단층의 역사 앞에는 철로와 승강장이 있고 그 앞에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낙동강이 있다.
굽이 굽이 산과 강을 따라 달려온 기차가 터널을 통과해 다리로 들어오는 모습은 작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승부역을 가기 위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70m의 인도교인 승부 현수교와 눈꽃마을,
소원을 빌면 하나쯤은 들어준다는 용관바위, 영암선개통기념비 등은
작은 승부역에 사람들을 가둬놓는 묘한 매력이 있는 풍경이다.
맑게 흐르는 낙동강에서는 꺽지나 갈겨니, 쏘가리 등을 잡을 수 있고 특히 눈꽃마을로 가는
세월교 위에서 낚시를 하기 좋다. 또 승부역 뒷편 투구봉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 싸우던
심심산골의 의병들이 투구로 물을 받아먹으며 전의를 다졌고, 아픈 몸이 깨끗하게 회복됐다는
깊은 산속에서 나오는 투구봉약수가 흘러 나온다. 삼림욕과 함께 맑은 공기만 마셔도
본전을 찾을수 있는 1.5km의 고즈넉한 오솔길과 청정 계곡수가 일품이다.
승부역이 눈이 내릴때 제일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꽃이라지만
가을에도 빼어난 단풍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여름 피서지로도 손색없다.
이곳은 열차로 다녀와야 낙동강과 승부역의 진면목을 100% 제대로 느낄 수 있지만
하루에 몇차례 운행하지 않아 쉽지는 않다. 승부역에 간다면 충분한 먹을거리를 준비해가야 부담 없다.
이곳은 눈꽃열차 행사 기간을 제외하면 식당은커녕 간이매점조차 없어, 장시간 머물다간 쫄쫄 굶는다.
하지만 한번 발을 들이면 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는 마음을 품고 발길을 돌리게 된다.
승부역에서 머물렀다가 기차를 타고 삼척이나 동해로 가는 기차를 타볼것을 추천한다.
두시간 조금 더 걸리는 삼척행 열차에 올라 승부역과는 또 다른 모습인 동해의 바다에서
하루를 쉬다가 오는것도 괜찮을것 같다.
승부역까지 멀고 먼 길을 달려와서 처음 만난 것은 길이 70여m의 출렁다리인 승부현수교.
승부역 근처의 승부리 산촌 주민들이 이 다리를 건너 승부역에서 열차를 이용해 인근 지역으로 나들이를 한다.
출렁거리는 인도교를 건너는것만으로도 한껏 승부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겨울철 눈이 내리고 계곡이 얼어붙으면 설경속의 인도교는 한폭의 근사한 풍경을 선사한다.
역 인근 마을은 이제 열가구 정도만 남아 겨우 옛 자취를 보여주고 있지만 젊은 사람이 없어서
한가하고 고즈넉하기만 하다. 시대의 흐름속에 승부역 또한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56년 1월 개통 당시 보통역으로 출발했지만, 41년 만인 지난 97년에 역무원이 배치된
간이역으로 격하됐고 석포역에서 관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 열차 신호만 취급하는 신호장으로 격하됐던 승부역은 철도공사의 설립과 함께
2005년 다시 보통역의 지위를 되찾았다.
보통역의 지위를 되찾은 데는 두메 산골에 내린 하얀 눈이 빚어내는 설경이 큰 역할을 하였다.
평소같으면 맑은 낙동강물이 흘러가련만 전날 내린 폭우로 인해 강물은 시뻘건 흑탕물로 변했다.
태백의 황지에서 발원한 강물이 산을 휘감아 마을을 돌면서 흘러들어 거대한 낙동강을 이룬다.
기차가 다닌들, 버스가 다닌들 자연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을 보다듬어줄뿐, 이렇다할 생채기를 하지 않는다.
낙동강 위로 가로놓인 다리를 6번 정도 건너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비포장길을 따라가다
승부현수교 앞에 차를 세우고, 현수교를 건너면 승부역이다. 12km 거리지만 30~40분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제법 지루한 길이나 산골마을 풍경과 계곡을, 바라보면서 느리게 간다면
이색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법 좋다. 만약 차량없이 가려면 석포면에서 승부역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산넘고 물건너 가는 제법 가파른 코스이지만 지나가면서 만나는 들꽃과 계곡,
산촌마을의 풍경이 운치있고 여유만점이다.
걸어서 가려면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리니, 물과 간식은 충분하게 준비해야 하겠다.
승부현수교를 지나 콧구멍다리같은 세월교를 건너면 제법 차를 세울만한 주차장이 나온다.
승부역 솔직히 처음 마주했을때에는 역사도 옛모습의 그것이 아니고 주변 분위기도 너무 새것이라
좀 적응이 안되었다. 시골 오지의 간이역이라면 지붕도 기와에 삼각형 건물,
역 주변도 옛것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모두 현대화된 역풍경이다.
주변에 민가 하나 보이지 않을만큼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해있어 누가 이곳에서 기차를 탈까 생각했지만,
가치시간에 맞춰 찾아오는 인근 촌로들을 보니 기차역이 맞긴 맞구나 하고 생각한다.
여든은 넘어보이는 마을의 어르신들 두분이 태백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등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계시는데, 아들내에 가려고 바리바리 나물이며 과일 등을 준비한 모습에서
고향의 포근함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두분은 버스가 잘 다니지 않은 산골마을의 사정상,
이 기차는 주민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교통수단이라고 하셨다.
어느 역무원이 40여년전 이곳에서 근무할때 남겼다는 싯구는 승부역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글귀처럼 다가온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열악하고 심심산골이였을텐데, 혼자 썰렁하고 조용한 역에서 근무할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지만 그는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란 작은 승부역이지만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란 싯구로 승부역의 자부심을 높게 그렸다.
여인의 속살 같이 은밀한 곳. 승부는 한국의 오지라 불리는 봉화에서도 가장 오지마을이다.
태백준령이 흘러내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비룡산과 오미산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에 띄엄 띄엄
10여가구가 살고 있는 곳이다. 한나절이 되어서야 해가 뜨고 점심을 먹고나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는 곳.
산전이 고작인 이곳은 예부터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이라고 하는 곳이었고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곳이었다. 정감록에 십승지, 삼둔 사가리라 불리는 곳에 이곳을 포함시킨다하여도
손색 없을것 같다. 절해고도와 같은 이곳 승부를 세상과 연결시켜 준 소통의 메신저가 바로 영암선철도.
철로는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 문명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문이 되었다.
승부역에서는 사랑하는, 고마운, 아끼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빨간우체통이 있다.
승부역에서 기념엽서를 구입해 스탬프를 찍어 보낼 수 있는데, 평소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글로 보내면 더 사랑과 우정이 싹틀것 같다. 문득 그리움이 생길 때, 보고픈 이들에게 편지를 띄우자.
승부역의 맑고 청명한 공기와 푸른하늘에서 쓰는 몇구절의 편지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투명하고
깨끗한 마음을 담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글귀가 되지 않을까.
승부역 한쪽은 육지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닦여있는 곳이고 한쪽은 터널과 준봉,
강으로 막혀 있어 기차가 아니면 갈 수 없다. 이곳 육지속의 섬,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빨간우체통 속에 기념엽서를 넣는다는것은 너와 나의 만남이 시작된다고 할수 있다.
만남이 그리워지는 요즘, 특히 문자나 메신저가 아닌 진심을 담은 직접 쓴 편지 한통이
몹시 기다려지는 시대인것 같다. 하지만 현재는 안타깝게 엽서를 판매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엽서를 쓰는이가 없어서일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가보다.
나홀로 근무하는 역장이 머무르는 승부역. 사람이 없는 날에는 새와 들짐승,
그리고 잔잔히 흘러가는 구름만이 함께하는 곳이다.
혼자 근무하기 외롭지 않으세요 물었더니 이것 저것 바쁘기도 하고 적응되어 외로울 시간이 없다고 한다.
글쎄 이런 외진곳에 혼자 근무한다는것이 그리 녹녹치는 않을듯한데.
외로움에 적응되서일까 아마 직업정신 때문이겠지.
도시의 쳇바퀴처럼 짜여있고 복잡한 삶속에서 이처럼 휑하고 섬같은 곳에서 생활하라면 할 수 있을까.
한 일주일은 버텨보겠지만 그 뒤로는 아마 스님이 되는것이 낫지 하면서 승부역을 박차고 나갈것 같다.
승부역에 한떨기 주황색의 꽃이 소복하게 피어났다. 'COME INTO FLOWER'란 김초희님의 작품.
꽃속으로 들어가다란 제목의 작품은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의 다양한 생각들을 집어 넣었다.
아름다움이 지는 순간의 안타까운 심정과 꽃이 주는 사랑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
황홀하게 피었다가 짧은 순간 피다 시드는 꽃에 대한 상념들,
순간의 기억은 추억의 뇌리에 인상적으로 저장된다.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을 행복의 상자에 담아두고,
그 꽃을 기억하는 추억의 소재로 항상 남는다. 깊은 산골 외로운 승부역에서 만나는 꽃의 떨림은
단지 꽃이 아닌 승부역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꽃의 뒷편에 굳게 닫힌 소중한 추억을 담은 자물쇠들이 촘촘히 걸려 있다.
철로의 보수와 안전을 기하기 위해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이용했던 핸드카.
영화에서 아마 많이 마주쳤을것이다.
손으로 펌프를 앞뒤로 움직여가며 수동으로 운행하던 핸드카는 사람과 보수장비들을 싣고 철로위를 달렸다.
승부역에 서는 영동선은 부산과 강릉을 운행하는 기차이다.
동해, 태백쪽으로 가는 석포역과 영주, 대구쪽으로 가는 분천역이 승부역과 이웃해 있다.
쇠로 만든 팻말보다는 예전의 나무로 만든 이정표를 세워두는게 승부역에는 더 어울릴듯싶다.
기차가 다니는 모습을 보려면 차분히 승부역의 벤치에 앉아 기다려야 한다.
가끔 지나가는 석탄과 화물을 실은 기차라도 지나가면 반가움에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손을 한번 기차를 향해 흔들어주고. 어릴적 할머니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대청마루에서
시내버스가 지나가는걸 보면 마당으로 나가 반갑게 보곤 했는데.
승부역 앞쪽으로는 깨끗한 물이 거울처럼 흐르는 낙동강이 흐르는데,
비가 많이 와서인지 좀처럼 맑은 물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세차게 흘러가는 낙동강에서 낚시를 할 수 있다는데, 아직 역장님도 낚시대를 담가보지 않았다고 하신다.
역장님은 억센 억양의 토종 경상도사나이처럼 무뚝뚝하지만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는 사람같아 보였다.
홀로 사무실도 지키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안내도 하고 기차표도 팔고 있다.
작은 역무실에는 살림을 하는 방한칸의 관사도 있다.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강도 얼어붙어 얼음을 탈 수 있는 썰매장도 만들어지고
먹거리장터도 열린다지만 가을에는 좀 썰렁하다.
단풍이 들어 단풍열차가 이곳까지 운행된다면, 아마 먹거리장터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승부역에 내려 비룡산과 투구봉을 등산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인근 석포역에서 걸어서
트레킹하는 배낭을 맨 젊은이들도 있었다. 가을빛에 그을린 갈색의 얼굴은 마냥 건강해보였다.
그냥 승부역을 방황하면서 둘러보기보다는 승부역뒷편에 있는 투구봉까지 산책도 하고
약수물도 먹어보는게 더 승부역의 진면목을 알아가는데 좋을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못먹고 위장병과 옻 등을
치료하지 못해 사기도 떨어지고, 몰락할 상황이었지만 투구봉약수터에서 갑옷과 투구를 벗어놓고
약수를 먹고 바르자 병이 씻은 듯이 나아 전투에 승리하였다 한다.
투구봉으로 걸어가다보면 작은 독립문처럼 보이는 영암선개통기념비가 있다.
영암선은 영주와 철암간의 87km 철로의 개통을 기념하면서 1955년에 세운것인데,
영암선 공사중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구간이다. 험한 지형의 난관을 극복하고
태백지역의 지하자원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사와 공병대가 투입되어 순수하게 만들어진 영암선.
영암선 공사는 1949년 해방후에 착공했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마침내 1955년 12월 30일에 완공되었다. 험준한 산맥을 뚫는 어려운 공사를 거치면서
교량 55개와 터널 33개가 설치되었는데, 전체구간의 20%가 넘을만큼 난공사였다 한다.
영암선은 영주에서 부설을 시작해 봉화, 춘양을 거쳐 공사를 해 올라가다가 현동을 지나면서부터
지형이 험해 별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철암에서부터 석포쪽으로 공사를 하면서 내려왔다.
그렇게 해서 승부에 이르러 두곳에서 공사하던 선로를 이어야 했는데, 암반으로 들어찬
여러개의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어야 하는 등 지형이 너무 험준했다.
아득한 계곡위로 교량을 놓는일은 노련한 인부들에게도 힘든 일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사중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런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숭고한 피로 만들어진 영암선.
순수한 우리 기술과 인력으로 세웠기에, 이곳을 방문한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친필로
영암선 개통을 축하하면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에 글씨를 남겼다.
분천으로 가는 영동선의 기차들이 철제교량을 건너 터널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터널속에서 갑자기 털털, 우웅하는 소리를 내면서 기차가 들어오기도 한다.
평소 많이 보던 기차이지만 큰 뛰뛰빵빵 소리를 내면서 찾아오는 기차는 반갑기만하다.
터널을 뚫고 철교를 건너오는 기차를 보고 있자니,
설경구가 "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쳤던 박하사탕 촬영지 충북 제천 애련리 진소마을의 철길이 떠오른다.
곡선을 그리며 달려오던 기차와 주인공의 장면이 스친다.
전주이씨 7대조인 절충장군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산세가 험한 이곳 승부로 귀향을 오게 되어
고개를 넘으려고 할때, 천둥과 번개가 심하게 쳐서 작은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비가 오는 어둑한 밤, 잠에 들어서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 용이 나타나
"나는 이곳 굴통소에 사는 용이니라. 이 고개는 나의 등이고 고개 넘어 바위는 나의 갓이니,
감히 이 고개를 넘어 바위를 만지고 지나가는 자는 모두 살아서 가지 못하리니 고개를 넘지 말고
낙동강으로 돌아서 가라" 고 하자 그대로 낙동강을 건너 가게 되어 무사했다고 한다.
물론 전설의 일이니 그냥 고개를 넘어갔어도 무사했을수 있겠지만.
그 일이 있은 후에 절충장군은 이 영험한 바위를 용관(용의 갓)바위라 부르고
매년 제를 올려 대를 이어가며 큰 복을 받았다고 한다. 승부역 건너편에 우뚝 솟은 바위가
용관바위이고 용관바위 아래 깊은 소용돌이 치는 물이 바로 굴통소이다.
용관바위의 등인 뒷산이 용등재인데, 어려움이 있을때 용관바위를 향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승부역 건너 마을에는 눈꽃열차가 운행하는 겨울에 장터가 열리는 눈꽃마을이 있다.
물론 평상시에는 그저 문이 굳게 닫힌 쓸쓸한 마을로 변하긴 하지만. 겨울 청량리에서 추전역을 지나
승부역까지 오는 환상선 눈꽃열차를 한번 타봐야겠다. 어떤 감흥을 일으킬지를 기대해보면서.
승부역에서 눈꽃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세월교 하나뿐이다.
세월교란 이름의 다리들이 전국에 많은데, 자세히 보면 춘천 소양호의 콧구멍다리처럼
반원의 구멍이 있는 모습이다. 저곳에 앉아 낚시대를 던져도 제법 다양한 수종의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
저 다리 사이로 흘러가는 강물은 정말 세월을 담고 떠나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잠깐 소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는 그늘 아래 통나무로 만든 벤치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맑은 고동소리가 샘솟듯하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강물소리에 몸을 맡기고 잠시 눈을 감는다.
잃어버린 시절의 즐거운 소리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기쁨, 추억, 사랑, 행복 등등 내가 잊고 살았던 기억의 한페이지가 살포시 다가온다.
눈을 뜨면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하지만 살고 싶은 풍경에 다시 한번 젖어든다.
눈꽃마을 승부. 하지만 눈이 내릴때만 승부가 있는건 아니다. 단풍이 곱게 드는 가을철에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봄철, 매미가 시원하게 울어대는 여름철에도 승부는 그 자리에서 손님을 맞는다.
눈꽃이 내리는 하얀 설경으로 태어나는 마을 승부라는 이름은 옛날 이곳이
다른 마을보다 잘 살았고 부자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하지만 이곳은 부자마을이기보다는
그냥 산촌의 시골마을의 폼새를 하고 있다. 부족함도 불편함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고을이다.
承富 이미 부자가 된 마을이니 더 이상 부자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로운 마음새를 가진 마을이렸다.
눈꽃마을 승부에는 포장으로 된 먹거리와 특산물 판매점포들이 있지만 요즘은 영업을 하지 않는가보다.
등산객들이 많아지는 단풍철이나 환상선 눈꽃열차가 다니는 겨울철에야 운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차량이 두어대 있는걸 보니 아마 이곳에서 출발해 비룡산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세워놓은것 같다.
정자옆에 물레방아도 눈꽃마을 승부와 함께 작동을 멈추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말라가고 있다.
승부 눈꽃마을 입구에 있는 귀신이 사는집. 귀신이 진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으스스하다.
별빛 가득하고 까마귀 까악깍, 소쩍새 구슬프게 울어대는 깊은 밤에 도깨비와 귀신이 함께 찾아들지 않을까.
글쎄 이곳 숙박비는 받지 않으니 담력 좀 되고 귀신체험을 하고 싶다면 하룻밤 귀신과 함께 잠들수있다.
과연 잠이 올런지는. 전기시설도 없으니 호롱불 하나 켜놓고 하모니카나 퉁소를 연주한다면 딱 어울릴듯싶다.
밤에 잠들면 아마도 창호지에 손가락이 뚝 하고 뚫고 들어올 수 있고 작은 방문을 끼익하고
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승부역에 도착한것이 오후 1시 40분쯤이었는데,
기차 시간은 오후 2시 51분이라 근 한시간 넘게 이곳에 머물렀다.
마음 같아선 하행선 열차를 타고 동해나 묵호쪽으로 가서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내맘이 못내 아쉬웠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밖으로 마주치는 산하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예쁠지는 상상만으로 즐거운 일인데.
영주, 동대구, 부전역으로 가는 상행선은 하루 4번, 강릉과 동해로 가는 하행선은 하루 3번 운행하고 있다.
기차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보지만 쉽사리 들어오지 않는다.
가끔 긴 석탄을 실고 가는 화물열차가 들어왔지만 그냥 지나치고 가버린다.
텅빈 철로를 바라보고 멍하니 앉아 있다보니 철로에서 터벅터벅하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아니, 이제 기차를 기다리다가 환상이 들려오나 싶었지만 반가운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린다.
황산과 무연탄을 싣고 울산으로 떠나는 기차라는데, 밤 11시 넘어야 도착한다고 열차기관사가 말해준다.
노란 객차 안으로 올라가니 쇼파와 작은 간이 침실이 있다. 식사는 어찌하냐 물었더니 정차역에서 먹는다고.
여름도 아닌 겨울도 아닌 지금은 확실히 가을인건 맞는가 싶다.
23˚C 선선하고 쾌청한 날씨에 여행하기 좋은 기온이다.
드디어 승부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십여명도 안되는 승객들을 실고 강릉쪽으로 떠날
하행선 기차가 터널을 뚫고 들어온다. 너무 반가움에 승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왜 손을 흔드는지. 한 분이 손을 흔들어주셔서 다행이었다.
눈꽃열차가 지나가는 간이역을 배경으로 쓰여진 김범선의 소설 <환상선 눈꽃열차>의
마지막 장면에 이곳 승부역이 등장한다. 눈꽃열차를 타면 도착하는 영동선 봉성역에는
한때 교차해서 통과하는 두개의 비둘기호 열차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지나간 과거의 추억의 장면이지만. 영주 청년과 철암 아가씨가 밤열차를 타고
몰래 와서 열차가 교행하는 시간인 단 1분동안 만났다가 헤어지는 꿈같은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는 소설. 애틋한 눈꽃열차에 담긴 로맨스의 향기를 승부역은 담고 있다.
사랑이 너무 쉽게 잊혀지고 시작되는 요즘 1분 동안의 만남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을 나눴을 연인들을 기억해본다. "아, 그런데 조금전에 남자가 여자에게 건네준것은 무었이었을까?
남자는 분명히 영주에서 철암으로 가는 531호 열차를 타고 왔는데, 다시 영주로 돌아 갔었지?
그럼, 그들이 서로 주고받은 것은 차표? 분명히 그렇군. 두 사람이 주고받은 것은 차표였어.
두 열차가 봉성역에서 교행하는 시간은 단 1분 간이야.두 사람은 1분을 만나기 위 해 먼 길을 왔던거야."
승부역에 가면 세상과의 힘든 승부는 잊어버리고 오직 나와의 승부만이 남게 된다. 옛 승부역의 모습.
첫댓글 승부역과 빨간우체통..
뭔가 그리움이 잔뜩 묻어나는것같군~^^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잘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