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산)
K2 또는 고드윈오스턴산(Mount Godwin-Austen)은 에베레스트산 다음 가는
세계 제2의 고봉으로, 파키스탄 북부와 중국 서부에 걸친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해발 8,611m의 산이다.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이자 파키스탄의 최고봉이기도 하며, 8,000m 14좌 중
등반 사망률 2위를 기록하고 있어 가장 등반하기 어려운 산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 주와 중국 신장 카슈가르지구 타슈쿠르간 타지크 자치현 사이
경계에 걸쳐 있으며, 인도 또한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861년에 영국인 헨리 고드윈 오스턴이 발토로 빙하를 발견한 후 처음으로 K2에
접근한 업적을 기려 '고드윈 오스턴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초 등정은 1954년 7월 31일에 아르디토 데시오의 이탈리아 등정팀이 이루었다.
이 산의 이름을 따와 만들어진 브랜드가 K2 코리아다.
2. 명칭
오늘날 가장 널리 불리는 이름인 K2는 풀이하자면 '카라코람-2', 곧 '카라코람 산맥
측량점 2호'라는 뜻으로 1856년에 영국령 인도 측량사 토머스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카라코람의 고봉을 바라본 순서대로 K1, K2, K3, K4, K5라고 지정하면서 처음 보고되었다.
원래는 코드네임에 불과했으나, 1858년 카슈미르의 측량국에 의해 높이가 정확하게
측정되어 세계 제2의 고봉으로 확인되었고, 두 번째 측량점이라는 뜻의 '2'와 세계
제2의 고봉이라는 뜻의 '2'가 겹치므로 그대로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사망률 2위
당시 영국왕립지리학회는 이러한 '이상한' 명칭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이 산을 탐험한
영국인 탐험가 헨리 고드윈오스턴(Henry H. Godwin-Austen)의 이름을 따서
고드윈오스턴산이라 부르기도 하나, 널리 쓰이지 않는다.
발견 당시의 기준으로도 새로 측량된 산에는 현지 이름을 쓰는 게 원칙이었으나
K2는 K1 마셔브룸, K3 가셔브룸4, K4 가셔브룸2, K5 가셔브룸1과 달리
현지인들도 영국 탐사대가 올 때까지 그동안 이 산의 존재를 몰라서
토착지명이라고 할 만한 명칭이 없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바로 이웃에 있는 봉우리인 브로드피크가 K3로 불렸던 이유 또한
K2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K3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었던 것이다.
전술됐듯이 원래부터 이렇다 할 현지 명칭이 없었던 산이기 때문에 지금은
현지인들도 K2를 현지 언어인 발티어로 음차한 Ketu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현재는 이 산의 이름을 넘어서 아예 발티어로 높고 거대한 산 전반을 일컫는
외래 신조어로 의미가 확장되는 중이라고 한다.
3. 등반
단순히 높이로만 보면 고봉계의 콩라인이기는 하지만,
등산 난이도로만 따지면 가장 등정하기 어려운 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에서야 네팔인 세르파 10명이 최초로 동계 등반에 성공했으며, 동벽 및
북벽 루트는 등반 기술이 발달한 현재까지도 아무도 완등한 적이 없다.
산은 잘 빠진 피라미드의 형태로, 다른 8천 m급 산들보다 훨씬 경사가 급하여
다른 거봉들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험하다.
게다가 다른 8천 m 거봉들과 달리 주변에 이웃 거봉들이 없어 산맥의 강한 바람이 바로
정면으로 불어오는 데다 이 바람이 산을 타고 오르면서 엄청난 구름과 눈보라를 일으킨다.
위의 사진에서도 맑은 날인데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이 영상을 보면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사진들은 멀리서 찍어서 맑아 보이므로 체감이 안 될 뿐,
산을 등정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온 하늘을 가려서 보이지도 않고
햇빛이 투과를 못하거나 난반사까지 일어나 시야확보도 되지 않는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8천 m 거봉들 중에서도 가장 등정 성공률이 낮으며(30%대)
등정 과정에서 죽어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K2가 Kill2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최초 등정 시도 후 52년만에 등정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에베레스트의 등정 성공에 걸린 기간은 약 29년이다.
최초의 등반 시도는 영국인 오스카 에컨스타인과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에 의해
1902년에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5차례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1902년 최초 시도 이후 1909년, 1938년, 1939년, 1953년 등반한 시도도 모두 다 실패했다.
최초의 등정시도부터 52년 후인 1954년 이탈리아의 콤파뇨니와 라체델리가
Abruzzi Spur를 통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더 황당한 것은 초등 이후 23년 동안 그 누구도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며
이후 1977년 요시자와 이치로가 이끈 일본 원정대가 Abruzzi Spur를 통해
두번째 등정에 성공했는데 이들은 짐꾼들을 무려 1,500명 넘게 동원했다고 한다.
게다가 등반대원만 52명이어서 이들의 등반을 '공성(siege)전술'이라고도 한다.
이후 1978년 미국 등반대가 북동릉(Northeast ridge)에 신루트를 개척하면서
세번째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한다.
2017년 기준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은 4500명이 넘는데 비해
1954년 초등 이후 K2 정상에 오른 사람은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306명뿐이다.
인류 역사에서 겨우 300여 명 남짓한 인원만이 K2 정상에 서 본 것이다.
등반 중 사망한 사람만 84명인데 이들 대부분은 하산 중에 사망했다.
봄이나 가을이 아닌 계절에 산을 오르는건 자살행위이며, 특히 겨울에는
악명 높은 칼바람과 구름, 낮은 온도 때문에 등정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무리 남아시아에 있는 산이라지만 K2의 위도는 북위 35도 52분으로 상당히 북쪽에 위치해 있다.
북위 35도 20분에 위치한 지리산보다도 높은 위도며 14좌 중 낭가파르바트와 함께
겨울에 등정된 적이 없는 봉우리였다가 2016년 2월 26일 시모네 모로를 포함한 3인의 다국적
등반대가 낭가파르바트의 동계 초등에 성공하면서 2020년까지도 유일한 동계 미등봉 상태였다.
여름에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등정이 거의 불가능한데 1997년 가을 이후
2000년 봄까지 단 한명도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기사에 의하면
2002, 2003, 2005년에는 날씨 때문에 단 한 명도 등정을 시도하지 못했다고 한다.
등반하기 가장 어렵다는 K2답게 기록적으로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시즌이 몇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86년인데 1986년 8월 초순 동안 심한 폭풍으로 클라이머 13명이 사망했다.
그래서 이것을 1986 K2 등반사고(1986 K2 disaster)라고 한다.
두번째는 1995년 8월 중순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세번째가 가장 끔찍한데 2008년 8월 1일에는 한국 등반대 3명을 포함해서
하루 동안에만 무려 1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건 K2를 등정하는 이들의 75%가 선택하는 Abruzzi route의 정상 부근에 있는
세락(Serac, 빙하가 쪼개져 생긴 얼음 덩어리)이 더워진 날씨로 무너져 내린 탓이 크다.
당시 사망한 등반자들에게는 참 불행했던 것이, 무너진 세락은 지난 54년간
딱 세 번 무너졌는데 하필 그 세 번째가 2008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1월 16일,
네팔인 셰르파 10명으로 이루어진 산악팀이 동계 초등에 성공하면서 14좌 동계 등정이 완료되었다.
링크2020년 겨울 시즌에는 4개 팀, 60여명의 등반대가 등정을 시도했었기에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한 높아진 상태였다.
링크1 링크2 결국 이들 중 몇몇은 등반 도중 사망했지만 니르말 님스 푸르자,
다와 텐지 셰르파, 밍마 G 다와 템바 셰르파, 펨 치리 셰르파, 밍마 데이비드 셰르파,
밍마 텐지 셰르파, 겔제 셰르파 등으로 구성된 네팔 등반팀이 동계 초등에 성공했다.
이들의 등반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K2 routes
아래의 사진은 K2의 남쪽 사면에 있는 등반 루트들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등반 루트들은 남쪽에 있다.
일반적으로 북쪽인 중국 방면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북쪽 루트들이 너무 어려운 탓이다.
게다가 북쪽으로 접근하면 샥스감강을 건너서 가야 하는데, 강이 범람하는 경우
건널 방법이 없는 데다가 강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서 강을 건너는 일도 제법 위험하다고 한다.
K2 등반의 75%는 Abruzzi Spur 루트로 시도한다.
아마데오 1세의 삼남인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Abruzzo) 지방의
공작이었던 루이지 아메데오(Luigi Amedeo)가 1909년 이 루트를 통해
처음으로 등정을 시도했기 때문에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참고 이 코스는 사진과 같이
House Chimney - Black Pyramid - Shoulder - Bottleneck - Serac의 순서로 되어 있다.
House Chimney는 100 m에 달하는 수직절벽이다.
이 코스에서 고도 8,350m 지점에 있는 Bottleneck이 가장 어렵고 사망자도 그만큼 많이 나오는 구간이다.
2008년 8월 1일 하루 동안 등반객 11명이 사망한 지점도 Bottleneck이다.
위의 두 번째 사진에서 보면 Bottleneck의 바로 위에 눈이 뭉쳐져 얼어버린
Serac이 있는데 이게 무너지면 대형사고가 난다.
실제 아래에 있는 터키 등반팀의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Serac 밑을 지날 때 가장 아찔해 보인다.
이곳의 기온은 영하 30도 정도인데 온도가 더 올라가면 Serac이 녹기 시작하면서 더 위험해진다.
기온이 올라가서 Serac 바로 밑에 있는 바위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참고 그래도 Serac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뿐이어서 정상까지는 평이하다.
2번 또는 루트 E는 남남동벽 루트(Cesen 루트 또는 바스크 루트)로서
이 루트는 1994년 스페인-바스크 등반팀에 의해 개척되었다.
이 루트는 K2의 남쪽에 있으며 Black Pyramid를 피해가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루트로 알려져 있다.
이 루트를 따라가면 Abruzzi Spur의 2/3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일본의 등반가 야마노이 야스시가 2000년에 이 루트를 단독, 그것도 무산소로 개척 등반하였다.
최초의 K2 단독 등반이며 일본 산악사에서 단연 최고로 뽑히는 기록이다.
2000년 대한민국 영호남 K2 원정대도 이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2007년 김창호 대장과 김진태 대원은 부산산악연맹 등반팀 소속으로 이 루트로, 그것도 무산소로 성공했다.
이들의 등반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유튜브 링크 원래 여러 등반대가 K2 겨울 등정의 후보 중 하나로 이 루트를 선택했지만
너무 가팔라서 캠프를 만들 곳도 없고 눈이 없이 바위만 있으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동계 등정에서 이 루트로 성공한 적이 없다.
3번 또는 루트 D는 소위 벽 루트, 그 중 남벽 루트로서 북쪽 마루(North Ridge) 또는
북동릉(NorthEast Ridge)과 더불어 개척된 루트 중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 루트를 등정하려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1986년 폴란드인 예지 쿠쿠츠카와 타데우시 피오트로프스키에 의해 초등되었다.
이 루트는 위의 사진에서처럼 남서봉 루트(C)의 첫번째 부분에서 갈라지면서 시작한다.
이 루트는 "하키 스틱"이라 불리우는 도랑을 지나서 완전히 노출된 수직 절벽을 따라 올라간다.
위의 사진들에서 보면 루트 중간 이후부터는 수직 절벽이다.
이 루트를 따라가면 정상 300m 전에 Abruzzi Spur와 만나는데,
그 직전에 굴곡이 없는 평평한 수직 절벽을 지나가야 한다.
이 루트는 심한 눈사태로 인해 매우 위험하고 등반 난이도도 높아, 1986년
쿠쿠츠카와 피오트로프스키의 초등 이후 아직까지 재등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루트를 폴란드인 두 명만이 등반했다 하여 '폴리시 라인'(Polish line)이라고도 부른다.
루트 B는 서벽(West Face) 루트로서 2007년 빅토르 코즐로프가 이끄는 11명의 러시아
등반팀이 무산소로 등정을 시도해서 안드레 마리에프와 바딤 포포비치가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K2 서벽이 어려운 이유는 K2에 불어닥치는 살인적인 바람이 서풍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팀은 이 업적으로 황금피켈상을 수상했으며 이 루트는 러시안 다이렉트로 명명되었다.
다만 알파인 등반이 아니어서 비난당했다.
결국 프랑스에서 수상하는 황금피켈상은 수상하지 못했고, 러시아에서
자체적으로 황금피켈상을 만들어서 수상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재등된 적이 없다.
4번 또는 루트 C는 남서봉(매직 라인) 루트로서 경사가 급한 곳이고 대부분이
빙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눈사태가 빈발한다.
1986년 폴란드-슬로바키아 등반팀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되었다.
두번째 등정시도는 2004년 스페인 등반가 조르디 코로미나스(Jordi Corominas)가 하였다.
이들이 등반한 과정도 영상 기록으로 남았다.
전설적인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조차도 1979년 처음 시도한 이후로 예측불가능한
눈사태 때문에 '자살 코스'라고 부르며 곧장 포기하고 Abruzzi Spur로 등정했다.
6번 또는 루트 A는 서쪽 마루(West Ridge) 또는 남서릉(South-West Ridge)
루트로서 1981년 마츠우라 테우로가 이끄는 일본 등반팀에 의해 개척되었다.
등반대 소속인 일본의 오오타니 에이호와 파키스탄의 나지르 사비르가 정상 정복에 성공한다.
다른 루트들의 베이스캠프는 발토르 빙하에 있는데 이 루트의 베이스캠프는 네그로토 빙하에 있다.
7번(위의 두번째 이미지에서 루트 C)은 북서마루(NorthWest Ridge)
루트로서 끝에서 북쪽마루 루트와 만나게 된다.
1982년 야누시 쿠르차브(Janusz Kurczab)가 이끄는 대규모 폴란드
등반대가 중국측의 허가 없이 등정을 시도했다가 8200 m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강제 하산 명령을 받고 그대로 하산했다.
이후 1991년 프랑스 등반팀의 크리스토프 베깅과 피에르 프호핏이 개척하였다.
이들은 북서릉을 따라 올라가다 북서벽을 대각선으로 횡단한 후 일본등반팀이
개척한 North Ridge 루트를 통해 정상에 도달했다.
이들의 등반은 새롭게 개척한 루트는 없었지만 루트 상단 부분에서 고정 루프나
캠프 없이 순수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했기에 대단한 업적으로 칭송받는다.
8번은 북서벽(NorthWest Face) 루트로서 1990년 우에키 토마지가 이끄는
일본 등반대에 의해 처음 개척되었다. 이 루트는 중국 쪽 K2 빙하에서 시작한다.
이후 북서 마루를 따라 오르다가 북서벽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북쪽마루 루트를 따라 정상까지 이른다.
다른 루트와는 다르게 이 루트는 다른 루트를 거쳐가는 횡단이 많아서
"King Traverse"(왕 횡단) 루트라고 한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이 루프는
7번 북서마루 루트와 시작점만 다르고 중간 이후부터는 서로 같은 루트를 따라간다.
9번(위의 첫번째 이미지에서 빨간선,
두번째 이미지에서 D)은 북쪽마루(North Ridge) 루트인데 Abruzzi Spur의 정반대편에 있다.
이 루트는 K2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이며 히말라야 8,000 m 14좌의 등반 루트 중에서도
미등정 루트를 제외하고 가장 어렵다는 평을 받는다.
이 루트는 등반 자체도 힘들지만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과정에서 중국쪽에서
접근해서 샥스감 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것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렵다고 한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산 아래에서 찍어서 이 루트의 경사가 그나마 완만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경사각이 70도가 넘는 수직 절벽이다.
게다가 루트 자체가 능선이기 때문에
캠프를 설치하기도 어렵고 설치해도 2명이 눕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가령 이 정도 경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루트에는 8,450 m 지점에
장애물이 있어서 7,800 m 지점부터 북벽으로 우회해야 한다.
1982년 신카이 이사오와 코니시 마사츠고가 이끄는 일본 등반대가 처음으로,
그것도 무산소로 등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등정에 성공한 5명 중 야나기사와 유키히로는 하산 중에 추락사했다.
이후 1990년 그렉 차일드 외 2명의 등반팀이 앞서 일본등반팀이 만들어 놓은
로프를 이용해서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 2011년 오스트리아 여자 산악인이 게를린데 칼텐브루너는 이 루트로
7번째 도전만에 무산소로 K2 정상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히말라야 8,000 m
14좌 모두를 무산소로 등정한 첫 여자가 되었다.
10번(위의 두번째 이미지에서 루트 E)은
북동마루(NorthEast Ridge) 루트로서 이 루트를 따라가면
7,700 m 지점에서 Abruzzi Spur와 만나게 된다.
이 루트는 말그대로 능선을 따라가는 데 능선이 너무 뾰족해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고 한다.
1975년 쿠르차브가 이끄는 폴란드 등반대에 의해 개척되었으나
등정 중 사고와 건강 이상으로 이들은 등정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후 1978년 제임스 위태커를 등반대장으로 하는 미국등반대가 등정에 성공했는데
이건 세 번째로 성공한 K2 등정이며 미국 최초의 K2 등정이었다.
또한 처음으로 정상을 밟았던 루이스 라인하드(Lewis Reinhard)는
최초로 무산소로 등정한 사람이 되었다.
벽 루트들은 그야말로 넘사벽. 등정 루트에 대한 위의 설명에서도 보듯이
대부분의 루트는 능선(ridge) 또는 바위돌출부(spur, rib)를 따라간다.
이건 눈사태가 나면 위험해서 눈이 쌓여 있는 곳을 피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등반대들 중 75% 정도가 Abruzzi Spur를 선택하는 이유는 Abruzzi Spur가
K2의 등반 루트 중에서 눈이 가장 적은 루트며 그리고 앞서
설명한 대부분의 등반 루트가 위험한 이유는 눈사태 때문이다.
그런데 K2에서 능선이나 spur를 제외한 벽들은 3,000 m가 넘는 수직 절벽이며 거기에 눈까지 뭉쳤다.
때문에 등정된 루트는 남벽과 서벽뿐이고 각각 초등 이후 재등된 적이 없다.
체코 출신 등반가 요세프 라콘차이(Josef Rakoncaj)는 K2 정상에 각기 다른
루트로 두 번이나 올랐는데 한 번은 1983년 이탈리아 등반팀과 함께
북쪽마루 루트로, 1986년 폴란드 등반팀과 함께 Abruzzi Spur 루트로 정상에 올랐다.
K2의 정상에 오른 첫 여자는 폴란드 출신으로 1986년 등정에 성공한
반다 루트키에비츠(Wanda Rutkiewicz)다. 세 명의 여성 등반대, 폴란드의 반다,
영국의 줄리 튤리스, 프랑스의 릴리앙 바하르가 정상에 오른 최초의 여자들이 되었지만
불행히도 줄리와 릴리앙은 하산 중 사망했다.
K2의 정상에 오른 최고령자는
스페인의 카를로스 소리아 폰탄(Carlos Soria Fontán)으로 65세에 정상에 올랐다.
폴란드 사람들이 유독 K2와 인연이 깊다. 앞서도 설명되어 있지만
폴란드 등반대는 1977년 북동마루 루트를 새롭게 개척하였고 1986년에는
2개의 신루트(매직 라인 루트와 남벽 루트)를 개척했다.
K2를 등정한 최초의 여성 등반가도 폴란드 사람이며 남벽 루트를 개척한 쿠쿠츠카도
폴란드 사람이고 2018년 최초로 K2에서 스키로 하산한 사람도 폴란드 사람이다.
폴란드인들의 등반 루트를 모아 놓은 맵이다.
한국 등반대는 1986년 8월 대한산악연맹에서 진행한 K2 원정대의 장봉완 부대장과 김창선,
장병호 대원이 Abruzzi Spur 루트로 한국인 최초로,
국가순서로는 세계 11번째로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이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원정 1년 뒤인 1987년 김병준 대장에 의해
<K2, 죽음을 부르는 산>이란 책으로 세상에 나와 있다.
1994년에는 두번째로 마산산악동지회가 등정을 시도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실패했다.
1999년에는 전남연맹팀이 한국등반대로는 세 번째 등정을 시도했지만
역시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2000년에는 네번째로 도전한 이성원 대장이 이끄는 영호남 합동 원정대가
남남동릉 루트로 두번째로 등정에 성공한다.
바로 이어서 김위영 대장이 이끄는 한국산악회 대구지부팀이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으며 유한규 대장이 이끄는 한국합동대(엄홍길 포함)가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2000년에는 한국에서만 3개 등반팀이 등정에 성공했다.
2000년에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동국대 등반팀이 마지막으로 등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듬해 2001년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2018년 혼자서 7일 동안 정상까지 무산소로 등반을 한 뒤,
스키를 타고 7시간 만에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온 사람이 있다.
스키 하산에 성공한 사람은 안드셰이 바르기엘(Andrzej Bargiel)라는 폴란드 사람으로
다른 8,000 m 14좌인 시샤팡마와 마나슬루를 먼저 성공한 뒤 K2에 도전했다고 한다.
미리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서 하산 경로를 결정했다고 한다.
등정 후 스키로 하산하는 과정에서도 동생이 드론으로 얻은 영상을 지켜보면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 무전기로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이 지령을 받으면서 내려 왔다.
영상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이냐면 2009 미셸 페이트,
2010년 프레드릭 에릭손은 스키로 하산을 시도하다 추락사했고 그 후에
도전한 3명은 중도에 포기했으며 이 중 한 명은 하산 도중 사망할 뻔했다.
여기에 더해 K2와 브로드피크에 등정한 후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 온 사람도 있다.
'로체 남벽'은 어디까지나 등정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난이도인 반면에,
K2의 북벽은 현재까지 하계 및 동계를 막론하고 등정 성공은커녕 사실상 시도된 적도 없다.
8,000m 14좌 중 등반 난이도가 쉬운 편인 가셔브룸2의 경우,
실질적인 등반의 시작점인 캠프1에서 정상까지 2,000m 남짓이고 경사도 완만하다.
하지만 K2 북벽은 바닥부터 정상까지 거리가 지형학적 상대 높이와 같은
4,000m이고, 경사는 거의 수직에 가깝다.
위의 이미지는 이 페이지의 맨 위에 있는
K2의 북벽 사진에 루트를 추가한 것으로서 북쪽 루트들을 보여준다.
두 번째 이미지는 K2의 북서측에 있는 등반루트를 보여 준다.
참고로 K2의 북벽은 중국쪽에 있어서 중국측에서 바라본 것이다.
첫 번째 이미지에서 북동릉(North-East Ridge)과
북서릉(North-West Ridge)이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이다.
첫번째 이미지에서 보면 North Pillar와 NNE Pillar가 만나는 부분이
북벽인데 거의 4천 m에 이르는 수직 절벽이다.
게다가 시작부터 중간까지는 눈이 얼어 붙어 있으며 걸핏하면 눈사태가 나는데다
루트 정상 부근에 눈이 뭉친 세락이 있는데 이게 무너지면 눈사태가 나서 극히 위험해진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등정된 적이 없다.
K2 북벽은 4,000 m에 이르는 수직 절벽인데 능선이나 돌출부가 아예 없으며
바닥부터 정상까지 눈으로 덮여 있다.
K2 특유의 살인적인 서풍의 영향이 거의 없어서 등정 자체의 난이도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진 않다.
하지만 아래 사진이 K2의 동벽을 보여 주듯이, 루트 시작부터 정상까지 눈 덩어리가 뭉쳐서
바위가 노출된 부분이 별로 없다. 즉, 능선이나 돌출부가 별로 없다.
어찌어찌 등반 경로를 찾는다 해도 자주 눈사태가 일어나는 편이다.
이렇게 루트가 눈으로 뒤덮이면 여름에 눈이 녹아서 눈사태가 빈발하므로 여름이 더 위험하다.
K2는 겨울 등반을 거의 하지 않으므로 여름에 등반대가 몰리는데,
이런 이유로 동벽 등반은 여름에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여름보다 겨울에 눈덩어리가 얼어 붙어버리는 바람에 눈사태 위험이 없어져서
등반할 때 덜 위험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유로 2002년 2월에는 전설적인 산악인 보이체크 쿠르티카와 단독
등반의 대가인 야스시 야마노이가 동벽 등반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실패했고,
현재까지 여름이건 겨울이건 동벽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
에베레스트와의 비교
에베레스트 역시 상당히 위험하기는 하지만 상징성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또 그만큼 많이 코스가 개발되었다.
그래서 아마추어 지역 산악회나 대학 산악회에서 자주 등정하고 또 심심치 않게 성공한다.
하지만 K2 등정은 세계 등반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상급 프로 산악인들도
일단 목숨을 내걸고 시도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도전할 만한 사람들 중 24% 가량이 산행 도중에 사망한다.
그만큼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루트가 즐비하며, 전문 산악인들조차
등정하기 매우 어려운 산이라고 평가받는다.
안나푸르나보다 사망률이 많이 낮아보이지만, K2는 겨울 등반을 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동벽과 북벽 루트로 정상에 오른 산악인은 현재까지 단 1명도 없다는 걸
고려할 때 그 두 가지 경우의 수까지 합치면 사망률은 K2가 압도적으로 올라간다.
K2가 에베레스트보다 사실은 더 높다는 떡밥은 유명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일단 이 떡밥의 시초는 1986년에 나온 발표로 오류 때문에 곧바로 정정되었다.
기존에 측정된 값이 잘못된 지오이드를 썼기 때문에 틀렸다느니 하는 루머도 있는데,
지오이드 측정을 아무리 잘못 했어도 전 세계를 통틀어 지오이드가 찌그러진 정도는
200 m를 못 넘는다. (구글 어스로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지오이드 보정된 GPS 측정에서는 K2와 에베레스트의 높이 모두 알려진 높이에서
10m 안팎을 오르내리는데 이는 GPS 자체의 오차에 가까운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