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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관련한 우리의 주권은 8월과 인연이 깊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우리의 국권을 빼앗긴 데 이어, 1945년 8월 6일 유엔의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었고 이로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에 패했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 마침내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도 고대하던 해방을 맞았습니다. 올해는 일본의 강제합병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지 60주년,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올 8월의 여름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정계를 비롯하여 재계나 우리 국민 모두 가슴 아픈 우리의 과거와 역사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그 역사와 진실 앞에 당당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호소력 깊은 부르짖음, 비숍의 사진 그 일환으로 어제 소개하였던 비숍(Werner Bischof, 스위스, 1916~1954)의 한국전쟁 관련 사진 9점에 이어, 오늘도 제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전쟁사진 작품 9점을 모아 함께 감상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과 인간성마저 말살해 버린 전쟁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비숍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그림보다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사진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필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진은 인간의 진솔한 삶과 그 시대를 포함하여 그 순간, 그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장점 때문입니다. 또한 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 호소력 짙은, 말없는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숍의 명성이나 널리 알려진 그의 사진에 비하면 그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으므로, 그의 약력과 소개는 어제의 내용도 참고해 주시고, 오늘은 전체적인 그의 삶과 사진 세계, 작품사진을 위주로 감상하겠습니다. 아래 감상하는 것보다도 더 잔인하고 참혹한 내용의 사진도 있었으나 차마 싣지 못했음을 시인합니다. 짧은 생을 마감한 평화주의자 비숍 비숍은 전후 시대의 대표적인 보도사진 작가였습니다. 1949년에는 '매그넘(Magnum)'이라는 유명한 보도사진 작가협회의 회원에 등록함으로써, 전 세계의 신문, 잡지에 보도사진을 제공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1942년 창간된 스위스의 미술잡지 < DU >의 일원으로도 참가하여 주로, 풍경, 동물, 식물 등을 찍어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45년에는 유럽의 전쟁 참사를 기록하기 위하여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1948년에는 헝가리를 비롯하여 유럽을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리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렇게 취재 여행을 다니던 가운데, 1954년 그의 나이 38세의 한창 젊은 때에 안데스 산맥의 한 낭떠러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안타깝게도 그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가슴 저미도록 인간적인 위 작품은 1947년 헝가리의 하둘하다자에서 찍은 사진으로, 전쟁으로 부모와 집을 잃게 된 어린 고아의 모습입니다. 이 아이들은 다양한 일터에서 일을 배우고, 시민 소유의 땅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어릴 적 모습 같은 저 선한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이 닭똥 같다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해맑은 눈동자에서 떨어지는 저 닭똥 같은 눈물을 닦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이처럼 비숍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이와 같은 어린 아이들이라고 호소력 짙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대한민국은 38선을 따라 북한과 남한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런 전쟁 상황의 부산에도 살던 집과 돌보아 주던 부모마저 잃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공포에 떨며 혼자 떠돌아다니던 아이들이 많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위 사진을 보면 앞 쪽 양 옆으로, 앞을 보고 서 있는 두 어른을 어둡고 흐릿하게 배치 시킴으로써 마치 거대한 산이나 38선의 장벽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사이에 너댓 살로 밖에는 안 보이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밝고 천진난만하게 담아냈습니다. 입고 있는 옷과 주머니에 걸쳐 넣은 손, 그리고 순수한 얼굴 표정이 역광을 받아 밝고 희망을 주는 듯 생생합니다.
전쟁의 여파로 보이는 무너진 담벼락과 총에 맞아 구멍나고 떨어져 나간 담장, 그리고 나무 판자를 임시 방편으로 막아 놓은 뒷 배경의 모습이 전쟁 상황임을 실감나게 합니다. 또한 아이의 복장도 마찬가지인데 그 표정만큼은 당당하고 해맑고 순수해 보여 오히려 보고 있는 독자(관객)의 시선을 난감하게 만듭니다.
위 사진과 마찬가지로 군복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한 채 오른손에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왼손으로 투박한 바위를 더듬어가며 산을 오르는 맨 앞 오른쪽 소년의 얼굴 표정을 잘 담아냈으며, 무척 어린 소년으로 보입니다. 전쟁이 무엇인지,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를 것만 같은 소년의 표정이 참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오른쪽 위에서 사선으로 비춰 들어오는 햇볕이 너무도 밝고 강렬한 반면, 배경의 담벼락이나 담요의 그림자는 어둡고 무거운 흑색으로 극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 강렬한 빛에도 어린 소년의 표정은 무표정하여 보고만 있어도 가슴 아프고 참 서럽게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뒷 배경이 되는 낡은 벽과는 대조적으로 그 위에 장식한 예수의 형상이나 꽃으로 보이는 장식품들은 유난히 화려해 보입니다. 또한 화면 가장자리의 명암이나 십자가 앞의 촛불에 비해 고개 숙인 십자가 형상과 아래의 꽃 장식이 특별히 더 밝게 묘사되어 있어 성스러운 신비감이 느껴지며 묘한 슬픔에 잠기게 만듭니다.
상황이 너무도 스산하여 마치 비올 듯한 가을날의 풍경처럼 묵직하고 어두워 보입니다. 특별히 밝은 빛이 거의 없으며 화면 전체를 어두운 회색 빛으로 통일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1954년 5월 7일,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 라오스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베트남 북서부 지방)에서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후에 호치민의 북부와 프랑스의 남부로 나뉘어 지배를 받았습니다. 화면이 아래 위로 이등분 되어 있으며, 들풀과 잎새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된 아래 쪽은 어둡고 무거운 회색 배경에 밝은 회색의 나무로 된 십자가와 팻말이 인상적입니다. 반면 위 쪽은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짐을 지고 둑 길을 지나가는 세 사람의 동작이 살아 있는 듯 활동적인 순간을 잘 포착하여 전쟁과 현실을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주변의 배경은 흑암으로 어둡게 처리하였으며, 상대적으로 거대한 비행기와 작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만을 밝은 윤곽으로 대비시켜 강조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전쟁의 힘과 그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삶과 고통어린 모습을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영상만을 놓고 보면 참 아름다운 사진이어서 그림자처럼 시각과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지금까지도 휴전상태입니다. 위 사진은 우리의 남과 북이 무기와 병력을 맞 배치한 채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전시 상황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전쟁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어 위와 같이 9점 모두 전쟁과 관련한 작품들이지만 비숍 특유의 시각으로 인간의 모습과 내면까지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와 소년들의 희생과 순수한 모습을 통하여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힘주어 부르짖고 있습니다. 전쟁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광복이나 주권 회복, 곧 우리민족의 독립과도 관련이 깊은 제 2차 세계대전은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유럽 전역과 태평양 일대, 다시 말해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휘말린 전쟁이었습니다. 그 성격은 상당히 다양해서 각기 다른 자국의 이익에 따라 각각의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협력하거나 반목하면서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그 어떤 성격이나 각국의 이익과 세력 확대, 경제 전략, 또는 정치 이념에 따라 큰 과오가 있었거나 그로 인한 고통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역사는 또 다시 우리 모두의 현실로 살아나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 그 한 몸 바쳐 충성하다가 이름도 없이 죽어간 영혼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6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동안에도 그 명예가 진실 그대로 회복되거나 의로운 죽음이 올곧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면 그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사진과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이유입니다. 이상으로 비숍의 전쟁보도 사진작품을 감상하였으며, 전쟁과 관련한 사진들은 거의 다 추려 살펴본 셈입니다. 이렇게 그의 보도사진들을 먼저 소개하여, 혹시라도 비숍의 이런 작품들이 더 유명하며 이런 작품들만 발표한 것으로 인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으며 자연과 목가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그리고 도회적이면서도 인간답고 따듯하며 아름다운 구성의 그의 사진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기회를 보아 소개할 생각이므로 기대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