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고려대 박종천 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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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종교영화의 세계
한류, 한국적 풍류의 시대
바야흐로 한류(K-Wave)의 시대가 열렸다. 한류는 케이팝(K-Pop)과 케이드라마(K-Drama)에 이어 케이웹툰(K-Webtoon), 케이게임(K-Game), 케이푸드(K-Food)는 물론 케이퍼포먼스(K-Performance)와 케이필름(K-Film)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 혹은 문화산업 전 분야에 케이유니버스(K-Universe)를 구축했다. 그만큼 시간, 공간, 장르, 소비층과 수용지역의 측면에서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미국 중심의 주류 대중문화나 문화산업을 대체할 만한 대안문화(alternative culture)로 각광받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이웃 나라에서 발생했던 일류(日流)나 중류(中流)가 특정 기간, 특정 지역, 특정 장르를 중심으로 일부의 관심과 호응을 받던 이른바 하위문화(sub-culture)의 일시적 트렌드와는 분명하게 대비되는 양상이다. 일본의 망가나 중국의 쿵푸영화가 미국의 그래픽 노블 혹은 할리우드 영화와의 차별성을 주무기로 삼은 것과는 달리, 한류는 동양적 특수성은 물론 문화적 보편성 차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방탄소년단(BTS)의 음악과 춤은 보편적 의미의 메시지와 특색있는 음악적 형식이 조합된 혼종적 보편성을 기반으로 위로와 공감과 연대의 감성을 전 세계로 발신했다. 반면 영화 〈기생충〉(2019)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갑과 을의 갈등을 넘어서 을과 병의 경쟁이라는 차별적·사회적 위계질서에 대한 비평적 인식을 한국적 미장센으로 표현하면서 전 세계 자본주의적 위계질서가 지닌 문제점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신랄한 사회적 비평을 보편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이들은 동양인이 절대 넘볼 수 없어 보이던 세계 문화산업의 주류인 빌보드 음악 차트와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대중적 인기와 예술적 완성도 모두 최고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열광시킨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2021)과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끈 유튜브 콘텐츠 〈아기상어〉에 이르기까지 한류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류의 이러한 대안문화적 가치 혹은 보편적인 문화적 에토스(ethos, 집단이나 민족 등을 특징짓는 기풍이나 관습)는 한국적 풍류(風流)의 현대적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나오는 ‘현묘지도’(玄妙之道)의 문화적 신비의 보편성, ‘포함삼교’(包含三敎)의 다문화적 수용성, ‘접화군생’(接化群生)의 공감과 감동 등 한류는 문화적 변용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상호 이질적인 문화적 요인의 혼성적 병존과 보편적 문화적 에토스를 이루는 표현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인식과 행동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풍류의 문화 예술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1
이러한 풍류는 종교와 영화의 만남에서도 독특한 한국적 개성과 문화적 에토스를 보편성 차원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종교영화는 세계 영화의 흐름에 따라 장르의 문법에 충실하거나 종교적 교리를 반영하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지니는 영상화를 통해 새로운 종교영화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양상과 특징을 서구적 종교영화와 견주어서 한국적 종교영화의 세계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서구의 종교영화에 나타난 성-속의 이분법과 이종교배
종교영화는 1895년 뤼미에르(Lumière)형제가 최초로 무성영화를 제작한 지 2년 뒤인 1897년 레아르(Léar)의 예수 영화 〈수난〉(LaPassion)으로 출발하였다. 〈수난〉은 중세 교회의 수난극(passionplay)에서 비롯된 종교적 표현의 클리셰(cliché)들을 재전유하고 새롭게 영상화한 것으로 이후 기독교 성서영화를 중심으로 종교영화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2
종교영화는 초기부터 말초적인 포르노 영화와 함께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물론 포르노 영화처럼 상스럽고 저속한 상업 영화들이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것과는 달랐다. 종교영화는 종교적 권위로 인정받는 성서 이야기와 대중적 관심을 사로잡는 영상적 볼거리(spectacle)를 결합하여 사회적 인정과 상업적 성공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기에 초기부터 상당한 각광을 받았다.
종교영화는 또한 사람들의 꿈을 적절하게 보여줌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할리우드를 ‘꿈 공장’(dream factory)이라고 부르듯이, 영화는 청각의 현실성과 시각의 환상성, 심리학적 욕망과 미학적 욕망, 사실주의의 영상적 표현과 형식주의나 상징주의의 영상적 실험이 교차하면서3 때로는 욕망의 현실을 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을 넘어서는 욕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성서의 거룩한 스토리텔링에 특별한 영상적 볼거리라는 대중성을 더한 종교영화는 사실주의와 형식주의의 영상적 구현을 통해서 현실을 재현하거나 상상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였다.
이러한 성공과는 별개로 서구의 기독교 영화는 초기부터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는 상스러운 세속적 관심과 거룩한 신앙적 전통에 충실하려는 종교적 보수주의가 이종교배한 혼합물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영화 〈벤허〉(Ben-Hur, 1959)에서 관객들은 박진감 넘치는 전차 장면에 환호하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장엄한 성스러움에 경외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편 〈벤허〉는 단순한 갈등 구조 아래 평면적인 캐릭터 설정을 통해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억압과 해방, 복수와 용서를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진부할 정도로 전형적인 이 이야기 구조는 성서에 충실하여 종교적 검열을 안전하게 피해가 종교적 보수주의를 고수하기만 한다. 따라서 관객들을 깊이 있는 종교적 성찰로 인도하기보다는 열렬한 대중적 호응만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종교적 보수주의와 세속적 상업주의가 결합한 기독교 영화는 ‘저속하고 위장된 순수나 경건의 유혹’이라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4
이러한 이종교배는 종교적 권위와 대중적 욕망의 대립을 성과 속의 이분법에 근거한 종교영화의 전형적 표현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예컨대 세실 드밀(Cecil B. DeMille, 1881-1959)의 〈왕중왕〉(The King of Kings, 1927)을 비롯한 초기 예수 영화는 후광을 두른 긴 금발과 푸른 눈, 그리고 턱수염을 지닌 백인 미남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우라와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그리고 어두운 옷을 입은 다른 캐릭터와 흰 성의를 착용한 예수를 대조시켜 상스러움과 대비되는 성스러움을 표현하였다.5
종교영화의 이러한 상투적 표현 방식은 거룩한 신 혹은 사도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빛으로 처리하거나 뒷모습, 손발 등을 비추는 방식으로 전개되곤 하였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성(神性)과 보이는 인성(人性)의 대조는 성상파괴주의적 경향이 강한 이슬람교 전통에서 더욱 강화되었는데, 실제로 이런 경향은 이란 출신 마지드 마지디(Majid Majidi, 1959-) 감독의 〈알라의 사도 무함마드〉(Muhammad: The Messenger of God, 2015)를 비롯한 이슬람 종교영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성-속의 이분법은 신종교(cult)를 다루는 종교영화, 특히 다큐멘터리에서도 분명하게 반영된다.6 예컨대 넷플릭스의 〈거룩한 지옥〉(Holy Hell, 2016)이나 〈정화: 사이언톨로지와 신앙의 감옥〉(Going Clear: Scientology and the Prison of Belief, 2015) 같은 다큐멘터리는 비주류 신종교의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도 선정적·폭력적·자극적 방식으로 상업적 대중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영화들은 기존 사회질서에서 인정받는 주류 종교와 달리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난 신종교 현상을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이분법적 토대 위에서 선정적인 스캔들로 재구성한다. 이는 사회비평과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 중첩되는 경향이 강하다.
신종교 영화들은 세뇌(brainwashing)와 악의적인 심리-통제(mind-control)의 관점을 다루며, 착취의 대상이 되는 신도들을 범죄자나 정신질환자처럼 취급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나아가 〈미드소마〉(Midsommar, 2019)처럼 신-이교주의(neo-paganism), 마녀(witch), 주술(magic), 악마주의(satanism) 등의 관점에서 사회적 일탈이나 도덕적 스캔들로 신종교 현상을 다루기도 하며, 악마나 괴물을 소재로 하는 공포영화나 좀비영화로 장르화되기도 한다.7
특히 넷플릭스는 이러한 신종교의 세뇌 전략을 20-40분 분량의 6부작 다큐멘터리로 구성하는 방식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예컨대 〈사이비 교주가 되는 법〉(How to Become a Cult Leader, 2023)에서는 찰스 맨슨, 짐존스, 하이메 고메스, 마셜 애플화이트, 아사하라 쇼코, 문선명 등을 다루면서 그들이 과대망상적 자기애와 일탈적 욕망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세뇌하고 망가뜨리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선정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매회 ‘기반을 구축하라, 추종자를 늘려라, 신도들의 사고방식을 개조하라, 영원을 약속하라, 이미지를 관리하라, 불멸의 존재가 되어라’ 등의 전략을 다루면서, 악독한 신종교 교주가 애정 공세(love bomb)를 통해 기만과 사기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을 노예로 순치시켜 정신적으로 통제하고 육체적으로 지배하며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또한 돈과 노동력을 갈취하여 교주의 권력을 강화하고 조직을 구축할 뿐만 아니라 신종교의 지속을 위해 종교를 사업화하는 양상까지 비판한다.
한국적 종교영화와 성-속 이분법 초월의 불이론(不二論)
한국 종교영화는 다른 문화권의 종교영화와 비교할 때 성(聖)과 속(俗)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독특한 개성이 부각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종교적 보수주의와 세속적 대중성의 이종교배와 더불어 성스러움과 상스러움이란 이분법을 기본으로 삼는 서구의 종교영화와 구별되는 동아시아 종교문화의 특성이자, 특정한 종교 전통을 불문하고 나타나는 한국적 종교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성과 속이 별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불이론’(不二論)적 사유가 한국적 종교영화의 세계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이질적인 요인들이 공존하는 혼성적 보편성 혹은 다문화적 수용성으로서 풍류의 문화적 에토스이기도 하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의 한국 기독교 영화는 예수의 생애를 직접 다루는 서양의 기독교 영화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사랑의 원자탄〉(강대진, 1977), 〈낮은 데로 임하소서〉(이장호, 1982)처럼 주로 실존인물의 감동적인 실화를 재현하는 신앙고백적 종교영화가 대세를 이룬 것이다. 이 영화들은 종교적 주제 의식에 충실하느라 통속적 이야기 전개에 치우쳐서 영화의 영상적 연출이나 미학적 성취 면에서는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신앙고백적 종교영화는 1980년대 이후 그 상투적 진부함 때문에 시들어갔다. 대신 〈할렐루야〉(신승수, 1997)처럼 교회의 문제를 비평하는 영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종교적 영성보다는 돈이나 성공을 갈망하는 위선적인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비평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박쥐〉(박찬욱, 2009)는 인간적 욕망과 사회적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성직자의 딜레마를 다뤘고, 애니메이션 〈사이비〉(연상호, 2013)는 피상적이고 편향적인 믿음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파헤침으로써 맹목적이고 위선적인 악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영화 〈사람의 아들〉(유현목, 1980)과 같이 위 작품들은 개인과 사회, 영혼과 현실을 각각 분리하면서 전자만을 강조하던 주류 기독교 노선에 대한 반발로서 후자를 새롭게 주목하면서 종교의 사회적 존재 양태에 대한 고민을 잘 보여주었다. 〈박쥐〉와 〈사람의 아들〉은 각각 개인의 영혼 구원을 강조하던 종래의 신앙고백적 종교영화와 달리 개인과 사회, 영혼과 현실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진지하게 다루면서 예술표현적 종교영화나 사회비평적 종교영화의 시선으로 접근한 영화이다. 한국 기독교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한국 기독교 영화에서는 성과 속의 역전이나 성-속 이분법을 해체하는 양상도 나타난다.8 영화 〈곡성〉(나홍진, 2016)은 기독교와 무속의 혼성영화로서, 특히 예수의 성흔(stigma)을 악마가 흉내내는 장면,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을 미끼로 삼는 일본 주술사의 낚시질 장면, 보이는 것을 박제하여 좀비로 전락시키는 사진찍기 장면 등 셔레이드(비언어적 수단으로 인물 내면을 표현하는 것)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은 의심하고 거부하며 보이는 것만 믿고 수용하는 모습을 잘 나타냈다. 이러한 의심과 믿음이 사회적으로 전염되고 확산되어 파국을 맞는 비극적 양상을 묘사한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믿음과 의심을 대조하면서 성과 속, 선과 악의 피상적 이분법을 넘어서 양자가 서로 도치 혹은 역전되는 양상을 공포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기독교, 무속, 불교가 혼재된 영화 〈사바하〉(장재현, 2019)에서도 나타난다.
영화 〈밀양〉(이창동, 2007)은 신정론(神正論)과 악의 문제를 다룬다. 초월적 신이 베푸는 수직적인 동정(sympathy)이 종교적인 위선, 즉 가짜 믿음의 허상을 역설적으로 증폭시킨 반면, 신의 은총을 표상하는 은밀한 햇볕이 고통스런 악의 현실을 늘 비추듯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선한 이웃 종찬(송강호 분)의 속물적이지만 내재적이고 수평적인 공감(empathy)과 배려가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처럼 성스러움의 위선과 속물의 성스러움을 대조하며 성과 속의 이분법을 해체한다.
박찬경 감독의 무속 다큐멘터리 〈만신〉(2014)에서도 성과 속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양상이 부각된다. 이 영화는 무당 김금화의 생애를 재연 다큐멘터리 형태로 재구성한 것으로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 신과 인간, 남과 북, 하늘과 땅과 바다, 이승과 저승의 공간은 물론, 현실과 가상을 비롯한 모든 경계가 빚어내는 한(恨)을 푸는 무신도(巫神圖, 무속 신앙에서 받드는 신을 그린 그림)의 의례적 몽타주와 쇠걸립(무당이 하는 굿의 행위 중 하나)의 연행적 의례를 무너뜨린다. 영화 도입부에서는 무신도와 만신전을 상징하는 어린 김금화의 몸이 해와 달을 비롯한 대자연과 일치하는 소자연이라는 점을 실사영화에서 환상적 애니메이션으로 넘어가는 몽타주를 통해 묘사하면서 고통스런 한을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집집마다 사람들의 한이 담긴 쇠를 구걸하여 모아서 그 쇠를 성스러운 무구(巫具)로 만드는 쇠걸립 의례를 함으로써 무당으로 입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 도입부와 결말부가 수미상관 어우러지는 하나의 몽타주로 연결되면서 무당이란 속된 한을 성스러운 꽃으로 승화시키는 존재라는 점이 관객에게 각인된다. 특히 마지막에는 김금화를 연기한 각 연령대의 출연자들과 실제 노년의 김금화가 한자리에서 만나면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영화 출연진과 제작진이 하나의 화면에 보이면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도 무너진다. 이는 영화가 한 편의 굿이 되어 성과 속의 역전은 물론 시간과 공간, 신과 인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 해체를 현실화한다는 점에서 성과 속의 이분법을 해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과 속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양상은 한국 불교 영화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서양의 불교 영화가 붓다의 생애를 비롯하여 실제 불교 역사를 소재로 삼는 경향이 강한 반면, 한국 불교 영화는 수행의 실존적 고민과 구도행(求道行)을 통해 성과 속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진리의 깨달음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한국 불교 영화는 깨달음과 번뇌, 부처와 중생, 성스러운 종교와 속된 세속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론적 세계관을 강하게 노출해왔다.
예컨대 〈꿈〉(신상옥, 1955/1967), 〈파계〉(김기영, 1974), 〈우담바라〉(김양득, 1989), 〈아제 아제 바라아제〉(임권택, 1989), 〈탄트라 부인〉(조명화, 1991) 등은 종교적 깨달음의 구도행과 성애(性愛)의 욕망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치열한 구도 정신 혹은 보살행(菩薩行, 중생을 위해 희생하는 보살의 행동) 등을 통해서 세속적 욕망마저도 포용하여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려고 했다. 반면 조폭 액션 코미디 영화 〈달마야 놀자〉(박철관, 2001)에서는 스님의 수행과 조폭의 액션이 나뉘는 경계를 희극적 웃음으로 초월하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특히 〈만다라〉(임권택, 1981)에 나오는 “승려가 못 돼서 승려증이 없고, 주민이 못 돼서 주민등록증이 없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승려와 주민, 종교와 사회, 계율과 파계, 성과 속 사이에서 진정한 길을 고민하고 수행을 지속하는 양상을 롱테이크 기법, 구도행의 셔레이드, 길과 공간의 미장센 등을 통해서 성과 속, 깨달음과 번뇌의 불이론을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2003)에 와서 절정에 이른다.9 〈사마리아〉(2004)처럼 이 영화는 불교 영화이자 기독교 영화로 독해가 가능하다. 감독 자신의 작가적 안목에 따라 특정 종교 전통의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인간의 종교적 삶이 지닌 보편적 구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불상으로 상징되는 부처의 불성(佛性) 혹은 하나님의 신성(神性), 그리고 붉은 수탉을 비롯한 상징 동물 혹은 멧돌로 표상되는 중생의 번뇌망상이나 인간의 죄악이 상징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불성(신성)과 번뇌(죄악)를 함께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종교적 삶의 구조를 잘 나타냈다. 특히 중생의 번뇌와 부처의 깨달음이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고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불이론적 세계관을 잘 표현하였다. 무서운 금강역사(사찰의 문 또는 불상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와 평화로운 선녀가 문의 바깥쪽과 안쪽에 그려져서 ‘일심이문’(一心二門)의 상징적 오브제로 표현되고 악업(惡業) 혹은 죄악을 저지르는 셔레이드에서 깨달음의 음악이 나오고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셔레이드에서 중생의 번뇌를 담은 음악이 나오면서 불이론적 사상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특정한 종교 전통에 국한되지 않는 한국적 종교영화의 중요한 특색을 잘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종교영화, 어떻게 볼 것인가
종교 현상은 다면적이고 복합적이며 역동적이다. 따라서 종교영화를 제작하고 향유하는 시각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필요하다. 종교영화에는 종교적 내부의 교리와 세계관을 존중하는 신앙고백적 종교영화, 종교 외적인 시각으로 종교의 사회적 양태를 비평하는 사회비평적 종교영화, 영화 예술가가 개성적으로 종교적 세계를 표현하는 상상표현적 종교영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종교 전통 내부의 시선에 충실한 신앙고백적 종교영화는 성스러운 종교적 이야기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자칫하면 진부함에 갇혀 종교 외부의 사회적 비평을 외면한 채 자기 확신의 교만으로 추락하거나 새로운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을 놓칠 수 있다. 신앙고백적 종교영화는 종교 내부의 소중한 고백을 담는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연상호의 〈사이비〉, 파졸리니의 〈마태복음〉, 드니 아르깡의 〈몬트리올 예수〉, 〈미션〉처럼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나 〈사일런스〉처럼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종교의 측면을 균형 있게 담아내야 한다.
또한 넷플릭스의 사회비평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2023)에 나오는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오대양,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이 벌인 성폭력, 노동력과 재산 갈취, 사기, 세뇌처럼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문제점을 분명하게 비판하되,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폄하하거나 정죄하기보다는 그들이 신종교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와 주류 사회질서에 동화된 기성 종교의 문제점에 대해서 좀 더 민감해져야 한다. 나아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비되는 성-속 이분법에 근거한 단일하고 피상적인 접근보다는 다성적이고 복합적인 경청과 관찰과 더불어서, 그러한 현상이 생기는 배경과 원인 및 양상과 바람직한 종교문화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성찰이 필요하다.
종교영화는 남을 향한 판단과 정죄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종교 내부를 반성하는 데 유익하다. 겸손한 신앙적 고백, 성찰적 사회비평, 진지한 예술적 상상이 어우러질 때 종교영화가 우리에게 열어줄 종교적 통찰과 문화적 가능성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주(註)
1 박종천, “풍류(風流)로 보는 한국종교의 에토스,” 「민족문화연구」 88 (2020) 참조.
2 Andre Gaudreault, “The Passion of Christ: A Form, a Genre, a Discourse,” in The Silents of Jesus in the Cinema 1897-1927, ed. David J. Shepherd (New York: Routledge, 2016) 참조.
3 앙드레 바쟁, 박상규 옮김, 『영화란 무엇인가』(시각와 언어, 1998), 15-16.
4 William R. Telford, “Jesus Christ Movie-Star: The Depiction of Jesus in the Cinema,” in Explorations in Theology and Film, eds. Clive Marsh and G. W. Ortiz (Oxford, U.K.: Blackwell, 1997) 참조.
5 위의 논문 참조.
6 이하 신종교 영화에 대한 자세한 논의로는 박종천, 『유한의 시간을 비추는 무한의 스크린-종교와 영화의 세계』(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4장 참조.
7 Paul Thomas, “New Religious Movements,”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Religion and Film, ed. John C. Lyden (London: Routledge, 2009), 214-234.
8 이하 〈곡성〉, 〈밀양〉, 〈만신〉에 대한 자세한 분석으로는 박종천, “불화와 화해의 영화적 변주곡-한국 영화 〈곡성〉, 〈밀양〉, 〈만신〉을 중심으로,” 「국학연구」 41 (2020) 참조.
9 박종천, “종교가 영화를 만났을 때: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44 (2006) 참조.
박종천|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및 대학원 영상문화학협동과정 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유한의 시간을 비추는 무한의 스크린: 종교와 영화의 세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