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궁마
그곳에는 솟을 대문, 문종이 바른 사랑방 커다란 문, 큰 손잡이, 특이한 모양의 굴뚝, 마루 구조도 달랐던 종가가 있었다. 특히 사랑방의 구조와 분위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놋그릇, 행주치마
종가 아지매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재궁마를 시작으로 광창을 거치며 다섯군데 차례를 끝나면 오후가 되어야 불바우 갔었다. 재궁마, 광창, 불바우는 성김의 집성촌이였다.
종가집은 학창시절 추석, 설 차례 지내려 갔었고, 세월 지나 발걸음이 뜸해지며 한동안 잊고 지냈다.
종가 아지매도 대구로 가시고 빈집만 남아 오래 버텄다.
사람의 훈기가 없는 집,
오래된 나무들과 기와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집안에서 의논하여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큰 공사가 되었다.
겉보기보다 더 상한, 오래 방치된 결과이다. 사람처럼.
작년부터 지켜봐 왔는데 옛날 모습 복원이 아니라 보수작업에 그쳤다.
그 커다란 문고리에는 낯선 자물쇠만 채워져 있었다.
사람의 냄새를 맡지 못한 집이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나보다.
작물도 꽃들도 자연스럽게 흙냄새를 맡고 밤이슬을 먹어야 편히 살 수 있다.
사람은 부모의 그늘
집은 사람의 냄새
식물은 흙과 함께
숨을 쉰다.
미호리
미울에도 종가집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안채와 사랑채가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별동 사당이 있다.
지금은 사랑채는 유지되고 있으나 안채 자리는 허물고 다시 지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오래된 호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다.
사람들 모여서 사당 제사 지내는 때는 우리 시모님도 정정했다. 아버님은 종가의 막내아들로 고향을 지켰다.
예천 윤씨 집성촌이다.
경북선 선로가 놓여있고, 내성천이 흐른다. 강폭이 엄청나다. 두메산골 불바우에 살다가 이곳은 큰 강이였다.
강가의 모래밭은 곱고 예뻤다.
여름밤이면 모기 피해 강가 모래밭에 나왔다. 쏟아지는 별빛을 안으며 누웠다.
별이 가슴에 박힌다고 했던가
세상 부러울것 없는 무아지경이였다.
강은 물이 불었다 다시 서서히 줄었다를 반복했다. 자연스럽게
모래도 고왔다가 굵었다가
휩쓸고 내려갈 때 흙물은 무서웠다. 흐르고 흘러서
남은 수양버들은 마치 바보 같았다. 이리 저리 휩쓸리고도 아무 저항도 못하는 나무.
여기는 다시 사람이 모인다.
강 건너 한맥 골프장이 생겼고
강 건너 식당이 여러 생겼다.
한동안 지켜보던 자식들이 마을에 집을 새로 짓기도했다.
숙소 간판도 몇개 걸렸다.
어머님 집은 서향이다.
여름날은 더워서 강가 모래밭에 자주 나가셨다.
강가다보니 논과 밭은 멀리 있었다.
종가 정자는 내성천을 내려다보는 곳,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그곳에서 오월이면 마을 경로잔치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