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최백규-
밤새 덫에 뭉개져 있던 쥐를 끄집어낸다 손끝에 밴 피비린내가 지워지지
않는다 바람도 죽은 대낮에
커튼을 젖히다 돌아봐도 아무도 없다 암세포만이 몸속에서 꾸준히 자라고
있다
빨래를 하고
밥을 차린다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두렵지 않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평생 하청 업체에서 일했다 자존심을 죽이지 못해 늘
순탄치 못했다 용접 불꽃과 부딪치며 살아온 그들은 잘못 접합된 쇠처럼 어
긋나 있었다
이제는 잘린 손가락이 약속을 쉽게 꺾어버릴 것 같다던 농담마저 우스워진
다
팔에 새긴 이름을 긁적일 때마다 몸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난다 욕실에서
혼자 등을 밀다 문득 이 계절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거
리 나무들도 병을 앓아 꽃에서 고름을 흘릴 것이다
피 흐르는 손목을 쥔 채
덫처럼
아무리 끊으려 해도 질긴 게 있다 말하던 눈빛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