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제한 없는 자유로운 그림 ‘민화’
기교보단 담백한 표현이 눈길
정식화법 아닌 아마추어 작품
민화인구 늘면서 가치 재조명
세로로 긴 시원스러운 이 화조도(花鳥圖)는 놀랍게도 민화로 구분되는 작품이다. 비슷한 필치와 화면 구성을 보여주는 네 개의 그림 중 한 점이다. 최근엔 민화를 그리는 인구가 20만 정도 된다고 한다.
민화(民畵)는 민간에서 정식으로 화법을 배우지 않은 아마추어 작가들에 의해 그려지고 민간에서 유통되는 그림을 의미하였다. 궁중을 장식하던 장식화도 민화의 범주에 들어가면서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까지 민화로 볼 것이냐라는 개념정의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
요즘 민화를 배우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궁중화 풍의 장식성이 있는 민화에 많은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이런 민화는 원작품이 있고 작품의 본을 떠서 다시 종이에 옮기고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색을 올리는 과정을 거쳐 완성하게 된다. 최근 두건의 대형 민화전시가 열렸고 이 전시를 통해서 도상학적인 의미 부여나 그림의 해석뿐 아니라 익명의 작품들이지만 작가적 시각에서 다시 한 번 민화의 창작성의 가치를 부각하자는 시도가 있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 민화에는 어떤 법칙이나 기법에 대한 제한이 없어 자유롭다.
전통회화를 배울 때 붓을 잡는 법, 선을 긋는 법을 배우는데, 그런 법이 느껴지지 않는다. 채색을 할 때에도, 꽃잎과 줄기 나무를 그리는 법을 배우고 그대로 따라 그리곤 했는데, 그러한 제약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 병풍으로 제작된 작품은 세로로 긴 비례를 하고 있으며, 화면을 구획하는 것도 자유로움 그 자체이다. 힘을 들이지 않고 쓱쓱 그려나간 필치는 그림에 대한 재능이 많은 화가인 듯 하다. 자신이 없으면 빈 화면에 선 하나 긋기도 조심스러워 대범하게 긋기가 힘든 법인데, 그림에 표현된 선은 주저함이 하나도 없다. 이런 그림이 밑그림이 있었을까? 싶다.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맨드라미와 나비, 그 아래에 파초와 그릇은 세로의 화면을 크게 이등분 하고 있다. 파초가 화분에 담긴 것인지 파초 앞에 그릇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목단이나 연꽃이 아닌 맨드라미를 그린 것을 보면 그리 오래된 그림은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민화풍으로 그린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선은 농담의 변화가 없이 일정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은 선이 아닌 속도감 있게 빨리 그은듯하다. 맨드라미의 이파리들은 가볍고 율동감있게 흔들린다. 얇고 가볍다. 상대적으로 파초는 큰 덩어리로 쭉쭉 뻗어 있다. 유일하게 그릇은 담묵으로 처리가 되어 있고 매드라미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흙의 표현 또한 담묵으로 처리되었지만 기교가 들어갔다기보다는 담백하고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다. 작가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 민화의 미스테리한 매력 중 하나이다. 익명성이라는 것이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 뒷마당 장독대 주변이 떠오른다. 당시에 흔히 보는 작가의 주변에 상상력을 더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민화를 그리는 인구가 늘어나고 재조명하는 일은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오래 그런 경험이 축적되다 보면 새로운 시각이 생겨날 것이고, 자유로운 방법으로 작가적 필치를 살리고 이 시대의 민화로 재탄생하는 날도 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