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커피/김옥전-
빛을 온통 빨아들이기만 할 뿐
토해낼 줄 모르는 블랙은
거절의 개인적 상징
국사봉 둘레길을 오르며
그늘 속에 시간을 덜어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햇빛 속에서 많이 가지려고 애쓴 만큼
많이 버리려는 사람들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어 둘레길을 걷는다
길은 가파를수록 뒤가 가볍고
이파리는 무성할수록 뒤가 캄캄하다
초록 길을 걸으며 문득 블랙커피를 생각한다
순서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슬픔의 발끝을 조심한다
때죽나무 곁, 가난했던 시간을 지나
허벅지에 느껴지는 통증을 잊기 위해
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진달래에 집중한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이 발아 직전이다
그늘 진 길과 생각이 섞이면 블랙이 될까
커피의 블랙은 밤처럼 캄캄해서
입안에 맴도는 쓴맛에 몰입하는 동안
새삼 살아야겠다고 느낀다
쓴맛 속에 숨어있는 생의 향기가
하루 더 혼자의 길을 계획하게 해 준다
내게 블랙은 살고 싶은 은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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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를 쏘다(에디터)
블랙커피/김옥전
양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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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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