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펼치다
창밖에 눈이 내린다. 평소에 좋아하던 빨간색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하얀 눈을 보면 설레는 마음과 달리 우산을 챙기게 된다.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걸은 적도 있었는데. 낭만보다 옷이 젖고 감기를 감기를 염려하는 자신이 동심에서 멀어졌음을 실감한다. 외출할 때 우산을 들고 나서면 든든해진다. 바깥세상의 비바람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것만 같은 믿음으로.
어린 시절, 학교에 갈 때 우산을 잘 챙기는 편이었다. 친구들이 내가 챙긴 우산을 보며 그날의 날씨를 점칠 정도로. 비 맞으며 귀가하는 것이 싫어서다. 비 오는 날 학교에 가려면 다른 형제보다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우산을 챙길 때 찢어지거나 우산살이 부러진 것이 내 차지가 되기 때문에. 멀쩡하던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내리면 불안했다. 수업 마칠 시간에 맞춰서 부모님이 우산 들고 기다리는 친구가 부러웠다. 어쩌다 교정에서 기다리는 어머니를 발견할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의기양양해졌다.
노란 종이우산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종이우산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정성스레 깎은 대나무 우산살에 기름칠 한 종이를 덧씌우던 장인의 모습을. 그 우산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때의 인상적인 장면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비바람을 막아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믿음직한 우산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보호하며 지켜줄 것만 같았다.
환상적인 우산 속을 꿈꾸던 시절이 있다. 그것은 비닐우산처럼 약해서 비바람에 찢기고 뒤집힐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우산을 쓴다면 덜 외로울 것 같아서 결혼의 길을 선택했다. 상대가 아늑하고 커다란 우산이 되어주길 기대하면서. 결혼만이 평온한 안식처가 아니란 걸 한참 뒤에 알았다. 상대에 대한 바람이 클수록 그 보금자리는 계속 흔들린다는 것을.
어느 날 나만의 우산을 만들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언제든 펼칠 수 있는 무지갯빛 우산을. 폭풍우가 몰아쳐도 흔들림 없이 당당히 걷고 싶었다. 처음엔 그 길이 순탄치 않았지만 한 걸음씩 천천히 발을 내밀었다. 자신을 달래주는 창작에 몰입하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내 일만을 고집하지 않고 가족과 보조를 맞추니 큰 무리는 없다. 마음에 비 내리고 흔들릴 때 언제든 여유롭게 펼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렸을 때 관람한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이 떠오른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협의 항구도시인 쉘브르의 어린 연인들. 우산가게를 돕는 ‘주느비에브’와 자동차 정비공 ‘기’의 사랑 이야기다. ‘미셸 러그랑’의 감미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펼쳐진 화면과 달리 어두운 현실과 아픔이 잔잔히 전개된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연인은 서로의 우산이 되어주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주제가 ‘I will wait for you’는 지금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따뜻한 가정은 비바람에 흔들릴 때 아늑한 우산이 되어준다. 가정의 울타리에서 가족이 서로의 우산이 되어준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좁은 우산 안에서 같은 길만 걷기를 고집한다면 오히려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각자의 길을 걸으며 자존감으로 서로를 감싼다면 화목한 가정이 될 것이다. 다른 길을 걷는다 해도 결국 같은 곳을 향하는 여정이기에.
지난 연말에 미술 단체에서 심사위원에 위촉한다는 내용의 연락을 받았다. 뜻밖의 성탄 선물이었다. 심사는 여러 중진 화백과 함께했다. 종일 수백 점의 작품을 보며 현재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수상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심사위원들과 비슷한 안목에 내심 놀라웠다. 오랫동안 전시를 관람하고 습작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내가 펼친 우산이 건재함을 느끼며.
얼마 전에 작품을 구매하겠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전시 때 작품 구매를 하는 이들이 있지만 평소엔 드물어서 반신반의했다. 작가는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창작의 보람을 느낀다.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정성껏 단장한 작품을 새 액자에 맞춰서 보내줬다. 자긍심과 용기를 준 친구 덕에 새로운 원동력을 얻었다. 비를 맞고 선 이에게 튼튼한 우산을 건네고 싶다는 바람으로 작업에 열중한다.
오늘도 집을 나서며 우산을 펼친다. 눈보라를 피하려고 우산에 의지하는 건, 나약한 탓일까.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는 것이 두려워 숨고 싶을 때도 있다. 서로 의지하며 우산을 내민다면 두렵지 않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우산이 되고 싶다.
첫댓글 이제야 나를 보호해줄 우산이 필요함을 느껴 기꺼이 들어가고 있으나 너무 자상하여 귀찮아지고 있습니다. 너무 관심이 걱정이 많아서 그러려니 하며 지내려 합니다만.
우산을 비와 눈을 피하는 도구를 떠나 나 자신과 가족을 더 나아가 사회를 보호하는 우산으로 확대한 의미 부여에 동감하는 바가 큽니다.특히 노년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만의 우산을 만들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칭찬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지금 비 속으로 걸어가는 나에게는 우산이 없어요...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내 인생에 비가 내릴 때 내 스스로 말고 내게 우산을 받쳐 줄 그 누가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1990년대 초 인도네시아의 어느 농촌 지역을 찾았을 때 늦은 오후에 쏟아지는 스콜을 피해 어느 농가의 처마를 찾아들었는데, 비가 내리는 벌판 멀찌감치 곡괭이 하나를 둘러 메고 커다란 바나나잎 하나를 머리 위로 올리고 유유히 논둑길을 걸어가고 있는 어느 농부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비는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의식의 흐름을 따라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지송님의 글을 읽노라면 내 자신이 무언가 차분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쉽지 않은 글솜씨라고 생각합니다. 미술 심사위원까지 위촉받았다고 하니 지송님의 실력을 인정받은 거네요. 축하합니다. 더욱 정진하시고, 좋은 글 부탁합니다.
志松님은 단순한 우산을 가지고도 이렇게 깊이있는 사
유의 글을 쓰시는군요."사랑은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주
기보다 같이 비를 맞는 것이다"라는 글이 생각나네요.
심사위원까지 되셨다니 대단하시네요.그동안의 노력이 인정 받으심은 참으로 기쁜 일이시죠.섬세하고 다정
함이 깃든 글,감사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 힘을 실
어주는 우산이 되어준다는것은 삶의
큰 보람이지요.
반면 남에게 의지하지않고 자기만
의 우산을 갖는것은 더욱 중요함
을 느낌니다.
나같은 경우는 이제 1년간 독거를
하니 혼자만의 우산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참다운 대자유인의
길 입니다
평범한 우산으로 비범한 글을 창작하셨군요.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