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다섯 사람(天五會)
하늘 아래 다섯 사람이 만나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진주처럼 영롱한 로맨스를 엮어가는 세월이 결코 길지도 짧지도 않다. 이름하여 천오회(天五會)라 명명한 것은 천호동의 다섯 친구를 칭하기도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다섯 사람이 전국에서 모였으니 거창한 결사(結社)를 한 것 같으나, 실은 평범한 직장 친구들이 끈끈한 정으로 엮어진 순진한 형제들이다.
모임의 계기는 같은 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공사간 유대를 돈독히 하다가, 다른 학교로 전출하거나 직장을 옮기며 자주 못 만나게 되니, 그리운 추억을 반추하기 위하여 가끔 모였으나 무정한 세월은 50년 사이에 우리들을 3대 2로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놓았다.
천오회의 주제는 천렵(川獵)의 역사로 아로새겨져 있다. 팔당댐이 생기기 전 끝이 보이지 않는 미사리백사장과 가래여울에서 미음나루까지의 태고적 백사장에 자주 찾아가 육천년 전 선사인처럼 옷을 훌훌 벗고 천렵을 하였다.
여름방학이면 전국을 찾아다니며 등산을 하거나 인적이 없는 햇볕 쏟아지는 계곡에서 발가벗고 원시인 코스프레를 하던 아련한 추억이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다섯 친구가 뒤엉켜 살아 온 역사는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하나 각자의 프로필을 소개하면서 에피소드를 녹여 넣기로 한다.
① 가나다 순으로 첫째 클레이 박치양(朴致陽) 선생
박치양 선생은 6.25때 북한에서 피난민으로 남하해서 강원도 춘천에 정착한 성격 활달한 사나이중의 사나이다. 강원대학 재학시절 축구와 태권도 선수로 활약했고 교사로 재직하는 아내를 맞아 2남 1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웠다. 맏아들은 의사로 막내딸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행복한 삶을 살았으나 향년 80세로 지금은 고인이 되어 그리움만 안겨주었다.
생전에는 술 좋아하고 노래 잘 부르며 낭만적인 성격으로 항상 술값은 자기가 내려한다.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는 호걸남아 기질로 그의 지론은 “인생은 즐겁게 살아야 한다, 단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범위내에서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철학강의 인생론을 설파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언권(言權)을 주지 않는 다변가로 별명이 “클레이“가 되었다.
우리 모임에 없어서는 안 될 이유 중 한 가지는 이 친구의 특기가 투망기술이었다. 그가 투망을 던질 때마다 한 번에 20여 마리의 물고기가 파닥거릴 때 우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매운탕 끓일 재료를 모두 그가 챙겨 와서 아무도 손을 못 만지게 하고, 특별한 솜씨로 천하일미의 매운탕을 끓였다. 우리는 강바닥에 둘러앉아 매운탕에 소주를 마시면서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
② 다음은 젠틀맨 이대위(李大偉) 선생
이대위 선생은 키가 크고 인상이 좋으며 성격이 원만하여 동료직원이나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실력을 겸비한 영어교사다. 부친이 목사이시며 고등학교 교장이신 가정의 6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직한 성격으로 오직 학구열에 몰입하다가 연애 한 번 못하고 30대 후반에야 중매로 결혼을 하여 효도의 길에 접어들었다.
결혼 전에는 외로움을 달래느라 술을 좋아해서 쥐꼬리 월급은 친구들과 술 마시고 책을 좋아해서 도서구입비로 항상 적자생활을 면치 못했다. 뒤늦게 알뜰한 아내를 맞아 가정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수원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월세를 놓아 몇 백만원씩 받는 여유 있는 삶을 사는가 했더니, 인명은 재천이라 80을 못 넘기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어 우리 남은 세 사람에게 또 한 번의 슬픔을 안겨 주었다.
이선생의 부인은 남편의 금전 불감증을 고쳐주었다. 첫째 은행 신용카드를 못 가지게 하고, 현금은 외출 할 때마다 용돈을 지급하는데 “제자를 만나거나 친구를 만나면 얻어먹지만 말고 당신이 쏘세요“ 하면서 몇 만원씩 넉넉하게 주었다. 부인의 알뜰살림방법은 가족끼리는 외식을 하지 않으며 자기 옷은 거의 사 입지 않고 친정 언니들에게서 얻어 입고 한달에 1,000원인 「공무원연금지」를 구독하지 못하게 했다. 비록 적은 액수의 1,000원짜리 이지만 곱하기 12를 해보라고 한다. 이렇게 절약하는 부인이지만 불우이웃돕기 등에는 아끼지 않고 큰돈을 쓴다고 했다. 특히 대구에서 목회를 하는 제자에게 매우 많은 금액을 헌금해서 교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다. 제자목사 부부가 수원까지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였다는 소문이며 부친상을 당했을 때는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알리지도 않았다. 이대위 선생에게 배운 영어 한 도막 “house rich cash poor”
③ 다음은 칠암 정근식(鄭根植) 선생
6.25 때 부모님과 평안북도 철산에서 월남하여 어린시절 어렵게 자랐으나 부모님의 정성과 본인의 성실함으로 대학은 한국의 아이비리그 연세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처음에는 천호상고에서 근무하다가 공립학교 서울고등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하였다. 퇴직후 각종 봉사활동과 집필생활로 화려한 노년의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다. 젊어서는 직장과 가정에서 오직 근면 성실의 아이콘으로 학교에서는 중책을 보직 받고 동료교사들의 신뢰와 우정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며 제자들에게는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페스탈로치 같은 교육자였다.
보통사람과 다른 정선생의 특징은 편지를 쓰는 일이다. 연간 소모하는 우표 값은 용돈의 절반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mail과 SNS가 유행하는 현대에도 손편지를 꾸준히 쓰고 있다. 그의 자서전 『사색의 여울』 448페이지에 실린 제자 김일영목사 편지의 일부를 소개 한다.
“그동안 선생님께 받은 편지는 줄잡아 1,000통이 훨씬 넘을 것입니다. 중략 -세상에 이런 일 TV프로에 나가도 충분히 큰 화제가 될 것입니다. 현재 편지쓰기 최고 기록자로 이름을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월간지 「행복한 사람들」에 <해외여행 견문기>를 연재 할 정도로 여행을 많이 하며 전공인 역사학자로, 종교인으로 각종 세미나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상황에서 즉흥연설을 한 시간씩 할 수 있는 실력은 누구보다 많은 독서량에서 우러나오는 지식이라 사료된다. 한 달에 4권 이상의 독서를 하며 서재의 수천 권의 장서가 증명해준다. 지금도 아침마다 80여명에게 보내는 주옥같은 문자메시지는 인생항로의 등불이 되고 있다.
④ 다음은 초당 정영기(鄭榮基) 선생
정영기 선생은 시인. 향토사학자. 한학자로 정열에 넘치는 집필가다. 강동문인회 회장, 상학학술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인으로서는 최초로 강동구민대상을 수상한 국가유공자이다.
각종 시집, 수필집, 학술회지 등 15권의 저서를 통하여 프로필은 충분히 알려진 인물이므로 자세한 소개는 생략하겠다.
천오회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추억해 보면 정선생의 교직생활은 평교사,주임교사,교감 등 직책을 수행하는데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으로 너무나 정열적이며 박력이 넘쳐서 별명이 “히틀러“다.
연세대학교 동문과 함께 학교를 설립하여 국내에서 가장 학생수가 많은 고등학교를 이룩한 개교공신(開校功臣)이다. 교사는 교장의 신임과 동료의 우정과 제자의 존경이 필요불가결한데 히틀러선생은 이상 삼박자를 완전히 갖춘 교육자로 부동의 위치를 보유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가능은 없다” 면서 동료교사와 제자들을 인솔하여 네 번이나 지리산종주 등 전국의 유명한 산을 모두 정복하였다.
초당의 주옥같은 모든 글에 스미는 “사랑”이란 키워드는 초당이 <사랑의 화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특히 일본의 천사같은 여인 SAKIKO와의 서신왕래는 플라토닉 사랑이라 사료된다. 초당은 한글로 글을 쓰고, 일본어로 편지를 쓰며, 한문으로 시를 짓는 유니버셜 학자다. Blog와 E-mail로 소통하고 카카오톡으로 GIF를 활용하는 신구(新舊) 학문을 달관한 실력자이다. 초당의 인간성을 총 정리하면 정열의 사나이. 노력의 아이콘, 애증의 아바타, 불굴의 불도저, 글로벌 스케일, 유수같이 끊임없는 상선약수(上善若水)다.
⑤ 끝으로 영감 황영목(黃泳睦) 선생
천오회의 최고령자 황영목 선생은 1933년 11월 22일생, 무뚜뚝 하지 않은 경상도 남자, 남을 배려하다 손해만 보는 바보같은 사나이.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멘사는 못돼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고 싶은 소박한 인물, 인생의 절반은 나를 위해 살고 절반은 남을 위해 살려는 프로보노 봉사 활동가, 독서는 한 달에 두 권도 못 읽으면서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신문,잡지를 뒤적이는 토막상식, 인터넷 신조어, 축약어 암기에 열중하여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해당되는 속담이기를 감히 바라는 환상에 젖은 영감이다.
자화자찬 : 1) 복지관 실버봉사단 200명의 대표 회장감투. 2) 도서관 실버독서회 15명의 회장. 3) 색동어머니회 주최 전국 동화구연 최우수상. 4) kt주최 전국 시니어봉사 수기모집에 大賞. 5) 퀴즈풀이에 취미가 많아 우리말겨루기 국민골든벨 등에 출전 최후의 2인자. 6) 학식은 얕으나 새로운 문명에 관심이 많아서 PC, IT관련 공부에 노력한 결과 스마트폰 교육 강사로 5년 넘게 봉사. 7) 쑥스럽고 적은 금액이지만 아프리카 어린이돕기에 매월 3만원을 비롯 복지관 불우이웃돕기 등에 약간의 기부금을 낼 수 있는 형편.
좋아하는 문구 :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 “인생은 한 번 뿐인 초대, 최선을 다 하고 숙명에 살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배움으로 마음 청춘을 누립니다”
45년간의 교편생활을 접고 정년퇴직한 황영목 어르신. ‘끝’이라는 씁쓸한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퇴직 후 황 어르신은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팍팍했던 직장생활 탓에 마음만 먹고 해보지 못한 것들을 적어 목록을 만들고, 하나둘 이뤄나가기로 계획한 것이다. 우선 가장 쉬운 여행을 시작으로 악기 배우기, 운동하기, 서예와 그림 배우기, 읽고 싶었던 책 찾아 읽기까지 마음껏 실행했다. 그런데 책과 신문, 잡지를 보던 중 IT 용어와 신조어가 쉴 새 없이 튀어 나와 조금씩 답답함이 쌓여갔고, 대학생 손주에게 물어물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컴퓨터를 알고 나니 신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전자우편도 사용하고 인터넷 검색하는 방법도 자유로워지니 새로운 세상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렇게 배운 컴퓨터 활용 능력이 주민자치센터나 지역아동센터 교육 봉사 때 자료나 교구를 만드는 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됐어요. 그러던 중 스마트폰이 나왔는데, 이건 거의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나 신이 났겠어요. 1년 정도 열심히 배우니 미국에 있는 자식들과도 자주 영상 통화로 대화할 수 있어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도 이 신 문명을 접하면 좋겠어서 보조강사로 1년을 더 배우다가 이곳 남양주시노인복지관에서 전담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황영목 어르신은 일주일에 나흘은 봉사 활동을 다닐 정도로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금요일마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스마트폰 교육은 물론, 마술과 동화구연을 배워 어린이집에도 찾아가고, 지역 아동센터에서 초등학생들 공부도 도와준다. 이렇게 이곳저곳을 다니면 지칠 만도 한데 황 어르신은 그저 하루하루가 즐겁다. 하지만 잘못 누르면 자꾸만 화면이 바뀌는 스마트폰을 어르신들은 불편하고 어려워한다. 새삼스럽게 무언가를 배우기보다 익숙한 방법에 머물러 있고 싶은 어르신들을 위해 황영목 어르신은 이렇게 말한다. “제 나이가 올해 아흔입니다. 저도 한 번 배우면 자꾸 까먹어요. 하지만 자꾸 까먹는다고 포기해야 하나요? 다시 배우고 또 배우면 잘 할 수 있어요.” “이곳 노인복지관에서는 또래 강사들이 1대1로 알려주니까 두려워하기보다 재미있게 놀다 간다고 생각하세요. 원래 나이 먹으면 자꾸 잊게 마련입니다. 이걸 두려워하기보다는 계속 배우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려요. 아마 손주들 하고도 더 친해질 걸요.” 게임이며 음악이며 다양한 스마트폰 활용법을 익히니 배움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는 황영목 어르신. 배워야 할 것이 무궁무진해 꾸준히 성취감도 느끼게 된다는 황 어르신은 도전의식도 전보다 더 강해져 올 초 설 특집 ‘국민골든벨’ 방송에도 출연, 최후 2인까지 남은 최고령자로도 이름을 남겼다. 황 어르신이 생각하는 배움이란 뭘까? “배움은 그 자체가 정신을 살찌우는 밥 같아요. 밥을 먹고 건강해지듯이 공부를 통해 정신도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황 어르신의 다음 도전은 ‘파워포인트(각종 프레젠테이션에 시각적 보조 자료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섭렵’이다. 지금껏 쌓아온 노하우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강의 자료를 손수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배워 마음이 젊은 것 같다고 말하는 황 어르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황영목 어르신의 마지막 말에서 배움이 주는 즐거운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