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부모님이 흡족하게 공양 올리는 법?>
《너무 쉬운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스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조상님과 부모님께 공양 올리는 것을 강조를 하시잖아요. 그 공덕으로 인해서 결국 제 삶에서 마음과 물질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모님과 조상님께서 아주 흡족하시게 공양 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말씀해 주시면 앞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아주 흡족하게 공양을 올리는 방법 그것은 우리 보살님이 정말 건강하고 정말 행복한 것이 바로 그것이죠.
부모님이 무엇보다도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자식이 건강하고 풍요롭고 행복한 그것 이외에 뭐가 있겠습니까? 가장 수승한 공양이잖아요.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부모님이 기쁘도록 해드리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때그때에 당면한 어떤 사안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좀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부모님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불성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드리는 것만큼 또 중요한 것도 없겠죠.
그래서 부모님이 불법에 귀의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부모은중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지금 질문은 부모님이 흡족하신 일이 무엇일까 하는 그 대답은 그냥 간단하게 내 자신의 행복입니다. 나 자신의 성취입니다. 내가 정말 지혜와 복덕을 갖추면 그게 바로 내 생명을 크게 빛내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그 이상 부모님이 바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자랑스러운 우리 딸, 정말 우리 가문을 빛내는 우리 후손, 이 나라에 크게 기여하는 우리 후손, 이렇게 되면 부모님은 그 무엇보다도 기쁘시겠죠.
그리고 참고로 우리 ㅇㅇ보살님은 이미 지금 삶으로 크게 효도를 하고 계십니다.
<질문2: 문제 부모들에게 어떻게 조언할까요?>
《교실에 아이를 보면 자꾸 와닿는 게 제가 직업적으로 또 그런 부분이 많이 와 닿았어요.
저희 아이도 보면 자꾸 내 눈에 거슬리는 그런 문제 행동들이 다 나로 인해서 생긴 거라고 어렸을 때 내가 제가 이렇게 어렸을 때 키우면서 또 태에 있으면서 가졌던 생각들이나 그런 행동들이 아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쳐서 지금 그게 나한테 내 눈에 그대로 비쳐진다고 공통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셔요. 그런데 또 교실에서 아이들을 보면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아이들 우리 눈에는 다 보이잖아요. 그런데 엄마들은 그것을 못 봐요. 그런데 분명히 이 문제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의 문제라고 알려주고 싶은데 그러면 되게 기분 나빠하잖아요. 자기네는 부부가 아무 문제도 없고 잘 살고 있는데 그게 감춰지고 덮어진 부분이 많잖아요.
그것을 어떻게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해줘야 될까요?》
어떻게 말씀을 해드릴 것인가? 예~~ 글쎄 고민이네요. (하하하....)
그래서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우리 ㅁㅁㅁ 선생님은.
《저는 문제 아이는 없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만 얘기를 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그래서 당신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줄 수가 없잖아요.
저도 잘 모르니까.》
거기서 한번 우리가 한마디를 더 보태본다면 문제 아이는 없다.
다만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문제 부모도 없다. 하는 것으로 한번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만 그 방법이라든가 자기가 아직까지 착안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뿐이지.
그분이 문제 부모로 그냥 결론 내리지 말고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분이 자기 문제를 어떻게 캐치를 해서...》
예를 들어서 어떤 사례가 있습니까? 아이의 어떤 문제가 부모로부터 비롯됐다.
《아이도 물론 문제가 있는데 그게 제가 보기에는 전부 다 엄마의 문제예요.
너무 아이한테 집착을 하는 그런 엄마가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믿고 하면은 다른 아이들처럼 다 잘할 수 있다. 엄마가 내려놓고 멀리서 지켜보고 아이가 가면 그냥 손을 흔들어주고 여기서 끝내라. 교실 앞까지 이렇게 책가방을 들고 오는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일 년 내내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셨죠. 선생님한테 맡기고
《도저히 안 먹히고.》
한 번 말씀드리면 그것으로 그냥 말씀드린 거죠.
두 번 세 번 하는 것은 또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분들한테는 그냥 힘만 들고 그죠. 효과가 적습니다. 우리들이 그 아이에 대한 집착을 말씀하셨는데 이 집착이 탐진치가 다 모여 있는 그런 마음 상태잖아요. 그래서 집착을 가지고 있는 한은 자유롭지 못해요.
누구나 집착을 다 놓아버리면 집착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마음대로 안 된다는 판단에 의한 미움이라든가 또 집착하는 것을 뭐 어떻게 빨리빨리 하려는 조급이라든가 또 집착하고 있는 대상이 뭐 어떻게 되어 버리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이 그냥 동시에 없어져 버리잖아요.
그런데 왜 집착을 하게 되는가 하면 우리가 이 대비주를 몰라서 그래요.
우주 법계에 그냥 가득한 순수 가능성의 근원 에너지가 무한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집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쩔 수가 없다.
또 내가 간섭하지 않으면 제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라는 어떤 그런 미혹(迷惑)에서 이제 비롯됐다고 봐야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 그 아이를 포함해서 한 명 한 명들은 본래 본래로 지혜를 이미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야 끝이 나요.
그리고 내 나이가 부모이기 때문에 나는 30년을 살았고 또 아이는 아직까지 뭐 열 살 밖에 안 살았기 때문에 내가 경험도 많고 또 내가 여러 가지 체험도 많고 비교 검토도 한 적이 많기 때문에 내가 더 지혜로울 수밖에 없다. 하는 것은 육체적인 존재로서 생각하는 것일 뿐이거든요.
10살 된 아이도 이 신체 이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때부터 지금까지는 십 년 살았지만, 우리 영적인 나이를 보면 우리나라 다 동갑이에요. 우주하고 동갑이에요. 우주하고 동갑이야. 그래서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어리게만 보고 집착하는 거야.
아이들도 어른들보다도 오히려 더 정말 마음이 더 순수하고 맑고 또 이 집안에서 골칫덩어리로 살아가는 아버지가 만약에 있다면 그 집 아이들이 그 아버지를 오히려 리드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아이에 대한 집착도 대폭 내려놓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부모님을 선생님으로서 어떻게 상대해 드릴 것인가 하는 것은 먼저 출발을 그러한 학부모를 볼 때 일어나는 내 마음부터 다루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왜 저럴까?
나무라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 나무라는 마음 꾸짖는 마음을 내가 다루는 거예요.
그러면 있는 그대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대해주는 거죠.
그대로 아무런 스스럼 없이 너는 왜 그렇게 못난 행동을 해. 하는 어떤 꾸짖는 마음 없이 그야말로 텅 빈 마음으로 사랑으로 대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빠르게 정말 이 마음을 터놓고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오겠죠.
< 질문3: 대비주 수행중 번뇌가 일어나면 어찌해야 할지요? >
《대비주를 하면서 자꾸 다른 생각이 들면 자기 마음을 알아차려서 아! 그렇구나! 라고 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아! 그렇구나! 하는데도 계속 그 생각이 안 떨어져요. 계속 안 떨어져요. 끝까지 그러다가 그냥 21독이 끝날 때가 많거든요. 그냥 그대로 그렇구나 하고 끝나는 거예요.》
뭐 끝났는데 끝났지. 뭐 그거는 저도 마찬가지인데 저한테 그런 어려운 질문을 하시고 저는 안 그런 걸로 지금 믿으시는가 본데.
《그래서 이럴 때는 아~~ 이게 안 되겠다. 49독까지 갈 때도 있어요. 그래도 별로 이렇게 깊이 들어가지가 않더라고요.》
다음에 또 21독을 하고 또 다음 시간에 또 계속하다 보면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죠.
그러면서 이제는 뭐 생각할 필요가 없이 아주 명료해져 버리죠. 계속할수록.
그래서 대비주 수행은 먼저 거듭거듭해야 되잖아요. 거듭거듭 반복한다는 이야기잖아요.
반복하다 보면 어느 때는 항상 해. 항상 하루 종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 생각들이 정리가 되고 또 정리가 됐는지 안 됐는지도 모르는 그 사이에 그만 생각이 점점 쉬어지고 나중에는 뭐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마음이 텅 비어버려서 대비주만 또렷하게 굴러가죠. 대비주만 하고 있어요.
대비주만 하고 다른 생각이 그냥 있는지 없는지 다른 생각을 지금 하고 있는지 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대비주만 또렷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그때는 이미 삼매에 가까운 거예요. 그러면 어~ 벌써 108독이 됐네. 이럴 때도 있고.
그러면서 여러 생각 가운데 과거에 있었던 것도 회상이 되기도 하고 지금 현재 당면한 과제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러면서 그 걱정이 거치고 또 과거의 어떤 회한이 내려지고 이러면서 마음이 점점 맑아지고 밝아지잖아요.
그래서 마치 천개 태양이 비친 것처럼 밝고 천광왕정주여래의 그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되는 거죠. 점점 생각이 쉬어지고 생각이 걷힙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제 생각을 하기도 하고 말을 하기도 하고 생각을 안 하기도 하고 말을 멈추기도 하는 그 나를 그 대비주를 그냥 만나는 거예요. 하다 보면.
그리고 삶 속에서 대비주 수행을 하는 분들은 생각을 이것저것 하게 되잖아요.
또 좀 이따 뭐 계획도 있고 또 뭐 어떤 보고서 작성할 때 이렇게 할까 결정 내릴 일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러면 대비주를 도렷하게 지송하는 가운데 우리 지혜장이라고 하잖아요. 내 마음속의 지혜가 문득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바로 그렇구나! 그 깨달음 아이디어 이런 것들이 아주 효과적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그렇게 되죠.
<질문4: 그것이 알고 싶다! 신년 법어의 진실>
《덕양선원에서는 매년 새해가 되면 스님께 세배를 올리고 신년 법어를 받습니다. 많은 신년 법어들이 있죠. 희망적인 어떤 메시지들이 많이 적혀 있는 법어들이 있는데 그것을 각 사람들이 하나씩 뽑게 되는 거죠. 올해 저 같은 경우에는 〖와! 해냈다〗 이런 법어를 받았었고 몇 년 동안 세배를 올리면서 법어를 받았는데 저 스스로 돌이켜봐도 그 법어에 맞는 해를 보냈다. 지나고 보니 그 법어는 맞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저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저희들 다 그렇게 말씀을 나눴지 않습니까. 누가 맞았더라. 〖장원급제〗를 뽑으신 분은 그 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한 사례도 있고 물론 다 희망적인 말이지만, 많이 이렇게 흡사한 또 자기 케이스에 딱 맞는 그런 법어를 선택하게 되고 또 그렇게 되는 사례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분들이 스님은 이것을 작성하실 때, 법어를 만드실 때, 어떤 과정을 거치셔서 만들고 그것을 뽑은 사람이 그것과 맞는 1년을 보내게 되는 이치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궁금하실 텐데. 안 궁금하신가요? 안 궁금했나요? (스님의 노하우인데...)
법어를 만드는 과정과 저희들한테 맞는 그 이치에 대해서 좀 상당히 저도 그것 또한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쭤보고 싶습니다. (짝짝짝...) 박수를 치지 않습니까?》
BBS 불교방송 신묘장구대다라니 철야정진 지도법사를 할 때 중국에 여러 번 다녀왔거든요.
해외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하도 오래돼서 절 이름도 잊어버렸네. 아주 큰 절인데.
그때에 관광버스를 여러 대를 타고 이제 이 사찰 순례를 중국 가서 하고 또 그 절에서 대비주도 같이 독송하고 이런 프로그램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절에 갔는데 절이 아주 높은 산에 있어요.
이동 수단은 조그마한 차 있잖아요. 백두산 올라갈 때 타던 차처럼 아주 수십 대에 나눠서 그 절까지 이동을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도법사니까 맨 첫 차로 올라갔죠.
맨 첫차로 올라왔는데 차에서 내려서 맨 마지막 차가 올라올 때까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요. 기다려야 되거든요. 그래서 이제 뭐 구경거리가 없나 하고 사하촌(寺下村) 같은 데 둘러보고 있는데 어떤 노거사님이 옛날에 공자님처럼 복장을 하고는 저한테 아주 뭐 가서 차를 꼭 한 잔 좀 대접을 해드리겠다고. 그 통역 옆에 있으니까 다 알아 듣죠.
그래서 이제 구경도 할 겸 따라갔죠.
따라가니까 어떤 포장마차처럼 생긴 조그마한 어떤 공간을 마련해 놓고 거기다가 무슨 온갖 상은 전부 다 모셔놓고 향도 그냥 코가 메울 정도로 피워놓고는 거기서 이제 주역의 궤를 떡 세워놓고는 이제 손을 내보라고 해요.
그 손을 내보였더니 종이에 뭘 쭉 적어요. 이렇게 쭉 적더니 질문을 해요.
스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세수가.
그래서 몇 살입니다. 하니까 턱 이렇게 내보내 보여주는 거예요. 숫자를 딱 맞춰서.
그리고 속가의 형제 자매들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6남매입니다.
그러면 6을 또 내보여주는 거예요. 이미 미리 다 적어놓고.
그리고 또 하여튼 하여튼 대여섯 개를 그렇게 정확히 맞추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나서는 또 제 손을 이렇게 잡고는 합장 이렇게 모아서는 뭐 아주 주문을 하는데 중국말로 대비주를 하더라고요.
나도 대비주 수행자인데 대비주 수행 제대로 만났네. 하고 그렇게 이렇게 하고 나서 그 궤를 하나 뽑으라고 하는 거예요.
턱 뽑았어. 턱 뽑으니까 뭐가 나오는가 하면 〖법왕〗이 나와요. 〖법왕〗.
그래서 이 중국말로 해설이 되어 있는데 보니까 당신은 법왕이 될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법왕이면은 내가 지금 오늘 이 법회 때도 나는 법왕이 아니고 나는 아주 젊은 축에 속하고 또 그야말로 아주 크신 스님이 이 법주(法主)를 하시고 그런데 제가 무슨 법왕, 저는 이 보좌만 하고 시봉만 하는 그런 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그냥 아주 정신을 흘린 것 같아요.
그래서 한참 기다려서 이제 마지막 차까지 다 와서 줄을 맞춰서 올라가니까 대중 스님들하고 불자들이 양쪽으로 합장을 하고 서서 막 완전히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면서 아주 장엄한 법회가 열리는 거예요.
그런데 불교방송 진행자가 와서 ‘스님 오늘 법주 맡으신 스님이 갑자기 설사가 나서 호텔에 지금 계시고 못 오셨는데 스님이 오늘 법주 하셔야 됩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나로서는 큰일 났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 법주 안 한다고 가사 장삼까지도 지금 호텔 놔두고 온 판이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이제 큰일 났다 싶으면서 그 부주지 스님이라고 소개를 한 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이 두루마기를 벗어가지고 스님 드리겠습니다 하고 그러니까 쭈뼛쭈뼛해요.
그래서 이 가사장삼하고 우리 한국 제 두루마기하고 바꿉시다. 해가지고 바꿔서 걸쳐버렸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이 법주를 했어요. 법왕을 했어 법왕을.
물론 그 법회 때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맞춘 것은 아니겠죠.
그래서 저는 이제 맞아. 내가 지금 법왕자니까 나중에 법왕이 되겠지. 또 법왕이 되고 말고. 왜냐하면 내가 수행의 길로 들어서서 결국 성불을 해야 되지 않겠나 그렇게 받아들였죠.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우리가 이런 자리에 모이는 것도 절묘하잖아요. 그죠. 절묘해. 이 시간에 이 사랑하는 우리 도반들하고 이 자리에 함께하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거든요.
아주 오묘한 인연법에 의해서 딱 만나게 되는 거예요. 법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어도 그냥 이거 뽑을까? 저거 뽑을까? 나 빨간색 좋아해서 탁 뽑는 것이 그저 뽑아지는 것이 아니고 그 오묘한 그 인연법에 의해서 딱 뽑아지는 거예요. 그 원리예요.
이게 바로 주역의 원리 인연법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 붓 글 쓸 때는 이번에 내가 아주 창피한 적이 있었어요.
진짜로 이제 붓글을 떡 써서 이 정초에 오신 분한테 선물 드린다고 준비해놓은 거잖아요.
그런데 N거사님이 아들 딸 데리고 오셨더라고. N거사님이면 완전히 뭐 아주 서예의 대가 아닙니까? 그죠. 서예 전시회도 하고. 그분한테 이걸 내보여야 되니까 이게 뭐.
그분도 턱 뽑았어. 뭘 뽑으셨는지.
글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래서 저는 이제 그런 마음을 가져요.
내 손이 보통 손이 아니다. 이 손으로 이 붓을 잡고 글씨를 쓰는 것이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108독 5시간 40분 걸쳐서 100일 기도만 안 빠지고 한 것이 여섯 번 이상 했다. 그랬잖아요. 그 이후에 뭐 철야도 수없이 하고 그랬잖아요.
그 손으로 그 집중력으로 그 축원하는 마음으로 썼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다 좋은 말이잖아요.
다 좋은 말인데 그것을 쓸 때 그리고 대비주 할 때는 내가 없어지고 나를 비워놓고 오직 관세음보살님과 하나가 돼서 대비주를 외우고 또 이 법어를 쓰고 이랬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거 뭐 어떻게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챙길 시간이 없잖아요.
그리고 접어 넣는 분도 접어 넣고 도장 찍고 이 빨간색 칠하는 것도 우리 민성님이 하셨잖아요. 민성님도 보통 분이 아니잖아. 대비주 수행자 아닙니까?
《충분한 답변은 되셨는데요, 이렇게 넘어가시려고 하는 것 같아서 잠깐만 덧붙여서 디테일 한 것 하나만 더. 스님이 그냥 이렇게 관한다고 하셔야 되나 그런 자리에서 쓰실 때 예를 들어서 저희 덕양선에 오는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시고 그런 어떤 그렇게 연결되는 그런 법어들이 이렇게 나오는 그런 어떤 겁니까?》
그 문구는 벌써 몇 년 동안 똑같은 걸 사용합니다.
아무리 구상을 해도 별로 뭐 추가되는 것이 없어요.
워낙 이제 처음부터 잘 만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대비주 외울 때, 그 글 쓸 때는 진짜예요. 진짜. 네 진짜예요.
보통 때는 이 군더더기가 많잖아요. 실수도 하고 또 저도 뭐 이제 탐진치 삼독심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목탁 잡고 어떤 분을 축원할 때는 이게 진짜입니다.
요거는 요거 요거는 이제 이거는 진짜야. 이거는. 진짜.
가짜가 없는 진짜야. 이거는.
이거는 정말로 제가 여러분들 생각하면서 사랑합니다.
이거는 뭐 바라는 거 없어요.
오늘 뭐 무슨 그 찰밥을 맛있게 해 오셨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안 해 오셔도 요거는 진짭니다. 요거는.
< 문5: 대비주 10만독 성취자들의 공통점 가피 고비 그리고 성취 왜 다들 비슷한 과정을 경험하나요? >
대비주 십만독 성취를 하게 되면 그 초기에 어떤 가피가 있고 또 한참 후에 어떤 고비가 오고 또 성취하고 나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수행기에 이미 발표가 돼서 많이 알려져 있죠. 그것이 또 우리들의 보람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또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방금 말씀하셨는데 대비주 수행을 하고 나면은 초기에는 가피가 많이 오고 그다음에 중간쯤에는 고비도 오고 그다음에 다시 아주 긍정적인 어떤 변화의 자리를 성취한다. 많은 분들이 그 과정을 거치셨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저도 돌이켜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초기에 가피가 되게 많이 왔고 또 저 나름대로 어떤 좀 힘든 부분도 있었고 지금 또 제 스스로의 마음의 변화를 많이 느끼는데 왜 이게 다 비슷할까요.》
공통 분모들이 많죠. 예 우리들이 같은 게 있어요. 같은 것이 뭔가 하면 본래 불이다 하는 것이 같아요. 또 다른 것은 자기 삶의 체험들이 다 다르잖아요.
결국은 우리가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본래불임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그런데 본래불로서 체험하는 체험이 쌓이고 쌓여서 그것이 내 마음 깊이 어떤 것은 응어리로 뭉쳐져 있고 그래서 뭉쳐져 있는 그 응어리가 몸 병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고 인연의 어떤 그 갈등으로 오는 경우도 있고 또 환경의 재앙이나 원치 않는 그런 일들로 다가오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은 우리 공통적인 것이죠.
그런데 그런 것이 내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대비주라는 아주 밝음의 극치를 만나면서 그런 것이 해소되잖아요.
우리가 몸 아픈 분들도 몸 낫는 어떤 그 방법이나 또 그 경과가 공통되는 사항들이 많잖아요.
이 마음도 사실 그런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가피가 좀 많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경우도 있죠.
그런데 이 밝음을 우리가 구했을 때 정말 깜깜한 밤 중에는 밝음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죠. 그래서 정말 감사하죠. 정말 행복하고 환희심이 일어나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좀 지나다 보면 당연한 것이 또 돼버리잖아요.
당연한 것이 돼버리면서 밝아졌을 때, 가지가지의 자기가 과거에 신구의 삼업으로 지어서 그 결과로 나타나 있는 좀 어설픈 것들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막 보이잖아요.
몸에 나타나 있는 것, 인연에 나타나 있는 것, 자기 삶에 그냥 아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그냥 도처에서 발견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럴 때 이제 오해를 하기 쉬운 것은 대비주 수행하기 전에 깜깜했을 때는 이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밝아져서 보이니까 대비주 수행해서 없던 게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아심이 일어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가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고비가 없던 것이 생긴 것이 아니라 있는 문제가 드러나는 것으로 봐야 되잖아요.
그런 것을 봤을 때 옛날 같으면 이게 누가 갖다줬나?
원망한다거나 탓하거나 아니면 좌절한다거나 이불 덮어쓰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전전긍긍하던 그 내가 그때까지 대비주 수행을 하면서 마음의 힘이 길러지고 회복이 됐잖아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내가 만들었으니까 내가 이것을 치울 수도 있다.
또 내가 이렇게도 만들었으니까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다 하는 것을 확연하게 알 때는, 그때는 필요한 것이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 답입니다.
그런데 나아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아가는 것을 오히려 거부하고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것은 과거에 안주하려는 습성입니다. 과거 그냥 중생으로 사는 게 편하거든.
나쁜 의미의 어떤 중생, 소극적으로 종노릇 하는 게 편하거든요. 그죠.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주어지는 대로 먹으면 되니까.
노비에서 해방돼서 처음에는 다시 노비로 돌아갈래. 이렇게 할 수도 있다 이 말이에요.
주인으로 새로 주인 마음도 자꾸 연습해야 되고 주인으로서 새로운 것을 익혀야 되기 때문에 ‘와! 이거 버겁다’ 이런 것을 느끼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그때부터는 자기가 힘차게 나아간다면 빠른 속도로 정말 주인의 권능, 대비주의 권능을 발휘하면서 그때부터는 원하는 대로의 삶, 의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때 만나는 어떤 어려움은 ‘이제 해결할 수 있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만나기 때문에 정진 수행의 대상, 수행거리지 자기를 힘들게 하는 어떤 것으로 이제 안 보이는 거죠.
10만 독 성취하면 그 성취감이 얼마나 큽니까? 그죠.
《저는 되게 클 줄 알았거든요.》
되게 클 줄 알았어.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벌써 제가 이렇게 변해 있었다고 표현해야 되나요?》
당연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옛날에 내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여러분들 이제 건강하게 지금까지 살아오신 분들은 건강에 대해서 별로 뭐 당연히 건강하잖아요.
그런데 아팠던 분이 건강해지잖아요. 그러면 처음에는 아주 되게 고맙잖아요.
화~~! 정말 살맛 나잖아요. 조금 지나 봐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죠.
본래 건강이예요. 우리 본래 건강이거든요.
본래 건강이 육신의 건강뿐만이 아니고 모든 영역에서의 건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풍요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요도 본래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끔 돼 있거든요.
이게 무한으로 전부 다 제한 없는 풍요, 제한이 없는 아주 무한정의 공급이 한시도 멈춤 없이 끊임없이 이 우주를 채우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 무한 풍요의 에너지의 문을 마음의 문을 열고 산다면 아까 노래 가사처럼 문을 활짝 열고 산다면 당연히 풍요를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도 무한이고 사랑도 무한이고 써도 써도 계속해서 나오잖아요.
가능성도 무한이고 능력도 무한이고 기회도 무한이고 인연도 무한이에요.
이런 원리를 알고 살면 다른 그 누구도, 다른 누구는 전부 다 팔아줄 사줄 사람 없다고 해도 이 이치를 터득하고 긍정하고 사는 분들은 고객들이 끊임없이 몰려오게 돼 있단 말이에요.
이게 바로 욕심이 아니고요, 당연한 거예요. 당연한 것.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도 우리가 특별히 무슨 뭐 어떤 것을 해야 거기에 대한 대가로 포상으로 행복을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행복을 누리게끔 돼 있는, 태양이 왜 밝습니까? 이유가 없어. 그냥, 그냥 태양이니까 밝은 거예요.
우리 생명도 마찬가집니다.
원래 건강이기 때문에 건강이고 이 공급이 무한하다는 것은 원래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우리가 뭐 대비주를 해서 얻어낸 건 아니거든요.
대비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 때문에 그것을 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