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지난 12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코엑스에서는 전기차 관련 행사인 ‘EV 트렌드 코리아’가 진행 중입니다. 현대 코나 EV나 재규어 I-페이스 등 새로운 전기차가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르노 삼성 자동차, 테슬라, BMW 등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자사의 모델들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이제는 한 번 충전으로 400km 전후를 주행할 수 있는 모델들도 여럿 있고 프리미엄 시장에도 전기차나 PHEV가 꽤 있습니다. 시가지용 소형 전기차가 에어컨이나 히터를 아껴가며 다니던 1세대 전기차의 시대는 확실히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행사를 지켜보면서 이제는 다음 단계로 얼른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행 거리가 넉넉해진 2세대 전기차들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아차 싶었다는 표현이 제 기분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초소형 전기차를 비롯한 국내 중소기업의 아쉬운 제품력입니다. 아무리 전기차가 한번 충전으로 장거리를 달릴 수 있고 스포츠 카를 능가하는 고성능을 낼 수 있다고 해도 전기차의 출발점은 깨끗한 도시형 교통수단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부분의 제품이 부족합니다. 이전에 도시형 자동차였던 경차는 경트럭 라보를 파워플라자에서 전기차로 개조한 ‘라보 ev 피스’가 유일합니다.
도심형 전기차로 가장 적합한 장르는 1 또는 2명이 탈 수 있는 초소형 전기차입니다. 재작년에 소개되었던 르노 트위지와 같은 종류입니다. 이제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보조금 규모는 중앙 정부의 450만원과 지방 정부의 250~400만원으로 합쳐서 700~900만원 규모입니다. 일반 전기차가 받는 2천만원 전후의 보조금을 감안하면 전기차 한 대의 보조금으로 초소형 전기차 3대를 보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시가지에서 가장 부족한 교통 자원인 ‘면적’도 현대 코나 EV 한 대가 차지할 면적에 르노 트위지 거의 3 대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르노 트위지는 고정된 창문이 없고, 도어를 잠글 수 없으며, 히터 에어컨이 없는 등 사계절이 또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이미 세계적 전기차 기반 기술을 갖는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과 골프 카트 등의 전동화 운송 수단을 만든 경험이 많은 중소기업들을 보유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게는 포화된 내수 시장에서 이전에는 없던 시장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자주 보였던 국산 초소형 전기차의 품질 수준은 솔직히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트위지에 없는 창문이 있다고는 하지만 고무 실링이 보기 흉할 정도의 마무리였고 차체 패널 사이의 틈새도 손가락이 드나들 정도였습니다. 다른 제작사의 소형 픽업 모델은 지인의 표현을 빌자면 1970년대 농촌을 위해 만들었던 ‘새마을 트럭’을 연상시킬 정도의 디자인과 소재 품질을 보여주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정부가 초소형 전기차에게 자동차 전용 도로의 통행을 금지하는 제약만 주고 프랑스의 초소형 전기차의 개구리 주차 허용과 같은 혜택은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보급 확대의 걸림들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소비자들은 절대 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제가 초조함을 느꼈던 이유는 중국 전기차의 진출입니다. 앞서 살펴 본 초소형 전기차의 경우도 쎄미시스코가 중국 3대 전기차 제작사의 D2를 도입하여 판매중입니다. 국산 초소형 전기차들에 비하여 훨씬 우수한 품질을 보이는 이 제품은 가격이 높다는 단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국내 조립 생산을 고려하고 제품을 개량하여 아예 경차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전기차 제작사인 BYD가 한국 지사 설치 2년차인 올해부터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소식입니다. 이미 전기 버스를 제주도와 우도에서 상업 운영 중이며 이번 ‘EV 트렌드 코리아’에 쓰레기 압축 트럭과 지게차, 실내 청소차량 등의 특화 제품들을 전시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다양한 B2B 시장을 겨냥하여 국내 제작사들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전기차 시장의 뿌리부터 침투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BYD의 국내 진출이 국내 전기차 산업의 급속한 발전을 위한 촉진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개인용 전동화 교통수단인 전기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등이 중국 제품과 중국 기술에 점령당한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전기차 충전기의 내부 부품의 상당수가 중국산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도 제 두려움을 더욱 강하게 합니다.
중국 전기 자전거가 세계를 점령했을 때 우리나라는 최근에서야 전기 자전거의 자전거 도로 통행을 허가했습니다. 초소형 전기차도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소차의 미래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