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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여행/오지탐방 스크랩 2011년 8월 15일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8코스 : 양산 배내골 선리~상북면 내석
풀과나무 추천 0 조회 276 12.04.07 11: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원동역에서 10시 5분에 출발하는 배내골행 버스로 갈아타는 모습.

무궁화호 열차로 원동역까지 간 후 배내골행 버스로 갈아타고 선리에서 내린다.

부산역 기준 오전 7시45분, 9시25분 출발, 2500원, 30분 소요.

원동역 앞 버스정류소에서 배내골행 버스는 오전 7시, 7시35분, 8시30분, 10시5분, 11시15분 등에 출발한다.

25분 소요.  

선리마을회관의 모습. 

박순호님은 선리 양조장에서 막걸리와 마을회관 앞에서 옥수수를 구입한다.

지난번 둘레길 제17코스를 마치고 우리 팀이 구포시장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던 것에 대한 답례로 보인다.

선리마을 버스정류소의 모습.

둘레길 제18코스는 밀양댐 건설 이후 상수원보호구역이 된 배내골의 중하류 부분 약 3.5㎞는 어쩔 수 없이

아스팔트 갓길을 따라야 하지만 나머지 구간은 비포장 오솔길과 임도로 구성돼 있다.

배내골사과마을로 유명한 선리 마을회관에서 출발, 배내골 하류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배내골 건너 동쪽으로는 오룡산에서 염수봉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남서릉이 부드러운 하늘금을 그린다.

저 능선을 넘을 예정이다.

마을 입구 당산나무 앞 다리 부근에 '선리 선창가' 안내판과 돛단배 모형이 있다. 

선리는 낙동강~배내골 오간 배 정박한 곳.
둘레길 제18코스 출발점인 양산시 원동면 선리는 구한말까지만 해도 물건과 사람을 실어나르던 조각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선리 입구에 있는 선리 선창가 안내판에도 이같은 사실이 잘 소개돼 있다.

밀양강(남천강)에서 단장천을 거쳐 배내천까지 뱃길이 열려 있었는데 바로 이 선리에 배를 대던 선창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건과 사람을 실은 배는 밀양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연결됐고 김해 밀양읍 등 인근 지역과 교류하는

유일한 장거리 교역수단이자 배내골 상권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해온다.

그래서 이 마을의 옛 지명이 '선창마을'이었다고 한다.

물자 뿐 아니라 사람의 드나듦도 배를 통해 이뤄진 경우가 많다보니 당산나무 앞에 있었다는 선창은

말 그대로 만남과 이별의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배내천 모습을 보면 배가 어떻게 다녔을까 싶다.

새삼스럽게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마을 입구 당산나무 앞 다리 부근에 '선리 선창가' 안내판과 돛단배 모형이 있다.

 

선리마을에서 대리마을 가는 일행들의 모습.
우리 팀의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일요일에 걷는 것이 원칙이였다.

이번 18코스는 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요일에 걷지 못하고 광복절인 월요일에 걷고 있다.

이추득님, 김태수님과 같이 하지 못하여 아쉬운점은 있지만, 권병호님과 박순호님이 동행해주어 외롭지

않는 둘레길이다.  

대리교를 지나는 모습.  

배내골의 큰 마을인 대리와 선리 일대는 한국전쟁기에 빨치산들의 안마당이나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혼란을 겪은 곳이다.

주민들은 대낮에도 버젓이 마을을 활보하는 빨치산들의 위협을 피해 양산읍내나 석계, 밀양읍내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부터 피난 온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했다는데, 이념이 다른 동족에 의해서

다시 피난을 나가야 했던 것이다.

배내골 깊숙한 곳에 소위 '신불산 빨치산 본부'도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쁜 전원주택과 배내골 건너편의 한옥형 민박집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금천마을 표지석.

 

금천교 앞을 지난다.

 

 

69번 국도에는 연휴 마지막 날인데도 피서객 차량이 엄청나게 지나 다닌다.

 

하천 수위 관측시설의 모습.

 

배내천을 따라 대리마을로 가는 모습.

 

배내골 건너편의 예쁜 전원주택의 모습. 

 

대리마을 가는 길에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전력을 송출하기 위한 송전탑 공사가 한창이다.

기존의 345KV를 훨씬 능가하는 765KV로 그 크기가 40층 짜리 빌딩하고 맞 먹는다.

현재 배내골 대리마을까지 송전탑이 세워졌는데 향로봉과 백마산을 지나 정각산을 지나갈 때는 엄청난

마찰이 일어 날 것으로 생각된다.

밀양시 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청도면에 69기의 송전탑이 지나가게 되는데 밀양시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균높이 100m로 아파트 40층 높이와 맞 먹는다는 송전탑의 모습.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정관신도시를 지나 이곳 대리마을까지 송전탑이 서 있다. 

대리마을 가는 길의 국제신문 둘레길 리본은 전주에 부착되어 있다.

 

대리마을의 모습.

대리마을은 배내골의 대표적인 선리마을 보다는 규모가 작다.

대리생활문화관의 모습.

 

대리마을회관 앞 쉼터의 표지석.

 

대리마을회관 앞 쉼터에는 주민들이 약주를 돌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 팀도 그 옆에 앉아 선리양조장에서 구입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했다.

대리마을 앞에서 바라 본 풍호마을의 모습.

둘레길은 풍호마을을 지나 좌측 사리골로 들어선다. 

염수봉에서 뻗은 내린 산줄기가 하양대로 향하고 있다. 

풍호마을로 향하는 모습.

 

대리마을회관 앞 쉼터를 지나 10여분 가면 도로 우측에 약수터가 있다.

 

소문에는 "바위 틈 어딘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샘물이 얼음처럼 차고 달다."고 한다.

'물에서 배맛이 난다'고 해서 배내골이라고 했으니, 그 골짜기의 암반수 맛이야 오죽 좋을까.

지나던 차량 운전자들도 잠시 정차한 후 물을 한 통씩 받아 가거나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간다.  

최근 내린 많은 비로 인하여 약수터라기 보다는 계곡물처럼 변해 버렸다. 

 

약수터에서 물 한통씩 담아 풍호대로 향한다.

 

풍호대 가는 길의 좌측에는 풍호마을과 사리골이 들어온다.

둘레길은 사리골로 들어서서 시살등을 넘어 내석마을로 내려선다.

풍호대 가는 모습.

 

곧바로 만나는 왼쪽의 풍호대교를 건너 풍호마을 쪽으로 가야 하지만 100m 정도만 더

직진, 풍호대(風乎臺)를 보고 다리로 돌아온다.

풍호대의 노송의 모습.(69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노송들이 많이 줄었다.) 

배내천 물줄기가 푸른 소를 이루고 바위 위에 수백년 노송이 군락을 이룬 이곳은 조선시대때부터 경치가

좋아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다고 하는데 조선 후기 천은(川隱) 박기섭(朴基燮)이 대를 쌓고 놀았다고 한다. 당시에 비해 노송들이 많이 줄었다지만 풍치만큼은 썩 괜찮은 곳이다. 

69번 국도에서 내려다 본 풍호대의 기물.

풍호대에서는 반드시 봐야 할 '기물(奇物)'이 하나 있다.

언덕 아래 배내천 바닥으로 내려가면 마치 충북 단양의 석문(石門)이나 해남 두륜산의 코끼리바위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모양의 바위구멍(또는 바위굴)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너비 2m, 높이 2m 가량의 크기인 이 바위구멍은 원래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였지만 장구한 세월동안

배내천의 물줄기에 깎여 이같은 모양을 갖게 된 듯하다.

이 바위구멍에는 재미나면서도 애틋한 전설이 전해온다.

구멍을 막으면 마을에 벙어리 귀머거리 사내 아이가 태어나고, 구멍을 뚫린 채 두면 동네 아낙들이

바람이 난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고심 끝에 뚫어진 채로 두게 됐다는 내용이다.

신기한 자연 현상에 재미 있는 전설이 얽혔다.

69번 국도변의 풍호대의 비석.

 

69번 국도변의 풍호대의 비석.

 

풍호대 기물로 내려서는 길의 모습.

 

풍호대 기물로 내려서는 모습.

 

풍호대 기물의 모습.

 

풍호대 기물 위에서 바라 본 배내천의 모습.

 

풍호대의 노송의 모습.

 

풍호대 기물 위에서 바라 본 풍호대교의 모습.

둘레길은 풍호대교를 지나 풍호마을로 들러선다.

풍호대 기물 앞에서 나의 모습.

 

풍호대 기물 위에서.(박순호님, 대림텍스 여직원, 권병호님)

 

풍호대 관람을 마치고 풍호마을로 향하는 모습.

 

풍호대교를 건너면 풍호마을이다.

풍호대교 다리를 건너면 '대밖동'이라고도 불리는 풍호마을. 현재는 수십채의 펜션이 들어서 있다.

양산시 원동면 대리 풍호마을의 표지석. 

 

풍호대교를 지나 풍호마을로 향하는 모습.

 

풍호대교에서 바라 본 풍호대의 모습.

 

풍호대교에서 바라 본 배내천과 풍호대의 모습.

 

풍호대교 다리를 건너면 '대밖동'이라고도 불리는 풍호마을이다.

현재는 수십채의 펜션이 들어서 있다.

동네 안길로 들어서면 '풍호대산장' 표지석이 보인다.

그 앞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은 후 다시 '배꽃내' 표지석 앞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가면 마을을 통과, 사락골 계곡으로 들어서게 된다.

풍호마을의 옛 모습은 없고 펜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다시 '배꽃내' 표지석 앞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가면 마을을 통과, 사락골 계곡으로 들어서게

된다.(뒤쪽의 표지석이 '배꽃내'이다.)

물소리 2동과 물소리 1동을 지나면 시락골 계곡이다. 

 

시락골 계곡의 초입은 임도이다.

 

임도를 좀 더 오르면 천도교 원동수도원 정문을 지난다.

문이 열려 있는데, '지나간 후 반드시 문을 닫아 달라'는 안내문이 있다.

임도 우측에는 '수도원건립기념비'도 보인다.

 

천도교 원동수도원을 지나는 모습.

 

천도교 원동수도원 정문에서 3분쯤 더 가면 갈림길.

상수원보호구역 팻말을 보면서 철망 옆으로 직진한다.

둘레길은 상수원보호구역 철망 옆으로 오른다.

 

상수원보호구역 팻말을 보면서 철망 옆으로 직진하면 보호구역 출입문을

만나는데 오른쪽의 오솔길을 따른다.

본격적으로 옛길이 시작된다.

옛날 선리 대리 주민들이 양산장이나 석계장을 오갈 때 주 소통로로 활용했던 길이다.

최근 왕래는 많지 않았지만 오래된 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옛길 아래로 홍수방재 시설물이 보인다. 

둘레길 제6코스의 삼계리 수리덤계곡에서 보았던 홍수방재 시설물과 유사하다.

수리덤계곡 입구의 많은 펜션시설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설을 했는데, 시락골 계곡의 홍수방재 시설물은 

풍호마을의 펜션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설을 했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펜션들이 위험한 계곡에 위치하다 보니 홍수방재 시설물은 따라 다닌다.

상수원 보호구역 팻말에서 10여분 가면 물 맑은 골짜기를 건넌다.  

 

물 맑은 골짜기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다.

 

우리 일행은 둘레길을 이어가기 전에 아름다운 계곡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더위를 식힌다.

   

우리 일행은 둘레길을 이어가기 전에 아름다운 계곡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더위를 식힌다.

 

계곡에서 20분간의 휴식을 취한 후 산길로 들어선다.

물 맑은 골짜기에서 산길로 들어서면 마치 S자를 여러 개 이어붙인 길이다. 

S자를 여러 개 이어붙인 길이 끝나면서 우측 계곡으로 붙는다.

 

키 20m가 넘는 상수리나무가 빼곡하다.

나뭇잎 사이로 하늘 보기가 쉽지 않다.

중간 중간 아름드리 노송들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30분쯤 오르면 계곡의 최 상단부.

우리 팀은 첫 계곡에 12시 50분 쯤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오르막에 대한 부담으로 최 상단부

계곡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후 1시 34분에 계곡 최 상단부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둘레길을 다시 들어서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간이 임도를 만난다.

주변은 온통 연둣빛 세상.  

일단 우측으로 틀면 10분 후 2010년 개통한 대리 소형임도를 만난다.

 

간이 임도의 모습. 

 

간이 임도는 벌목지대라서 모종 받침대에 국제신문 리본이 걸려 있다. 

벌목 용도로 사용했던  간이 임도에도 모종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간이 임도는 없어진다고

보면 된다.

벌목지대에 심어진 모종이다.

 

2010년 개통한 대리 소형임도를 만난다.

 

자갈이 곱게 깔린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꺾는다.

해발 600m가 넘는 고도지만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은 평지나 다름 없어 걷기에도 아주 좋다.

임도 좌측으로 765KV 송전탑이 보이는데 그 크기가 40층 짜리 빌딩하고 맞 먹는 100m의 높이다.

배내골 대리마을에서 보았던 송전탑이다.

둘레길을 마치고 양산가는 길에 보면 천성산 1봉에 흉물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송전탑을 볼 수 있다.

15분 후 임도 삼거리에 닿는데, 이곳이 바로 원동면 대리 선리 주민들과 상북면 석계 내석

사람들이 입을 모아 '시살등'으로 부르는 고개다.

통도사 뒷산인 영축산에서 남쪽 오룡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 솟은 봉우리를 지칭하는 시살등이라는 이름을 이 곳에서도 만나다니.

또 코스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오룡산 아래 도라지고개 우측을 한피기고개라 부르는 것도 새롭다.

기존의 한피기고개는 영축산 시살등 옆에 있다.

시살등이 대리마을과 내석마을을 이어주는 고개 이름이라면, 임진왜란때 의병들이 "단조성"(영축산 북쪽의

산성)에 거점을 두고 왜군과 싸우다가 성을 빼았기고 마지막으로 소등처럼 생긴 곳(영축산에서 오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의 봉우리)에서 왜군과 마지막 항전을 하면서 화살을 많이 쏘았다는데서 유래했다는 

시살등은 와전되었다는 말인가?
혼동스러운 시살등, 한피기고개이다.

지난 6월 낙동문화원장님과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백두산에서 끝난다." 나의 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산악인들이 부르고 있는 지명에 많은 오류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각 지역의 향토학자들이 나서 산꾼들이 잘 못 알고 있는 지명으로 정정하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미미하다고 했다.

국제신문 개척단은 편의상 이 두 곳을 '석계 시살등', '석계 한피기고개'라 칭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잘 못 된 지명은 즉각 수정을 해야 한다.

영남알프스라는 한정된 지역에 시살등과 한피기고개가 각각 2곳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

또한 둘레길에서 건진 작은 소득이라는 글도 잘 못 된 내용이다. 
시살등과 한피기고개가 고개 이름이라면 석계쪽이 정확한 위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기존의 시살등과 한피기고개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배내골 방면으로 옛길이 없었다.

시살등에서 장선으로 내려서는 산길과 한피기고개에서 태봉으로 내려서는 산길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산꾼들이 만든 길이다.

그렇다면 '석계 시살등', '석계 한피기고개'가 아니라 대리마을과 내석마을을 이어주던 고개 이름이 시살등,

한피기고개로 당연히 불러야 한다.

같은 능선상에 시살등과 한피기고개가 각각 2곳이라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부르기 때문에 정정하는 것이

무조건 맞다고 본다. 

시살등은 2010년 대리 소형임도(좌측)가 개통되면서 임도 삼거리 모습이다. 

우측의 임도는 오룡산 방면이다.

대리 소형임도와 오룡산 방면의 임도 사이에 남부지방 산림청에 설치한 표지석이 위치하고 있다.

 

시살등에서 바라 본 염수봉 방면의 모습.

둘레길 제18코스에 염수봉이 포함되지 않는 것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영축산 남쪽 능선에 위치한 염수봉은 영남알프스의 마지막 봉우리에 해당한다.

제18코스의 시살등은 영남알프스 안에 있기 때문에, 둘레길을 걷는다기 보다는 산행을 하는 느낌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8코스는 배내골 사거리(고점)에서 에덴밸리 방면의 1051번 지방도를 오르다가

내석고개(550m)로 들어서는 것이 맞다. 

둘레길이 염수봉의 외곽으로 지나서면 좋아설텐데 국제신문 답사팀은 영남알프스 안쪽으로 지나갔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아스발트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부담스러워 계곡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둘레길은 시살등 임도 삼거리에서 동쪽(내석) 방향의 오솔길로 내려선다.

이제부터는 줄곧 내리막을 타게 되는데, 하산길 들머리를 찾으려면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진행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직진하면 염수봉으로 가게 되고, 왼쪽으로 270도 꺾어 임도를 타면 오룡산 아래 도라지고개로 가게 된다.

그런데 왼쪽으로 90도 정도만 틀어서 보면 작은 돌탑 앞 숲길이 보인다.

바로 이 길로 들어서야 내석마을로 내려설 수 있다.

이 길 또한 한 없이 걷기 좋은 옛길이다.

임도 삼거리에서 오솔길로 들어서면 흙 무덤이 위치하고 있다.

대리마을과 내석마을을 넘던 옛 사람의 무덤일까?

내림길은 연속되는 S자 코스가 내석마을 상단부까지 계속된다.

 

내림길은 연속되는 S자 코스가 내석마을 상단부까지 계속된다.

 

30여분 내려서면 옛길의 운치가 잦아들고 다시 속세의 냄새가 난다.

붉은 철문에 내려서기 직전의 좌측에 전원주택이 보이는데 너무도 깊은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밤에는

적막강산으로 외로움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내석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도 보인다.

 

붉은 철문의 방치 된 농장을 지나는 모습.

 

붉은 철문 좌측이 행기소이다.

 

2개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행기소이다.

붉은 철문이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며 왼쪽 계곡을 흘낏 보면 깊은 물과 널따란 암반이 눈에 띈다.

'행기소'라고 불리는 곳이다.

옛날 어느 시절에 산 너머 배내골에서 시집 오던 한 새각시가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이 있다.

무슨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 사연을 알 수 없는 이 시대 둘레꾼에게 행기소는 잠시 발이라도 담궜다 갈 수 있는 반가운 곳일 뿐이다.

우리 팀도 행기소에서 둘레길 제18코스를 걸으면서 흘렸던 땀을 씻어낸다.

행기소에서 30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임도를 들어서는데 피서객의 차량이 줄을 지어 있다.

  

임도로 들어서기 전의 작은 다리에서 바라 본 행기소의 모습.

 

임도를 따라 15분가량 내려서야 종착점인 내석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에 닿는데,

길 옆 계곡의 아름다운 암반과 소를 보며 걸을 수 있다.

내석가는 길의 모습.

 

내석가는 길의 모습.

 

내석가는 길에 뒤 돌아 본 모습.

우리 팀은 시살등에서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왔다.

구불사 전용주차장의 모습.


 

최근에 내린 비로 구불사 전용주차장 앞에도 많은 피서객들이 보인다.

 

구불사 길 옆 계곡의 아름다운 암반의 모습.

 

구불사의 모습.

 

계곡피서는 다리 밑이 최고다.

 

내석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아스발트 도로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 본 계곡의 모습.

 

동화속에 나올듯한 아름다운 전원주택의 모습.

 

내석마을로 들어서는 모습.

 

내석마을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모습.

 

내석마을 버스정류소에 도착하자 107번 양산시내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예전에 염수봉을 찾으면서 자주 들렀던 내석마을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내석 노인정의 모습.

 

내석정자의 모습.

 

내석마을에서는 오후 3시, 4시20분, 5시10분, 7시10분(막차) 출발하는 양산터미널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양산지하철역에서 하차, 지하철2호선 양산선을 이용해 부산 시내로 진입하면 수월하다.

 

 

국제신문 근교산&그너머 <737> 제18코스 : 양산 배내골 선리~상북면 내석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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