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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지요.
내리는 비로 인하여, 하루 동안 편한 휴식을 취한 까닭일까요?
햇볕이 참 따스한 봄날의 오후입니다.
그대의 순결한 볼 만큼 따스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는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대, 어제는 정말 저에겐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그 기쁨과 행복은 참으로 우연하게 찾아왔지요.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이전에 8시에 노래를 하던 화정의 산1번지라는 곳이었지만 금요일부터
밤 12시로 타임이 변경된 까닭에 조금은 지친 몸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노래 몇 곡이 끝나고 마지막 두 곡을 남겨둔 시간쯤이었지요.
오십쯤 되어 보이는 남자와 젊은 아가씨가 들어왔습니다.
(후에야 알았지요. 아가씨가 연주자였다는 것을)
홍삼트리오의 ‘기도’와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를 마지막으로 불렀습니다.
술 한 잔 하자는 형수의 말에 ‘나 술 끊었어요’라는 반 농담을 건네며 집으로 오려는데
누군가 잠깐 보자는 메모가 전달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노래 막바지에 들어온 이들이었습니다.
그대, 솔직히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발길이 먼저 그쪽으로 향하더군요. 오랜 버릇처럼.
가벼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그 남자분이 자신을 소개 합니다.
‘나 명재 친구에요. 김종수라고.’
그때, 아! 하며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들......
‘아, 그러시군요. 명재형에게 말씀 많이 들었는데요. ^^; ’
그랬습니다.
김종수씨라고(이후 종수형님, 또는 형)일산 정발산 공원 근처에서
돌체라는 클래식 음악 감상실을 한다는 분이셨지요.
맥주 몇 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종수 형이 말하더군요.
‘우리 돌체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공연이 있어요. 일요일하고. 내일 시간이 되면
한번 와 주면 좋겠는데...’
그대, 그것이 연이 되었나봅니다.
하지만 막상 일요일 오후가 되자, 과음으로 속이 부대끼는 마음에는 갈등이 있었지요.
그래도 약속을 한 터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별로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돌체’라는 음악 감상실을 찾아갔습니다.
음악 감상실 ‘돌체’
1950년대 이후 ‘르네상스’와 함께 국내 음악 감상실의 전성기를 꽃피웠던 명동의 ‘돌체’에
대한 추억을, 추억이 아닌 90년대의 음악 감상실로 거듭나게 하려는 의도로 지었다는
음악 감상실.
30여 평의 그리 크지 않은 감상실이었지만 들어선 순간 들려오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
무대 벽면에 그 웅장함을 자랑하며 자리 잡은 63년형 알텍 604A스피커 시스템.
40여명의 남녀노소를 떠난 진지한 청중과 청중들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혼신을 다하는
피아니스트의 열정......
바로 눈앞에서 들려지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피아노를 위한
헝가리 랩소디는 귀로만이 아닌, 온 몸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나 예술의 전당 연주 홀에서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살아있는
느낌으로 다가온 음악이었습니다.
처음, 망설였던 마음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나는 후배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민아, 정말 환상이다.”
그대, 연주회가 끝난 후 들은 이야기로는 이 돌체가 국내 유일의 살롱음악회라 하더군요.
개인적으로도 이런 살롱 음악회는 처음이었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 연주를 하려고 하는 연주자들의 신청이 요즘은 너무 많아서
3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대, 참 놀랍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1시간 30분에 가까운 연주가 끝나고 난 후, 연주자와 청중이 일일이 악수하는 모습.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덕분에 악수를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신상진씨.
토요일 공연을 했던 Quartet 21의 김현미, 장혜라, 위찬주, 박경옥씨.
지난달에 공연을 했다는 테너 안광영씨.
그리고 피아노 연주회에 이은 음악 강좌를 해 주신 70세의 노 화백, 신동헌 화백님.
흔히 하는 말로 정말이지 손을 씻고 싶지 않더군요.
그대, 지금까지 만의 일만으로도 어젠 충분히 제게 아름답고 기쁘고 행복한 밤이었지요.
그러나 더 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답니다.
맥주를 몇 잔 마셨을까요? 갑자기 종수 형이 얼어나더니 저를 부르곤 소개를 해 줍니다.
‘어제, 친구 가게에 술 마시러 갔다가 처음 봤는데 음악이 좋아 제가 초대를 했습니다.
클래식만 한다고 대중음악을 무시해선 안되죠. 서춘석씨......’
그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저에겐 끼가 많이 흐르는가 봅니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내심 저 무대에서 노래 한번 해 봤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막상, 후배의 기타를 들고 연주자들과 성악가들 앞에 서니 좀 쑥스럽더군요.
그런 제게 힘을 준분이 다름 아닌 신상헌 노화백님이셨지요.
한 곡, 한 곡이 흐를 때마다 터지는 박수와 함성을 들으면서 아,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몇 곡이 끝나자 테너 안광영씨가 한마디 합니다.
‘김 사장, 오늘 개런티 준비 확실하게 했지요?’
터지는 웃음소리들...또 누군가 말합니다.
‘오늘 개런티는 그림이에요. 화백님이 스케치 하고 있어요’
참 고마웠습니다.
사실, 너무도 부족한 음악임에도 함께 즐겨주고 힘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전 그 사람들이 참 좋아졌습니다.
저도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해야 했습니다.
‘사실, 제가 드려야지요. 이렇게 좋은 음악도 듣고 좋은 분들과 술도 마시고요.
참 좋네요. 저희 언더들이야 술 마시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 노래했지, 이렇게
공연 무대에서 노래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너무 그렇게 쳐다보며 듣지 마세요,
적응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서로 격이 없이 웃고, 몇 곡의 신청곡을 들려 준 후 내려왔습니다.
벅찬 기쁨으로.
그대, 이만하면 정말 어젠 제게 큰 기쁨의 날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그대, 이러한 기쁨 속에 어제의 일을 돌아보면서 약속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돌체라는 음악 감상실을 알게 된 것도 우연히 되었지만, 약속을 어기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어제의 그 감동과 기쁨, 행복을 느낄 수 없었겠지요?
새삼, 약속이란 단어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득 차 오름을 느껴봅니다.
에머슨이 말하지요.
-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라고.
니체는 더 충고합니다.
-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만한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 라고.
참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약속이란 것이 소중한 것이겠지요.
더 나아가 스스로 묻고 부끄럽게 하는 말을 베케트라는 이가 했습니다.
- 우리는 성인이 아니지만 약속을 지켰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랑할 수
있는가? -
2
그대, 일제 때의 일입니다.
서울 종로 YMCA 강당에는 어떤 행사나 강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형사들이 곧잘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강연회마다 독립을 외치고 일제의 강점을 비난하는 인사들이 많았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어느 강연회 때 일입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사회를 보고 계셨습니다.
선생이 강당을 둘러보니 아니다 다를까 일본 경찰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선생은 먼 산을 바라보는 체하며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허! 개나리꽃이 만발했군."
장내에서는 금방 폭소가 터져 나왔지요.
청중 속에 일본 형사들이 앉아 있는 것을 괘씸하게 생각한 이상재 선생은, 그들을 보고
'개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일본 형사를 '개'라고 하였고, 순경을 '나리'라고 했기 때문에 붙여 개나리라고
빗대며 욕을 한 것이지요.
그대, 이제 4월이면 서울이나 이곳 일산에도 개나리가 한창일 것입니다.
남부 지방에서는 3월 중순 이후에도 핀다고 하니, 벌써 핀 곳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라는 동요가 생각납니다.
사실, 개나리라는 꽃 이름은 '개'와 '나리'가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라고 합니다.
옛 문헌에도 '개나리'로 표기된 것이 보이나 더러는 '개날이' 또는 '개너리'로
표기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개나릿 불휘를'(백합근.白合根)<구급간역방>
'번산단(番山丹) 개날이'<유씨물명고>
'개너릿곳'<역어유해>(하권)
그대, 개나리라는 꽃 이름은 백합을 닮은 꽃이란 것에 유래했다고들 합니다.
'개나리'에서 '나리'는 나리과(백합과)의 참나리 계통에 딸린 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개나리'는 엄밀히 구분하면 참나리 계통 즉, 백합과가 아닌, 목서(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입니다.
백합과에 드는 식물로는 참나리를 비롯해서 옥잠화, 히아신스, 튤립, 아스파라거스,
중나리, 하늘나리, 원추리, 달래, 처녀치마, 물구(산자고), 밀나물 등이 있는데
이들 꽃 모양은 대개 개나리꽃의 모양과 비슷하지요.
그런 까닭에 '개나리'란 이름이 나리(백합)꽃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그대, 그런데 왜 나리 앞에 개를 붙였을까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나리는 나리인데 나리답지 못한 나리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입니다.
우리내 일상에서도 좋지 않은 뜻으로 ‘개’라는 음절이 들어가는 예가 많이 있지요.
대중없이 여러 가지로 꾸는 꿈을 조롱하는 말에 '개꿈'이라 하고
남이 골내는 것을 욕하는 말로는 '개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기름'은 얼굴에 나타나는 번질번질한 기름을 나타내는 말이고
'개꼴'은 체면이 아주 말할 수 없이 엉망인 꼬락서니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우리말들을 종합해보면 개나리는 나리(백합)는 나리인데 진짜 나리는 아니라는
의미로 불려진 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요?
개나리꽃에 관한 이야기도 그리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대, 옛날 인도에 새를 좋아하는 공주가 있었습니다.
공주는 예쁜 새란 새는 모두 사들여서 궁전 안은 마치 새의 천국 같았습니다.
공주는 새들과 함께 어울려 시간 보내는 것을 낙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공주에게 제법 권력의 힘이란 것이 주어졌나 봅니다.
공주가 새를 좋아하니까 신하들은 공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예쁜 새를 구하느라 백성을
돌보는 일보다는 새를 구하는 일에 더 신경을 썼으니까요.
당연히 나라 살림은 말이 아니었겠지요.
백성들은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푸념하기를
“차라리 새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에는 아랑곳없는 공주에게는 유독 아름다운 새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공주가 갖고 있는 어떤 새도 이 새장에 어울릴 만큼 아름답지 않았지요.
공주는 이 새장에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새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새를 갖게 된다면 공주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새를 다 날려 줄
생각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공주의 이런 마음은 소문이 되어 온 나라 안에 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늙은이가 손에 예쁜 새를 들고 공주를 찾아왔습니다.
늙은이는 그 새를 공주 앞에 내밀었습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공주님, 이 새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새입니다. 이 새가 마음에 드십니까?"
온 깃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새였습니다.
공주는 새를 보곤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래, 바로 이 새야. 내가 여태까지 찾던 새가 바로 이런 새였다고"
공주는 늙은이로부터 새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를 새장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곤 다른 모든 새들을 날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새의 색깔이 점점 변하고 울음소리도 이상해졌습니다.
공주는 때가 끼어서 그런가보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목욕을 시켜주었습니다.
목욕을 시켜주자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황금색으로 빛나던 모든 깃털이 온통 검은 색으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 새는 애초부터 검은 까마귀였던 것이었지요.
공주의 욕심에 백성들이 힘들어지자, 늙은 백성이 꾀를 내어 까마귀에 노란 물감 칠을
한 것이었습니다.
공주는 너무나 분하고 속이 상하여 화병으로 드러누웠습니다.
결국 공주는 병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지요.
황금 빛깔의 새에 대한 분함과 그리움의 씨앗이 된 것일까요?
죽은 공주의 넋은 가지를 뻗어 금빛 장식이 달린 새장과 닮은 꽃으로 피어났다고 합니다.
이 꽃이 바로 개나리였다고 합니다.
그대, 꽃말은 이러한 이야기와는 달리 참 좋답니다.
희망, 조춘(早春 이른 봄, 남녀간의 정)의 감격이라고 하지요.
또한 개나리꽃은 술로도 빚어 마시기도 합니다.
술은 여성의 미용에 효과적인 강장 보건주로 꼽히는데, 꽃에 색소 배당체인 글루코사이드, 루틴,
아스코르빈산 등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꽃향기를 즐기려는 이들이 주로 차나 술로 만들어 마신다고 합니다.
개나리꽃을 쓸 때는 꽃이 활짝 피기 전에 따서 잘 씻은 후 서늘한 그늘에 말렸다가
담그면 된다고 합니다.
또한 개나리는 꽃뿐만 아니라 열매로도 술을 담가 마실 수가 있다고 합니다.
개나리 열매를 이용할 때는 10월쯤 잘 익은 열매를 따서 여기에 술을 부은 다음
100일 정도 익혔다가 마시면 된다고 합니다.
열매 술은 꽃술보다 향기도 적고 쓴맛이 강해 마시기엔 별로 좋지 않지만 약효로만 본다면
열매술 쪽이 훨씬 낫다고 하지요.
그러나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열매 속의 씨는 중추신경계를 자극해서 불면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되도록이면
씨를 빼내고 열매 껍질만으로 술을 담그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대, 이제는 정말 봄이 왔습니다.
산에, 들에, 강가에 온통 꽃들의 화려함으로 수놓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사뿐히 즈려밟고 오실 님.
그대는......
이 봄에도 오지 않으시는지요?
진정, 이 봄에도 나는 한 송이 꽃을 보며 그대를 그리워해야 하는지요.
꽃이 아닌 그대를 보듬고
꽃이 아닌 그대에게 입 맞추고
꽃이 아닌 그대를 진정 그대를 품에 안고 싶은 봄,
그 봄은 아직도 멀리 있는 것인지요?
그대를 위한 개나리꽃술을 담궈 두어야겠습니다.
첫댓글 오늘의 한마디....개나리의 유래군요.....공주가 너무 욕심을 과하게 부렸네요...열가지를 가진 사람이 하나를 얻기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다니......^^
그래도 갈맥은 인간 관계가 넘 조은것 같은데...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져서.....하나의 연을 이어서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은 심정인것 같다......^^돌체라는곳 기회가 된다면 연인도 한번 가보고 싶네
개나리... 개+나리~~~~
개+나리같은 양반들이 요즘도 참 많지요. 한번 언젠가 써 먹어봐야지요..개나리들이 만개했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