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보령 59코스 제2부
소황리 마을회관-독산 해변-무창포해수욕장-용두 해변
20230726
1.무창포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소황리 마을회관에서 서해랑길을 이어간다. 오늘 보령 날씨의 일기 예보는 비가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갑작스레 기상이 변하여 땡볕 폭염이 쏟아진다. 아직 오전 10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여름 땡볕이 퍼부어 몸이 흐느적거린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탐방을 마쳐야 한다. 소황2길을 따라 소황리 지역의 한우농장과 푸른 들녘을 지나간다. 논의 푸른 벼들이 여름의 햇볕을 받아 싱싱하게 자란다. 벼들은 서로 몸들을 바짝 붙이고 햇볕과 바람을 받아 결실을 위해 온 힘을 쏟는다. 소황리 들녘에서 언덕을 올라 내려보면 독산리 들녘이 활짝 펼쳐진다. 독산리 이 들녘을 즉새들이라 이르는 모양이다. 즉새들 건너편에는 독산1리 홀뫼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서해랑길은 즉새들을 가로질러 홀뫼마을 왼쪽 언덕을 넘어 내려가 독산 해변으로 내려가 독대섬과 독산해수욕장을 거쳐 열린바다로를 따라 나온다. 그러니까 홀뫼마을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나와 무창포로 향하게 된다. 홀뫼3길을 따라가다가 갈증에 시달렸다. 때마침 홀뫼3길 28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이 홀뫼마을임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께 시원한 물을 부탁하여 갈증을 풀었다. 이 자리를 빌어홀뫼3길 28호 할머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독대섬 앞 해안으로 내려왔다. 부사방조제 북단에서 장안해수욕장과 소황사구 해안을 따라 독산리 독대섬 앞으로 곧바로 올 수 있지만, 공군 사격 훈련 때문에 소황사구 해안 탐방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서해랑길은 소황리 통달산을 동쪽으로 돌아 주교천을 따라 드넓은 황교리 들녘길을 걸어 소황리 마을, 독산리 홀뫼마을을 거쳐 통달산 북쪽 독산리 해안 독대섬 앞 해안에 이르게 된다. 독대섬 앞 해안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이미 걸어온 지역이라 모든 것이 분명히 기억된다. 그곳을 걸으며 지금 있는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하며 미지의 이곳을 동경하였다. 아침 날빛이 펼쳐지는 바다와 독대섬 해안 풍경이 가슴을 들끓게 하였다. 이제 가슴을 들끓게 한 이곳으로 왔다. 동경의 이곳에서 아침에 걸어온 홍원항, 춘장대해수욕장, 부사방조제의 풍경을 그리움으로 바라본다. 서해 바다와 부사호 - 바다와 들녘의 호수, 두 풍경을 멋지게 아우르는 부사방조제 제방길에서 풍경 조망에 넋을 잃으며 임영조 시인의 '출항'을 읊었다. 아침을 먹던 관리통제소 옆, 옥마산과 통달산, 주렴산을 조망하며, 주렴산 주렴터널을 통과하던 서천화력선을 상상하였다. 서천화력선 철로를 체험하지 못하였지만 마치 체험하기나 한 듯 아련한 상상의 추억에 젖었다. 몇 시간 전 저곳을 걸으며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 모두가 풍경 속에 풍경을 그린다. 대독섬 앞 해안에서 길손은, 걸어온 풍경의 아름다움과 그 풍경 속 한 풍경을 이루었던 길손의 모습에 환장하고 있었다.
독산 해수욕장 앞 도로명은 '열린바다로', 이 길을 따라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간다. 이 길은 독산1리 홀뫼마을을 북쪽으로 돌아나가기에 방금 걸어온 홀뫼마을과 독산 해안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을 바라보며 독산1리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의 지열이 솟아올라 앞을 흐리게 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우산으로 받아내지만 그 뜨거움은 우산 천을 녹일 듯 뚫고 얼굴을 뜨겁게 한다. 열린바다로는 죽청로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 무창포해수욕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 꺾어지는 지점에 이마트24가 있어 그곳에서 시원한 캔 맥주를 마시고 싶지만 일행이 멀찍이 앞서 갔기에 그들을 따라 내뺄 수밖에 없다.
이마트24 위쪽 검은 기와지붕 건물은 경주 김씨 사당일 것이라 추정하며 완만한 오르막의 열린바닷길을 오른다. 왼쪽에 다윈하우스펜션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라바 카페&펜션 입구,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낙조공원이 있다. 땡볕 더위에 몸이 늘어지며 탐방의 호기심이 말라 버렸는지 낙조공원으로 가서 풍경을 조망할 생각도 없이 열린바다로를 흐느적거리며 내려간다. 열린바다로는 수산물가공업체 '갯푸름' 입구를 지나서 독산로와 만나 왼쪽으로 돌아 완만한 고개를 넘는다. 몸이 더 늘어진다. 제7해안감시기동대대 2중대 무창포 소초 입구를 지나 무창포 제6공영주차장 앞쪽 쉼터정자에서 반가운 일행과 만났다. 몸은 기진맥진이다. 쉼터정자 옆 바닷길마트에서 얼음물을 구입하여 단번에 들이키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새벽 3시부터 지금까지 30km 넘게 걸었다. 아직도 10km가 넘게 남았다. 과연 목적지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다시 출발한다.
무창포 해변으로 나갔다. 무창포 해수욕장은 아름다웠다. 춘장대해수욕장의 자연 풍경에 푹 빠졌었는데, 무창포에 이르니 해변이 더 넓고 길며 해안의 거리 풍경이 더 도시적이며 화려하다. 그 화려한 도시적 풍경에 길들어서인지 흐느적거리던 도시인의 몸이 반짝거린다. ‘무창포(武昌浦)’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에 세미를 저장하는 창고가 있는 갯가의 포구라는 데에서 유래하였으며, 무창(武昌)의 서쪽에 있는 포구라는 뜻으로 무창포(武昌浦)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설명에 합당한 무창포 한자는 '武倉浦'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닭벼슬섬과 석대도가 남쪽에, 무창포항이 북쪽에, 그 사이에 무창포 해변은 길게 이어져 있다. 무창포는 석대도 앞 바다 갈라짐 현상이 있어 신비의 바닷길이라고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신비의 바닷길이라 하여 바다 갈라짐 현상이 있는 곳은 무창포를 포함하여 약 20여 곳, 이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은 뽕할머니 전설이 있는 진도 회동마을과 모도이다. 무창포에서는 석대도의 아기장수 전설과 석대도 앞 바다가 갈라지는 신비의 바닷길을 연결하여 무창포를 홍보하고 있다.
무창포 해변 솔숲 길에 홍완기 시인의 시비 '무창포 사랑'은 무창포 사랑의 구체성이 분명하지 않아 감동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 솔숲 길에 하정문학 문인 시화전 '문학, 해조음을 연주하다!'에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살필 겨를도 없이 스쳐간다. 그런데 궁금하다. 하정문학의 '하정'이 무슨 뜻일까? 하정 김혜식 수필가가 중심이 되는 문학회라고 하는데 하정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솔숲 길을 나와 무창포종합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식당가들이 즐비하다. 그 식당가를 지나 무창포 수산물시장 앞으로 간다. 무창포 해변의 아름다움은 남쪽 끝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북쪽 끝 무창포 수산물시장 앞쪽에서 바라볼 때 더욱 빛난다. 무창포타워, 닭벼슬섬과 석대도, 활처럼 굽어져 길게 이어진 백사장, 그와 어우러진 생활 현장의 상가들, 이 풍경은 편안하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해변 모래밭에 부서지며 반짝인다. 그 뜨거움이 바닷물이 씻긴다. 세상 일 모두 그러하듯 아름다움도 언제나 발견이다.
무창포의 아름다움은 해수욕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무창포 구름다리에 올라서 낙조와 야경을 감상해야 한다. 그러나 여름 한낮에 낙조와 야경을 즐길 수는 없고 나른한 듯 기지개를 펴고 있는 바다와 항구의 모습을 살필 뿐이다. 두 개의 방파제가 서쪽과 북쪽에 놓여 있고 방파제 홍등대와 백등대가 마주하며 그 뒤에는 노란 등간이 낮게 엎드려 깜빡인다. 항구 뒤쪽 물양장에는 출항을 준비하는 소형 어선들이 평안하게 정박해 있다. 바다 쪽 풍경이 정중동인데, 물양장 풍경은 오직 정밀함만이 흐르고 있다. 탐방객은 이 모든 풍경이 좋다. 어떤 이유를 대는 것이 이상한 것 같다. 이 풍경 속에 탐방객이 풍경을 이루는 풍경을 떠올린다. 그냥 좋다. 여름 한낮 낙조 풍경을 상상해 본다. 무창포 낙조5경이 있다. 거쳐온 닭벼슬섬으로부터 무창포항 구름다리까지 낙조를 즐기는 5곳을 지정하여 낙조5경이라 이름붙여 놓았다. 낙조1경-무창포타워, 낙조2경-신비의 바닷길 입구, 낙조3경-다리 위, 낙조4경-흰 등대, 낙조5경-닭벼슬섬, 길손은 낙조3경 구름다리 위에 서 있다. 낙조가 아닌 여름 한낮의 나른함과 고적감이 흐르고 파란 바다에는 활력이 솟아오른다. 어느 날 이 구름다리에서 서해 낙조 풍경을 즐길 수 있을까? 그때 이 다섯 곳 낙조 풍경을 몇 차례 나누어 감상해야 할 것이다.
구름다리를 내려가 무창포항을 빠져나간다. 조금 전 비체팰리스 리조트 입구에서 무창포 해변으로 들어가며 열린바다로와 헤어졌다가, 무창포 해변과 무창포항을 거쳐 나와 지금 열린바다로와 재회한다. 햇볕은 뜨거움을 더욱 퍼붓는다. 무창포 해변에서 겨우 되찾은 기운이 소진된 듯 몸이 자꾸 무너져 내린다. 그렇지만 가야 한다. 열린바다로를 따라 언덕길을 오른다. 언덕길 바다 쪽으로 펜션 노을언덕 표지판이 있다. 펜션 이름이 이고개에 어울린다. 이 고개를 노을언덕이라고 지으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고개에 보령을 홍보하는 문구가 새겨진 기둥 조형물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몸은 더 늘어지고 보령 홍보의 기둥 문자들이 가물거린다. 가물거리는 문구는 가슴을 울리지 못하고 탐방객은 쓰러져가고 있는 꼴이다. 그 고개를 내려가 왼쪽으로 바다가 열리고 북쪽으로 대천해수욕장 지역의 건물들이 보인다. 바다와 목적지 대천해수욕장 건물들을 보고서 조금 기운을 얻어 다시 한 고개를 오르는데 다리가 꼬여온다. 갈 수 있을까? 겨우 고개를 올라섰다. 이 고개를 할미재라 이르는 것 같다. 할미재에는 카페와 펜션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용두 해변과 죽도를 바라보고 대천해수욕장 흰 건물들을 확인해도 힘은 솟지 않는다. 결국 고꾸라졌다. 열린바다로 쉼터공원 쉼터정자에서 그대로 드러누웠다. 아예 등산화를 벗고 올라가 큰대자로 뻗었다.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정신이 들어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포기할까? 택시를 부를까? 잠시 망설였지만, 탐방을 이어야 한다는 욕망의 소리가 더 강했다. 다시 등산화 끈을 묶고 배낭을 짊어졌다. 쉼터공원의 조형물을 살피고 열린바다로를 따라 내려간다. 용두 해변과 죽도, 남포방조제, 보령요트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폭염은 더 퍼붓는 것 같다. 짧은 숙면이 몸에 기운을 불어넣은 것 같다. 월전교 다리를 건너 열린바다로와 헤어져 용두 해변으로 들어섰다. 활짝 열린 용두 해변에 마음이 시원해진다. 해안의 해송림에서 불어오는 솔바람이 길손의 가슴을 채운다.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 네 가슴에 별 하나/ 숨기고서 살아라/ 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 네가 별이 되어라" - 나태주(1945~)의 '너는 별이다' 전문. 가슴에 숨긴 별 끝내 놓치지 않고 별이 되어야 한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8.55km 중 20.5km
전체 소요 시간 : 8시간 2분 중 5시간 49분
소활이 마을회관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 소황2길을 따라 내려간다.
소황리 마을회관에서 내려와 한우농장을 거쳐 소황2길을 따라 왼쪽 뒤의 민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한우농장 앞을 거쳐 오른쪽으로 돌아와서 소황리 황골마을을 뒤돌아보았다.
소황2길을 따라 왼쪽 민가와 솔숲 사이의 언덕을 넘어 내려간다.
언덕을 넘으면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즉새들이 펼쳐진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돌아 즉새들 농로를 따라간다.
독산리 즉새들 건너편 마을은 보령시 웅천읍 독산1리 홀뫼마을인 것 같다. 서해랑길은 즉새들 농로를 따라간다.
독산리 즉새들 농로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독산1리 마을이 자리하고 맨 왼쪽에 독산교회가 보인다.
건너편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마을에서 웅천읍 독산리로 넘어와 즉새들 농로를 따라 왔다. 오른쪽 건물의 용도는 무엇일까?
농로는 홀뫼3길로 이어지며, 서해랑길은 오른쪽 홀뫼3길 28호 앞, 왼쪽 선진목장 앞을 거쳐 홀뫼3길을 따라간다.
홀뫼3길을 따라 왼쪽 선진목장 앞을 거쳐간다. 서해랑길은 독산해변으로 나갔다가 열린바다로를 따라와서 오른쪽 도로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무창포 방향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은 금녕 김씨 사당인 독산사(獨山祠)이고, 왼쪽은 독산1리 마을쉼터이다.
독산리 홀뫼마을은 금녕 김씨 집성촌인 듯하다. 사당 왼쪽 뒤 비각에 금녕 김씨 사적비가 있는 것 같다.
오른쪽에 독산1리 마을쉼터, 그 왼쪽에 금녕 김씨 사당 독산사(獨山祠)가 있다. 그 앞을 거쳐 왼쪽 홀뫼4길로 들어왔다.
홀뫼4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 독산리 해안으로 내려간다.
홀뫼4길에서 걸어온 즉새들 농로를 돌아본다. 중앙 솔숲 소황리 마을에서 내려와 독산리 즉새들 농로를 따라와 홀뫼3길로 들어와 왼쪽 선진농장을 거쳐왔다.
홀뫼4길 언덕을 넘어 웅천읍 독산리 해안으로 내려간다.
홀뫼4길 언덕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중앙에 무창포해수욕장 흰 건물 비체팰리스와 바다에 석대도가 보인다. 서해랑길은 맨 오른쪽 숲 앞 열린바다로를 따라 무창포 해변으로 향한다.
독산리(獨山里)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조선 후기 남포군(藍浦郡) 웅천면(熊川面)의 한 지역인 ‘홀뫼’의 한자 표기인 ‘獨山(독산)’의 이름을 따서 ‘독산리’라 하여 보령군 웅천면에 편입되었다. 독산리의 대부분의 지역이 높이 100m 이하의 소구릉지인데, 그 중에서도 북동부가 높이 99.9m로 가장 높은 소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소구릉지 완사면 일대에서는 밭농사가 비교적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독산리 남서부는 평탄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지역이 논으로 개발되어 있다. 북동부의 구릉지와 남서부의 평탄지 사이의 골에는 자연마을이 자리해 있다. 서부의 해안 지대에는 ‘독대섬’을 경계로 그 위쪽에는 해안사빈이 발달하여 독산해수욕장이 개설되어 있고, 그 아래쪽에는 갯벌[간석지]이 발달해 있다. 서부 해안의 가장 위쪽에도 해안사구가 일부 발달되어 있다. 독산리는 웅천읍의 남서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죽청리에, 서쪽은 서해에, 남쪽은 소황리에, 그리고 북쪽은 관당리에 각각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독산1~2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독산1리에 홀뫼 등이, 독산2리에 후망 등이 각각 있다. 주요 시설로는 독산1리에 독산해수욕장이, 독산2리에 보령독산리독살 및 비체팰리스가 각각 있다.(디지털보령문화대전)
독산레저체험장 앞을 거쳐 독산 언덕을 넘어 해변으로 내려간다.
휴비치펜션 앞을 거쳐 독산 해안으로 내려간다.
휴비치펜션 옆을 거쳐 언덕을 내려와 뒤돌아보았다. 오른쪽 소황사구 표석 왼쪽 뎈을 통해 소황사구를 탐방할 수 있는데, 공군 사격훈련 시간에는 진입할 수 없다.
소황사구는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등 법적 보호종의 서식지이며 바람에 의해 모래가 퇴적된 특이한 지형으로 생태·경관적 가치가 높아 체계적인 보전·관리가 필요하여 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 제15호(경관보호구역 제1호)로 지정된 해안사구입니다.
소황사구 해양보호구역 내 행위제한 안내 : 해양생물 포획·채취, 바다 모래 ·토석 채취, 건축물 신·증축, 쓰레기 투기, 공유수면 구조변경, 안내판 오손 및 훼손, 공유수면 토지 형질 변경, 기타 유해 행위(소리·빛·악취 등)
독산리 해안에서 소황리 해안으로 해변이 길게 이어져 있다. 중앙에 부사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맨 왼쪽에 소황사구 소황리 출입구와 장안해수욕장이 가늠된다. 건너편 오른쪽에 춘장대해수욕장, 맨 오른쪽에 서천화력발전소 흰 건물이 보인다.
소황사구(小篁沙丘)는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및 독산리 독대섬 남쪽 모래 해안 배후에 모래가 바람에 의해 운반·퇴적되어 형성된 언덕으로, 만입(灣入)이 발달한 모래 해안 배후에 분포한다. 사구가 있는 소황리 및 독산리 중 ‘소황리’ 지명을 따른 것이다. 1980년대에 소황사구 지역에 공군사격장이 들어서면서 주민을 이주시켰고 민간인 통제구역이 되었다. 군사 시설이라 개발이 제한되기 때문에 사빈(沙濱)(모래가 많이 퇴적한 해안 지형)과 사구(沙丘) 사이에 축대를 설치하지 않아 사구의 모래가 자유롭게 사빈에 공급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2005년 10월 28일 소황사구 지역 12만 1358㎡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으며, 2018년 12월 1일 국내 첫 해양경관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맨 왼쪽 부사방조제 북단에서 오른쪽 부사방조제 배수갑문으로 방조제가 길게 이어진다. 중앙에 춘장대해수욕장, 그 오른쪽에 홍원항, 그 뒤에 서천화력발전소 건물들이 보인다. 홍원항 오른쪽 뒤의 섬은 오력도라고 가늠한다.
독대섬 뒤쪽의 섬은 직언도(直言島)(거치레)일 것이라 가늠한다.
독대섬은 섬의 동서로 신장된 타원형으로 북쪽 해안선은 불규칙하며 남단과 북단에는 사질해빈, 서단에는 급경사의 해식애와 노치가 좁은 파식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주 구성암석은 안구상편마암 혹은 편마암이며 자갈의 대부분은 석영으로 이루어져 있고, 해수면 부근의 안구상편마암 표면에는 타포니 구조가 발달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독대섬 앞 해안의 민박집과 식당가를 오른쪽으로 돌아 열린바다로로 나간다. 민박집과 식당가는 버려져 있는 것 같다.
오른쪽으로 돌아나온 해안길 오른쪽은 독대섬 출입구이다. 왼쪽 뒤에 춘장대해수욕장, 홍원항, 서천화력발전소가 보인다.
독산인명구조센터, 생태탐방지원센터, 독산관광안내소 앞을 거쳐 열린바다로를 따라간다.
독산리 열린바다로에서 독산해변과 독대섬을 다시 살폈다.
열린바다로에서 독산해수욕장과 북쪽으로 무창포해수욕과 석대도, 그리고 중앙 맨 끝의 대천해수욕장을 조망한다.
독산해수욕장의 ‘독산(獨山)’이라는 지명은 ‘바닷가에 홀로 있는 산’이라는 뜻이며, 이에 따라 이전에는 우리말로 ‘홀뫼해수욕장’이라고 불렀다. 독산해수욕장은 독대섬을 사이에 두고 갯벌과 금빛 모래사장이 갈매기 날개처럼 좌우로 펼쳐져 있는 천혜의 관광지이다. 바로 위에는 무창포해수욕장관련항목 보기이 있으며, 대천항과도 가까이 있다. 독산해수욕장과 무창포해수욕장은 ‘닭벼슬’ 형태의 지형인 곶(串)이 튀어나와 있어 곶을 경계로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열린바다로는 독산해변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꼬부라져간다.
독산해수욕장 동쪽 독산1리 지역에는 열린바다로를 따라 여러 펜션들이 자리하고 있다.
열린바다로가 오른쪽으로 꺾어 나가는 곳에 독산해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오른쪽은 해상침투훈련장이다.
독산해변 입구 조형물 앞에서 열린바다로는 오른쪽으로 꺾어 나간다.
방금 전 독산1리 홀뫼마을로 들어와 오른쪽 뒤 언덕을 넘어 독산 해안으로 내려갔다.
홀뫼마을 왼쪽 뒤 언덕을 넘어 독산 해안으로 내려가 중앙 뒤 독대섬과 독산 해안을 거쳐 열린바다로로 나왔다.
열린바다로를 따라 독산해변 입구의 조형물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오는 열린바다로를 따라오고 있다.
땡볕이 뜨겁다. 지열 때문인지 영상에 김이 서린다. 앞쪽 삼거리에서 왼쪽 무창포해수욕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서해랑길은 열린바다로와 맞은편 죽청로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 무창포해수욕장 방향으로 꺾어 열린바다로를 따라간다.
이마트에 들어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지만 멀찍이 앞서가는 일행을 좇아서 열린바다로를 따라간다.
이마트24 위쪽 검은 기와지붕은 경주 김씨 사당인 것 같다. 열린바다로를 계속 따라간다.
왼쪽에 다윈하우스펜션이 자리하고 있는 열린바다로의 완만한 고갯길을 오른다.
고개를 넘어와 라바 카페&펜션 입구의 열린바다로를 따라 내려간다.
열린바다로 서쪽에 낙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웅천(熊川)’ 지명은 이 일대를 흐르는 산줄기 모양이 풍수지리에 비추어 보면, ‘곰’의 형국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또는 웅천을 상징하는 웅천천(熊川川)이 일명 곰내·한내·대천 등으로 변천되어 불리는 과정에서 ‘웅천’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본래 남포군(藍浦郡) 지역으로 19개 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고읍면(古邑面)의 8개 동리와 신안면(新安面)의 두명리(杜鳴里), 습의면(習衣面)의 벽동(碧洞)과 심전면(深田面)의 동막리(東幕里)를 병합하여 다시 ‘웅천면(熊川面)’이라 해서 보령군에 편입되어 관당(冠堂)·독산(獨山)·소황(小篁)·황교(篁橋)·죽청(竹淸)·구룡(九龍)·노천(蘆川)·두룡(杜龍)·대천(大川)·대창(大昌)·성동(城洞)·수부(水芙)·평리(坪里) 등 13개 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자로 보령군과 충청남도 대천시가 통합되어 보령시가 출범하면서 보령시 웅천면, 같은 해 3월 2일 자로 웅천읍으로 승격되었다.(디지털보령문화대전)
열린바다로 왼쪽에 수산물가공업체 갯푸름과 그 오른쪽 뒤에 서해수산유통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 독산로는 서천, 웅천 방향, 왼쪽 열린바다로를 따라 무창해수욕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무창포해수욕장·웅천 갈림목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열린바다로는 완만한 고개를 넘어간다.
고개를 넘으면 무창포 건물들이 보인다. 왼쪽 철조망 지역은 제7해안감시기동대대 2중대 무창포 소초이다.
무창포 소초 입구를 지나 정면의 무창포 제6공영주차장 입구에 서해랑길 59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무창포 소초 입구를 지나 왼쪽 무창포 제5공영주차장 앞 제6공영주차장 앞으로 왔다. 오른쪽 쉼터에서 잠시 휴식했다.
무창포 제6공영주차장 입구의 서해랑길 보령 59코스 안내도 앞에서 열린바다로를 따라 비체팰리스 방향으로 이어간다.
길게 따라온 열린바다로와 헤어져 왼쪽 비체팰리스 방향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간다.
무창포 비체팰리스 리조트는 용평리조트가 처음 개발한 해양 리조트라고 한다.
무창포는 용평리조트가 찾아낸 서해안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입니다. 만리포와 대천, 무창포로 이어지는 서해안에서 그 누구도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진주 같은 휴양지입니다. 푸른 빛이 넘실대는 바다와 생명이 살아 숨쉬는 갯벌, 바닷길이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까지 무창포 비체팰리스에서라면 모두 당신의 것이 됩니다.(비체팰리스 홈피)
비체팰리스 리조트 입구에서 무창포 해변으로 나간다.
무창포 해변으로 나와 남쪽의 닭벼슬섬을 조망한다. 무창포 소초를 지나 직진하여 닭벼슬섬으로 나와도 좋을 듯싶다.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에서 웅천읍 관당리로 넘어왔다. 무창포 해변이 길게 이어진다. 왼쪽 뒤에 무창포항 방파제, 홍등대와 백등대, 그리고 왼쪽 뒤에 죽도를 확인한다.
‘무창포해수욕장’ 명칭은 해수욕장이 자리한 ‘무창포’ 지명을 따른 것이다. ‘무창포’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에 세미를 저장하는 창고가 있는 갯가의 포구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무창(武昌)의 서쪽에 있는 포구가 무창포이다. 앞 바다에는 석태도(石台島)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천연 방파제 구실을 해주고 있어 해안사빈의 침식 현상이 심하지 않다. 무창포해수욕장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개발되어 1928년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으로 해수욕과 갯벌 체험이 가능하여 이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보령8경 중 제2경에 해당하는 무창포 바닷길을 품고 있으며, 대천해수욕장 및 죽도 관광지와 더불어 보령시의 3대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다시 뒤돌아본다. 왼쪽에 닭벼슬섬, 오른쪽에 석태도(石台島)라고도 불리는 석대도는 간조 때 바닷길이 열린다고 한다.
오른쪽에 대천항 방파제의 홍등대와 백등대, 그 뒤쪽에 죽도, 왼쪽 뒤에 대천해수욕장이 보인다.
무창포해수욕장(武昌浦海水浴場)은 파도의 작용에 의해 해안에 모래가 장기간 퇴적되어 생긴 모래 퇴적지형, 즉 해안사빈(海岸沙濱)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해안사빈은 일반적으로 ‘백사장’이라고 불린다. 해안사빈의 뒤편에는 본래 해안사빈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형성된 모래언덕, 즉 해안사구(海岸沙丘)가 형성되어 있는데, 일부는 가옥 및 상가, 도로 건설, 산업용 모래 채취 등으로 훼손되어 있다.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 해안사빈은 밀물 때는 거의 대부분이 해안사구 아래까지 바닷물에 잠긴다. 음력 보름날과 그믐날을 전후하여 매월 2~3 차례 해변에서부터 석태도까지 약 1.5㎞ 길이의 바닷길이 열리는데, 이 신비의 바닷길을 따라 게·소라·고동·낙지 등을 잡는 재미가 있다. 무창포해수욕장의 전면에 펼쳐진 갯벌에서는 돌을 쌓아 바닷물이 들고 나는 것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독살이 일부 남아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썰물 때에 왼쪽에 보이는 석대도로 가는 바닷길이 열린다고 한다. 무창포해수욕장에 바다가 갈리는 신비를 홍보하고자 웅천 청년회의소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웅천 청년회의소에서 1996년 9월 16일 이 홍보탑을 세웠다고 한다.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진다는 백중사리가 되는 음력 7월 15일을 전후하여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개최된다. 신비의 바닷길은 1994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996년부터 본격적인 관광코스로 조성되었다. 무창포 포구와 어우러진 낙조의 아름다운 풍경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2015년에는 신비의 바닷길을 조망할 수 있는 45m 높이의 무창포타워를 개관하였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보령시의 명산인 성주산과 북쪽의 대천해수욕장 등지도 조망할 수 있다. 무창포해수욕장 해변에 자리한 해변공원은 해변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공원으로서 다양한 조각물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023년 7월 21일부터 8월 6일 기간 중 금토일에 무창포해수욕장 해변광장에서 머드버스킹공연이 개최됨을 알리고 있다.
석대도의 바닷길이 이곳으로 열려 이곳에서 석대도로 걸어가는 것 같다.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리는 충청남도 보령시 무창포해수욕장은 매월 음력 보름과 그믐날을 전후로 2~3회 바다 갈라짐 현상으로 해변에서부터 석대도까지 1.5㎞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으로, 1928년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이다. 이러한 바다 갈라짐 현상과 주변 해산물 등을 이용하여 1999년부터 축제가 개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디지털보령문화대전)
무창포해수욕장 인근에는 장군봉, 당섬, 석대도라는 지명이 있다. 구전에 따르면 옛날 이곳에 한 부부가 살았는데, 이 부부 사이에 아이를 출산하다 그만 아이 엄마는 죽고 아이(아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래서 이 가난한 농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후처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 계모는 어여뻤으나 마음씨는 곱지 않았다. 이러한 다정하지 못한 계모의 보살핌에서 아이에게 먹여야 할 미음과 아기만 방에다 홀로 놓고서 계모는 볼일만 보고 돌아와 보면 미음 그릇이 비어있는 등, 범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아이가 걷기를 시작해서는 모두가 잠든 밤에,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무술을 연마하고 새벽 닭소리를 들으며 귀가하는 등, 어린 아이의 힘과 기상이 하늘을 무너뜨릴 위세로 자라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무창포 앞바다 가운데 작은 섬에는 해룡이 바다를 지키며 신통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무예와 힘이 특출난 아기 장군의 소식을 들은 심교골의 한 장수의 주선으로 아기 장군과 해룡의 힘겨루기를 제안하여 마침내 섬에 있는 해통과 육지의 아기 장군이 줄다리기를 하였는데 그 힘이 땅이 헤어지고 섬이 움직이는 괴력으로 가면서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다. 이런 소문에 접한 아이의 아버지는 한편으론 대견해 하면서 당시엔 이런 장수감은 나라에서 없앤다는 사실을 알고 역적으로 몰릴 바에는 이 사실을 숨겨야겠다고 결심하고 어둠이 깔린 저녁에 석대도에 건너가 해룡과 아들을 살게 하였다. 아버지는 후에도 계속 아들이 보고 싶어 바닷길이 열리는 날에 사람들 모르게 석대도에 건너가 아들을 보고 돌아오곤 했다. 해룡과 함께 석대도에 살고 있는 아들은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는 육지에서 아들과 함께 하지 못해 슬퍼하였다고 한다.
아들이 항상 보고싶은 아버지를 보고 황새 무리가 슬피 울었던 곳이 마치 돌로 좌대를 놓은 것과 같이 생겨 석대도라고 부르게 되었고 해수욕장 북쪽에 아기 장군이 무예를 닦던 장군봉이 있으며 당섬은 아기 장군이 태어난 터이고 당시 해룡과 아기 장군이 줄다리기 하면서 바닷속 땅이 불끈 솟아오르면서 길이 형성되어 신비의 바닷길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보령9경 더하기의 하나인 천혜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무창포 주꾸미·도다리 축제가 열리는 무창포해수욕장 일대는 신비의 바닷길이라고 알려진 바다 갈라짐 현상이 발생하는 곳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무창포 주꾸미·도다리 축제는 이곳의 봄철 주요 수산물인 주꾸미와 도다리를 이용한 축제로, 주꾸미를 홍보하여 관광객 및 지역 주민에게 참여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다양한 체험 문화를 경험하게 하고자 시작하였다. 무창포 주꾸미·도다리 축제에서는 신비의 바닷길 바지락 캐기 체험, 맨손 고기 잡기 체험, 관광객 노래자랑, 품바 공연 등이 진행되며, 무창포항 및 인근 상가에서 주꾸미 등 제철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매년 3월에서 4월 사이에 개최된다. 봄철 대표 수산물 축제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홍완기 시인의 '무창포의 사랑' 시비와 홍완기 시인 시비건립 취지문 빗돌이 세워져 있다.
1.무창포의 사랑 : 물이 흘러 물길을 이루니/ 그 물길 따라 배가 드나들고/ 그 물길 배가 드나드는 길/ 내 따라 바다가 드나드나니/ 그 바다가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가 포구이니 무창포는/ 그 포구가 있어 펄펄 끓는다./ 산자수명함이 있어 조용한 듯하나/ 겉으로의 그것과는 달리 역사가/ 단선적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기실은 추동과 길항의 착잡한/ 역학관계를 감추며 움직인다./ 먼 바다가 온몸으로 달려와서/ 육지를 물어뜯고 요동치며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육지와 바다는 마침내/ 약속이나 한 듯 한 몸을 이룬다./ 그로써 물산이 들어오고 나가고/ 나가고 들어오는 물산을 따른/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교류와/ 접합이 마음의 끈끈한 유대와/ 결속을 가져오는 것이 분명해/ 무창포의 사랑은 다홍색 펄펄 끓는/ 뜨거운 뜨거운 사랑이다.
2.홍완기 시인 시비건립 취지문 : 홍완기(본관 남양) 시인은 1932년 12월 20일 충남 보령군 대천읍 궁촌리 109번지에서 태어나 2004년 7월 7일 성남시 자택에서 영면하였다. 대천초등학교(단기 4279년 7월 1일)를 졸업하였으며 나무꾼, 엿장,수 뱃사공, 철도국 임시직원, 지방신문 견습기자, 승려, 성문각 출판사 교정원,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하며 시작(詩作)에 정진하였다. 1959년 사상계에 박목월, 박남수의 추천으로 "초토(焦土)의 장(章) 선(線)으로 등단하였으며 1997년 이상화기념사업회 시인상(12회), 1998년 순수 학 대상을 수상하였다. 홍완기 시인의 시(詩)적 특징은 서로 이질적인 것의 통합을 꾀한다는 점에 있다. 그는 서로 상반되는 요소의 융합을 시도하며 초기에는 고독, 죽음, 유랑생활 등으로 작품화되었지만, 점차 일상과 사회에 대한 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이어간다. 그의 문학정신을 잇기 위해 고향 문인 후배들이 무창포 바닷길이 갈라지는 석대도 초입(初人)에 시비를 건립하여 그를 기리고자 한다. 2013년 6월 29일 주관 : 홍완기 시인 시비건립 추진위원회, 제작 : 박주부
2023년 7월 8일부터 8월 19일까지 보령 무창포해수욕장 숲길 일원에서 하정문학회 하반기 문인 시화전이 "문학, 해조음을 연주하다!"라는 주제어로 개최되고 있다. 그런데 하정문학의 '하정'이 무슨 뜻일까? 토박이말일까, 한자어일까?
작품을 음미할 시간이 없다. 박용서 시인의 짧은 '희망'을 삼키며 일행을 따라간다. "전봇대가/ 하늘과 악수하네요./ 난, 언제/ 저렇게 키가 클까?/ 하늘은/ 내 맘 알까."
무창포 종합관리사무소 앞을 통과한다.
무창포해수욕장 식당가와 상가를 통과한다. 왼쪽 뒤에 무창포 수산물시장 건물이 보인다.
아기장군 전설이 깃든 석대도와 왼쪽 닭벼슬섬을 다시 바라본다.
왼쪽에 무창포타워, 오른쪽에 비체팰리스 리조토, 그 오른쪽에 닭벼슬섬, 그 뒤의 섬은 직언도일 것이다.
무창포해수욕장 상가를 거쳐 무창포 수산물시장 앞으로 왔다.
무창포해수욕장의 북쪽에 접해 있는 무창포항 일원에서 봄철에는 무창포 주꾸미·도다리 축제가 개최되고 가을철에는 무창포 대하·전어 축제가 진행된다. 해수욕장의 뒤편으로는 도로를 따라 많은 상가와 숙박업소가 들어서 있다. 무창포해수욕장은 공중화장실, 급수대, 매점, 샤워장, 탈의실, 일반음식점은 물론 대규모 해양 휴양시설을 비롯하여 머물기 좋은 펜션과 민박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서해안고속국도가 개통되면서 무창포나들목이 생겨 접근이 쉬워졌다. 무창포해수욕장은 법정 해수욕장으로 보령시청 해수욕장경영과가 관리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해랑길은 무창포 수산물시장 오른쪽 무창포주차장과 무창포항으로 이어간다.
무창포항은 무창포해수욕장에 접하여 주변 산과 바다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지고 해수욕장에서 인근 석태도까지 월 1~2회, 약 3~5일 간 바다가 갈라지는 일명 ‘모세의 기적’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 관광 잠재력이 높다. 보령시에서는 2008년부터 어촌관광단지를 조성하면서 어민들의 소득향상을 위하여 총 사업비 17억원을 투자하여 연면적 1,468㎡, 3층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로 수산물센터를 건립하여 2008년 8월 개장하였다. 1층에는 16개 점포의 활어판매장과 2층에는 3개 점포의 식당이 입주하여 대천항수산시장과 같이 1층에서 활어를 구입하여 2층 식당에서 회와 식사를 하는 체계로 운영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무창포항 구름다리 앞에 무창포해수욕장 낙조5경 즐기기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낙조1경-무창포타워, 탁 트인 무창포해수욕장 전체가 붉은 태양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2.낙조2경-신비의 바닷길 입구, 아기장수 설화와 신비의 바닷길을 품고 있는 이곳에서 저물어가는 하루를 바라봅니다.
3.낙조3경-다리 위, 고즈넉한 항구와 등대 세 개를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어 다채로운 풍경 속의 일몰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4.낙조4경-흰 등대, 오직 바다와 나, 중간에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멀리 뻗은 수평선 위로 지는 태양을 바라봅니다.
5.낙조5경-닭벼슬, 바다와 무창포해수욕장은 물론 무창포타워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구름다리에서 야경 조망이 멋지다고 한다. 구름다리로 올라가서 주변을 조망한다.
중앙 뒤에 무창포해수욕장과 무창포타워가 보이고, 바로 오른쪽에 2008년에 개장한 무창포 수산물시장 건물이 있다.
구름다리에서 무창포항(武昌浦港) 방파제의 백등대와 홍등대, 바다의 등간, 건너편에 석대도를 조망한다.
무창포항은 과거에는 내만(內灣) 입구에 남북으로 방파제를 쌓아 항구를 조성하고, 사구 위에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 시설을 갖추고, 취락이 들어서 있었다. 여기에다, 간조 때는 항구의 바닥까지 갯벌이 드러나 배를 댈 수 없었고, 만조 때가 되어야 배를 대고 하역할 수 있어 불편함이 있었다. 근래에는 무창포항에 방파제 시설을 새로 설치하고, 항구를 서쪽으로 옮겨 간조 때를 제외하면, 배를 댈 수 있도록 하였다. 무창포항은 1972년 8월 7일 지방어항으로 지정되었고, 2017년 4월 7일 국가어항으로 승격되었다. 2011년 3월 15일부터 9월까지 대산지방해양항만청이 무창포항 방파제 끝단에 등대를 설치하여 입항 및 출항 선박의 안전항해의 길잡이로서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역할은 물론, 지역주민과 관광객에게 항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무창포항에서는 보령8경 중 하나인 무창포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무창포항 방파제의 홍등대와 백등대, 등간이 왼쪽에 있다. 등대를 다녀오는 탐방객이 부럽다.
무창포항의 주요 어종은 광어와 갑오징어 등이다. 매년 3~4월 사이에는 신비의 바닷길 무창포 주꾸미·도다리 축제가 열리고, 5월에는 무창포 광어·찰배기 축제, 9~10월 사이에는 무창포 대하·전어 축제 등이 열린다. 무창포항은 무창포해수욕장에 접하여 주변 산과 바다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지고 해수욕장에서 인근 석태도까지 월 1~2회, 약 3~5일 간 바다가 갈라지는 일명 ‘모세의 기적’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 관광 잠재력이 높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무창포항 안쪽 내항에 출항을 준비하는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다.
법정리로서 관당리(冠堂里)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관동, 당현리, 간입리(看入里)를 병합하고 남포군(藍浦郡) 웅천면(熊川面)의 관동(冠洞)과 당현리(堂峴里)의 이름을 따서 ‘관당리(冠堂里)’라 하여 보령군 웅천면에 편입되었다. 관당리 서부 해안지대에는 무창포항(武昌浦港)이 있고, 무창포항 아래에는 무창포해수욕장이 있다. 관당리는 웅천읍의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죽청리에, 서쪽은 서해(西海)에, 남쪽은 독산리에, 그리고 북쪽은 구룡리 및 남포면 월전리에 각각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관당1~3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관당1리에 관동 등, 관당2리에 무창, 관동, 간드리 등이 각각 있다. 서해안고속국도가 관당리의 동부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시도는 서부 해안을 따라서 개설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는 관당2리에 무창포타워, 무창포종합관리소, 무창포항, 무창포등대 및 무창포해수욕장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무창포항 구름다리를 건너 오른쪽에 보이는 충청남도 수산자원 연구소 앞을 거쳐 나간다.
무창포항 구름다리, 홍등대와 백등대, 그리고 석대도, 왼쪽에 무창포 수산물시장이 모두 확인된다.
충청남도수산자원연구소는 지역어업인에게 수산자원 기술을 보급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12월 8일 충청남도내수면개발시험장으로 개장하였으나 수산자원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게 되어 2006년 4월 20일 충청남도내수면개발시험장을 통합한 충청남도수산자원연구소가 개소하였다. 이후 2009년 5월 국가기관 지방 이양에 따라 충청남도수산관리소가 충청남도로 이양되었고, 2017년 1월 1일 충청남도수산관리소를 통합하여 충청남도수산자원연구소 기능이 확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충청남도 지역의 수산물 관련 연구개발, 생산연구, 갯벌생태기술 보급, 인력육성기술 보급, 귀어학교, 민물고기 자원관리 시험개발, 수산물안전 질병관리 등을 연구, 개발, 보급, 관리하고 있는 연구소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도로명이 갓골큰길인 것을 보면 이 지역이 갓골인 것 같다. 갓골큰길을 따라 열린바다로로 나가 왼쪽으로 이어간다.
열린바다로 충청남도수산자원연구소 입구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59코스 시점 18.7km, 종점 9.6km 지점이다.
충청남도수산자원연구소 입구에서 조은수산 앞을 거쳐 열린바다로를 따라간다.
열린바다로 언덕길 바다 쪽으로 펜션 노을언덕이 자리한다. 이 고갯길을 노을언덕이라고 명명해도 좋을 것 같다.
열린바다로를 따라 고개를 넘는다. 고갯길에는 보령을 자랑하는 문구들이 적힌 기둥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열린바다로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대천해수욕장 지역의 건물들이 보인다.
한 언덕을 넘어 또 하나의 고개인 할미재 고개에 벨라코스타 카페가 있다. 웅천읍 관당리에서 남포면 월전리로 넘어간다.
베라코스타 카페를 지나 오른쪽 남포면 월전리 용두해수욕장과 왼쪽 죽도를 조망한다. 맨 왼쪽 뒤에 대천해수욕장이 보인다.
엎드린 자세와 앉은 자세의 인어 조각상 한 쌍과 돌솟대들이 쉼터정자 위와 아래에 각각 조성되어 있다.
열린바다로 고개 아래 쉼터공원이 있다. 쉼터정자와 인어 조각상 한 쌍과 돌솟대들, 오우가 시조비, 매난국죽 시조비가 있다. 땡볕에 지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쉼터정자에 누워 휴식을 취하였다. '오우가(五友歌)' 시조비에는 그 첫째 수가 적혀 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윤선도(1587~1671)의 '오우가(五友歌)' 중 제1수. 다섯 벗(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예찬하고 있다.
안민영(1816~1885)의 매화, 이병기(1891~1968)의 난초, 이정보(1693~1766)의 국화, 원천석(1330~?)의 대나무 시조가 적혀 있다.
1.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香氣) 놓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期約)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 안민영의 매화사 8수 중 제3절
2.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3.국화야, 너는 어찌 삼월춘풍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였난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4.눈 맞아 휘어진 대(臺)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을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남포방조제가 죽도로 이어지고 있다. 남포방조제 앞 바다는 보령요트경기장이다.
열린바다로를 따라 남포면 월전리 지역을 내려간다. 왼쪽 뒤의 산은 옥마산이다.
법정리로서 월전리(月田里)는 본래 남포군 신안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월계리와 영전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포군 신안면(新安面) 지역의 ‘월계리(月溪里)’와 ‘영전리(令田里)’의 이름을 따서 ‘월전리’라 해서 보령군 남포면(藍浦面)에 편입되었다. 북서부는 간척평야로 개발되어 있다. 이 간척평야는 남포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서해 바다에 접해 있다. 서부 해안의 남포방조제 끝자락에는 해안사빈이 국지적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해안사빈은 용두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있다. 용두해수욕장의 배후에는 관광 어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가옥들이 조밀하게 자리해 있다. 월전리는 남포면의 남서부 끝 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양기리 및 웅천읍 구룡리에, 서쪽은 서해 바다에, 남쪽은 웅천읍 관당리·구룡리에, 그리고 북쪽은 양항리에 각각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월전1~2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월전1리에 대자울 등이, 월전2리에 영전, 월계, 하기 등이 각각 있다. 주요 시설로는 월전1리에 보령요트경기장이 있고, 월전2리에 용두해수욕장이 있다. 고적으로는 월전1리에 최고운유적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남포방조제 앞 바다는 보령요트경기장, 방조제 뒤는 간척농지이다. 요트경기장 서쪽에 긴 뎈길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바다소리향기 펜션 앞을 거쳐 열린바다로를 따라 내려간다.
열린바다로 월전교를 건너 열린바다로와 헤어져 왼쪽 용두해수욕장 입구로 이어간다.
용두해수욕장 입구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59코스 시점 21.1km, 종점 7.2km 지점. 날개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
할미재의 벨라코스타 카페와 펜션들이 줄지어선 열린바다로를 따라오다가 월전교를 건너 용두 해변으로 들어왔다.
해송림이 무성하고 모래가 고운 용두 해변이 보령요트경기장 앞까지 이어진다.
'용두해수욕장(龍頭海水浴場)' 명칭은 용두해수욕장이 자리한 ‘용두마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용두마을은 할미재에서 내려온 긴 능선이 바다와 접하는 곳에 있다. 마을 이름은 긴 능선을 용(龍)으로 보고, 마을이 용의 머리 부분에 자리하기 때문에 ‘용두(龍頭)’로 붙여졌다. 용두마을 안에는 용이 물을 먹었다는 우물인 용샘, 용이 쉬어간 정자인 용정, 그리고 용이 승천한 용굴이 있다. 용두해수욕장의 면적은 길이는 1,500m, 폭은 만조시 15m, 저조시 100m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으며, 모래질 역시 뛰어나다. 해수욕장 뒤에는 해안사구 침식방지용 방벽이 있고, 위에 자리한 해송림은 소나무들이 굵지 않지만 개체 수가 많아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하늘이 안 보일 정도이다. 용두해수욕장은 주차장, 샤워장, 화장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차장에는 ‘동백관’이라는 근로자복지회관이 들어서서 숙박과 편의시설을 제공하기도 한다. 해변의 길이가 짧지만 아늑하다. 특히 해변 뒤로 송림이 울창해 곳곳에 야영할 수 있는 터가 있어 피서객들의 캠핑장으로 유명하다. 용두해수욕장의 일몰은 ‘보령8경’인 무창포 낙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용두해수욕장은 충청도 야생조수 고정조사지로 지정될 만큼 자연적 조건이 훌륭한 곳이다. 야생조류들이 많이 찾아오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갯벌이 아닌 모래에서 다양한 조개를 잡을 수 있다. 용두해수욕장-죽도-대천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남포방조제 드라이브 코스는 유명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