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작은 거인’의 시선으로 재현된 한국 산악사
글 이용대. 한국산악회 산악문화 연구소장
사진가 김근원 선생 유고 산악사진집... 아들 김상훈 씨 아버지 시점으로 글 덧붙여 6.25 이후 산악계 기록
【산의 기억-사진가 김근원의 산과 사람들】 김근원 지음 김상훈 엮음 열화당 펴냄
이 책은 고인이 된 한국 알피니즘의 기록자 김근원(金槿原, 1922~2000)이 남긴 1950년대 이후의 한국 산 탐사활동 기록들이다. 그가 생전에 남긴 사진은 대략 2~30만 점에 이르고 있지만 386점의 사진만을 『산의 기억』에 담아 한국 산악운동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흑백 사진 속에 녹아있는 동양화 같은 풍광뿐만 아니라 모험과 도전의 현장사진과 일화로 가득 메워져있다.
자신의 체중만큼이나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산과 계곡을 누볐던 한국 알피니즘의 기록자 김근원. 그는 렌즈로 한국의 산을 그려낸 뛰어난 장인이자 우리 산을 최고의 걸작으로 탄생시킨 위대한 기록정신의 작가다.
이 책은 자연 풍광뿐만 아니라 그동안 만나 보기 어려웠던 산악계 인물들과의 일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소규모로 오붓하게 떠난 산행에서부터 이백여 명의 인원이 참가한 훈련 등반까지 산악운동의 다양한 규모를 아우르고 있다. 또한 학생 해양 훈련과 더불어 등산의 대중화와 국민 체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 시민 행사, 국토구명운동, 국제적인 행사 등의 기록도 실려 있어 한국산악사의 크고 작은 면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국산악회의 두드러진 사업 중의 하나인, 조국광복 후에 실시한 국토구명학술조사사업(國土究明學術調査事業)에도 참여했다. 1946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국가초석을 다지는데 기여한 대단한 업적이었으며, 그 중심엔 한국산악회가 있었다. 남한전역의 3대 산맥과 41개의 산, 21개의 도서해역에서 지형지세, 동물, 식물, 광물분포, 농림, 지질, 방언 등을 분야별로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국토구명사업을 마무리했다.
1946년 한라산 학술조사를 시작으로 1955년 설악산 학술조사까지 10년에 걸쳐 총 11차례 진행된 국토구명학술조사는 영토 문제와 관련된 울릉도ㆍ독도학술조사, 제주도ㆍ파랑도 학술조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 뒤늦게 참여한 그는 1956년 울릉도와 독도 탐방을 시작으로 한국산악회가 주최한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했고, 이를 토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산악사진을 만들어 갔다.
이 책에는 학생 해양훈련과 더불어 1949년부터 시작된 등산대중화를 위한 등행경기, 등산의 대중화와 국민 체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 시민 행사, 국제적인 행사까지 실려 있어 한국 산악사의 크고 작은 면면들 모두를 기록으로 남겼다.
어릴 적 삼촌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같은 카메라로 사진을 처음 접했던 작가는 한번도 전문적인 사진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일본의 사진 관련 서적을 읽었던 것이 이론의 전부였던 그는 카메라를 들고 부단히 전국의 산을 오르고 몸소 부딪히며 터득했다.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사진에는 웅대하고 수려한 풍경뿐 아니라 산과 사람이 교감해 온 시간들이 녹아있다.
돌담불, 불타 버린 고사목, 북한산 비봉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의 원형, 민족상쟁의 현장 지리산 빨치산의 비트, 6.25전란으로 폐허가 된 설악산의 원명암 터, 설악산 전투에 참전한 어느 병사의 유골, 폐허가 된 신흥사의 적묵당, 심마니들의 움터, 설악산 죽음의 계곡 눈사태 조난현장의 발굴 작업, 천불동 철책 난간이 붕괴한 설화의 현장, 50년대 울릉도의 전경 등 눈여겨보지 않던 흔적들이 담겨 있으며 사람들을 맞아주던 산장이나 한라산 백록담에서의 야영 등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장면도 드러난다.
또한 그의 카메라 아이(camera eye)는 산중의 숲이나 암벽, 얼어붙은 폭포처럼 위험한 장소도 가리지 않았고 로프에 매달린 클라이머의 한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흔히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카메라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사진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혜안과 정신이 찍는 것이어야 하며, 카메라는 피사체의 외형만을 담는 단순기계가 아니라 피사체의 내면까지 그려낼 수 있는 붓이라는 사실을 그의 작품 속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 모두는 역사의 한순간들을 담고 있다. 이중 몇 점은 지금까지 미공개 된 것들도 있으며, 길게는 70여 년의 시차를 지닌 사진들도 있다. 이런 사진들은 각기 다른 시간대의 공간에서 활동한 파란만장한 현장을 오늘의 일처럼 증언해주고 있다. 이 책 덕택에 우리는 수십 년 전의 상황을 바로 오늘의 일처럼 생생하게 목격하는 감동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집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매체로 간주할 수 있다. 사진이 주제가 된 다큐멘터리는 현장 리포트같이 실제상황을 엿볼 수 있어 그 어떤 자료보다 과거를 복원하는데 가장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들 수 있다.
김근원의 사진은 해외에도 알려졌다. 그가 찍은 도봉산 선인봉의 웅자는 1976년 국제산악연맹회보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한국 알피니즘의 요람 선인봉이 세계 산악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도봉산 주봉 K크랙을 오르는 유기수의 역동적인 암벽등반 모습은 1967년 일본 산악사진협회 해외사진가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는 라테르네, 슈타인만클럽, 에코클럽, 하켄클럽 등의 클라이머들과 교우하면서 다양한 암벽등반 사진을 찍었다. 산악인들이 새로운 암벽 코스를 개척할 때면 그 모든 장면을 찍었다. 선인봉 측면 직벽 개척 작업. 도봉산 주봉 오버행 등반모습, 국내 최초의 토왕성 빙폭 첫 시등의 모습, 클라이머들의 복장과 동작들이 진화해 가는 과정을 오롯하게 남겼다.
‘산과 사람들’이라는 부제답게, 이 책은 자연 풍광뿐만 아니라 그동안 만나보기 어려웠던 국내외 산악계 인물들과의 일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김정태와 이이야마(飯山達雄)에 대한 회고에서는 한국등산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일본산악인 이이야마가 조선철도국 직원으로 위장한 총독부 정보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한편 주변에서 이이야마의 기록은 적극신뢰하면서 그 자신이 곧 한국의 산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던 한국 산악인 김정태의 기록은 불신내지는 폄훼하며 기록의 진위에 대해 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하면서 이이야마의 식민지 조선에서 행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생전에 일본산악인들과 많은 교류를 해왔다. 그중에서 RCC 창립멤버이자 일본인 최초로 마터호른 북벽을 오른 핫토리 미츠히코(服部滿彦)라는 일본산악인과의 해후가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는 등산 중에 입은 동상으로 양쪽 발가락을 절단한 산악인으로 『등산화의 소리』라는 산악서적을 저술한 사람이다. 그의 책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자신도 작품집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핫토리는 1980년대 초 산악사전 출간회(대표 고 홍석하)사무실에서 필자와 만난적이 있다. 사업차 한국에 들른 그가 어떤 연고로 삼선교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 왔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그가 평생 매달렸던 사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산악 활동의 기록을 함께 담은 첫 결과물이다. 마지막 장을 제외한 모든 글들은 김근원 자신이 1980~1990년대에 옛날을 회고하는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으나, 사실 그의 아들 김상훈이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와 관련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글은 사진 속 인물들을 한 명씩 찾아가 사실 확인과 교차 증언의 과정을 거쳤다.
『산의 기억』덕택에 우리는 70여 년 전의 상황을 바로 오늘의 일처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청춘들은 이제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다시없는 추억이자 향수다. 사진이 주제가 된 다큐멘터리는 현장 리포트같이 실제상황을 엿볼 수 있어 그 어떤 자료보다 과거를 복원하는데 가장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작가의 아들이 이 책을 펴내지 않았다면 과거의 귀중한 기록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첫댓글 읽고 싶은 책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읽을 책들이 너무 많네요.
선생님 감사합니다.건강 하셔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