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들과 함께한 홋카이도 3박 4일(1)
부산에 거주하는 고향의 죽마고우 5명이 의기투합하여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하기를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2016년 11월 1일부터 4일까지 3박 4일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삿포로/도야/오타루/노보리베츠를 둘러보기로 하고 패키지여행을 신청했다. 후지 산 등반을 비롯해 다섯 번째 일본여행이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여행이 아닐 수 없다.
11월 1일(화) 맑음, 이른 새벽 6시 30분에 공항 미팅시간이라 5시 40분에 금강식물원 앞에서 이선상과 택시를 타고 김해국제공항 2층 대기실에 6시도 되지 않아 도착했다. 김정웅 강만도 하재권 등 친구들도 뒤이어 도착했다. 대기실 텔레비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안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연이어 보도하고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있는 날이라 모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눈빛들이었다.
이번에 함께 출발할 일행은 여러 여행사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23명이었다. 여행객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준비물들을 챙기고 에어부산 부스에서 짐을 부친 후, 체크인하고 출국장에 들어섰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 후 대기실에서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다가 오전 8시 40분 되어서야 탑승이 이루어졌다. 약 180여 명의 탑승객을 실은 에어부산 항공사의 BX182편은 기수를 북동쪽으로 돌렸다.
날씨는 지금까지는 가을 날씨답지 않게 포근했지만, 오늘은 제법 쌀쌀했다. 맑게 갠 하늘엔 태양이 강렬하여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밝게 눈부셨다. 아래로 약간의 옅은 구름이 깔린 동해를 가로 질러 일본 열도의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날아갔다. 모니터에서는 최고 고도 1만m, 속도는 시속 1,000km, 바깥 상공 기온은 섭씨 영하 4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 아래 바깥 경치가 곧 일본열도임을 내려다보면서 일본과 우리나라는 참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열도를 오른쪽으로 끼고 북으로 향해 푸른 물결 위로 미끄러지듯 비행기는 날았고 잠시 후에는 북해도 인근에까지 접근해가고 있었다. 기내식으로 간단한 볶음밥인가가 나오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는 동안 홋카이도 상공에 다다른 것이다. 얼마 후 출발 약 두 시간만인 10시 30분쯤 홋카이도의 치토세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일본은 공항에서부터 질서정연하고 깔끔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했다.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신속하게 맡은 일에 충실하였으므로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거리에는 휴지조각 하나 껌 딱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벽에 지저분한 전단지며 낙서하나 없었다. 역시 서양인들이 자기들과 같은 일등국민의 반열에 일본을 올려놓고 보는 이유를 일본에 올 때마다 느끼곤 한다. 역시 일본은 우리보다는 공중도덕면에서 국가품격이 한 수 앞선 나라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왜 우리는 유치원부터 초·중·고를 거치면서 수많은 교육을 하는데도 늘 그 모양일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을 텐데 국민의식과 수준이 뒤따르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추고 있음은 학교 바깥에만 나오면 곧 사회와 기성세대에 동화되기 때문이 아닐까?
위도가 상당히 위쪽이라 삿포로의 기온은 한낮이 영하 2도로 부산의 영상 10도보다는 꽤 낮은 편이고, 공항의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눈이라도 내릴 기세이다. 공항 주변을 훑어보니 낮은 언덕의 나무들은 단풍이 선명하게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활주로 주변의 잔디들이 황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 한반도뿐만 아니라 이곳 일본 열도도 늦게 찾아온 선선한 날씨 때문에 이제야 초겨울이 다가온 듯했다. 홋카이도는 북위 41도에서 45도에 걸쳐 있어서 우리나라보다는 위쪽이고 나머지 섬들인 혼슈나 시코쿠, 그리고 큐슈 지방보다는 분명이 추운 지역이다. 여행 기간이 조금 이른 감은 있었으나 홋카이도만은 적어도 눈이 내리거나 쌓여 있은 곳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왔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의 명장면은 고사하고 그 어떤 눈도 기대할 수 없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홋카이도는 우리나라 남한보다 조금 작은 83.424㎢의 면적에 인구는 약 540만 명밖에 안 되어 꽤 한적하기가지 한 지역이다. 1972년에 동계올림픽이 열렸을 정도로 눈이 많고 겨울날씨는 습윤한 편이었다.
입국수속은 의외로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공항청사 바깥을 나오자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차창 너머로 보니 높은 건물은 없었지만 목조건물에서 단층의 아담한 건물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통 일본 음식점에 들르니 따스한 생선전골을 곁들인 정갈한 반찬들이 식욕을 북돋웠다. 식사를 끝마치자 일행들은 차에 올라 일본 삿포로에서 가장 먼저 당도하여 본 곳이 아이누 민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아이누 민속박물관이 있는 시코츠 호반이었다. 때마침 부는 강한 바람에 호수의 물결은 심하게 출렁거렸다.
홋카이도, 동북지방 북부 사할린 남부, 치시마 열도에는 화인和人(혼슈지방 사람)이나 러시아 사람들이 살기 전부터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선주민족 아이누족이 살고 있다. 지금도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약 만 팔천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수렵생활을 하며 살았으나 지금은 일본에 동화되고 있다. 지금은 아이누 토착어도 상실했고 고유문자도 잃어버린 채 1869년 일본에 의해 정복되었고, 정식으로 홋카이도로 명명되고 있다. 민속촌이 마련된 시라오이 포르토 호반의 공원은 단풍이 선혈처럼 붉었고, 칼데라 호수의 호반에는 목조건물 아이누 전통집들이 몇 채 띄엄띄엄 서 있었다. 옛날 이 넓은 홋카이도의 대자연은 아이누족의 천지였을 것이다. ‘아이누’라는 말은 원래 아이누어로 ‘사람’이란 뜻이다. 입구에 검은색 대형 촌장 동상을 세워두고 그 옆에는 곰과 홋카이도 개를 사육하는 사육장이 위치해 있었다. 아이누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하여 1965년 ‘포로토코탄’(아이누어로 ‘큰 호수의 취락’)을 이루는 다섯 채의 전통가옥을 짓고 주요 무형 민속문화재로 지정받아 하루 8회, 매회 약 한 시간씩 관광객을 위해 공연하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누족들이 나와 토템신앙으로 곰의 영혼을 보내는 춤으로 ‘이오만태림세’를 선보였고, 아이누의 민속악기 ‘뭇쿠리’를 연주하기도 했다. 어린아이를 재우는 자장가인 ‘이훈케’와 칼춤 ‘엠시림세’ 등을 공연하기도 했다. 대부분 홋카이도의 드넓은 자연과 더불어 살던 아이누의 생활상을 표현하는 민속예술이었다. 표현이 야단스럽지도 않고 단순한 행동과 멜로디로 춤과 노래가 이어졌다.
해가 떨어지는 홋카이도의 초겨울은 날씨가 차가웠다.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이곳은 지옥계곡이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유명한 온천욕 관광호텔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보리베츠는 에도 시대에 온천가 주변으로 호텔이나 여관 등이 들어서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작은 마을이다. 이곳 노보리베츠登別의 만세각萬歲閣호텔로 이동하여 여기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시가지의 규모는 작지만 종종 '일본의 3대 온천’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지하 1층에 시설이 훌륭한 유황온천이 마련되어 있어서 여장을 풀자마자 유카타 차림으로 온천탕부터 찾았다. 탕 안에 몸을 담그고 명상에 잠기고 있을 때에 난데없이 여성 한분이 들어와 탕 속의 온천수의 수질과 온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벌거벗은 일본인 욕객과 마주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에 가이더의 말로는 이곳 어느 코너는 남녀혼탕이 있으니 자신 있으면 가보라는 것이다. 저녁식사는 이곳 만세각 호텔의 1층에 마련된 뷔페식당에서 푸짐한 식사로 이어졌다.
11월 2일(수) 흐림, 노보리베츠의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 온천을 위해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려다보니 주변의 낮은 산들의 아름다운 단풍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곳은 지금이 한창 단풍 계절인 듯싶게 붉고 노란 잎들을 매단 나무들이 호텔 주변과 가로를 장식하고 단풍물결이 산으로 이어졌다.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해주는 장소로 희뿌연 김으로 밤새껏 뿜어 올리는 유황냄새 진동하는 온천수가 온몸을 일깨워주었다. 일본의 3대 온천 중 하나인 노보리베츠의 온천을 즐기기 위하여 이곳으로 달려 온 보람이 있었다. 약 한 시간의 아침 온천을 끝낸 후 유카타 차림으로 식당을 향했다. 처음에는 조금 멋쩍은 듯했으나 모두가 그런 차림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예사롭게 여겨졌다.
오늘은 인근의 노보리베츠 유황계곡을 둘러보기 위해 호텔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정도의 가다가 내렸다. 산 중턱까지 이어진 지옥계곡地獄溪谷은 굿타리 화산의 활동으로 직경 450m 계곡을 따라 용출구와 분기공이 있었다.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는 풍경이 마치 도깨비가 사는 지옥을 연상케 했다. 노보리베츠 온천지역에 있는 옛 분화구 자리 근처만 갔는데도 진하게 풍기는 유황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활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뿌연 수증기가 화산폭발의 전조 같았다. 마치 지옥과도 같을 거라는 생각에 '지옥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였을 것 같다. 세계 유황협회가 인정한 12가지 성분 중 11가지를 함유하고 있다고 해서 ‘온천 백화점’이라 불린다. 친구들은 단풍든 산과 유황온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했다. 가장 왕성하게 뿜어 올리는 수증기 기둥을 옆으로 능선을 타고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다. 가장 일본다운 광경을 눈앞에서 감상하면서 홋카이도의 겨울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1년 내내 마쓰리가 있고, 여름에는 밤의 지옥계곡을 비추는 도깨비 불꽃놀이도 유명하다고 한다.
차에 오른 일행들은 화산 분화구로 생겨난 도야호洞爺湖로 향했다. 그리고는 청정호수 도야호수의 전경과 화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이로 전망대를 구경하였다. 사이로 전망대에 서니 눈앞에 조금 전에 보았던 나카시마·우수산·쇼와신산·도야호수를 한 눈에 바라다 볼 수 있었다.
도야 호수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고 약 50분간 호수 주변을 탑승하였다. 유람선 갑판에서 날아다니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면서 주변의 경치를 들러보니 푸른 호수 위에 붉은 단풍이 거꾸로 비쳐 한 폭의 동양화를 이루고 있었다. 도야호는 홋카이도에서 제일 큰 호수로 화산폭발로 생긴 전형적인 칼테라호수이다. 호수는 해발 고도 84m에 위치해 있고, 수심이 평균 117.0m, 최대 180m로 깊다. 호수의 면적은 70.7km²이고 둘레가 무려 50km에 달하는 엄청난 호수였다. 도야호는 시코쓰토야 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2008년 G8 정상회담 개최지로도 유명한 명승지였다.
점심식사를 한 후 인근의 쇼와신산昭和新山을 탐방하였다. 쇼와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쇼와신산이라고 불리는 이 산은 1943년부터 약 2년간 우수산有珠山의 폭발로 인하여 보리밭이었던 지반이 402m까지 융기하였고, 2000년에도 활동을 해서 인근 마을이 용암으로 뒤덮였다고 한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아도 산 중턱에서 뜨거운 화산가스가 분출되고 있었다. 이곳은 표면 온도가 섭씨 300도가 넘어 산에 오를 수 없었다. 마그마가 흘러내리지 않고 솟아오르면서 굳어진 세계유일의 화산지역이라 한다.
관광으로 왕복 1,350엔을 지불하고 인근에 있는 우수산 분화구를 보기 위해 편도 약 6분간을 운행하는 106명 탑승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그곳에서 다시 전망대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 오르막이었다. 20세기만 해도 1910년, 1943년, 1977년 그리고 2000년 등 4차례나 폭발한 화산의 정산을 보면서 과연 일본은 화산의 나라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1977년에 폭발이 엄청나서 지상 12,000m까지 분진구름과 낙진으로 일대가 아수라장이 된 적이 있었고, 2000년에도 지상 500m를 화산재가 치솟아 주민들이 모두 피난을 하기도 했다. 금년 9월 13일 진도 5.8의 경주 지진으로도 온 나라가 정신을 못 차리고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 한반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케이블카 정류장 전시실에는 화산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심했던 흔적을 화보로 생생히 보여주고 있었다. 화산으로 크나큰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화산을 관광자원삼아 먹고사는 곳이기도 했다. 멀리 도야호수 너머에는 석양을 등지고 후지산富士山(3,776m)과 흡사한 형태의 해발 1,898m의 요테이산羊蹄山이 흰 눈에 쌓인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그래서 에조-후지 (후지 산을 닮은 산)라 부르는가 보다.(2016. 11. 5)
첫댓글 최교장님, 멋진 곳에 다녀 오셨습니다. 기행문 잘 읽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