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콜룸부스가 아메리카대륙에서 담배를 가져와 유럽에 퍼뜨렸고. 곧 이어 중국 일본을 거쳐 백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 광해군(光海君) 때는 조정회의 때 신하들이 담뱃대를 물고 담배를 하도 많이 피워 연기가 자욱하자 광해군이 자기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다고 하는데. 담배가 우리 나라에 급속도로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나라에 담배가 있었던 것처럼 여겨져. 전설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첫머리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을 끼울 정도까지 되었다.
영국에서는 한 때 담배가 몸에 좋다하여.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단체로 줄을 세워 담배를 피우게 하는 시간이 있었다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철학자(哲學者)나 시인(詩人)이 담배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것이 아주 멋스럽다고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담배는 그 속에 수백 가지의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고 하여. 박재갑 암센터소장 같은 분은 어떤 이유로도 피워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애연가(愛煙家)들 가운데는 끊기로 결심하고서 몇 차례 금연을 하다가 다시 피우고 다시 결심했다가 또 피운다. 담배뿐만 아니라 술이나 마약. 좋지 않은 습관 등을 끊으려고 결심했다가 그대로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실패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본다. 화투노름으로 재산을 다 날리고 노름을 하지 않겠다고 자기 손가락을 끊은 사람이 다시 노름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정신적(精神的)으로는 끊겠다고 결심이 되었지만. 육체가 이전에 하던 것에 관성(慣性)이 붙어서 쉽사리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하는 말 가운데 “담배에 인이 배겼다”. “술에 인이 배겼다” 등등의 말을 하는데. 이 ‘인’이란 것은 바로 ‘숨은 병’ ‘은 (隱)’자의 발음이 전설모음화 되어 바뀐 것이다.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을 ‘은(隱)’이라 한다. 오랫 동안 즐기거나 행하다 보니 갑자기 그만둘 수 없는 상태를 말하니. 일종의 중독(中毒)이다.
담배나 술만 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언행(言行)에도 관성이 있다.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는 것에 관성이 붙으면. 좋은 말이나 좋은 행동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영 편하지 못하다. 나쁜 말을 하고 나쁜 행동을 하는 것도 관성이 붙어. 남을 나쁘게 헐뜯는 사람은 헐뜯어 말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 기분이 통쾌하지가 않다. 책을 보는 것에 관성이 붙은 사람은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 영 즐겁지가 않고. 물건 사는 것에 관성이 붙은 사람은 며칠만 백화점이나 상점에 가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지난 해 봄 총선이 끝나고 나서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17대 국회는 싸우지 않는 상생(相生)의 국회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는 달라지겠구나”하고 믿었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이전의 국회보다도 더 치졸(稚拙)하게 싸우는 국회가 되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평생 싸우는 데 관성이 붙은 국회의원인데. 어떻게 싸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서경(書經)’에 “습관은 천성과 더불어 이루어진다(習與性成)”라는 말이 있다. 관성에 의한 행동을 습관(習慣)이라고 하는데. 습관이 오래 되면 자신도 모르게 타고난 천성처럼 되어진다. 좋은 습관으로 관성이 붙으면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훌륭한 사람으로 발전하지만. 좋지 않은 습관으로 관성이 붙으면 결국 타락한 하등(下等)의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習 : 익힐 습 * 與 : 더불 여 * 性 : 성품 성 * 成 : 이룰 성)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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