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카파라치 뒤집어 보기..

[Paradise]

카파라치 뒤집어 보기

서울 성북구에 사는 H씨는 얼마전 경찰서 교통과에서 날라 온 우편물 하나를 받았다. 자신의 차량이 중앙선 침범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는 "교통법규 위반차량 신고관련 사실확인 요청서"라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속칭 '카파라치'의 덫에 걸린 것이다.
U턴을 하려던 H씨는 정체로 인해 텅 비어있는 유턴 차선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U턴 차선으로 진입을 했던 것이었다.

분명 위법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억울했다. 현장에서 경찰에게 적발됐을 때 보다 더 불쾌했다.


△ 카파라치는 고소득직종?

교통 법규 위반 현장을 촬영해 신고한 사람에게 경찰이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시행된 지 1년만에 신고 건수가 3백 57만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차량4대당 1대 꼴로 신고를 당한 셈이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00년 3월부터 2002년 3월까지 포상금은 84억4천5백12만원이 지급됐다고 한다. 이중 1백만원 이상을 받은 사람은 2천3천93명으로 나타났으며 월 1천만원 이상을 받은 사람은 63명이나 됐다. 신고보상금이 1건당 3천원인 것을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 수치들이 나타내는 것은 잘못된 도로구조나 신호체계를 먼저 정비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 포상금제는 전문 신고꾼만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찍는 걸까? 카파라치들의 기본 장비는 사진을 취미로 하는 매니아의 수준과 비슷하다. 수동 카메라이지만 AF기능이 되어야 하고 망원계 줌(zoom)기능이 있는 렌즈를 필수로 한다. 최소 15m에서 2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을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70~300mm 정도의 렌즈를 많이 쓴다. 망원으로 당겨서 번호판이 보이게 찍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날짜 기능.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위반은 일자와 시간이, 중앙선침범 갓길 신호위반은 연, 월, 일이 사진에 표기되어야 한다. 날짜가 없으면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으며, 그 날짜를 근거로 촬영한 날부터 7일 이내에 위반장소를 관할하는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큰 자본을 안들이고 일을 하는 게 그들의 특징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최소의 장비만을 갖추고 일을 한다. 가격은 저렴하되 필요한 기능을 갖추어 주면 된다. 가장 많이 쓰는 기종은 CANON의 EOS시리즈. 바디는 작고 가벼우며 빠른 셔터스피드가 지원되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다고들 한다. 니콘 801이나 니콘 60D같은 제품도 많이 사용한다. 대체로 처음 사진을 배워 보려는 사람들이 갖추는 장비와 흡사하다.

『 신고보상금을 지급하는 신고대상 위반항목은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 고속도로 버스 전용 차로 위반, 고속도로 갓길 통행 등 4개 항목이다.

법규위반차량의 사진을 찍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위반장소를 관할하는 경찰서에 하여야 하며, 다만 고속도로 전용차로 위반과 갓길통행에 대한 신고는 신고자의 주소지 경찰서에 신고자가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교통법규위반차량신고서」에 위반을 입증할 수 있는 연속의 사진 2매 이상을 붙여 신고하여야 하며, 동영상이나 캠코더 테이프는 접수하지 않는다.

중앙선 침범의 경우 편도 2개 차로 이상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가 진행중임을 알 수 있는 사진으로 제한하였으며, 신호위반의 경우 신호등과 번호판 식별이 가능하고 사진상으로 적색 신호 시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제출하여야 하며 고속도로 갓길이나 고속도로버스전용차로 위반의 경우 사진으로 고속도로 갓길 또는 전용차로 통행 중임을 알 수 있도록 다른 사진을 제출하되 ,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위반은 사진에 연,월,일,시분(일, 시, 분 가능)이 있어야 하며 갓길,중앙선침범,신호위반은 연, 월, 일이 나와야 하고 신고서에 정확한 시간을 기록하여야 한다. 』

위 사항은 경찰청 교통과에서 제시하는 기본 규정이다. 위 규정에서와 같이 사진 한장 만으로 위반 현장을 신고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러므로 두 장의 사진( 위반하기 전, 위반하는 순간 )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규정이라는 것이 경찰서 교통과에 위반 신고가 많이 밀릴 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반려되는 경우가 많고 신고 접수 건수가 적을 때는 쉽게 접수가 된다고 한다.

가장 신고 건수가 많은 강남, 서초구는 접수가 되더라도 포상금이 나오는데 한달에서 6개월까지도 걸린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신고건수가 적은 서울 외곽지역은 포상금이 일주일안에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H씨가 신고 대상자로 통지서를 받은 뒤 억울한 마음에 현장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아무리 주위를 봐도, 건물들을 둘러 봐도 자신의 차량을 촬영할 만한 장소로 보이는 곳은 없었다. 어이가 없다 못해 신기할 따름이었다.

카파라치들이 고속도로에서 촬영을 할 경우는 차안에서 보다는 숲속 같은 곳에 숨어서 촬영한다. 하지만 시내에서 촬영을 할 경우에는 주위 이목이 많기 때문에 주로 차안에서 많이 한다.

차안에서 촬영을 할 경우에는 썬팅이 필수인데 옆이나 뒷 유리는 5% 썬팅을 하고 앞 유리는 15% 썬팅을 한다. 이는 그들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하는 것인데 촬영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한도 내에서 (번호판이나 신호등이 명확하게 보여야 함.) 썬팅을 한다.

운전자들이 신고꾼에 대한 감정이 워낙 좋지 않을 뿐더러, 촬영 사실을 확인한 운전자는 절대 위반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번호판만 클로즈업된 사진]

[카파라치에게 중앙선 침범 위반현장을 찍힌 사진]

△ 파파라치도 한철..

전문 고발꾼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부분은 시행착오에 따른 손해이다. 중앙선을 넘는 치를 무조건 찍는다고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두 장의 사진 모두에 번호판이 선명하게 보여야 하고 황색선을 밟고 지나는 것이 분명히 사진으로 확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첫 장을 찍고 두번째 타이밍을 놓쳐서 이미 돌아선 차의 옆모습만을 찍거나 차바퀴가 황색선에서 떨어진 탓에 수백장의 사진을 고스라니 퇴짜맞은 경우를 고발꾼이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본일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치사하게 숨어서 남의 위반사실을 고해바치는 그들이 쉽게 돈은 버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돈이 많이 드는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찍기만 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름값이나 현상료, 인화비, 신고서 복사비, 기름값, 밥값등을 무시할 수가 없다. 또 찍은 결과물의 모든 것이 보상금을 탈 수 있는 대상이면 모르겠지만 초보들의 경우 촬영분의 많은 부분이 퇴짜를 맞곤 한다. 포상금이 장당 3000원인 사진 한 장의 원가가 최소 500원이 드는 것을 보면 공짜로 떼돈 번다고 말하기는 뭐한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감도 만만한게 아니다. 꼭 위반하다 걸린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다 발견한 신고꾼들을 보면 왜정시대 친일파 보듯 한다는 것이다. '할 짓이 없어서 그따위 짓이냐' 며 비난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제 자신이 사진에 찍힌것을 발견한 운전자가 달려와 위협하거나 덤벼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전문 신고꾼 김모씨는 "언제 누가 달려와 시비를 걸까 늘 조마조마한 심정"이라고 했고, 송모씨는 "차를 돌리려고 주위를 돌아보는 운전자들의 눈길이 꼭 나를 째려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스스로 꺼림직한 마음을 떨치질 못하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리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도둑질도 아니고 정부에서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떳떳한 일이라고 자부해 보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떳떳치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불편한 마음으로 그렇게 일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갈수록 줄어드는 일거리 때문이다. 신고꾼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경각심도 커지며, 따라서 무작정 위반하는 경우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택시나 영업용차량들은 위반건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벌금 고지서를 한번 받아 들면 그 후 또 다시 위반을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 걸리면 최소 벌금 6만원에 벌점 30점인데 누가 함부로 불법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행정기관의 도로 시설 보완도 신고꾼들에게 좋은 몫을 줄이는 요인이다. 경찰과 구청은 민원 소지를 없애기 위해 신고 건수가 많은 곳부터 유턴이 가능한 흰색 점선 구간을 늘리거나 아예 불법 유턴이 불가능하도록 노란색 차단봉을 설치하는 등의 시설보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러한 시설 보완으로 신고건수 전국 1,2위를 다투며 한 사람당 많게는 하루 500여장씩 신고했던 얘기는 이미 옛 얘기가 되었다.

갈수록 까다로와지는 경찰의 심사도 고발꾼에게는 큰 골칫덩이다. 신고가 많은 경찰서일수록 심사는 한층 깐깐해 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강남권의 신고 건수가 강남이외 지역의 신고건수의 수십배에 달하니 심사를 강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교통단속 목적이 뭔지..

시민들의 건전한 신고 의식 함양을 통한 교통질서 확립을 가치로 내걸고 시행했던 것이 전문 신고꾼을 양산해 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신문과 방송의 힘이 컸다. 연일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는 흥미로운 기사거리였다.

누가 위반을 많이 하는 길목을 하나 잡아서 한꺼번에 몇 천만원을 벌었다더라 하는 식의 기사였다. 이는 사진을 취미로 하고 카메라를 다룰 줄 알던 이들은 물론이고, 사진에 문외한 이었던 이들까지 전문 신고꾼으로 나서게 한 큰 계기가 되었다.

전문신고꾼의 등장으로 일반인들이 사진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각도 약간은 삐딱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문 신고꾼들이나 어떤 카메라로 어떻게 찍는지 잘 알지, 사진을 한다고 위반현장 촬영을 잘하는 것은 아닌데도 이 교통신고 포상금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주위에 사진을 취미로 하거나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나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받거나 조언을 구할 때 기분이 썩 개운치 만은 않다고 한다.

교통신고 보상제를 실시한 정부 당국은 분명 실업자들의 구제를 위해 신고꾼을 양산해 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뜻으로 시행한 것이었을 것이다.

신고꾼들은 정부 시책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에 틀린 것은 없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의 교통법규준수 수준부터 한번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말로 해선 안 듣기 때문에 법대로 하는 당국과 부당한 교통체계와 계도기간 없는 법집행을 통해 국민을 범법자로 내몰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견해 차이에서 잇속을 챙기는 것은 신고꾼들 뿐이다.

이것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적인 풍경"일 것이다.

취재/ 임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