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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방(건희랑 나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시인의 「귀천」-
‘건희’는 올해 아홉살 된 조카녀석 이름이랍니다.
하필이면 지금처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2002년 5월, 막내동생은 그 축제에서조차 이방인이 되어, 아버지와의 불화 끝에 건희 하나 달랑 남겨두고 먼길을 떠났지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쩌다 전화를 받게 되면 말 한마디 못하던 건희 녀석이, 얼마전부터는 전화도 곧잘 받고 “삼촌 언제와?” 하고 물을 때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정도 쯤이야 또래 아이들에겐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우리 건희는 부모형제도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탓인지 그동안 학교 생활이나 친구들 관계에 있어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지는 부분이 많았었거든요.
더구나 건희 할아버지께선 참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는 분이라서, 철없는 아이의 잘못에도 타이르기보다는 역정을 내시는 경우가 다반사랍니다. 따지고 보면 막내 동생이 사회생할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게 된 것 또한 그런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정작 당신께선 아직 그 잘못조차 깨닫지 못하시는 것은 물론, 한창 재롱을 떨어야 할 나이의 건희까지, 벌써부터 어른들 눈치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는 동생의 말을 들을 때마다 늘 마음이 아프답니다...
2004년 2월이었던가요. 꼬박 15년 3개월만에 떠난 세상 속으로의 소풍.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지만, 밖에서 맞이하는 건희와의 첫 만남에 대한 기대가 한층 더 저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습니다.
귀휴 첫째날, 마중을 나왔던 수원 동생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 차안에서도 내내 건희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며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기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던 건희…. 아빠를 닮았는지 처음 몇 분간은 꽤나 수줍어하면서 저의 주위를 빙빙 돌더니, 일단의 탐색전이 끝나고 자기편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건희 녀석은 제 머리에 올라타고 팔에 매달리고 넘어트리고 하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참 아이들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 번 있었던 합동접견에서 본 것이 전부였던 저를, 건희가 그렇게 반가워하리라고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이 가까와져서 동생 내외와 함께 방문을 나서려는데, 그새 정이 들어버린 건희 녀석은 제가 아주 가버리는 것인 줄 알고는 “삼촌 가지마, 가지마” 하고 애원을 하면서 다리를 붙잡고 늘어져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하네요. 삼촌이 아주 가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시 올 거라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달래며 떼어내려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아마도 가정 형판상 큰집 작은집 식구들의 왕래가 뜸했던 데다가, 오랫만에 들른 삼촌과 작은엄마 작은 아버지마저 금방 가버리려고 하니 어린 마음에는 떼를 써서라도 가지 못하게 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게지요.
수원 사는 둘째 동생이 건희를 자기 집에 데려갔다가 내일 다시 올라오기로 하니, 그제서야 건희 녀석은 울음을 그쳤습니다. 동생 집에 가면 건희보다 한 살 작은 조카 승준이도 있고, 장난감도 많아 건희가 참 좋아할 거란 생각에서 저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둘째 날, 고향 선산 성묘 길. 차에서 내려 좁게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승준이 녀석은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달라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확실히 부모 품에서 어리광부리며 자란 티가 났던 거지요. 그런데도 건희는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 채 저의 손에 매달려 힘든 내색도 없이 잘도 걸어 올라가데요. 그것이 그저 건희가 한 살 더 먹어서 그렇거니 하고 위안을 삼으려해도, 손톱 밑의 가시처럼 한없이 저의 마음을 쿡쿡 찔렀던 기억이 납니다.
오후 네 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선 밭일이라도 나가셨는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때 건희가 혼자말처럼 ‘할머니 하우스에서 일하시는데…’ 하며 의기양양하게 앞장서 걷는 모양이 너무나 대견스러워서, “건희야 삼촌이랑 할머니 일하시는데 가볼까?” 하고는 낮의 일도 생각나 건희를 번쩍 들어 무동을 태우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들판을 가로질러 비닐하우스를 찾아 갔습니다. 건희는 늘 다니던 길인양 꼬불꼬불한 길들을 향해 “이쪽인데, 저쪽인데” 하고 손짓을 해가며 잘도 가르쳐 주더군요. 그렇게 15분 쯤 걸어가니, 아침 저녁으로 열 동이 넘는 비닐하우스의 거적을 열고 덮어 주시며 하루 2만원을 받는다고 하시던 어머니께서 혼자 일을 하고 계시는 모습이 아스라히 보였습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벗어 나를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 송강 정철의 「훈민가」-
셋째날인 월요일에는 서초구 교육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독학사고시 학위수여식을 마치고, 건희와 함께 롯데월드엘 갔습니다. 사실 귀휴 기간 중에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 건희랑 놀이공원 가는 것이었거든요. 평일인데도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건희 녀석은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눈에 띄는 것마다 “삼촌 나 이거” “삼촌 이것도” 하면서 사달라고 졸라댔습니다. 특히나 편식이 얼마나 심한지 된장국이나 시금치 같은 것들은 입에도 대지 않던 녀석이 ‘롯데리아’라는 간판이 보이기만 하면 노래를 부르듯 햄버거를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건희가 조금은 걱정스러웠지만, 언제 또 사주겠냐 싶어 이것저것 많이 사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 밤 아홉시가 넘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다가 친구를 만나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낮에 그만큼 돌아다녔으면 피곤할 법도 한데, 건희 녀석은 밥도 먹지 않고 식당 한 귀퉁이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친구와 헤어져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가까운 시각. 차안에서 저의 손을 꼭 잡은 채 꾸벅꾸벅 졸던 건희 녀석은 집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장난감을 주무르면서 “삼촌 자고 가, 엄마방에서 자고 가” 하고 몇 번이나 보채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가끔씩 어머님께, 건희가 엄마를 찾지 않느냐고 여쭈어보면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고 하시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건희 입에서 ‘엄마방’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니 저는 깜짝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년에 한두 번 찾아와서는, 헤어질 때 우는 아이를 달랠 자신이 없어서 옷가지와 먹을 것 몇 가지만 몰래 맏겨 두고 도망치듯 사라져버리곤 했던 제수씨…. 과연 그 순간에 일곱살 우리 건희가 그렸던 엄마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밥상을 앞에 두고, 눈치 빤한 건희는 벌써부터 저와의 헤어짐을 예감했는지 통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하루 이틀 새에 습관처럼 가버리고 마는 삼촌들. 그 커다란 두 눈에는 서러움 묻어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밥 먹고 나면 삼촌도 갈 거잖아” 하면서 시무룩해 있는 건희를 보니 저도 목이 메어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는 그 순간만 지나면 아이들이란 금방 잊어버린다는 말로 저를 안심시키셨고, 건희한테는 저녁에 다시 오겠다며 몇 번이나 새끼손가락을 걸고 거짓 약속을 한 후에야 밥을 먹일 수가 있었습니다.
오전에 서울에서 볼일을 끝내고 오후 두 시쯤 되어 수원에 사는 동생 집으로 가려니, 아침에 투정부리던 건희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현 읍내 유치원을 찾아가 먼발치에서 보니 다행스럽게도 건희가 씩씩하게 잘 놀고 있더군요. 건희를 한 번 더 만나고 갈까 했지만, 그러면 또 헤어지기가 어려울 것 같아 결국은 건희를 다시 보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시월, 두 번째 귀휴 대부분의 시간들도 건희랑 보냈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평소에 건희가 갖고 싶어하던 ‘매미자석’과 ‘리모콘 차’ 등 장난감들을 사주고, 목욕탕에 가서 다른 엄마 아빠들처럼 등을 밀어주며 물장구를 칠 때는 까르르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건희의 모습이 너무나 천진난만했습니다.
목욕탕을 나와 큰 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롯데리아’ 간판을 보니, 문득 그 앞을 지날 적마다 햄버거를 사달라고 조르던 건희 모습이 생각나데요. ‘이번에는 떼를 써도 꼭 하나만 사줘야지’ 하며 내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그날은 건희가 가게 앞을 다 지나가도록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이상하여 “건희야 햄버거 먹고 싶지 않니?” 하고 물었더니 건희는 “롯데리아 망했어!”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왜 망했는데?” 하고 아주 궁금한 듯이 물어보자 건희는, “햄버거에서 벌레가 나왔어. 롯데리아 망했어” 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뒤돌아 자세히 보니 과연 가게 안은 어두컴컴하여 폐업을 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건희가 얼마나 기특하던지, 툭 웃음이 나오더군요.
조금 더 길을 따라 가다가는 옛날 생각이 떠올라 천원을 주고 붕어빵 세 개를 샀습니다. 둘이 하나씩 먹고 나서 건희가 “삼촌이 하나 더 먹어” 하고 양보를 하는데, 엄마 아빠가 없어도 이렇듯 남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예쁘게 자라준 건희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요. “삼촌은 배가 부르니까 건희가 다 먹으렴” 했더니 건희는 하나 남은 붕어빵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4박5일 휴가는 꿈같이도 빨리 흘러가 버리더군요. 마지막 날 밤, 오후 늦은 시간에 놀이공원을 나와 건희를 데려다 주는 택시 안에서 생각해보니 건희를 떼어 놓고 갈 일이 참으로 아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할 짓이었지만 약국에 들러 수면제를 사먹였는데도, 집에 도착한 건희 녀석은 오히려 정신만 더 말짱해 보이데요. 서울 형 집에는 여덟시 쯤 가겠다고 전화를 해 두었는데, 열 시가 넘어가자 조바심이 난 저는 “삼촌은 이제 돈벌러 가야 되는데…” 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 뜻밖에도 건희 녀석은 고개만 끄덕이고 나서 이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일년 반 정도의 세월이 더 지났을 뿐인데, 건희는 벌써 삼촌과의 이별에 익숙해졌던 걸까요. 저는 재차 “삼촌 간다” 하니까 건희는 “삼촌! 열 밤 자면 또 올거지?” 하고 다짐하듯 물어보더군요. “그럼! 돈 많이 벌어서 건희 선물 많이 사 가지고 올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과는 달리 목이 메어 그 말은 채 끝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집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어리게만 보였던 우리 건희가 어느새 아홉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답니다. 올해 들어서는 유난히 장난이 심해지고, 아직까지도 한글 받아쓰기가 서툴러 건희 담임선생님께서는 걱정이 대단하시지만 아무려면 어때요. 건희한테는 이렇게 든든한 삼촌이 있는데요. 언젠가는 건희도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엄마를 보고싶어 할 날도 오게 되겠지만, 그 아픈 마음 어루만지며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건희가 할머니께 전화를 건네드리며 저를 지칭하는 호칭은 늘 ‘집에서 안 자는 삼촌’ 이랍니다. 참 우습지요. ‘큰아빠’라거나 ‘둘째 삼촌’ 이라는 말도 있는데…. 아마도 건희에겐 삼촌들과 집에서 같이 자고픈 소망이 무엇보다 간절한 때문이겠지요. 그 동안 이 곳 생활이 지루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조만간 출소하여 건희랑 지낼 생각들을 하니 요즘은 시간이 참 더디 가네요.
“사랑하는 아우야!
그 곳에서나마 무거운 짐 훌훌 벗고,
건희가 바르고 훌륭하게 커가는 모습을 꼭 지켜봐 주렴“
마지막으로 우리 건희에게 들려주고픈 시 하나 적으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착하고 씩씩한 이건희 화-이-팅-!
당신은 키가 크고 나는 키가 작아요
그래서 우리는 나무같기도 하고 풀 같기도 해요
정말 당신은 걸어다니는 포플러 같이도 보이는 것을,
당신의 손을 잡고 가는 나는
갈대만큼 보일지도 모르는 것을…
당신은 다리가 길어서 나는 더 많이 걸어야 해요
당신의 곱은 더 걸어야 하는 것이기에
내가 더 많이 세상을 아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나는 자랑스레 얼굴을 들지만
거기 항상 당신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고 주름진 쓸쓸한 눈이에요
지금 내가 묻힌 당신의 손은 그 하늘만큼 커요
그 하늘이 묻힌 가을만큼도 해요
- 전봉건 시인의 「손」-
《끝》
2006년 8월 천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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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눈물이 흐르는데...긑까지 읽느라 힘 들었네요..옆에 좋은 조부모님과 삼촌이 계시기에 건희는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랄것입니다...건희! 화이팅!!
건희가 항상 밝게 맑게 컷으면 하는 바램이네여 삼촌이 있으니 다행이네요
건희....홧팅~~!!
사랑해주는 조부모님과 마음깊은 삼촌이 곁에 계셔주시니 밝고 씩씩하게 잘 자랄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