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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雜文房(잡문방) 스크랩 안철수의 전쟁
김항섭 추천 0 조회 109 12.07.16 17:2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2012년 대선이 있는 해다.....

요즘 여당에서는 박근혜대표가, 야당에서는 문재인대표가 신문지상 여론에 주목을 받고있는듯하다.

서울시장선거에서 국민의 여론을 주목받았던 안철수씨가 대권주자로 등장할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수는 없지만.....그에 대한 인식을 할수 있는 최근글이 있어서 한번쯤 관심을 가져본다....하지만 윤창중칼럼리스터는 차차기를 준비하라고 권하고 있다....나 또한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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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 김영삼대통령, 노무현대통령, 이명박대통령을 국민선거에 의해 투표로 뽑았지만, 세상이 바뀔것이라고 믿으며, 세상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변하지, 정치에 의해 세상이 180도 바뀔수 있는 것은 아닌듯 하다.....그러나, 역사속에서 존경할만한 리더, 정말 국민을 위해서 소신껏 일하는 리더가 출현하기를 기대하고 열망하는 마음이다.............

 

 

안철수의 전쟁

이경식 지음

휴먼앤북스 / 2012년 6월 / 292쪽 / 13,500원

 

 

▣ 저자 이경식

서울대 경영학과를,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 전기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 산문집 『나는 아버지다』, 평전 『이건희 스토리』, 경제학 에세이 『대한민국 깡통경제학』, 역사 에세이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경영학 입문서 『청소년 경영학 오딧세이』가 있다. 워런 버핏 자서전 『스노볼』, 오바마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안데르센 자서전 『내 인생의 동화』,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 『픽사스토리』, 『욕망하는 식물』, 『소셜애니멀』 등을 번역하였으며,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나에게 오라>, 연극 <동팔이의 꿈>, <춤추는 시간여행>, 드라마 <선감도> 등의 대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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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ort Summary

안철수……. 그동안 그는 우리 사회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서로 존중하고 위해주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살았으며, 또 그렇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고 노력하며 사회적인 발언을 해왔다. 대학생 시절 가난한 동네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던 때부터 치면 30년 가까운 세월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그를 새로운 사회의 전령이라 여기며 환호하고 지지한다.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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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가려면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할지 모른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고, 그를 의심하는 사람도 많으며, 또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도 많다. 과연 안철수는, 철들면서부터 가졌던 바람, 그리고 사람들이 그에게 거는 바람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정치인으로 나서기에는, 게다가 대통령 후보라는 막중한 짐을 지고 나서서, 자기를 반대하거나 의심하거나 또 자기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많은 약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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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안철수와 같은 서울대 80학번으로 동세대를 살아온 저자가 탁월한 통찰력과 예리한 분석으로 인간 안철수의 감춰졌던 본모습과 세계관을 읽어낸 책이다. 학창 시절의 모범생,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구로동에서 몸소 실천했던 의대생, 안철수연구소를 세우고 사회적 기업으로 경영했던 CEO, 돌연 유학을 떠났다 돌아와 교수가 되고, 청춘콘서트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심어준 청년들의 멘토, 그리고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키며 유력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를 하고 있는 현재까지 안철수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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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21세기 계몽주의자 안철수가 누구이며, 그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지를 심도 깊게 파헤치고 있다. 아울러 최근 강연을 통해 밝힌 3대 키워드(복지, 정의, 평화)를 분석해 안철수가 꿈꾸는 세상의 실체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안철수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뚜렷한 소신과 원칙이 보인다고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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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서문 / 프롤로그

1장 피터팬

2장 히포크라테스 선서

3장 영혼이 있는 기업

4장 계몽주의자

5장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간

6장 호모 폴리티쿠스

7장 안철수가 꿈꾸는 세상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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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선서

인생의 전환점

가톨릭학생회 봉사 활동, 사회 현실에 눈을 뜨다: 안철수는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해서 구로동의 한 성당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나는 봉사 활동을 하면서 책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진료소에 올 수 없는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을 찾아서 집으로 왕진을 갔을 때 답답한 광경들을 많이 보았다. 어느 날 관절염이 심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한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였다. 할머니가 거의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 1학년 손녀가 신문 배달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행복바이러스 안철수』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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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녀는 힘든 가장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했고, 할머니는 혼자서 죽음을 맞이했다. 뒤늦게 병문안을 갔던 성당 사람들이 할머니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 무렵 그는 처음으로, 돈의 가치가 사람의 가치보다 더 높을 수 있다는,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진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진실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또래의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의대생 안철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내 머리는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봉사하는 데에도 한계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봉사에 헌신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었다. (…) 배운 사람의 도리 같은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 답답했다. (『행복바이러스 안철수』 66~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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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사람의 도리’란 바로 지식인의 사회적인 역할 혹은 책임이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아픔을 해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특히 그 무렵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민주화투쟁이 노동자들의 처절한 복직투쟁과 맞물려서 전개되고 있었고, 대학생들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조직적으로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던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과연 의과대학 본과생이던 안철수가 노동운동에 투신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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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노동운동가로 투신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을 게 분명하다. 청소년용 자서전『행복바이러스 안철수』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고백한 것으로 그런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추정은 또 그가 했던 한 인터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5년 한 인터뷰에서, 이제 성공은 할 만큼 했으니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386세대가 그러했듯 사회의식이 좀 있었거든요. 저는 운동권 쪽으로 빠진 건 아니고 오히려 기본적인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어떤 일을 하면 사회로부터 내가 받은 것들을 다시 나눠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곽소경, “21세기 디지털 리더, 안철수의 마인드”,《여성조선》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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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과 ‘비운동권’: 1980년대의 대학생 혹은 청년을 가르는 기준 하나가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열망과 헌신을 기준으로 한 이런 분류로 보면, 노동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에 투신을 한 사람은 ‘운동권’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운동권’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적절하지 않았음은 나중에 드러난다. 비운동권에 속했지만, 학계, 예술계, 법조계, 교육계, 과학계, 의학계 등 각계에서 자기 전문성을 철저하게 연마한 사람들이 10년 혹은 20년 뒤에 자기 전문 분야에서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하며, 우리 사회가 낡은 관습을 깨고 발전하는 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은 이른바 ‘운동권’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자기가 받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주기 위해서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뇌와 노력에 힘을 입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말없는 다수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안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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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선서

의사 안철수 / 컴퓨터를 만나다: 1986년 2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식장에서 안철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일깨우는 희생과 배려의 정신을 이제 곧 온전하게 깨닫고 실천하게 될 줄, 졸업생 안철수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한편 안철수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건 본과 1학년이던 1982년 가을이었다. 1982년은 컴퓨터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1982년을 대표하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로 그해이기도 했다. 1년쯤 뒤인 1983년 겨울방학 때 큰맘 먹고 샀다. 당시에는 디스크 드라이브가 너무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우선 본체와 모니터만을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겨울방학 내내 컴퓨터의 매력에 푹 빠져서 살며, 컴퓨터 언어를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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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바이러스, 운명적인 만남: 안철수는 1988년 박사 과정 첫 학기 때 신문을 보고서 컴퓨터 바이러스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컴퓨터 바이러스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름부터가 재밌었고 호기심에 컴퓨터를 뒤져보았죠. 외신에 나오는 그런 거니까 설마 제 컴퓨터 속에 있을까 하고 봤는데, 50장 정도의 디스켓 가운데 세 장이 감염되어 있었어요. (…) 무섭기도 하고 호기심도 있고, 그래서 뒤져보기 시작했어요. (『안철수 경영의 원칙』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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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프로그램을 현미경처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바이러스를 관찰하고 분석해서 원리를 파악했다. 하지만 아직은 바이러스로 망가진 자료를 복구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한 주쯤 뒤, 본과 1학년 학생과 대화를 하다가 컴퓨터 바이러스 얘기가 나왔고, 이 학생은 바이러스 때문에 숙제한 내용이 다 날아갔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 말에 자극을 받은 안철수는 곧바로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헝클어놓은 논리구조를 반대로 그대로 되돌려놓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날 집에 가서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룻밤을 꼬박 새서 새벽녘에 프로그램을 완성했어요. (…) 그 프로그램이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V3의 첫 번째 버전이에요. (『안철수 경영의 원칙』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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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이렇게 만든 백신 관련 내용을 담아 월간지인 《마이크로소프트》에 기고했고, 이 글은 1988년 7월호에 실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안철수는 그것만으로 끝일 줄 알았다. 자기의 본업은 변함없이 의학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안철수는 국내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분야 1인자였고, 사람들은 그의 도움을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신종과 변종의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계속해서 나타났고,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하니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디스켓을 《마이크로소프트》로 보내서 복구시켜달라고 했고, 잡지사에서는 이렇게 쌓인 디스켓들을 모아 안철수를 찾아왔다. 백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처지여서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안철수는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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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결론이었다. 학부 때 구로동의 한 성당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할 때 그는, ‘지식인’으로서 자기가 가진 것 그리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땀을 흘려 이룬 성과물의 결과이므로, 이것을 자기보다 못한 사람, 혹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었다. 이런 인식은 그 뒤로도 바뀌지 않았고, 마침 우연한 계기로 박사 과정과 병행해서 할 수 있는 ‘무료’ 봉사 활동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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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안철수는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바이러스 백신 개발 작업을 병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모자라니, 없는 시간을 쪼개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여섯 시까지 세 시간 동안 바이러스 백신 만드는 작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종일 박사 과정 학생으로 살았다. 또 그렇게 만든 백신은 무료로 배포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은 3년 뒤 박사 과정이 끝났어도 계속되었고,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 교수로 취직해 학생들을 가르칠 때까지, 그리고 군의관 복무를 마치던 1994년, 대학교에 복직한 뒤까지 7년째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한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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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발생률도 빠르게 증가해서 하루에 혼자서 세 시간씩 투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한편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수로서 해야 하는 역할도 충실하게 할 수 없었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로 나설 것인가, 아니면 의사로 남을 것인가? 안철수는 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둘 다 재미있고, 의미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의대 교수는 자기 아니라도 많았지만 백신 개발자는 흔하지 않았다. 거의 자기 혼자뿐이었다. 그러니 그만큼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안철수연구소가 탄생했다.

 

영혼이 있는 기업

벤처기업

기업의 본질, 기업가정신: 안철수는 처음 안철수연구소를 비영리조직으로 만들려 했지만,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못해 간판을 올리지도 못할 처지에 놓이자, 차선책으로 주식회사 형태로 창립했다. 이때부터 안철수는 기업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가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업의 목적은 수익 창출인가? 이 문제들은, 그가 안철수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유학을 가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다. 다음은 이렇게 정리된 내용을 2005년 퇴임사에서 밝히는 부분인데, 이것이 바로 안철수가 말하는 ‘영혼이 있는 기업’의 전제조건이다.

“또한 창업을 하면서 ‘기업의 목적은 수익창출’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습니다.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객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든 다음에 그것을 판매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수익이란 목적이라기보다는 결과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따라서 저는 ‘기업에서의 수익창출은 결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질과 과정에 충실하다면 결과는 따라오는 것이라는 믿음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랩 홈페이지 > 회사 소개 > 설립자 소개 > 퇴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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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달러 줄 테니 회사를 파시오: 1997년 6월, 실리콘밸리의 한 백신 소프트웨어업체인 맥아피가 안철수연구소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맥아피는 ‘스캔’이라는 바이러스 백신 제품으로 유명했으며, 일본 유일의 백신 소프트웨어업체인 제이드를 사들인 때였다. 1,000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100억 원이었다. 당장 돈이 절박하게 필요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만일 회사를 맥아피에게 팔 경우 맥아피는 V3를 폐기하고 자기 제품을 한국 시장에 깔아놓을 터였다. 안철수는 “노!”라고 대답했다. 안철수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일말의 갈등도 없이 그 제의를 거절했다. 그 아무리 높은 금액이라도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보호와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앞에서는 나에게 수용조건이 되지 못했다.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35쪽)’

거금을 제시한 맥아피의 인수 제안 거부라는 이 일화는 안철수를 애국자로 만들었다. 안철수연구소도 국민기업이라는 훈훈한 이미지를 얻었다. 게다가 그해 말에 한국에서 이른바 ‘아이엠에프 사태’가 터지면서 알짜 기업들이 줄줄이 외국 자본에 팔려나가는 시점에서 안철수가 1,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뿌리치며 안철수연구소를 지켜냈다는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만큼이나 시원한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지점은 안철수의 애국심이 아니다. 기업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그의 가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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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안철수가 돈을 벌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안철수연구소를 세우지도 않았다. 자기가 가진 능력으로 사회에 봉사할 마음으로, 즉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일원으로서 일방적으로 혜택을 받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일부라도 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백신을 무료로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 일을 보다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 공익적 성격의 비영리 연구소를 세우려고 하다가, 여의치 않자 한글과컴퓨터라는 기업과 손을 잡고 기업 형태로 안철수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회사를 비싸게 쳐준다고 해서 옳다구나 하고 팔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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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자

청춘콘서트

박경철과의 만남: 안철수는 2009년 6월 17일 방송된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했고, 방송 직후에 한 일간지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를 ‘젊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9년 10월 24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리더십센터가 개최한 ‘글로벌 리더십 페스티발’의 일환으로 강연을 했고, 이 자리에서 박경철이 “전국 대학을 돌며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강의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안철수는 “중요한 기부 중 하나는 시간 기부인 것 같다. 고민해 보자”고 답했고, 청중들의 환호 속에서 대담 형식의 이날 강연은 끝났다. 이 강연을 전후로 해서 안철수는 본격적으로 강연에 힘을 쏟았다. 그즈음 안철수가 학교 강의가 아닌 외부 강연을 한 횟수는 석 달 동안만 100회가 넘을 정도로 왕성하게 강연 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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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멘토: 2011년 5월 22일 경희대 강연 때부터는 ‘청춘콘서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공연’에 나섰는데, 2011년 9월 9일 대구 경북대학교 강당에서 청춘콘서트의 마지막 공연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전국 27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국 2,730명 자원봉사자들의 참여 속에 총 43,996명의 청춘들이 열기를 뿜어냈던 2011년 ‘희망ㆍ공감 청춘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어떤 평자는 안철수의 ‘청춘콘서트’는 새로운 시민 정치운동의 한 양식이며, 안철수가 이를 통해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정치적인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았다고 분석했다. 또 어떤 정치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청춘콘서트를 통해서) 안철수는 정치 영역의 다수파나 소수파 모두 선뜻 개척하려고 나서지 않았던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바꿔내어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탁월한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본인은 이것을 ‘정치’라 칭하길 거부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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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꿈꾸는 세상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행복한 세상

‘안철수 미스터리’: 2011년 11월 21일에 한 정치평론가가 일간지에 “안철수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정치시평을 썼다. ‘안철수 교수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사람도 없지만, 그만큼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인물도 찾기 힘들다. 우선 안 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힌 적이 거의 없다. 단지 한나라당은 응징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 것이 거의 유일한 것 같은데, 이마저도 한나라당이 도대체 어떤 측면에서 응징되어야 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 이것뿐이 아니다. 본인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말하는데, 여기서도 자신의 대북관은 어떠하고 지금의 경제 상황에 대한 판단은 어떠하다는 입장 표명을 들을 수는 없다. (…) 여기서 가장 큰 미스터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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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의 도움을 받아 정치구도를 ‘창출’하고 있는 걸까? (…)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이 있다. 신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혀 우리 국민도 안 교수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식의 정치를 펴나갈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기업 해 봤으니 국가 운영도 잘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막연하고 잘못된 ‘또 한 번’의 기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신율, “정치시평-안철수 미스터리”, 《내일신문》, 201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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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필자의 주장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까지 누르는 강력한 대권 주자인 만큼 어서 정책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혹 ‘제2의 이명박’일지도 모르는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유권자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주면 큰일 아니냐는 호들갑인 동시에,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진 채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안철수를 확실하게 검증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사실 안철수로서는 그런 요구가 난감했다. 출마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펼쳐서 국가 운영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으라니……. 그러니 결론을 내릴 때까지 잠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잠행 속에서 그의 짧은 발언들은 다음과 같이 이따금씩 뜨문뜨문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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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일 “신당 창당이라든지, 강남 출마설 등 여러 가지 설이 많은데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조금도 그럴 가능성이 없습니다.”(안철수연구소 합동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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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8일 “정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열정을 갖고 계속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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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저 같은 사람까지 정치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합니다.”(빌 게이츠와의 면담 등 미국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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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우리 사회의 발전적 변화에 어떤 역할이 좋은 것인지 계속 생각 중입니다. 물론 정치도 그중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안철수재단 설립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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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뜻은 고마우나 정치 참여를 유보하겠습니다.”(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 제의를 거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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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만약 정치에 참여한다면 특정한 진영 논리에 휩싸이지 않고 공동체적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겠습니다.”(서울대학교 문화관에서 열린 ‘제2회 소통과 공감’ 강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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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용기 있고 신념을 가진 여성, 인재근과 함께 도봉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기를 희망합니다.”(총선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인재근 후보를 트위터로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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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긍정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가 모든 행동의 판단 기준입니다. (대선 출마는) 제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게 주어지는 것입니다.”(대학생 강연에서 질문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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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이번 선거의 의미는 경쟁과 대립의 시대에서 조화와 균형의 시대로 넘어가는 커다란 변곡점입니다.”(19대 총선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영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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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3대 키워드 - 복지, 정의, 평화: 마침내 2012년 5월 30일, 안철수는 오랜만에 대중 앞에 나타났고, 사람들은 그가 이번에는 어떤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연장인 부산대학교 경암체육관, 노타이 차림의 안철수가 연단에 서자 청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청중의 환호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안철수가 “여러분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청중의 환호성은 그칠 줄 몰랐다. 한참 만에야 안철수는 고등학생 시절 야구부 응원 갔던 이야기부터 시작했고,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안철수가 꿈꾸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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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낸 책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저 개인의 문제, 회사 문제, 우리 회사가 속했던 산업 문제, 나아가 국가가 당면한 문제 등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8년 전에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이 지금도 여전히 잘 팔립니다. 씁쓸합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선진국이 2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해서 해결한 과제를 우리는 50년 만에 해결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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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통계수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살률이고 또 하나는 출산율입니다. 자살률은 OECD 1위, 1년에 15,500명이 자살합니다. 미래를 전망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출산율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거의 최하위 수준입니다. 이 두 개의 통계수치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면 좋을까요? 현재의 모습을 거꾸로 생각하면 됩니다. 행복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입니다. 이런 사회를 이루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해야 할까요? 저는 이 방법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하겠습니다. 바로 복지, 정의, 평화입니다. 이것을 이룩하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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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키워드, 복지. 제가 말하는 복지는 단순하게 분배만 하고 소비만 하는 좁은 의미의 복지,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일자리와 복지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선순환되는 넓은 의미의 복지입니다. 복지의 핵심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서 마음 편하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안한 요소가 많습니다. 주거, 건강, 보육, 교육, 일자리, 가계부채, 노후 등……. 그리고 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칩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정신이 사라진 것도 모두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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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키워드, 정의. 정의로운 사회라고 하면, 세 가지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 서는 것, 어떤 반칙이나 특권이 없을 것, 마지막에 결승선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렸을 때 패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제도상으로 보면 의무교육ㆍ평준화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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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키워드, 평화. 복지와 정의는 평화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과 정전 상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평화 체제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통일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평화를 지키며 평화 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 세 가지의 키워드를 놓고 볼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과 합의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상식적인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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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꿈꾸는 세상: 안철수의 역사의식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다음은 그가 2004년 4월에 쓴 칼럼 “조폭 영화와 국민 정서”의 한 부분이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백성들은 가진 자, 배운 자, 힘 있는 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신당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까운 역사만 살펴보더라도 임진왜란 때 선조는 백성들을 버려두고 피난길에 올랐으며, 6.25 전쟁에서도 서울시민들은 버려둔 채 대통령만 빠져나간 다음에 한강다리를 폭파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연이은 군사정권하에서의 공권력 남용,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리 소식을 접하면서 국가와 리더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국가의 권위, 제도, 법보다도 우리끼리의 의리가 우선이라는 의식이 싹트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랩 홈페이지 > 회사 소개 > 설립자 소개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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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서 말하면, 가진 자와 배운 자 그리고 힘 있는 자가 못 가진 자와 못 배운 자, 그리고 힘 없는 자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안철수는 바란다. 안철수가 바라는 세상은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적인 이념을 넘어서는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공동체 자체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을 위해서 존재한다. 안철수는 이것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고 표현한다. 안철수는 실제로 본인 스스로 직접 그린 세상을 창조했었다. 안철수연구소가 바로 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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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

경제 민주화의 두 갈래 길: 경제 민주화의 진정한 의미는 사회적인 약자를 배려한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 민주화를 바라볼 때, 사람들이 말하는 경제 민주화는 두 갈래의 길로 나뉘었다. 하나는 ‘사회-재벌 대타협론’이고, 또 하나는 ‘재벌개혁론’이다. 전자는 기본적인 목적을 복지국가에 둘 때, 재벌이라는 체제가 효용성이 있으므로 이 체제를 용인해 주는 대신, 재벌에게서 받는 세금을 늘려 복지 지출의 재원으로 충당하자는 주장이다. 한편 ‘재벌개혁론’은 재벌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공정경쟁을 해치고 경제 양극화를 초래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규정하며, 재벌의 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해서 특권과 특혜를 청산하고 독점과 과점을 규제하자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안철수가 그동안 줄곧 주장해 왔던 경제 민주화는 이 두 개의 주장 사이의 스펙트럼에서 어디쯤 위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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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ㆍ중소기업을 대기업의 동물원에서 해방시켜라: 우선, 안철수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주주 자본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고, 또 그런 신념의 결정체가 지금의 안철수연구소이다. 이런 사실을 그는 2011년 4월에 한 일간지를 상대로 한 인터뷰에서도 분명하게, 또한 공격적으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주주 중심 경영이 자본주의의 정답은 아니다. (…) 주주 중심 경영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된다. 많은 수익을 내고 주주에게는 보탬이 되지만,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건강을 해치는 나쁜 존재, 즉 범죄 집단이 되는 것이다. (“한국 경제 고목 숲, 불나면 타버린다”, 《한겨레》, 201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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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대기업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고 그는 지적한다. 벤처중소기업들이 ‘삼성동물원’, ‘LG동물원’, ‘SK동물원’ 등에 갇혀서 대기업의 착취를 받다가 말라죽어 가는 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라고 했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불공정 계약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결국 몸담았던 동물원에서 죽어나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본인이 IT 벤처업계에서 대기업의 하청을 받으며 안철수연구소를 성장시켰기 때문에 숱한 경험 속에서 목격한 사실에 바탕을 둔 인식이었다. 이렇게 경제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되어 있을 때, 새싹은 자라지 못하고 고목만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데, 이 숲에 불이 한 번 나면 숲 전체가 다 타고 새싹도 없으므로 그것으로 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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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철수는 2012년 5월 30일에, 자기가 정치를 한다면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어서 제시했던 ‘복지, 정의 그리고 평화’라는 개념 가운데, 복지가 단순한 시혜 차원의 복지가 아니라 선순환 구조의 복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예를 들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도 그는, 잘못된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초과이익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시혜적으로 베풀어주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온존시키는 것일 뿐이라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관계가 과정에서부터 공정하도록 바로잡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바라본다. 안철수는 이런 문제의식을 이미 2000년대 초부터 가지고 있었고, 이런 문제를 안철수연구소라는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2005년에 CEO직을 버리고 공부를 하러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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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3년 뒤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가 했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벤처기업이 망해나가고 기업가정신이 위축되어 국내에서 거래할 중소기업이 없어지면, 대기업은 외국으로 나간다. 이렇게 사상 최대의 수출을 이루나, 이는 국내 중소기업을 돕는 게 아니라 해외 중소기업을 돕는 꼴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정말 불행하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안철수는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문화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덕적인 결함이 있지 않는 한,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풍토를 만들어서 기업가정신이 사회에 왕성하게 넘쳐나도록 해야만, 대기업으로서는 손을 쓸 수 없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이런 벤처ㆍ중소기업의 창의성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 대기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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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경제 민주화는, 복지의 핵심을 중소기업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역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회-재벌 대타협론’과 다르다. 한편 ‘재벌개혁론’과는 시장 질서를 공정하게 만들고 특혜와 편법을 없애자는 점에서 겹쳐지는 부분이 있지만, ‘1원 1표’의 주주 자본주의에는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사회-재벌 대타협론’ 쪽으로 기울어 있다. 즉 안철수가 바라고 또 실현하고자 하는 경제 민주화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와는 말할 것도 없고, IMF 체제가 상징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전제로 해서 개혁을 추진하려다 실패했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또 이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극한까지 몰고 가려고 하는 이명박 정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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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놓고 한국의 경제구조를 새롭게 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그에게 정책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사실 안철수는 이미 자기 카드를 내보였다. 그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바로 이런 점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의 뿌리가 있다고 어떤 논자는 파악하기도 한다. 이 평가를 더 확장하면, ‘안철수 현상’은 이명박 정부 및 여야 정치권에 신물이 난 국민, 특히 청년층에 부는 일회적인 바람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렬하게 반기는 변화의 시대적 요구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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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장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재편하겠다고 주장하는 모순을 그는 어떤 해법으로 풀 수 있을까? 이런 청사진이 4대강 개발 사업은 친환경 사업이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대형 사기극이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어떤 정책으로 잠재울 수 있을지는 그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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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칼럼리스트는 그에게 차차기를 준비하라고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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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그가 정치의 본질에 대해 과연 얼마나 파악하고 있기에 대권을 겨냥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지도가 높고, 인기 관리에 성공하고 있는 걸 보면 정치에 대해서도 달통한 것 아니냐?

들려주고 싶다. 노벨물리학 수상자 아인슈타인은 조국 이스라엘 독립 후 제2대 대통령 제의를 받았지만 한 마디로 거절했다.

“난 인간에 대해 모른다!”

인간을 움직이는 ‘종합예술’, 그 정치라는 걸 연구소에서 성공한 학자가, 사업에 성공한 벤처사업가가 겪지 않고서도 술술 할 수 있을까?

안철수, 겸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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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가 국정운영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에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

샐러리맨의 신화로까지 불리며 대기업 회장도 지냈고,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조차 임기 내내 국정난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철수는 과연 조롱할 자격이 있을까?

공부의 달인이고, 인기 유지의 달인이라고 해서 국정운영의 달인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대한민국의 IT 영웅이 왜 굳이 연구소에서 뛰쳐나와 정치판에 몸 담으려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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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안철수의 정면대결을 회피하며 계속 타이밍만 찾는 지나친 ‘심사숙고형 리더십’은 활어처럼 펄펄 뛰어대는 대한민국 정치판 생리에 결코 부합하기 어렵다.

정치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제1의 덕목은 결단력! 단호하고도, 고독한. 지금까지 대권에 도전한다, 안한다는 단순한 말 한마디조차 분명히 입에서 꺼내지 않고 있는 안철수.


안철수에게 마음을 비우라고 권고하고 싶다.

이쯤에서 정치권력의 단맛에 대한 유혹, 내가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최적격자라는 과대(過大)사고를 일단 접고 자신을 향해 진중히 물어보라!

나는 과연 대통령이 될 준비가 돼 있는가?
안철수, 당신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돼 있다고 확신하는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안철수는 이번 대선이 아니라 앞으로 5년 후, ‘차차기(次次期) 대통령’을 지금부터 준비하라!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겠다는 당신의 충정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이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안철수, 당신은 아직 젊은 나이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윤창중 칼럼세상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cjyoon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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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7.16 20:14

    첫댓글 一國 不世出의 英雄으로써 각광을받는 안 철수원장의 진면모를 일목요연 훑어보니,
    이제까지 그의 국가에 기여한 인생역정은 국민의 추앙을받고도남을만 합니다.
    최대의 관심사인 대권욕에 대해서는 윤창중 정치평론가의 진단은 정국의 의표와 같고,
    고뇌와 진정성이 묻어나는 충고라 생각하여 전적으로 동감하는바입니다.
    時國觀에 대해 付一言할수있는 기회같아서 고맙습니다.

  • 12.09.29 15:28

    전 차기를 준비하시라고 권하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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