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 연구
거룩과 회복의 비전: 죄로 얼룩진 세상에 다가올 그 나라를 바라보며 새로운 영혼의 옷을 입게 합니다.
◙ 記者: 스가랴(Zechariah) 선지자. 어떤 학자는 스가랴서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문체가 다르다고 해서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Jeremiah)나 다른 사람이 썼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복음주의 성경학자들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1(“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에 그 사실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가랴’(Zechariah, ‘하나님이 기억해 주신다‘)란 이름은 구약성경에 同名異人이 30명이나 등장할 만치 유대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입니다.
⑴ 제사장가문 출신의 선지자
1:1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에서 영어로는 ‘the son of Iddo’(잇도의 아들)로 표기됩니다. 손자도 아들이라고 표기하던 유대인의 습관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벤’(ben)은 친아들, 손자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서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사장들의 명단을 열거합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잇도와 긴느도이와 ...”(느헤미야12:1~4),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느헤미야 12:16)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가문인 잇도 족속의 대표자는 스가랴입니다.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와 손자사이에 아버지(베레갸, Berechiah)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베레갸가 일찍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음에도 역경을 이기고 자기의 소명을 훌륭하게 수행한 사람이 바로 스가랴입니다.
⑵ 바벨론 포로 귀환시대에 활동한 선지자
스가랴는 학개(Haggai), 말라기(Malachi)와 동시대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던 시대에 함께 활약했습니다. 특히 학개는 기성세대를 대상으로 성전재건을 촉구했고, 젊은 스가랴는 신세대를 대상으로 사역했을 것입니다.
“그 소년(젊은이)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2:4)고 했습니다.
⑶ 민족과 세계를 동시에 가슴에 품고 살던 선지자
스가랴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창을 통하여 세계를 내다보고 있는 비전 메이커(vison maker) 스가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14:9), 메시아가 왕이 되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꿈을 가졌습니다.
⑷ 성전을 위하여 의롭게 순교한 선지자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기를 열망하고 예언활동을 하다가 결국 성전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Zechariah, 스가랴를 말함)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마23:35)
◙ 스가랴서(13장)의 네 가지 특성
⑴ 소선지서 12권중에 가장 길고 난해한 책입니다.
스바냐(3장), 학개(2장),말라기(4장)에 비해 분량이 많습니다. 읽다보면 내용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⑵ 문체가 다양한 책입니다.
다양한 문체가 등장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으로는 그 차이점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히브리어로 보면 前半部는 주로 산문체 형식, 後半部는 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환상과 예언이 등장하고, 사건에 대한 평범한 서술이 있는가 하면 운율 섞인 노래들이 있습니다.
⑶ 신약성경에 많이 인용된 책입니다.
신약성경에 총71회 인용되었고 그중 요한계시록에만 28회나 인용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에스겔서 다음으로 많은 횟수입니다. 그래서 스가랴서는 “구약의 계시록“이라고도 합니다.
⑷ 교리적 스케일이 광범위한 책입니다.
특히 기독론(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들), 교회론(성전재건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공동체’(신약교회의 묘판)를 형성한다는 사상 속에 내재됨), 종말론(궁극적으로 시온이 회복될 것)을 다룹니다.
◙ 스가랴서의 기록연대
“다리오 왕 (바벨론을 패망시킨 바사(페르샤)의 다리오(다리우스)왕 1세 때(주전521~486)2년 8월에“(1:1)
주전536년경 바벨론의 포로에서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의 인도아래 고국으로 돌아온 회중의 숫자는 42,360명(스2:26)이고 그 외에 노비와 노래하는 남녀까지 합치면 약5만명 가량 됩니다. 귀환한 사람들 가운데 학개와 스가랴도 있습니다. 고토로 돌아올 때의 꿈은 재건된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온에 돌아온지 15~16년이 지났지만 꿈에 그리던 성전재건은 이루지 못하고 주전520년(다리오 왕 2년8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하자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이보다 두달 앞선 다리오 왕 2년6월(주전520년 8월29일)에 이미 학개 선지자도 성전의 재건과 회복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학자들은 스가랴 선지자가 주전520연 11월~518년12월까지 약2년 동안 매우 왕성하게 활동했으리라 추정합니다.
스9~14장은 노년기에 받은 예언을 기록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학개와 스가랴의 열정으로 주전515년경 성전이 봉헌되고 나서 조금 있다가 스가랴서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 스가랴서의 주제
“성결“과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성결해야 회복시켜 주십니다. 즉 회복의 결과는 성결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고, 삶의 場인 교회와 민족이 회복된다면 그 결과는 성결로 나타납니다.
⑴ 성결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3:4),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3:9) 이것은 성결의 선언입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3:1)를 근거해서 찬송가190장(샘물과 같은 보혈은)이 작사되었습니다. 더러움을 씻는 샘물이 터져 나온다(열린다)는 “성결”입니다.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14:20).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했습니다.
⑵ 회복
8장은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8:3). ”회복되리라“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8:20~2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8:23).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本處)에 있으리니(‘본래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된다‘=회복)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14:9~10).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8:10). 이것이 회복입니다. 죄를 포기하고 거룩해질 때 비로소 회복이 가능합니다.
◙ 스가랴서의 구성(네 부분)
스가랴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침울한 시대에 도리어 민족과 세계에 대한 밝고 놀라운 비전을 주시고 회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⑴ 서론(1:1~6)
회복의 열쇠에 관한 내용입니다. 1:3은 핵심. 회복의 열쇠는 회개입니다.
"돌아오라“는 히브리어로 '슈브'(Shub)는 하나님의 외침 중 ”내게로 돌아오라”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님께 돌아와야 할 네 가지 이유는
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회복을 위해 돌아와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1:2).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1:3).
회개는 방향전환입니다.
②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돌아와야 합니다.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1:4). 열조(조상)라는 말이 4번 반복됩니다(2,4,5,6절). 조상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③ 짧은 인생을 가치있게 살기 위해 돌아와야 합니다.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1:5). 악한 길 악한 행실 가운데 살던 ‘조상’들에게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들도 지금 다 인생의 뒤안길로 가 버렸습니다.
④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돌아와야 합니다.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1:6).
현대어로 잘 번역된 성경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돌쳐”는 “돌이켜 회상하여“란 뜻입니다.
⑵ 8가지 환상(1:7~6:15)
▶ 환상의 세 가지 기본틀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신 후 석달 반이 지나 다시 하나님 말씀을 8가지 환상으로 받은 것은 다리오 왕 2년11월(우리 달력으로 약2월. 주전519년 2월) 인데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 회복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8가지 환상에서 두 번째 환상을 빼놓고는 3가지 뚜렷한 틀(하나의 공식)이 있습니다.
㉠환상을 봄(“내가 보니”)
㉡환상에 대한 질문(“그것이 무엇입니까”)
㉢환상에 대한 대답(“내게 이르되”)
“내가 밤에 보니(1:8)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1:9)
“대답하여 가로되”(1:10)
18절에도, 2장1절에도, 3장에도, 4장에도, 5장에도, 6장에도 나타납니다.
▶ 홍마 탄 사람의 환상(1:7~17)
① 환상을 본 시기
“내가 밤에 보니“(1:8). 그 당시는 어두운 밤. 암흑의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박사는 ‘의미요법’을 창안했는데 독일 나치수용소에서 옥고를 치르며 동료 유대인 2명의 행동을 관찰한바, 그의 메모에 ”한 사람은 차가운 감옥의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한 친구는 감옥 저 건너편 하늘을 바라본다“고 썼다.
성경 속 비전의 사람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엎드려 기도했다.
② 환상의 궁극적 메시지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1:16~17).
궁극적 메시지는 ”성전재건과 예루살렘 성의 회복“ 두 가지입니다.
③ 환상의 주인공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1:8). 홍마 탄 사람은 11절에서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영어성경에는 정관사 the를 붙여 ”주님의 그 사자”(the Angel of the LORD)이므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라고 봅니다.
화석류나무(myrtle trees)는 히브리 사람들이 ‘하닷사’(hadassah=‘에스더’의 히브리식 표현)라고 하는데, 주로 초막을 지을 때 많이 씁니다.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이긴 하나, 이스라엘 백성이 좋아하고 애용하던 화석류 나무도 그 백성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말합니다.
④ 환상의 조연들
1:8절에서 홍마(紅馬)는 ‘전쟁과 관련된 천사들’, 자마(紫馬)는 ‘전쟁과 평화가 섞여있는 중간상태와 관련된 천사들’, 백마(白馬)는 ‘평화와 관련된 천사들’이라고 하겠습니다. 1:11절에는 환상의 조연들인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환상을 전달하거나 해석도 하며보고도 하는 역할을 합니다.
⑤ 환상 속의 열방들
학개2:21에서는 “열방이 소요하고 심판을 받아야” 비로소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됩니다.
스가랴서의 보고는 “열방이 고요하고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방의 평안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1:15절)에서 잠깐 쓰신 몽둥이와 막대기와 채찍으로 바벨론, 앗수르를 사용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 백성을 치라. 내백성이 정신을 차리도록 하라”고 하여 깨우치는 역할만 하면 됐는데 그들은 지나쳤습니다.
⑥ 환상 속의 이스라엘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1:14). 질투는 하나님의 열심이요 애정입니다. 사랑과 질투는 똑같은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에 하신 네가지 약속(16,17절)은
㉠“메시아를 보내리라“
㉡“성전을 회복하리라“
㉢“예루살렘 성의 지경이 넓혀지리라”
㉣“예루살렘 도성이 복을 회복하리라“
▶ 네 뿔과 네 공장(工匠)의 환상(1:18~21)
네 뿔의 환상 :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뿔= 권세. 세력. 힘. 능력)이 보이기로”(1:18).
“내 구원의 뿔 되신 하나님”(시18:2). “뿔을 들지 말라”는 ‘권세를 행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네 뿔의 정체 :
네뿔의 3가지 학설은 ㉠주변의 4대 적대세력(앗수르. 바벨론. 애굽. 아람), ㉡주전605년에서 예수님 재림 때까지 4대 세력(바벨론. 메대와 바사. 그리스. 로마),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숫자 4는 ‘세상’. 사방은 동서남북)
네 공장(工匠)의 환상 :
공장(工匠)은 ‘장인’의 의미로서 히브리어는 '카라쉼'(Charashim)인데 나무를 가지고 장이의 일을 하면 목공. 철을 가지고 장이의 일을 하면 철공이 됩니다. 여기서는 철공을 의미한 가능성이 많습니다.
네 공장(工匠)의 역할 :
네 공장(工匠)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들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적대시하는 세력들이 나타날 때 그 대적들을 다루기 위해서 준비하신 자들입니다. 네 개의 뿔이 일어났을 때 네 개의 공장(工匠) 환상을 보여주심은 위기나 역경이 있을 때 반드시 하나님의 준비하심도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 척량줄을 잡고 있는 사람의 환상(2장)
척량줄의 의미:
기독교는 계시(啓示, ‘뚜껑을 연다’는 뜻)의 종교입니다.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척량(尺量) 줄을 그 손에 잡았기로”(2:1). 세 번째 환상은 척량줄을 잡고 있는 사람의 환상입니다.
이미 첫 번째 환상에서 ‘척량 줄‘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1:16).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은 “예루살렘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약속했습니다. ’먹줄‘은 다른 말로 ’척량 줄‘ 곧 ’재는 줄’입니다. 새로운 것을 건설하기 위해서 ‘먹줄’을 칩니다.
첫 번째 환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내용들을 세 번째 환상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공개합니다.
척량 줄을 잡고 있는 한 사람의 정체:
예수님이 척량 줄을 잡고 있습니다. 첫 번째 환상에서 붉은 말을 타신 예수님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보이실 때 사람이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스가랴가 “네가 어디로 가느냐”(2절)=“당신께서 어디로 가십니까”로 물었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長廣, 길이와 넓이)을 보고자 하노라 할 때에”(1:2). 환상의 내용은 예루살렘의 재건과 확장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환상의 전달자: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매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예수 그리스도)를 맞으며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계시된 사건의 긴박성) 그 소년(=스가랴)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2:3~4).
천사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세 번째 환상의 세가지 실현단계
㉠ 예루살렘의 확장(1~5):
“성곽 없는 촌락(a city without walls )과 같으리라”(1:4). 성곽이 없어질 정도로 사람과 육축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안전의 표상인 성곽이 없다면 큰일입니다. 그러나 다음으로 불성곽이 되어 주리라고 하십니다.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 (a wall of fire)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1:5).
여기서 하나님의 두 가지 약속을 봅니다.
즉 “내가 불성곽이 되어 주리라”는 것과 “내가 너의 영광이 되리라”입니다.
현대인들의 성곽은 돈이며, 골리앗의 성곽은 칼과 병기(거대한 갑옷과 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영광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영광'은 히브리어로 가봇(chabod)이고, 가봇이 떠나면 이가봇(ichabod)이 됩니다(삼상4:21).
㉡ 포로시대의 종말(6~9):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거니와 이제 너희는 북방 땅(바벨론)에서 도망할찌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2:6).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별명은 "디아스포라"(diaspora)의 민족, 흩어진 백성입니다.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찌니라”(2: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apple of his eye)를 범하는 것이라 (2:8). ”내가 너희를 눈동자같이 지켜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시17:8).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신32:10).
㉢ 메시아 시대의 도래(2:10~13):
하나님은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2:10).
‘임하여 거할 것’이라는 메시아의 약속입니다. "거한다"는 히브리어로 샤칸(shakan)이고, 구약 예배의 중심인 장막(帳幕)은 미슈칸(mishkan)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4)
▶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3장)
네 번째 환상입니다. “큰대제사장 그리스도의 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대제사장이 있으니”(히4:1·3). 히브리어로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번역하면 “예수“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와 다른,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스가랴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3:1).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우편에 서 있다는 것은 주님의 우편자리를 점령한 것처럼 여호수아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대적자”, “참소자”인데 성도를 대적하는 방법은 참소(讒訴)입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계121:10). 스가랴는 대적하는 사단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3:1~2).
하나님이 사단을 책망하십니다. 사단은 검사역할을 하여 죄인을 법정에 기소하지만 피고 옆에 변호사(대언자) 예수님이 있어서 죄인을 변호해 줍니다. 마귀의 참소가 있어도 주님의 변호를 경험할 때 우리는 바울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메시아를 세 가지 이미지로 표현하면
종:
메시아는 “종”(servant)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오신 “내종”이라고 하십니다.
순:
“순”은 가지입니다. 성경에서는 메시아를 ‘가지’라고 표현합니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Branch)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렘23:5).다윗의 후손 가운데 가지와 같은 새생명의 싹이 나올 것입니다.
돌:
부드러운 ‘순’과 강하고 견고한 ‘돌’은 대조적입니다. 보배롭고 견고한 돌 위에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세워질 것입니다.
▶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4장)
성전재건이 주제입니다. 다섯 번째 환상입니다.
순금등대는 ‘메노라’(menorah,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쓰는 가지 달린 촛대)와 유사합니다. 순금 등대 꼭대기에는 ‘주발’(bowl)이 있는데 ‘기름을 붓는 곳’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일곱 등잔”으로 기름이 공급됩니다. 또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파이프를 통해서 일곱 촛대에 불이 밝혀짐)이 있습니다. 순금등대(스가랴 당시에는 ‘이스라엘 언약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일곱 촛대는 하나님의 교를 상징하며 신약시대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사도요한의 환상은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1:20).
찬송가 276장에는 교회의 역할을 ‘등대’라고 표현합니다.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4:3).
감람나무에서 기름을 짭니다. 기름은 주발에 붓습니다. 등대가 지속적으로 빛을 발하자면 기름을 계속 공급해야 합니다. “감람나무“는 “무한한 공급의 원천”을 상징합니다.
▶ 두루마리와 에바 속 여인의 환상(5장)
여섯 번째의 ‘두루마리 환상’과 일곱 번째 ‘에바 속 여인의 환상’입니다.
스가랴서의 처음 다섯가지 환상은 ‘긍정적 환상’(회복과 축복의 메시지)들이고, 남은 세가지 환상은 매우 ‘부정적 환상‘입니다. 상호간 의사소통도 먼저 충고와 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밭을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두루마리는 장(길이)이 20규빗(약10m)이고, 광(폭)이 10규빗(약5m)입니다. “어른의 손끝부터 팔꿈치까지”를 한 규빗(약45cm)이라고 합니다.
두루마리의 크기와 성소 현관 크기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전의 성소 앞 낭실의 장(長)은 전의 광과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광(廣)은 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왕상6:3).
옛날 제사장들은 성소 현관에서 율법을 읽었습니다. 두루마리(scroll)의 크기가 성소 앞 현관의 크기와 일치하는 것은 특별한 메시지를 주고자 함이라고 생각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두가지 대표적 죄를 지적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범했던 “도적질”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범했던 “헛된 맹세”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5:3)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5:4)
① 에바는 곡식을 담거나 양을 달아보는 그릇입니다. “이 에바(basket)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5:7).
② 에바 속 여인은 ‘악‘ 혹은 ’죄‘를 상징합니다. 납 조각은 일종의 뚜껑입니다. 죄(부도덕한 상행위. 우상숭배)의 분량이 에바 속에 꽉 차서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된 상황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 이방인의 심판과 구원의 환상(6장)
6장의 두가지 경향은 부정적인 경향(이방인을 심판받을 세력으로 지목함), 긍정적인 경향(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한 세력들로 묘사함).
네 병거의 환상(홍마는 피나 전쟁. 흑마는 기근이나 죽음. 백마는 평화적 정복.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은 강력한 통치 / 바벨론. 메데와 바사. 그리스. 로마)은 첫 번째 환상에서 이미 접했습니다.
⑶금식과 회복의 메시지(7:1~8:23)
▶ 진정한 금식(7장)
이스라엘은 네 단계에 걸쳐서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습니다. 1단계(이스라엘 달력으로 4월에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 둘씩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발생함), 2단계(5월에 예루살렘 도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성전도 파괴됨), 3단계(7월에 예루살렘에서 대대적 살육이 벌어질 때 그달리야 총독을 위시해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살육 당함), 4단계(10월에 완전히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포로로 잡혀감).
바벨론에 잡혀간 후에 이런 치욕적인 일을 생각하면서 1년에 4회(4월, 5월, 7월, 10월)씩 금식했습니다. 본래 대대적인 금식은 대속조일에 전 민족이 1년에 한번이지만 70년간의 포로생활 중에 계속해온 금식이 습관화되었습니다.
▶ 회복의 메시지(8장)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열 번이나 반복되는 문구는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2,3,4,6,7,9,11,14,19,20절).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복의 네 가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 예루살렘 도성의 회복, 이스라엘이라는 믿음의 공동체의 회복, 모든 교회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회복된 믿음의 공동체란 사랑의 공동체(8:1~2). 진리와 거룩의 공동체(8:3). 평화의 공동체(8:4~5). 기적의 공동체(8:6). 성실과 정의의 공동체(8:7~8). 축복의 공동체(8:9). 진실의 공동체(8:16). 기쁨의 공동체(8:18~19). 구원의 공동체(8:20~21). 성장의 공동체(8:23).
⑷ 두가지 예언(9:1~14:21)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게 된다는 예언(9:1~8절), 메시아가 이 땅에 초림하신다는 예언(9:9~17)
▶ 예루살렘의 희망(9장)
팔레스타인 북부 정복:
주전 336년경 마케도니아에 존경받던 필립 왕보다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다리오 왕을 물리치고 페르샤를 정복하고 온 세상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헬레니즘이라는 헬라문화를 전파하며 자국어인 헬라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보급합니다. 전도의 큰 장애물인 언어로 헬라어가 전 세계의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수리아=시리아) 땅에 임하며 다메섹(다마스커, 시리아의 수도)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9:1).
팔레스타인 남부 정복: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9:5~8).
‘블레셋’은 ‘팔레스타인’에서 나온 말인데 팔레스타인의 원조가 남부지역사람입니다. 5개도시중 아스글론, 가사, 에그론, 아스돗입니다. 갓은 빠진 상태입니다.
▶ 선한 목자로 오실 메시아(9장)
리더십은 영향력입니다.
성경의 지도자는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참된 목자가 없으면 백성들이 방황하고 고통당합니다.
양(羊)의 3가지 특성은
❶양은 방향감각이 없습니다.
❷양은 아주 쉽게 더러워집니다.
❸양은 자구책 없는 약한 동물입니다.
▶ 두가지 유형의 목자(11장)
약한 목자의 멸망을 선언함(11:1~3). 선한 지도자는 불쌍히 여김. 꼴을 먹임. 서로 연합함. 흥하게 함
▶ 예루살렘의 보호(12장)
예루살렘(교회. 하나님의 백성도 포함)의 보호에 대한 예언. 12~14장에는“그날에“(12:3,6,8,9,11/13:1,4,6,8,13,20)는 ”V-day(승리의 날)“입니다. 2차대전 때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날은 '디-데이'(결전의 날, D-day=decision day)이고 결정적으로 독일의 히틀러 군대가 패배가 확정된 날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독일군대의 저항과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베를린이 함락되고 연합군의 승리가 선포된 날은 '브이-데이'(승리의 날, V-day=victory day)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승리의 날’입니다.
▶ 예루살렘의 정화(13장)
시온의 정화를 통해서 교회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
“그 날(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전 과정)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3:1). 더러움은 죄의 결과로서 생기는 “오염된 삶의 현장“입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13:8). 숫자적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핍박 속에 다수는 떠나지만 상당한 숫자는 남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13:9).
금과 은이 풀무불 속에서 제련되어 순결해집니다.
▶ 예루살렘의 영광(14장)
영광이 오기 전에 마지막 시련이 임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14:1~3).
“야곱(이스라엘 백성)의 환난의 때”(예레미야서 30:7). 주후 70년에 문자 그대로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초토화되었습니다. 성전은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예수님 재림직전에도 그런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메시아의 재림:
“그 날에(승리의 날) 그의 발(예수님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14:4~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재림은 숨길 수 없는 사건입니다.
주께서 동편 문을 열고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겔43:1). 예루살렘 성에서 동편이면 바로 감람산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겔43:2).
메시아 왕국의 건립:
생수의 나라(14:8), 만국의 나라(14:9), 평화의 나라(14:11)
여호와께 대한 경배의 비전: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草幕節)을 지킬 것이라”(14:16).
이스라엘의 예배의 절정은 초막절입니다. 추석 무렵에 성지순례를 하면 초막절(草幕節)이 됩니다.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14:17).
경배의 결과는 ‘모든 곳’에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말방울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14:20). 본래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거룩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