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40, 이삭을 낳을 때도 이미 늙었던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여 다시 여섯 아들을 낳았다니?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창25:1~2)
아브라함은 100세 때에 아들 이삭을 얻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의 신체 건강 상태에 대해 바울은 "몸이 죽은 것 같”(롬 4:19)았다고 하였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들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기별을 주셨을 때,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창 17:17)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로부터 37년이 지났을 때 사라가 사망하였다. 그녀의 나이 127세 때이다(창 23:1).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 차이가 열 살이니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137세였고, 이삭은 37세였다. 이삭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나 40세에 결혼하였다(창 2520) 그때 아브라함은 140세였다.
그런데 창세기 25장 1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후처 그두라"(창25:1)를 취하여 6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두라가 그야말로 '후처'라면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지 3~4년이 지나 재혼한 것이며, 이삭을 낳은 후 40여 년이 지나 다시 아들 여섯 명을 더 낳은 셈이 된다. 어찌된 일인가? 시쳇말로 회춘(春)하였는가?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 이후에 다시 아내를 얻어 아들들을 낳았다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창세기 25장을 사라가 죽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석하는 중요한 근거는 역대상 1장 32절의 "아브라함의 첩 그두라"이다. 똑같은 그두라인데 여기서는 '첩'(히, 필레게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후처'는 본부인의 사후에 아내가 된 여자이지만 '첩'은 본부인의 생전에 들어온 소실이다. 창세기 25장 6절도 그러한 이해를 지지한다. 그 구절은 그두라가 낳은 아브라함의 아들들을 서자들'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브네이 하필라그심을 문자대로 직역하면 첩의 아들들'이다.
25장에 기록된 그두라를 아브라함의 '후처'로 보는 것은 사라의 사망이 이미 23장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두라를 사라의 생전에 얻은 '첩'으로 보는 사람들은 창세기의 기록이 연대순으로 배열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연대순이라면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한 기사(창 25:5~6)도 야곱과 에서의 출생에 관한 기사(25:19~26) 다음에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삭이 60세에, 즉 아브라함이 1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고(창25:26),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기 때문이다(창25:7). 아브라함은 손자들의 출생 후 15년을 더 살았다. 그러므로 25장 1~4절의 구절도 순서적인 배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얻은 시기는 사라가 하갈을 내보낸 이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하갈 문제로 이미 홍역을 치른 아브라함과 사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무리한 추측이다. 하갈 사건은 아브라함으로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후회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하갈을 내보내고 다시 '첩'을 얻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창세기가 종종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이 경우는 사라의 사망 이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창세기 23장에 사라의 사망 기사가 나오는데 25장의 1~6절은 사라의 생전 사건으로 7~8절의 사라의 사후 사건으로 보는 것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문맥의 흐름은 이 모든 것이 사라의 사후 사건으로 전제하고 자연스럽게 진행하고 있다. 바로 앞 절인 창세기 24장 67절은 이삭이 결혼하여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말한다. 25장 7절은 아브라함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그 사이의 그두라 기사는 사라의 사망 이후 아브라함의 사망 이전 사이에 일어난 일로 보는 것이 아무래도 문맥의 진행과 가장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역대상 1장 2절의 "첩"(필레게스)과 창세기 25장 6절의 '서자들, 즉 '법의 아들들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은 25장 1절이 그두라를 아브라함의 '아내'(이샤)로 소개하고 있는 것과 연관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왜 성경은 같은 사람을 '아내'와 '첩'으로 소개하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두라가 법적으로는 사라의 사후에 아브라함과 결혼한 합법적인 '아내'이지만, 약속의 후사라는 구속사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그녀는 이차적인 지위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아내'라는 단어가 아브라함에 대한 그두라의 법적, 사실적인 관계를 나타낸다면, '첩'이라는 단어는 사라와 비교된 아브라함에 대한 그녀의 구속사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두라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과 이삭의 결혼으로 노년의 외로움을 겪고 있을 때에 합법적으로 아브라함의 아내가 된 여인임이 분명하다.
결국,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은 후 75세를 더 살았고 사라의 사후에 38년을 더 사는 건강의 축복도 함께 받았다. 죽은 몸 같던 100살의 노인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허락을 믿는 믿음을 통해 그를 낳고 양육하며, 또 다른 자식들을 낳는 “현저한 신체적 및 정신적 능력"(재림교회성경주석, 1권, 377)을 함께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그에게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창 17:4)는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개명시켜 주셨다. 이 본문은 그의 사망 기사를 전하기 전에 그가 어떻게 실제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