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 히데코 그림책 원화전시 때문에 부산도서관엘 가보게 되었다. 깜짝 놀랐다. 너무 멋지고 새롭게 디자인된 공공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부산시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에 따라 건립된 부산의 대표도서관으로 2020년 11월에 문을 열었다. 부산을 대표할 시립도서관이기 때문에 입지 선정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고 상대적으로 번화하고 개발이 잘 된 부산 동쪽 지역에 비해 도서관과 문화인프라가 부족한 부산 서쪽인 사상구 덕포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어린이 자료실이 있어서 이곳부터 둘러보았다. 평일 오전이면 도서관에 엄마와 아가들이 북적북적할 시간인데 의외로 한가했다. 예전에는 오전에 도서관에 방문하면 어린 독자와 부모들로 북적거렸는데 어쩌면 바빠도 너무 바쁜 요즘 도시 아가들의 일상은 오전에 도서관에 올 시간을 낼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주 어린 아가들부터도 오전엔 다들 어린이집과 유치원, 문화센터에 가니 오후가 되어서야 도서관에 올 수 있나보다. 주변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니 어린이도 많을텐데 아가들 없는 어린이 자료실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맘이 조금 짠하다.
도서관 규모가 크기 때문에 초등학생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영유아를 위한 그림책방도 따로 조성되어있어서 분위기는 쾌적했다. 이용자는 없고 자원봉사자 혹은 직원들이 서가정리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어린이 도서관이야 이미 기존에 기적의도서관을 비롯해 너무 잘 조성된 곳들이 많아서 이곳이 규모가 큰 걸 제외하곤 그리 특별해보이지 않았다. 핵심은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해외 도서관을 탐방하면서 부러워하고 갖고 싶었던 시설들, 공간들이 빠짐없이 구현되어 있었다. 로비에도 책상과 편한 의자들을 놓아 사람들이 오고 가며 모일 수 있는 만남과 휴식과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래, 새로 조성한 곳은 이런 시설 정도는 있어줘야지....자동 도서분류 시스템이 1층 로비에 자리잡고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유럽에서 이 장치를 처음 봤을 때는 어찌나 신기했던지. 이제는 우리나라 도서관에도 이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도서관은 총 4층인데 개방감이 있게 트인 구조로 되어있고 공간마다 획일적으로 벽체를 세우고 문으로 여닫는 구조에서 탈피해 사방 공간들을 막힘없이 돌아다닐 수 있게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개관 2년이면 도서관 운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을텐데 이 넓게 열린 공간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보이는 인상을 조금 받았다. 이런 공간의 특징은 사서에게 많은 일거리를 요구한다. 주제별 전시며, 큐레이션 서가며, 참신한 프로젝트들로 공간을 가득 채워야 하는데 문화기획에 경험이 많지 않은 공공도서관 사서들에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 도서관에 사서직원이 몇 명인지 궁금하다.
이렇듯 열린 도서관의 특징은 적당한 백색소음과 웅성거림이 주는 카페같은 생동감일텐데, 한가한 오전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않아서 한갓지고 조용했다. 과연 바쁜 주말 이 공간에 이용자가 가득 들어찼을 때 어떻게 질서정연한 흐름이 유지되는지 궁금했다. 이 멋진 도서관이 사람들로 가득차고 북적북적 살아 움직이는 현장을 보고 싶다.
비록 평일 오전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훌륭한 공공도서관이 있으면 사람들로 북적일 것 같았는데...이용자 숫자는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테이블 곳곳에 노트북을 놓고 앉아 공부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공부하는 좌석이 있는 열람실을 없애고 열린 좌석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역시 책상에 앉은 이들의 대부분은 열공 중. 스타00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그리고 독서실 형태로 막힌 공간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인 모습이다.
특히 디지털 자료실에는 중년의 남성들이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유럽의 도서관들을 떠올리게 했다. 중장년 실버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이 곧 우리 도서관의 모습일 날도 멀지 않았을까?
외국에선 이렇게 열린 좌석에 청년들이 노트북을 들고 앉아 부지런히 뭔가를 하거나, 친구와 스터디를 하거나, 심지어 헬싱키 도서관에서는 동성 커플이 다정하게 스킨십을 하면서 공부하는 모습도 목격했었는데....사람들이 가득 들어찼을 때 이런 열린 좌석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도 궁금했다.
서가도 자작나무 디자인을 활용해 멋지게 만들었다.
외국에선 흔한 열람좌석 배치. 우리나라에선 교보문고 같은 서점이 도서관형 서점을 표방하면서 이런 디자인의 열람석을 만들었는데 공공도서관에선 흔치 않은 도입인 거 같다. 내가 요즘 새로 조성된 공공도서관들을 많이 탐방하지 않아서 최근 우리 현실에 어두운 것일 수도 있다.
부산도서관의 멋진 비주얼, 포토존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청년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본인은 다급한 처지일 수 있겠는데...ㅎ....그옛날 삭막했던 도서관의 열람실을 떠올려보면....물론 열람실을 없애고 이렇게 개방형 공간을 만든 이유는 부디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만 하지말고 책을 읽고 연구하는 공부를 하라는 뜻일테지만, 그래서 열람실을 없앤 초기에 도서관에서는 문제집을 펴놓고 시험공부를 하는 이들에게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말하며 애써 공부하지 못하게 말리곤 했던 웃픈 에피소드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응원한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공부해 좋은 결과를 내시라고!
부산도서관은 기존에 외국 도서관들에서 좋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많이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공간 설계도 잘되었고 세련된 디자인과 적절한 조명, 그리고 유리와 햇빛의 조화 등 눈에 보이는 설계와 디자인은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울도서관 이후, 도서관이라면 으례 이런 계단형 자유 열람석이 기본이라고 할 정도로 어디서든 많이 차용하고 있는 디자인. 공간은 가져왔는데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열린 공간에서 열린 사고와 대화, 학습과 토론, 상호 유대와 소통 같은 가치를 구현하는데는 얼마나 훈련이 되어있는 걸까, 잠시 생각해본다. 공간과 사고는 함께 나아가야 할텐데 여전히 이용자들의 고정관념이 이런 열린 소통을 부담스러워하며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다.
전자책 리더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한 점도 좋았다.
대한민국 도서관의 진화는 눈부시다.
코로나 이후에 도서관 강연가는 일이 많이 줄어들면서 도서관 방문이 뜸했다.
개인적으로도 새로 생긴 도서관이나 서점 탐방을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그 기간 동안 도서관은 이렇게 또 진보했구나 싶다. 기회가 될 때마다 새로 조성된 전국의 도서관들을 다시 다녀봐야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서관 옆에서 살고 싶다.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도서관 옆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