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압록강 이야기
3개의 압록강이란?
1. 일제에 의해서 날조된 압록강 : 백두산에서 발원했다고 하는 허무맹란한 현재의 압록강
2. 세종실록에 의해 인식된 압록강 : 현재 하천의 본류 정의와 같음 허천강의 발원지가 압록강의 발원지인 압록강
3. 단군조선 이후 대한제국때까지 인식되어 온 압록강 : 지금의 압록강과 전혀 다른 압록강으로 우리가 회복하여야할 고토인 요서지방에 있는 압록강
1999년도에 자하 신경수가 쓴 우리산줄기이야기에서 우리나라 지리 관련 책자 거의 모두가 압록강의 길이를 790km라고 적어 놓고 있다고 한다. 최장 길이의 하천 본류를 생략하고 국경하천을 측정한 수치로서 즉 백두산 남서 계곡에서 시작하는 물길을 잡아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잣대로 본다면 국토부에서 본래 그 강의 길이는 최장의 길이를 가진 하천을 본류로 삼는다고 했다. 고로 실질적인 압록강은 삼수지나 혜산 5km전 남쪽으로 흐르는 허천강을 본류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상 갑산 남쪽 태백산 근방 후치령과 향령 사이 현재 도면상 희사봉 근방이 발원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압록강의 길이는 925.5km다. 즉 2천3백리가 넘는 길이다.
산경표7혈(쪽) 압록강 발원지 태백산 후치령 항령사이
대동여지도 백두대간 태백산 부근 향령과 후치령 사이. 원적사라고 적힌 북쪽이나 동쪽 어느 산줄기상의 봉우리가 희사봉임.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압록강은 서쪽으로 흐르고 두만강은 동쪽으로 흘러 우리의 국경을 구분 짓는다고 알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현지 답사를 해서 확인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한번 머리로 상상을 해보자. 압록강도 물, 백두산 천지도 물, 두만강도 물 그러면 흐르는 방향만 틀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은 서로 물로 통해있다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섬이 되고만다. 이 무슨 허무맹랑한 얘기란 말인가?
그리고 어느 호수에 갇혀있는 물은 그 울타리중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게 되어있다. 자연적인 호수는 가장 낮은 곳이 두군데가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의 백두산 천지의 물은 오로지 달문으로 나와 장백폭포로 떨어져 이도백하를 이루며 송화강으로 흘러들어 흑룡강과 연결이 된다.
강이 있으면 그 양옆으로 산줄기가 존재하는 법.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백두산 백두대간은 그 산줄기가 만주로 연결되어
무협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백산맥, 천진산맥, 곤륜산맥을 지나 히말라야에서 끝을 맺는 실로 장대한 산줄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적당한 용어가 없어 습관대로 산맥이라는 용어를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 이유는 별도로 나의글 산경표를 이야기할 때 설명을 했으니 참고 바랍니다.
산경표(山經表) 이야기(최종확정) - 강의용 댓글 8 산경표와 신경준
산경표와 신경준 산경표(山經表) 이야기(최종확정) - 강의용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요즘 흔히 쓰고 있는 한반도라는 용어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에 반도라는 용어를 쓰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간단하게 반도 즉 한문으로 半島. 즉 반만 섬이라는 섬은 도대체 어떤 상태의 섬을 반도라고 할까?
역으로 반만 대륙인 대륙은 도대체 어떤 상태의 대륙일까?
대륙은 대륙일뿐 반만 대륙인 대륙은 존재 자체가 있을수 없다. 물론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야기라 설명의 가치도 없지만
그또한 일본이 자기들은 전체가 섬인 전도(全島)에 살고 덜떨어진 팔푼이 조센0(한국인을 비하할 때 쓰는 욕)은 반도에 살고 있으니 자기네들이 다스려야한다는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라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전도라는 말도 말이 안되는 조어다. 전체가 섬인 섬은 도대체 어떤 상태의 섬이 전도인가. 섬은 섬일뿐 전도 반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반도라고 한역되어있는 영어로 퍼닌슐러(peninsular)라는 말은 육지에서 바다로 길게 돌출한 육지를 뜻한다. 그런 지형이라고 해서 반만 섬이라는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으며 당연히 대륙의 일부분인 것만은 부정할수 없는 것이다.
일제에 의해서 한국을 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얼토당토 아닌 조어가 우리말로는 아직도 정립이 안된 상태로 사전에 까지 등록되어 쓰고 있지만 깨어있는 사람들은 대한대륙이라고도 쓰고 한강토라고도 쓴다.
나는 한강토라고 쓰고 싶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연유는 나의글 대동여지도 발문에 의하니 아래를 클릭하여 참고 바랍니다
대동여지전도 발문 해설 댓글 2 대동여지전도
대동여지전도 대동여지전도 발문 해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에서 우리의 국토를 강토라 하였다.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韓)을 앞에 두고 조합하면 우리의 국토는 한강토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는 용어인 것 같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반도라는 용어는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야기가 옆으로 한참 돌아 본위치를 찾는다. 참 여기서 두만강도 마찬가지다. 무산에서 나라 경계를 빠져나와 서두를 지나 장백정간과 백두대간이 만나는 두류산군 장산에서 발원한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섬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자기네와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반도라는 황당한 단어에 타당성을 불어넣기 위해
그리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압록강은 조금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의 압록강이 아님을 알수 있다. 현재의 압록강은 나라를 빼앗긴 1910년. 이후 1911년 일제에 의해서 만주국에 있던 압록강을 현재의 압록강으로 변경했다는 역사적인 근거도 있다고 한다.
아래 자료들은 신석재님의 블로그에서 모셔왔다. 이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여 참고 바랍니다.
고려 압록강은 지금의 란하 동쪽 지류 폭하
조작 축소된 대한강역
일본이 조작 축소하고 역사학계의 맹종으로 반쪽된 대한강역
만주국지도
고려강역지도
삼국지도
그런 반면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압록강은 백두산이 발원지가 아니고 지금의 허천강이 발원지라고 기록을 하고 있다. 이로서 내가 20여년전에 이야기한 압록강이야기가 우리 조상님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데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분은 아래를 클릭하여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대조선삼한역사학회(깨어있는 시민의 場)의 이양행님의 글 그대로 옮겨옴
[세종실록 155권, 지리지 함길도 길주목 갑산군지리지 / 함길도 / 길주목 / 갑산군]
◎ 갑산군(甲山郡)
지군사(知郡事)가 1인이니, 길주도 좌익 병마(吉州道左翼兵馬)를 겸한다.
본래 허천부(虛川府)이었는데, 오랫동안 호인(胡人)에게 점거(占據)되어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어서 인가[人居]가 없었다. 고려 공양왕(恭讓王) 3년 신미 【홍무(洪武) 24년.】 에 비로소 갑산 만호부(甲山萬戶府)를 두었고, 본조 태종 13년 계사에 예에 따라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천봉산(天鳳山) 【군의 동쪽에 있는데, 본군 사람들이 진산(鎭山)으로 삼는다. 】 웅이천(熊耳川) 【그 근원이 둘이 있는데 각기 2백여 리를 흘러서 청주기(靑州岐)에서 합하여, 북쪽으로 10리를 흘러서 군의 서쪽을 지나고, 또 북쪽으로 90리를 흘러 혜산(惠山)에 이른다. 】 혜산천(惠山川) 【백두산(白頭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2백 40여 리를 흘러서 웅이천(熊耳川)과 합하여, 서쪽으로 1백 20리를 흘러서 삼수리(三水里)에 이른다. 】 어면수(魚面水) 【강계(江界) 지경 소을한점(所乙漢岾) 아래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1백여 리를 흘러 중강기(中江岐)에 이르고, 북쪽으로 1백 80리를 흘러 삼수리(三水里)에 이르며, 삼수소(三水所)의 이름을 따라 삼수기(三水岐)라 한다. 서쪽으로 2백 70리를 흘러서 여연군(閭延郡) 지경에 들어가니, 이것이 🔴압록강의 근원이 된다. 】 사방 경계[四境]는 동쪽으로 야인(野人)의 동량(東良) 지경(地境)에 이르기 1백 50리, 서쪽으로 평안도 강계(江界)에 이르기 3백 리, 남쪽으로 북청(北靑)에 이르기 90리, 북쪽으로 백두산에 이르기 3백 30리이다.
호수가 3백 56호요, 인구가 8백 91명이다. 군정은 익속군(翼屬軍)이 2백 57명이요, 수성군(守城軍)이 9명이다.
땅이 많이 기름지고, 기후가 몹시 춥다. 간전(墾田)이 3천 9백 40결이요, 【모두 밭이다. 】 토의(土宜)는 기장·피·콩·보리·조·메밀이요, 토공(土貢)은 표범꼬리·아양사슴가죽·벚나무껍질[樺皮]·지초요, 약재는 곰쓸개·호경골(虎脛骨)·사향(麝香)·오미자·속새[木賊]·당귀(當歸)·작약(芍藥)·인삼·댕댕이덩굴[防己]·버들옷[大戟]이요, 토산(土産)은 녹반(綠磻) 【군의 북쪽 75리 되는 운총리(雲寵里)에 녹반암(綠磻巖)이 있다. 】 ·백반(白磻) 【군의 북쪽 93리 되는 혜산(惠山)의 지항포동(知項浦洞)에서 난다. 】 ·담비가죽[貂皮]·발다람쥐가죽[靑鼠皮]·족제비털·숫돌·잣·여항어(餘項魚)이다.
장평산 석성(長坪山石城)이 군의 동쪽에 있다. 【둘레가 3백 26보(步)이며, 안에 군창(軍倉)이 있으나, 물과 샘이 없다. 】 역(驛)이 2이니, 허천(虛川)·우음대(亐音代)이다. 관방 요해(關防要害)는 혜산 구자(惠山口子) 【군의 동쪽에 있다. 】 ·가사동 구자(家舍洞口子) 【군의 서쪽에 있다. 】 이다. 【모두 수어처(守禦處)이다. 】 봉천대(奉天臺) 【혜산(惠山) 동쪽 우라한동(牛羅漢洞) 가운데에 있다. 큰 바위가 있는데, 사면이 깎아 세운 듯하고, 높이가 30여 길이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155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98면
압록강은 백두산과는 관계없이 남쪽으로 330리(약180km) 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즘 단순계산으로 10리=4km를 환산하면 132km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10리는 지금의 십리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럼 요즘 거리로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조선조때 10리는 약4.7~5.7km사이의 거리로 보통 5.4km로 계산을 한다. 그래서 약180km 요즘으로 환산해보면 약450리길이다. 그 연유는 길다 아래 나의 글을 클릭하여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시대 10리는 지금으로는 얼마의 거리일까? 우리산줄기 이야기/산행지
우리산줄기 이야기/산행지식 조선시대 10리는 지금으로는 얼마의 거리일까?
이런 찬란한 우리 역사를 외면한채 일제가 날조해서 만든 역사와 지리를 과연 역사라고 지리라고 배우며 가르쳐서야 쓰겠는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에 우리 후손들이 할일은 자명해졌다. 올바른 역사와 지리를 바로 세우고 편찬하고 가르쳐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그 중에 극히 작은 일하나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와 흐름을 재정립하여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한인 한웅 단군 이래로 만년을 이어온 우리 조상님들의 강토였던 압록강지역의 고토를 회복하여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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