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금도 둘레길 2, 3구간-1
바다는 섬이 있어 외롭지 않고 섬은 바다가 있어 안식을 취한다
내가 처음 거금도를 찾은 것은 2003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거금도를 가기위해서는
고흥 녹동항에서 여객선을 타야했다. 녹동항에서 거금도까지는 20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배를 타고 가다보면 복잡한 육지와 단절되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느낌을 향유할 수 있었다.
녹동항에서 여객선을 타야 갈 수 있었던 거금도에 다리가 생기면서 배를 타고 가는 섬 여행의 묘미는
사라져버렸다. 대신 배시간과 관계없이 아무 때나 손쉽게 갈수 있는 편리함이 주어졌다.
2009년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녹동과 소록도가 연결되고, 2011년 소록도와 거금도를 이은 거금대교가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녹동을 가려면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를 달려야 했는데,
남해안고속도로가 생기고 벌교에서 녹동까지도 4차선 국도가 반듯하게 확장되어 접근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우리는 오늘 육로와 해상교통이 모두 편리해진 거금도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 거금도를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거금도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다.
녹동에서 소록대교를 건너니 소록도다. 소록도는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섬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센병 환자를 격리 수용했던
소록도에는 많을 때는 6,000명 이상의 환자가 수용되기도 했다.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고, 그 수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600여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다.
잠시 소록도 땅을 지나 2,028m에 이르는 거금대교를 만난다. 거금대교는 1층 보행자 및 자전거도로,
2층 자동차도로로 이루어진 복층교량이다. 거금대교 위로는 거금도가 달려오고, 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다정한 형제처럼 떠 있는 두 개의 작은 섬, 상화도와 하화도가 푸른 바다에 배처럼 떠있다.
이 두 섬은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지면 걸어서 왕래가 가능할 정도로 하나의 섬이 된다.
거금대교를 건너 거금도로 들어선다. 거금도로 들어서니 거금도의 상징 같은 적대봉이 길손을 맞이한다.
거금도는 조선시대에는 도양목장에 속한 섬으로 절이도(折爾島)라 하였다. 조선시대 강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897년 돌산군 금산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흥군 금산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거금도에는 큰 금맥이 있었는데 조선 중기 문헌에 ‘거억금도(巨億金島)’라고 기록되어 있어
여기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거금도가 금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적대봉 산록의 진막금·전막금·욱금·청석금·고락금 같은 마을이름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금산면소재지를 지나 우두마을로 향한다.
오늘은 ‘거금도 둘레길’ 중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2구간을 걸을 계획이다.
적대봉(592m)·용두봉(419m) 등 400m 이상의 산지가 많은 거금도는
서쪽과 서북쪽에 대부분의 농경지와 취락지가 집중되어 있고 금산면소재지도 여기에 위치한다.
금산면소재지를 지나는데 김일기념체육관이 차창 밖으로 바라보인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대단했었다. 김일 선수가 상대 선수를 박치기로 쓰러뜨리는 모습은
온 국민을 열광시키곤 했다. 김일 선수에게는 ‘박치기 왕’이라는 애칭이 항상 붙어 다녔다.
프로레슬링 세계헤비급 챔피언을 여러 차례 지낸 김일 선수는 이곳 거금도 출신이다.
고흥군에서는 김일 선수의 고향인 이곳 거금도에 김일기념체육관과 김일선생기념관을 지어
후손들로 하여금 그의 활동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
우두항을 지나 우두마을에 도착하니 바다냄새가 온몸을 휘감는다.
해변에 위치한 우두마을은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 고요하기 그지없다.
마을의 지형이 소의 머리같이 생겨 우두(牛頭)마을이라 했다.
우두마을 앞바다에는 초미니섬인 오동도가 바닷물에 떠다니는 것 같다.
우두마을에서 우두항 쪽을 바라보니 연홍도가 엿가락처럼 길쭉한 모습을 한 채 손짓한다.
연홍도는 거금도의 여러 부속 섬 중에서 시산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바다 건너 서쪽에서는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진 금당도가 미모를 뽐낸다.
금당도는 주변의 다른 섬들과 달리 아기자기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군계일학처럼 보인다.
우두마을을 지나 데크계단을 따라 언덕위로 오른다.
언덕위에서 우두마을을 바라보니 해변을 따라 마을이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이며
우두항 뒤로 길쭉한 영홍도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영홍도는 50가구에 1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둔덕에는 밭이 형성되어 있고,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도 하늘거린다.
밭길을 지나면 조용한 솔숲길이 나오고, 숲이 자리를 비켜줄 때면 푸른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는 정자형태의 쉼터가 있고, 곳곳에서 ‘거금도 둘레길’ 이정표가 길안내를 해준다.
둘레길은 넓고 완만하여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고요하고 포근한 숲길을 걷고 있으면 가만히 파도가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숲길을 벗어나 바다가 가슴을 내어줄 때면 길을 걷던 사람들이 너른 바다 품속에 안긴다.
사람들이 바다에 안기면 바다는 길손의 아픈 가슴을 말없이 보듬어준다.
세상을 살면서 상처받거나 좌절에 빠져있는 사람도 바다의 넉넉한 품속에서 위안을 받고 힘을 얻는다.
해변의 작은 모래사장도, 울퉁불퉁한 바위들도 바다와 만나면서 득도한 선승이 되었다.
거센 바람에 성난 파도가 섬으로 밀려올 때면 해변의 모래와 바위들은 온몸을 던져 섬을 보호하다가도,
바다가 잔잔해지면 해변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이 된다.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바다와 뭍을 연결해주는 해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연소해수욕장으로 향한다.
거센 바람과 파도에 힘들어하는 모래사장을 위해 사람들은 백사장 안쪽에 해송을 심었다.
해변에 방풍림으로 심은 소나무들은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숲이 되었다.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해송숲길에 갯바람이 불어와 바다향기를 전해준다.
멀리 금당도·비견도·충도·평일도 같은 완도군에 속한 섬들이 수평선 위에 솟아있다.
연소해수욕장은 방풍림 앞에 축대가 있고, 백사장이 넓지 않아 해수욕장으로서의 운치는 다소 떨어진다.
연소해수욕장 안쪽으로는 농경지와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거금도 둘레길은 잠시 27번 국도로 올라선다.
도로를 따라가자 고흥7경 전망대가 나온다.
고흥에는 아름다운 10경이 있는데, 그중 7경이 ‘금산 해안경관’이다.
고흥7경 전망대에 서니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드넓은 바다에는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형제도와 허우도·충도· 비견도·금당도가 붕긋붕긋 솟아있고, 충도 뒤로 평일도가 희미하게 고개를 내민다.
바다는 이러한 섬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섬들은 바다가 있어 안식을 취한다.
데크계단을 따라 옥룡마을로 내려선다.
해변 경사지에 둥지를 튼 옥룡마을 골목에는 밝은 색상의 벽화들이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삭막한 시멘트벽에 예쁜 그림이 그려지니 골목은 산뜻해지고 마을은 화사해졌다.
옥룡마을 사람들은 앞바다에서는 주로 전복양식을 한다.
옥룡마을을 지나 임도를 따라 걷는다. 형제도와 허우도가 더욱 가까워졌고,
허우도 뒤로 충도와 평일도가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길가에서는 가을에 피는 야생화들이 청초하다.
이맘때면 많이 볼 수 있는 쑥부쟁이꽃이 곳곳에서 미소를 보내고,
뒤늦게 핀 금강초롱은 고결한 느낌을 전해준다.
봄철 나물용도로 인기가 있는 취나물도 소박하게 꽃을 피웠다.
앞서 가던 일행들이 옥룡쉼터에서 기다리고 있다.
거금도 둘레길은 중간 중간 경치 좋은 곳에 이런 쉼터가 있어 바다풍경을 즐기면서 쉬었다 가기에 좋다.
옥룡쉼터 정자에 올라서니 주변의 여러 섬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작은 두 개의 봉우리가 하나의 섬을 이루어 형제도라 했음을 금방 알 수 있겠다.
27번 도로를 잠시 걷고 나서 임도를 따라 익금해수욕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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