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인식의 근원
2.아뢰야식의 종자
모든 현행의 결과는 아뢰야식에 있는 종자가 기틀이 된다. 이에 소리 인식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훈습종자인 오온(五蘊)의 증장인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를 살펴보겠다.
소리 인식작용의 주체는 종자(種子)이다. 종자는 주로 무언가 발현할 것이 예정되어있다는 의미에서 씨앗의 뜻으로 쓰인다. 이외에도 인상(印象)・습기(習氣)・본식(本識) 등의 의미로도 쓰이며, 아뢰야식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종자의 활동은 아뢰야식에 다시 훈습이 되는 것이다.
명언종자(名言種子), 정문종자(正聞種子)와 같은 소리종자[이하, 종자]가 저장되는 본체인 아뢰야식의 종자는 인식작용을 일으키는 주체로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현행의 결과를 낳는다.
식은 그 속에 오온의 구성 요인, 즉 종자를 가지고 있다. 중생들의 삶을 통해 형성된 경험 덩어리인 오온은 식 속에 종자로 간직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인연을 만나면 식 속의 종자가 새로운 오온으로 구성된다.
식의 증장을 통해서 끊임없이 오온이 새로운 모습으로 구성되는 것을 『잡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다섯 가지 종자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종자인가? 뿌리 종자, 줄기 종자, 가지 종자, 열매 종자, 씨 종자를 말한다. 이 다섯 종자가 끊어지지 않고, 파괴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에 떨어지지 않고 견실하게 익었다 할지라도, 흙은 있으나 물이 없으면 그 종자는 살아서 크게 자라지 못하며…(중략)…물은 있으나 흙이 없어도 살아서 크게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그 종자가 흙이 있고 물이 있으면 그 종자는 살아서 크게 자란다.
아뢰야식 속의 '특수한 심적인 힘'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종자이다. 특수한 심적인 힘이란 과거의 업(業)에 의해 아뢰야식에 훈습된 습(習)을 말하며, 이 습기가 바로 현재와 미래의 모든 현상을 산출하는 잠재력으로서의 씨앗이다. 하나의 씨앗 속에 간직된 다섯 종자는 흙과 물이라고 하는 두 가지 인연을 만나야 뿌리와 줄기, 가지가 나오고 열매를 맺어 새로운 종자가 된다. 만약 두 가지 인연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종자는 자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식 속에 간직된 오온의 종자가 자라나 그 속의 다섯 종자가 오온으로 새롭게 구성된다고 하는 것이 이 경의 내용이다. 즉 종자는 아뢰야식 안에 있으면서 아뢰야식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원인의 역할을 하고, 아뢰야식의 활동은 종자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아뢰야식과 말나식과 의식과 전5식 등의 심식작용은 일정한 업력을 지니는 종자가 되어 아뢰야식 속에 저장된다. 저장된 종자는 모든 심식행위의 원인이 되고, 현행(現行)하는 현재의 행위는 종자의 결과가 된다.
저 다섯 가지 종자는 자양분이 있는 식(取陰俱識)을 비유한 것이고, 흙은 4식주(四識住)를 비유한 것이고, 물은 희탐을 비유한 것이다. 식은 네 가지에 머물면서 그것에 반연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식은 색 가운데 머물면서 색을 반연하여 그것을 즐기면서 살아가며 커간다. 식은 수, 상, 행 가운데 머물면서 수, 상, 행에 반연하여 그것을 즐기면서 살아가며 커간다.
『잡아함경』 39경의 비유에서 5가지 종자는 오온으로 구성될 조건을 의미하며, 오온의 색・수・상・행・식을 뿌리・줄기・가지・열매・씨앗으로 각각 배대하고 있다. 뿌리 종자는 오온의 색이 될 요인에 비유하고, 줄기・가지・열매・씨앗 종자는 각각 수・상・행・식이 될 요인에 비유한 것이다. 뿌리나 줄기가 될 요인이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씨앗 속에 들어 있듯이, 오온의 식 속에는 미래에 오온으로 성립될 요인이 종자처럼 들어 있다.
이는 근본불교의 식증장설(識增長說)로 유식사상의 핵심이론인 종자설과 다름이 없다. '자양분을 갖고 있는 식'은 오온의 질료가 될 네 가지 자양분을 취하여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는 식을 의미한다. 종자는 인간의 마음에 내재한 무의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아뢰야식에 함장되어 있다가 현상으로 변현하는 힘으로 의식이나 말라식에 있어서 현상을 분별하는 힘을 종자라고 칭한다.
3.종자생현행과 현행훈종자
화자(話者)가 염불 소리를 낸다는 것은 현행을 의미하고 그 소리를 귀로 들음과 동시에 저장이 되는데, 이때 현행과 종자(씨앗)가 동시에 저장이 된다. 현행된 모든 행위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훈습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다시 우리의 심식 속에 종자라는 가능성으로 저장되고, 다음의 현행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활동, 즉 현행들이 훈습되어서 종자가 되어가는 과정들을 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라고 한다.
또한 훈습이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인 이 식이 새로이 구성되고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무시(無始)이래로 말[言]하고 들은[聽] 모든 행위는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또는 습기, 習氣]로 훈습(薰習)되어 제8식 아뢰야식에 차곡차곡 저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장된 종자는 유사한 환경을 맞이하면 현행으로 되살아난다. 생겨난 현행은 곧바로 새로운 종자를 아뢰야식에 심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현행이 원인이고 종자가 결과가 된다.
이와 같이 심층심리와 표층심리의 유기적인 상호 인과관계에 의해 전 존재가 마치 폭류와 같이 계속해서 유동하고 있는 것을 아뢰야식 연기라 한다. 현행의 결과는 나타나는 순간 동시에 또 다른 원인으로서 업력으로 아뢰야식에 저장되며 미래의 결과를 가져올 원인의 종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종자와 아뢰야식 그리고 종자와 모든 심식의 현행 등의 관계는 밀접한 관계이다.
인간은 매 순간의 행위와 그것이 아뢰야식에 남기는 종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개개인의 세계가 형성되고 일체가 생겨난다. 이때 소리종자가 발생됨과 동시에 아뢰야식에 심어진 현행훈종자, 훈습된 소리종자가 선악・무기(無記)의 성질을 바꾸지 않으면서 아뢰야식 내에서 찰나 생멸을 반복하면서 상속되어 가는 종자생종자, 여러 조건[衆緣]이 갖추어졌을 한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는 종자생현행으로 한 세트가 된다. 다시 종자에서 신체적 행동・말・생각이 생하는 순간 그것과 선악의 성질이 같은 새로운 종자가 하나 더 심어지는 현행훈종자로부터 종자생종자, 종자생현행의 세트가 무수하게 순환된다.
만약 소리종자가 고정관념으로 현행한다면, 고정관념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종자생현행이고, 고정관념으로 어떠한 생각들이 잠복되는 것은 현행훈종자이며, 고정관념이 아뢰야식에서 또 다른 고정관념의 종자로 계속 변화 성장하는 것을 종자생종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훈종자나 종자생현행에 있어서는 그 각각이 동시에 발생한다. 즉 현행훈종자에서 현행하는 순간과 그 현행이 종자를 남기는 순간은 한순간이며, 종자생현행에서 종자가 생하는 순간과 현행이 성립하는 순간은 동시적인 것이다. 반면 종자생종자에 있어서는 인으로서의 앞의 종자가 멸하고 그 다음 종자가 과로서 발생하는데, 그 인과 과의 종자는 동시적이 아니라 이시적(異時的)이다. 그래야만 생멸하면서 성숙하는 종자의 흐름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의 소리종자는 그 자체로 훈습의 인(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훈습에 의해 내포되어 있는 업과 번뇌가 마음의 움직임과 함께 지속될 때 비로소 훈습되는 것이다. 이러한 훈습의 순환은 반복된다. 이러한 훈습을 통한 식의 변화는 고, 집의 생멸문으로 향하느냐 멸, 도의 환멸문으로 향하느냐 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종자와 훈습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소리의 공능에 관한 연구/ 이태영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