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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한인 모임- 두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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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야기(중국한국)&문답 스크랩 北京师范大学(북경사범대학)
김봉선 추천 0 조회 226 06.07.24 18:40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 봉선이의 북경 주요 대학 견학 그 세 번째 - 北京师范大学

 

<동문>


 

<북경사범대학 교표>

 

(남문>

 

주    소:北京市 新街口外大街19号 邮编:100875

홈페이지 : http://www.bnu.edu.cn

방문일시 : 06. 7. 19 수요일

방    법 : 자전거


 두 번째 자전거를 타고 나가본다. 오늘도 역시 4환선을 타고 가다가 北辰橋에서 3환선을 향하여 방향을 바꾼다. 조금 남쪽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에 특이한 건물모양들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中華民族園이다. 중국내 민족이 56개 민족이라고 한다. 이 소수민족의 특징과 문화 등을 전시해 놓은 일명 민족박물관인 셈이다. 잠깐 정문에 머물러 입장료금과 원내 안내도를 살펴본다. 이 민족원은 南區와 北區로 나뉘어져있는데, 이 두 곳을 모두 볼 수 있는 입장료금은 90위앤 이었다. 학생은 60위앤이다. 또 단체의 경우 60위앤 이었다. 그리고 한곳만 보는 입장권을 사면 역시 60위앤 이었다. 입장비가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안내도를 보니 각 민족별로 구역화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각 민족코너별로 별도의 공연이나 전시를 시간대별로 하고 있었다. 이 민족원을 내실 있게 구경하려고 하면 나름대로 그 일정을 파악하고 찬찬히 둘러보아야 할 것 같다.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혼자는 무리일 듯싶어 나중에 가족과 함께 둘러보기로 하고 나의 갈 길을 재촉한다.

 

 계속 3환선을 맞이할 때까지 달려 나간다. 그 민족원을 지나면서 남쪽으로 조금 지나치면 큰 백화점이 하나 나온다. 다시 北土城西路를 타고 나가다 다시 北太平庄路를 타고 남하하면 바로 3환선이 나온다. 이 교차로를 지나 조금 더 남하하면 바로 오른쪽에 북경사범대학동문이 나타난다. 북경사범대학 동문은 그다지 크지 않다. 북경사범대학은 동문, 남문, 서문 등 3개의 문이 있었다. 그중 서문이 조금 크고 남문은 동문보다 작다. 서문의 경우는 北京 電郵大學과 길 하 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었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북경내 대학들은 대학구내가 하나의 타운이었다. 기숙사가 캠퍼스 내에 모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더불어 교원이나 職工숙소까지 자리하고 있어 학생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타운임을 알게 된다.

남문의 경우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학교건물의 상징인 도서관 건물이 남향을 하고 있어 남문에서 동쪽으로 약 50m 만 내려오면 아크릴판에 북경사범대학이라고 교명을 지면바로위에 써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는 담장이 없어 교내 중심부인 도서관 건물과 그 앞의 광장이 바로 보인다. 이곳을 정문으로 하지 않고 바로 옆으로 문을 낸 것을 보면 다른 생각이 있지 않나 싶다. 대부분 그 학교의 정문에서 서며 학교의 전체 또는 상징건물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편이려나. 내 생각에는….

 

 내가 막 다다른 동문은 왼쪽으로 긴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맥도널드도 있고 다른 서점이며 레스토랑도 입점해 있었다. 1층에는. 이 건물은 또 캠퍼스 안쪽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 내부 쪽으로 식당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건물 앞에는 사자상 두 마리가 딱 버티고 있다. 건물을 지키고 있는 듯이. 이 사자상을 보니 학교 북경사범대학 백주년 기념으로 세운 상이었다. 이 건물 역시 100주년 기념으로 건축한 것이었다. 막 도착하니 배가 이상한 신호를 보낸다.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문을 지나니 바로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 여기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다시 나와 맥도널드매장으로 들어간다. 아직 오전시간이긴 하지만 매장에는 몇몇 손님이 늦은 아침을 먹는 것 같다. 난 바로 내가 찾는 화장실로 향한다. 직원들이 보거나 말거나, 내가 급하거늘.

 

 볼일을 보고 나와 자전거를 다시 풀러 들어선다. 동문으로 들어서는 교정은 첫 인상은 시원함이다. 진입로에 들어서 가로수가 길에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여름햇볕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나무숲으로 인하여 교내가 잘 들여다보이질 않는다. 들어서면서 바로 좌회전을 해본다. 왼쪽에 상가 겸 식당이 있다. 友誼食堂이다. 1층에 ‘’안녕하세요‘라고 씌여진 글귀가 보인다. 한국요리를 하는 식당인가보다. 2층에는 양식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점심은 여기서 먹을 요량으로 앞으로 가 점원이 잠깐 문앞에서 인사를 하길래 물어본다. “한국음식 있냐”고 있단다. “불고기, 비빔밥 등 많이 있다고 한다.” 점심 때 들린다 하고 돌아서 나온다. 그 식당 옆으로는 북경사범대 교육관리학원 간판이 나온다. 교육대학원 형식이다. 또 이 건물은 교장연수학원, 소학교교장연수학원, 화북교육부관리연수학원의 푯말이 붙어있다. 이른바 교육대학원이면서 각급 학교 교장연수기관을 겸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교감이나 교장연수 기구로써 시도별로 있는 대학의 연수기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교육학원 명판 들>

 

(교육관리학원 건물)

 

(교장연수기관이라는 안내판)

 

 이 교육관리학원 오른쪽으로 거대한 건물이 보인다. 도서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그런데 문이 잠겨있다. 방학 중 임시 폐문이었다. 이문이 도서관 북문이었다.

 

 다시 왼쪽으로 교4루가 있었고 이를 옆으로 공자상이 보인다. 공자상은 인민대학에서도 볼 수 있었다. 공자 또는 공자학을 학문화 내지는 세계화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또 이 교4루를 옆으로는 북경사범대학 출판사가 자리 잡고 있다. 학교 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남루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北太平庄路 방면으로는 현대식 건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앞과 뒤고 조금 다른 것이다. 간판역시 틀리다. 대로변 쪽으로는 크고 멋지게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 실제 학교 쪽으로는 그저 건물 앞에 작은 현판이 다이다. 대로변의 출판사는 도서매장이 따로 있다. 각종 대학출판사 뿐만 아니라 자사 출판책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출판사 앞뜰에는 졸업생들이 기증한 작은 모형이 동상형태로 있었다. 각 건물들 앞에는 기념이 될 만한 조각 또는 역사적 흔적을 졸업생기수들이 모여 기증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는 각 지역의 동문들이 100주년 기념으로 각 지역의 특산물로 만들 조형물을 보내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조금 먼 거리는 자전거가 편하다. 그런데 내렸다 타고하는 것이 조금은 귀찮다. 또 사진을 찍을 때도 조금은 번거롭다. 그래서 이번엔 적당한 곳에 주차를 시키고 걸을까 해본다. 출판사 옆으로 제법 큰 자전거 주차장이 있길래 그리로 주차를 하고자 들어가니 보안이 막는다. 여기는 옆의 빌딩에 가는 경우만 주차가 가능하단다. 학교 쪽으로 가는 사람은 안된단다. 그 옆 건물은 바로 京師大廈 즉 북경사범대학국제학술교류중심이다. 이 호텔은 캠퍼스내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바로 붙어있고 해서 대학구내건물과 다를바가 없다. 그런데 자전거 주차는 학교 측으로 가는 사람은 아니된다고 거절을 당하였다. 할 수없이 다른 곳을 찾기로 하고 나온다. 옆의 거대한 건물은 현판이 없다. 보통 건물 앞에 뭐라고 적혀있어야 하는데 둘러봐도 아무표지도 없다. 이상하다. 그 앞은 국기 게양대가 있고 하니 분명 학교의 중요한 건물이고 중심이란 것을 알겠는데…. 그 건물 앞으로 광장이 형성이 되어있고 제법 큰 연꽃을 화분에 담아 꾸며놓았다. 바닥에는 분수대도 있다. 오늘을 가동하지 않지만 말이다. 군데군데 벤취도 있고 해서 일반 시민들이 쉬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광장을 남쪽으로 바라보면 대문은 아니지만 담장을 아크릴 유리로 해놓고 그 표면에 북경사범대학이라는 제명을 크게 써놓을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이곳이 제대로 된 정문 같아 보이지만 궂게 닫혀있다. 이 광장 옆에 거대한 쇠종 모양을 한 기념물을 볼 수 있다. 이 기념물에는 ‘木鐸金聲一百年’라고 적혀있다. 나무를 두드려 쇠소리를 낸 100년이란 뜻인가? 맞나 모르겠다. 한자는 워낙 숨은 뜻을 찾기가 어려우니까.

 

(백주년 기념종)

 

(공자상)

 

(출판사 앞의 기념물)

 

(북경사범대학출판사 입구)

 

(대학 본건물)

 

 

 

(경사빌딩)

 

(주건물 앞의 정원)

 

 

 

 이 기념종 뒤로는 英東學術會堂이 있다. 대형 강당과 더불어 강의실을 갖춘 제법 큰 건물이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조금 나가 왼쪽을 보면 학교의 남문이 보인다. 남문은 차량이 오고갈 정도의 두 개 차선정도의 길이 나있다. 동문의 경우는 진입로 하나의 차선이었는데, 학교의 정문격인데, 그다지 크지 않다. 이 남문을 들어서서 약 50m 정도 오면 왼편에 검정색 바탕의 석상이 하나 있다. 이는 이 북경사대의 교훈을 적은 제법 큰 석상이다.  ‘학위인사 행위세범(學爲人師 行爲世範)’이라는 교훈이 멋지게 새겨져 있다. 이 교훈의 뜻은 ‘스승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며, 세상의 모범의 되는 행동을 한다’이다. 사범대학에 어울리는 교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師道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그 師道를 따르고 지키라는 보이지 않는 이끔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좋은 의미로 와 닿는다. 또 내가 교사인데 다시 이 職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정말 나는 스승이 되기 위한 준비를 했는지. 또 세상의 모범이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머릿속에 또 가슴속에 두고두고 걸어놓고 새기고 새겨야 할 화두인 것 같다.

 

 이 교훈석 뒤로는 교학건물인데 좀 오래된 건물들이다. 서쪽으로 조금 더 가게 되면 학생식당이면 근린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커다란 체육관만한 학생식당이 있다. 11시 30분이 넘으니 각 교실에서 특강이며 기타 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이 몰려든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이 교훈석 바로 뒤에는 다 쓰러져 가는 듯한 건물이 있다. 기념품 판매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학교기념품이 많지는 않다. 여타 대학에서 보는 비슷한 물건들이다. 이 기념품 매장에서는 책도 팔고 있었다. 바로 앞에 전공서적을 내다놓고 세일을 하고 있었다. 이 매장에 들어가서 둘러보면서 혹시 학교 안내 책자가 있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지도도 없단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온다. 일단 더 둘러보고 나중에 돌아갈 때 다시 들러서 간단한 기념품이라도 사갈생각이다. 열쇠고리나 책갈피 정도.

 

 여기서 다시 동문쪽 방향을 튼다. 교학건물들이 눈에 띈다. 이름하여 曾憲梓敎學樓가 있는데 앞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다른 건물과 차이를 보여준다. 이 건물은 내부에 電子智源中心이 있었다. 이 건물 앞으로는 작은 정원이 하나 있었고 벤취가 여럿 설치되어 있는데 이 벤취에 학생들이 앉아 독서등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늘이 지어져 있어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원 가운데에 하나의 동상이 있다. 이 학교 교장으로 재임한 적이 있는 陳垣(진원)校長像이다.(담 원)

 

 이 교학루 왼쪽으로는 數學樓 건물이 있다. 잠깐 내부로 들어가  다. 이 학교출신 저명한 수학자가 포스터로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2,3층  실에서는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의 대상자들은 살짝 보니 중학생들이었다. 실내에는 이 강의를 소개하는 무엇도 없었다. 복도에 남자 한분 여자 두 분이 서류를 들고 외부사람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현재 강의중이라서. 가만 보니 중고생을 위한 수학 특강인   같았다. 일반 학생이 아닌 수학에 재능을 갖고 있는 우수한 학생들에 대한 특별 강좌였다  이렇게 곳곳의 강의실에서는 다양한 강좌들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학이라는 곳이 쉬지 않고 학문을 익히는 곳임을 느낄 수 있다.

 

(수학루 앞 정원의 학생들 모습)

 

(제10교학루)

 

(북경사범대학 교훈 석)

 

(영동회의당에 설치된 북경사범대의 별 조형물)

 

(대학구내 거리풍경)

 

(교훈석 뒷면)

 

 

(기념품 판매점 내부)

 

 

(기념품 판매점 입구)

(물리학과 천문학과 건물)

 

 

(교장 진원선생님 상)

 

(수학루)

 

 이 수학루를 나와 이번엔 처음 봤던 가장 큰 건물로 들어간다. 이 건물에 들어가니 내부에 도서관 푯말이 붙어 있다.  도서관 입구는 막혀있다. 방학 중이라 기본적인 열람실만 개방하고 나머지는 닫혀있다. 1층 로비는 매우 넓다. 중앙에 대학 모형도를 만들어 놓았다. 이를 보니 학교 전체를 살펴볼 수 있어 좋다. 내가 현재 어디에 있고 뭣을 돌아봐야 하는지 알 수 있겠다. 도서관 입구 양쪽으로는 컴퓨터가 놓여 있다. 도서관 검색전용 컴퓨터이다. 다가가 마우스를 건드려본다. 회원번호가 있어야 도서실을 열람할 수 있다. 내가 자격이 없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다른 곳으로 연결이 되나 확인해보니 잘 안된다. 되긴 되겠지만 반응이 느리다. 다음을 띄우니 세월이다. 아니면 아주 안되는 것인지. 설마 도서관용인데 다른 인터넷이 안될 리가 있나. 암튼 느리다. 기다리다 그냥 포기하고 나온다. 또 엘리베이터 입구에는 커다란 벼루를 전시해 놓았다. 이 벼루는 역사가 1300여년 된단다. 서북사범대학에서 100주년 기념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이 도서관 건물에는 많은 학과 사무실과 연구실 등이 입주하고 있었다. 그 층별 안내도를 보고 알 수 있다. 도서관 내부를 들어갈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외부인이라도 좀 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도서관을 나와 처음 들어온 동문방향으로 나선다. 계속 교학루가 이어진다. 이번에 만나는 교학루는 교7루이다. 이 대학 건물들은 교7루 등 번호로 이어져 있다. 이 교학7루 앞에는 ‘시대를 앞선 함성’ 이라고 적힌 129기념비가 있다. 1935년 일본침략에 이은 북경사범대학생들의 항전을 기념하는 작은 비이다. 이 건물에 들어가니 역시 강의실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번엔 성인들이다. 모두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빔 프로젝터를 이용한 스크린에 영어 단어가 나오고 이를 시험을 보는 모양이다. 주어진 시간 45분이 표시되어 있다. 스크린에는. 또 한쪽에서는 강사분이 아줌마 같던데, 다리를 꼬고 앉아서 마이크를 이용하여 강의를 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조용히 듣고 있다. 더러 빈 교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강의실이 사용 중이었다. 학습열기가 대단하다.

 

 이 건물을 나와 이번엔 과학루 쪽으로 간다. 과학루 건물도 도서관 건물만큼이나 거대하다. 이 건물 뒤로는 운동장이 두면이 있다. 이 과학루 건물 현관에 들어가 본다. 작게 기념품 매대가 하나 있고 현금지급기도 한 대 있다. 또 직업보도실도 있다. 학생들 직업알선 사무실이다. 이 건물을 지나 북쪽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쪽으로는 직공관련 생활시설들이다. 주거지하고 슈퍼며 식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실험소학도 한 곳 잇고 실험유치원도 있다. 직공식당엘 들어가 보았는데 점심때라 붐볐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또 줄을 서서 음식을 고르고 있다. 음식 값이 엄청나게 저렴하다. 비싸야 1.5위앤이고 대부분이 1위앤 미만이다. 메뉴야 야채서부터 면류, 빵류, 고기류 밥 등인데..그냥 둘러보기만 하고 나왔다. 아무래도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길래. 여기까지 도보로 살펴보고 아니다 싶어 이젠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도서관)

 

 

(도서관 입구 검색대)

 

(방학중 휴관 통지문)

 

(도서관 내부의 병마용 마차조형물)

 

(도서관 건물 안내판)

 

(벼루 설명서)

 

 

 다시 자전거를 세워둔 영동학술회의당 근처로 와서 자전거를 타고 움직인다. 남쪽도로변으로 있는 교학11,13,12,15루까지 이어서 간다. 다시 돌아서 운동장 가까이 간다. 운동장은 두면이 있다. 한 면은 천연잔디이고 한 면은 인조잔디구장이다. 운동장 옆으로 테니스장과 실외농구장이 조성되어 있으면 운동장 가장자리로 야외용 헬스기구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운동장 시설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천연잔디구장도 흙이 군데군데 보인다. 넓기는 하지만 상태는 아주 좋지는 않다. 방학 중인데 이용하는 학생도 없다. 그리고 각 문이 열쇠로 꼭꼭 잠겨져 있다. 테니스장과 농구장은 개방이 되어 있어 이용하는 학생이 있긴 하지만 대운동장을 사용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운동장 옆으로 체육관이 있었다. 건물자체도 오래되어 보인다. 자전거를 잠깐 세우고 들어가 본다. 배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이 그려져 있다. 크기는 큰데, 내부 시설은 오래되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입구에 헬스실이 따로 있었다. 이곳에 운동과건강학부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지 못하였다. 겉만 봐서는 없는 것 같다. 외부에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이 체육관을 보고서 서문으로 잠깐 나가본다. 서문쪽은 한가하다. 학교의 서쪽편과 북쪽편으로는 대부분 기숙사 건물들이 둘러있다. 즉 학교외곽으로는 생활구인 셈이다. 유치원과 실험소학 뒤편으로도 직공숙소와 생활편의 시설들이 위치하고 있다. 건물들이 아주 오래되었다. 대신 조용하고 한적함을 느낄 수 있다. 학교라기보다는 여느 작은 동네의 골목 같다. 둘러볼 때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생각보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사시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학교와는 또 다른 환경인 듯싶다. 비록 학교 내에 자리 잡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학교속의 학교가 아닌 부분을 둘러보고 동문쪽의 우의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패스트푸드를 먹을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점심인데 밥을 먹어야지 하고 해서 한국음식을 판다는 처음에 본 그 식당으로 간다. 자전거를 문 앞에 세우고 들어간다. 메뉴판을 보니 한국음식을 거의 다 있다. 난 갈치구이를 주문하고 기다린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등 뒤에서는 한국인들이 여럿 있어 낯익은 소리가 들린다.

 

(운동장 옆의 헬스기구들)

 

(과학루 건물)

 

(직공식당)

 

(직공식당 내부)

 

 

(부설 유치원 정문)

 

(각 기구가 있는 별관)

 

 

(대학 재무부와 회계실 건물)

 

(학생식당)

 

(인조잔디 운동장)

 

(천연잔디운동장)

 

(남쪽의 기숙사 모습)

 

(화학루)

 

(전가병 예술교육서원)

 

(체육관 내부)

 

 

(농구장 옆의 헬스시설)

 

 식사가 나와 잘 먹는다. 뭐 맛이라 특이할 것이 없다. 그저 한 끼 먹을 만한 정도이다. 점심을 먹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전거를 살펴볼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전거는 문 앞에 두었기에 몸만 일으키면 확인할 수 있었다.그런데 어떤 놈이 내 자전거를 만지고 있는 것이었다. 뒷바퀴에 자물쇠를 걸어놓았는데 어떤 사내놈이 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난 바로 나가서 소리를 지른다. 그랬더니 이놈이 그냥 한번 쳐다보고는 태연한 척 돌아간다. 일단 자전거가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 난 따라갈 생각하지 않고 그냥 쫓은 것으로 만족하고 바로 식당으로 들어온다. 아직 식사대금을 치루지 않았다. 서둘러 식사대금을 치루고 나온다. 그리곤 열쇠로 자물쇠를 열려고 하니 열리지 않는다. 열쇠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이 녀석이 다른 장비로 열쇠구멍을 뭉개 놓았다. 이런 이젠 내가 내 자전거를 열 수 없어 못 타게 생긴 것이다. 다시 한 번 열쇠를 열쇠구멍에 대로 밀어 넣어 본다. 다행이도 몇 번 해보니 열쇠가 들어간다. 겉만 뭉개져 안쪽으로는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자물쇠가 열어진다. 얼른 타고 아까 그녀석이 간 곳으로 가본다. 이 녀석을 어느새 사라졌다. 어디로 간 것일까. 봤으면 자물쇠 물어내라 한소리 할 것인데….

 

 도서관 앞으로 해서 남문으로 나온다. 이제 점심을 먹었고 또 자전거 도난의 우려가 있었던 북경사범대학을 떠나는 것이다. 오던 길로 되돌아오려고 길을 잡는데, 동문쪽의 서점이 보인다. 교육관련 전문서점이다. 일단 들어가 본다. 교육학 관련 서적들이 지하 1층부터 1,2층까지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교직관련, 교사관련, 기타 교과관련 서적들이 많이 있다. 회원이면 할인도 해준단다. 난 체육교과코너를 가서 살펴본다. 혹시 뭐 구입할 만한 책이 있는가 싶어. 초중체육교육과정에 대한 책자가 있어 두 권을 집어 든다. 우리네 과정과 혹시 다른 것이 있나 싶어 구입하는 것이다. 내용이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시간 나는대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이 서점을 나오면 바로 옆에 북경사대출판사 서점이 있다. 이곳도 들어가 본다. 여기는 각 대학 출판사서적도 있고 북경사대출판사 책도 있다. 역시 교육관련 책부터 기타 전집류도 많이 있다.

 

 이 서점을 나와 오던 길로 귀가 길을 잡는다. 이번엔 3환선만 타고 오기로 한다. 4환선을 타지 않고 안가 본 길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3환선을 타고 동쪽으로 오다보면 왕징 쪽으로 오는 길이 나오니까.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다. 오다가 북경화공대학도 발견하게 된다. 나중에 올 수 있겠지. 날이 덥다. 한낮이라서 아침에 올 때보다 더 더운 것 같다. 바람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또 시내 쪽이라 더 덥게 느껴진다. 차량이 많아서겠지.

 

 적당히 오다보니 이전에 버스를 타고 다닐 때 봤던 곳이 나온다.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맥도널드도 있고 전화기 파는 곳도 있다. 어제 밤부터 전화기가 요금이 다되었다고 정보를 주었다. 요금충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세우고 잠깐 들어가 100원짜리 카드를 사서 충전시킨다. 맥도널드에서 냉커피를 한 잔 사 마시면서 다시 길을 잡는다. 동3한을 향하여. 한참을 달리니 동3환 교차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京順路방향을 잡아 달린다. 버스를 옆으로 택시를 옆으로 하면서 나의 길만 간다. 먼지도 나고 매연도 뒤집어 쓴다. 조금이라도 덜 마시고 뒤집어쓰려면 어서 가야한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왕징신청에 이른다. 일연이에게 전화를 넣어 만난다. 집에 있단다. 일연이 집사람이 와 있다니 얼굴이나 한번보고 가야지. 좀 늦게 상해로 간다면 저녁이라고 하고 가면 좋은데 6시 비행기가 저녁 먹을 시간은 되지 않는다. 일연 민박집에 올라가 인사 나누고 잠시 이야기 하다가 헤어진다. 다음에 기회를 갖기로 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그 둘은 공항으로 가고 난 집으로 행한다. 오늘 하루 북경대학 탐방 그 한 곳을 마치고 고된 몸을 이끌고 들어간다.

 

(가로수가 우거진 교정)

 

(교직원 숙소 앞의 빨래 건조대)

 

(남문의 대학 제명)

 

(남문 옆 의 학교 이름이 새겨진 투명 유리판)

 

 

 


Tip 1. 북경사범대학 소개

가. 槪況

학교교정 총면적은 1,048무이다(1畝는 200평) 전일제 학생수는 18,000여명이며, 그중 전일제본과생이 8,400여명, 연구생 8,100여명, 외국장기유학생이 약 1,700여명 이다. 단기유학생수도 1,200여명에 이른다. 온라인 및 평생교육학생수는 29,500여명이나 된다. 교수 및 교직원이 모두 3,000여명이며, 현재 개설된 단과대학은  23개 대학, 2개 계열, 17개 연구원(연구소, 연구중심)이 있다. 현재 도서관의 면적은 23,800평방미터이며, 도서관 장서수는 305만권이며, 전자도서가 15만책에 이른다. 각 종류의 중국외문서류고가 60개가 있다. 이러한 장서수 등 도서관 규모는 전국대학의 선두권에 있는 셈이다.

학교는 75,85기간동안 국가중점건설 10개 대학의 1개로 지정되었다. 이 75,85기간이라는 것은 보통 ‘211공정’이라고 한다. 이는 교육부 교육진흥행동계획의 하나로 특색 있는 중점대학을 국가나 북경시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2002년 9월8일 인민대회당에서 북경사범대학 개교 100주년 경축기념식을 가졌다. 강택민,주용기 후진타오 등 당과 국가영도자들이 참석하여 경축하였다.

북경사범대학은 현재 ‘985공정’ 2기가 수행중이며, 이 계획에 따라 5억위앤을 지원받아 학교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건학목표를 실현하는데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나. 沿革과 傳統

북경사범대학전신인 京師大學堂師範館은 1902년에 창립되었다. 이는 중국현대고등사범교육의 시초였다. 1908년 京師優級師範學堂으로 개명되면서 독립학교가 되었다. 1912년 북경고등사범학교로 다시 개명되었으며, 1923년 북경사범대학으로 다시 바뀌었다. 중국 역사상 첫 번째 사범대학인 셈이다. 1931년과 1952년 북경여자사범대학 輔仁大學과 북경사범대학이 합병되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북경사범대학은 개교이래 중화민족의 독립, 자유, 민주를 위해 투쟁하였고, 부강한 전진사업과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호흡하였으며, 5.4운동과 129애국운동에 사대와 사대학생들이 있음으로 중요한 역학을 발휘하였다. 李大钊、鲁迅、梁启超、钱玄同、吴承仕、黎锦熙、陈垣、范文澜、侯外庐、白寿彝、钟敬文、启功 등 역대 유명하고 일류인 선생들이 이러한 문화와 계몽 그리고 교육에 앞장섰다. 100여년 동안의 발전에는 북경사범대학은 조국의 미래와 민족운명의 막대한 책임감의 핵심으로써 “爱国进步、诚信质朴、求真创新、为人师表”의 우수한 전통과 “学为人师,行为世范”의 교훈이 있었다. 인재를 배양하고 과학을 연구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등 훌륭하고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지금까지 양성한 20여만 명의 우수한 자질의 교사와 각 분야의 전문인재는 중국현대교육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다. 학과개설

현재 본과는 55개, 2002년에 교육부로부터 6개 학교가 본과를 자주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인가를 얻었는데 그중 하나가 북경사범대학이다. 석사과정은 154개, 박사과정은 87개, 16개의 박사후과정이 개설되어있다. 16개전공의 석사 박사 1급 수여학과가 있으며, 석사 박사전공수는 전국대학 순위에서 앞서 있다. 16개의 국가중점학과 6개의 북경시중점학과가 있다.

현재 2개의 국가문과기초학과인재양성과 과학연구기지가 있으며, 5개의 국가이과기초과학연구 및 교학인재양성기지가 있다. 2002년에 국가교육부로부터 국가생명과학기술인재양성기지로 비준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국가대외한어교육기지로 비준을 받았다. 또한 전국교사교육온라인협회 비서국으로부터 평생교육과 교사양성학원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북경사범대학은 국가대학생 문화소질 교육기지 중의 하나이다.

국가중점 실험실이 1개,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가중점 실험실이 2개, 8개의 교육부중점 실험실, 3개의 교육부 공정중심, 5개의 북경시 중점실험실, 2개의 북경시공정기술연구중심, 7개의 교육부 인문사회과학중점연구기지, 1개의 북경시 문과연구기지 등이 있다. 2003년 북경사범대학 ‘대학과기원센타건설동정’이 순조롭게 교육부의 허가를 얻었으며, 과기부연합회의 평가와 심사를 받았다.

라. 교수진

북경사범대학현재 교수 수는 약 1,300여명이다. 그 중 박사학위소지 교수비율은 64%이다. 양원(국무원, 과학원)원사가 19명, 국무원학위위원회위원 1명, 국가비준에 현격한 공헌을 세운 중청년전문가가 17인, 국무원학과평의회위원이 15명, 장강학자장려계획특별초빙교수가 11명, 석좌교수 3인, 국가특별청년기금수혜자 14명, 교육부의 세기를 뛰어넘는 신세기우수인재가 59명이다. 교수 486명, 부교수 522명이다. 최근 ‘우수인재초빙계획’과 ‘ 청년우수간부교사배양계획’, ‘인재자원공유계획’이 학교에서 통과됨으로써 학교건립 이래 우수인재 확보에 대한 단일기구가 형성이 되었으며, 소질이 우수하고 활력이 풍부하며 높은 수준을 가진 교수진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마. 부속학교

북경사범대학 부속학교로는 북경사범대학실험유치원, 북경사범대학부속실험소학,북경사버대학부속실험중학, 북경사범대학부속중학, 북경사범대학제2부속중학 등이 있다.

바. 교통

북경사범대학 주변으로 가는 대중교통노선은 아래와 같다. 내가 사는 왕징에서 가는 버스 노선은 運通 104번이 대서양신청 앞에서 있다. 이 버스를 타면 한번에 북경사범대학을 갈 수 있다.

公交车行车路线:

     铁狮子坟(师大东门)站:22、38、47、304、618、626、709、726、

 810、815、826、939、921、949、运通104


Tip 2. 중국의 교사 임용에 대하여

<중국교사자격과 임용>

중화인민공화국교사법 제3장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10조

국가실시교사자격제도

중국공민으로서 헌법과 법률의 준수, 교육 사업에 대한 애정, 훌륭한 도덕과 사상의 겸비, 본법에서 규정하는 학력과 국가교사자격고시합격, 교육 및 교수능력 겸비, 이미 검정이 확인되었거나 이미 자격 취득자

제11조

교사자격을 취득하기위한 학력

- 유아교사 자격:유아사법학교 졸업 및 그 이상의 학력

-소학교사 자격 : 중등사범학교 졸업 및 그 이상의 학력

-초급중학 교사, 초급직업학교문화 및 전공과 교사자격 : 고등사범전공과 및 기타대학전공과 졸업 및 그 이상의 학력

-고급중학교 교사 및 중등전문학교, 기술공업학교, 직업고중문화과, 직업과교사자격 : 고등사범학원, 학교 본과 및 기타대학본과졸업이상, 중등전문학교, 기술공업학교와 직업고중학생실습지도교사 자격을 갖춘 학력, 국무원교육 행정부분 규정에 따름

-고등학교교사 자격 : 연구생 및 대학본과졸업이상학력

-성인교육교사 자격 : 성인교육의 단계, 종류 등에 따라서 고등, 중등학교졸업내지는 그이상의 학력, 본 법규에서는 공민의 교사자격 학력을 규정하지 않는다. 자격을 신청하여 취득할 수 있고 국가교사자격고시에 응하여 통과하는 것이 필수요소이다. 국가교사자격고시제도는 국무원규정에 따른다.

제13조

중소학교사 자격은 현급 이상 지방인민정부교육행정부분에서 부여하며, 중등직업학교, 기술공업학교의 교사자격은 현급이상인민정부교육행정조직유관기구에서 주관하여 결정한다. 보통고등학교의 교사자격은 국무원 또는 각성, 자치구, 직할시 교육행정부 또는 위탁받은 학교에서 결정한다. 본 규정에서 정한 학력으로 국가교사자격고시에서 합격한 공민을 교사로 인정하며, 유관기관에서 인정한 교사자격을 요구 할 수 있으며, 그 유관기관은 필히 본 규정의 조건을 확인하고 적용시켜야 한다. 교사자격을 취득하고 처음 임용시에는 필히 견습기간이 필요하다.

제14조

정치적으로 처벌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범죄행위로 일정기가 형사처벌을 받은 자는 교사자격을 취득할 수 없으며, 이미 취득하였더라도 교사자격을 자동으로 상실한다.

제15조

각 사범학교 졸업생은 국가기관의 규정에 따라 교육 교수업무를 실시해야 한다. 국가는 비사범고등학교 졸업생의 중소학 또는 직업학교의 발령을 격려한다.

제16조

국가가 실행하는 교사직무제도는 구체적으로 국무원규정에 따라 실시한다.

제17조

학교 및 기타교육기관은 반드시 교사 초빙제를 실시한다. 교사의 초빙은 필히 쌍방의 평등한 원칙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학교와 교사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쌍방의 권리와 의무 책임 규정을 명확하게 한다. 교사초빙절차를 실시함에 있어서는 국무원교육행정부분규정을 따른다.


Tip 3. 조선일보가 연재하는 세계일류대학 북경사범대학편

베이징의 대학하면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도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을 떠올린다. 베이징사범대학이 인민대학과 함께 베이징의 4대 명문에 꼽힌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베이징사범대는 베이징뿐 아니라 중국의 명문이다. 중국의 고등학생에게 “가고 싶은 대학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상당수 학생이 베이징사범대를 꼽는다. 중국의 스승을 길러내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사범대는 1902년 경사대학당사범관(京師大學堂師範館)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중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자 국가 중점지원 대학이다. 1894∼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뒤 청나라의 신지식인들이 서양 열강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부흥시킬 인재를 길러내고자 세운 것이다. 이 학교는 신해혁명이 일어난 직후인 1912년 베이징고등사범학교로 이름을 바꾼 후 1923년 베이징사범대학교로 개명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난의 시기에 세워진 만큼 베이징사범대에는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청나라 말기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한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가 총장을 지냈으며, 중국 근현대 최고의 작가 루쉰(魯迅)도 이 곳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마오쩌둥은 이 학교를 ‘중국의 보물’이라고 불렀다. 인재 양성을 위해 세워진 이 학교에는 간절한 구국(求國)의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사범대에는 23개 단과대학, 17개 연구소, 55개 본과 전공 과정이 개설돼 있다. 문과 부문은 인재 육성과 대외 한어교육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생명과학연구 분야는 국가 지원을 받으며 생명공학의 연구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이징사범대는 문과뿐 아니라 이공계열에서도 중국 최고의 대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교육 분야는 학교 이름이 말해주듯 중국 내에서 독보적이다.

베이징사범대는 중국 민속학 연구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서양에서 주로 연구돼온 민속학을 중국에서 처음으로 학문화하며 민속 전통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열풍인지 공자상이 대학 캠퍼스 한 곳에 우뚝 서있기도하다. 중국은 50여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베이징사범대에서는 이들 소수민족의 문화를 집중 연구하고 있는 점에서 다른 대학과 크게 다르다.

중국 국력이 커지면서 베이징사범대도 국제화하고 있다. 해외교류는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30여개국 100여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3000명이 넘는 외국 유학생이 베이징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 유학생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기숙사에 가면 한국의 대학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다.

베이징사범대는 최근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학교 명성에 걸맞게 최첨단 시설로 학교를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도서관은 전자도서로 채워지고 있다. 장서가 305만권에 이르는 대학 도서관은 15만권의 전자도서를 갖추고 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이를 100만권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불어나는 유학생을 위해 기숙사도 새로 지어졌다. 학교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면서 오랜만에 베이징사범대를 다시 찾은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지기 일쑤다. 중국의 변화는 베이징사범대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사범대는 베이징의 대학가인 학원로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학원로는 중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베이징사범대도 중국을 짊어질 학생을 길러내고 있다. 특히 ‘진정한 스승의 길’을 가르친다. 교정 곳곳에는 ‘학위인사 행위세범(學爲人師 行爲世範)’이라는 교훈이 내걸려 있다. ‘스승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세상의 모범이 되기 위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Tip 4. 학교 홈페이지의 학교 관련 중문 글


一、学校概况

  学校校园总面积 1048 亩。在校全日制学生 18000 余人。其中,全日制本科生 8400 余人,研究生 8100 余人,外国长期留学生近 1700 人。短期留学生人数达到 1200 余人次。网络与继续教育各类学生 29500 余人。教职工近 3000 人。现设 23 个学院, 2 个系, 17 个研究院(所、中心)。图书馆书刊藏量 305 万册,电子图书 15 万册,各类中外文数据库近 60 个。

  学校在“七五”、“八五”期间,被确定为国家首批重点建设的十所大学之一。“九五”、“十五”期间,又被首批列入“ 211 工程”建设计划。在教育部“教育振兴行动计划”中,作为有特色的重点大学得到了国家和北京市的支持。

  2001 年 6 月召开的第十次党代会通过了学校未来 15 年的发展目标和“十五”发展规划纲要,明确到 2015 年前后,将北京师范大学建设成为“综合性、有特色、研究型的世界知名高水平大学”。

  2002 年 5 月,北京市第九次党代会决定实施首都新世纪重点建设工程,北京师范大学被列入北京市重点支持建设世界一流大学的院校,写入党代会决议。同年 8 月,教育部、北京市签署了重点共建北京师范大学的协议,支持北京师范大学建设世界知名高水平大学。

  2002 年 9 月 8 日 ,北京师范大学在人民大会堂隆重举行建校 100 周年庆祝大会,党和国家领导人江泽民、朱 镕 基、李瑞环、胡锦涛、尉健行、李岚清等出席大会。江泽民同志作了关于教育创新的重要讲话,对北京师范大学百年办学成就给予了充分肯定,为北京师范大学的发展指明了方向。

  在国家“ 985 工程”二期建设中,北京师范大学获得的中央财政专项资金规划规模控制数为 5 亿元,为学校进一步实现跨越发展和整体办学目标提供了重要机遇。

二、历史沿革与优良传统

  北京师范大学的前身是 1902 年创立的京师大学堂师范馆,她开创了中国现代高等师范教育的先河。 1908 年改称京师优级师范学堂,独立设校。 1912 年改名北京高等师范学校, 1923 年更名为北京师范大学,成为中国历史上的第一所师范大学, 1931 年和 1952 年北京女子师范大学、辅仁大学先后与北京师范大学合并。一百年来,北京师范大学始终同中华民族争取独立、自由、民主、富强的进步事业同呼吸,共命运,师范学堂及其后的师大师生在“五四”、“一二九”等爱国运动中,发挥了重要的作用。以李大钊、鲁迅、梁启超、钱玄同、吴承仕、黎锦熙、陈垣、范文澜、侯外庐、白寿彝、钟敬文、启功等为代表的一大批名师先后在这里弘文励教。经过百余年的发展,北京师范大学形成了以对祖国未来和民族命运的高度责任感为核心的“爱国进步、诚信质朴、求真创新、为人师表”的优良传统和“学为人师,行为世范”的校训,在人才培养、科学研究、社会服务等方面做出了重要贡献,培养了 20 余万优秀师资和各类专门人才,在中国现代教育史上书写了光辉篇章。

三、学科建设

  现有本科专业 55 个, 2002 年成为教育部首批 6 所拥有本科专业自主设置权限的重点高校之一,有 154 个硕士学位授权点, 87 个博士学位授权点, 16 个博士后流动站, 16 个硕士、博士学位一级学科授权点。硕士、博士点数在全国高校居于前列。有 16 个国家重点学科、 6 个北京市重点学科。

  现有 2 个“国家文科基础学科人才培养和科学研究基地”、 5 个 “国家理科基础科学研究和教学人才培养基地”。 2002 年经教育部、国家计划委员会批准在我校建设“国家生命科学技术人才培养基地”, 2003 年批准我校为“国家对外汉语教学基地”,全国教师教育网络联盟秘书处设于我校继续教育与教师培训学院。我校还是国家大学生文化素质教育基地之一。有 1 个国家重点实验室, 2 个与有关单位共建的国家重点实验室, 8 个教育部重点实验室, 3 个教育部工程中心(研究院、网上合作中心), 5 个北京市重点实验室, 2 个北京市工程技术研究中心, 7 个教育部人文社会科学重点研究基地, 1 个北京市文科研究基地。 先后获准建设北京市大学科技园、国家大学科技园。 2003 年,北京师范大学“大学科技园区建设工程”,顺利通过教育部、科技部联合组织的评估验收。 2003 年学校“十五”“ 211 工程”建设正式启动, 8 个重点学科项目、 4 个公共服务体系项目和 1 个队伍建设项目的建设工作正在顺利建设中。 2004 年,启动国家“ 985 工程”二期建设项目,重点建设 6 个科技创新平台和 4 个哲学社会科学创新基地以及“哲学社会科学数字信息资源与管理中心”、“高性能大容量计算中心”两个基地 / 平台条件支撑项目。

四、人才培养

  北京师范大学始终把人才培养作为学校的根本任务,高度重视教育教学工作,以人才培养模式多样化、通识教育、教师教育体制与培养范式改革、新型学习制度探索为重点的教育教学改革与建设,正在进一步拓展和深化。根据学校战略转型和人才培养目标的定位,我校积极探索人才培养模式的改革。 1999 年开始创新教师教育的“ 4 + 2 ”模式改革的研究与实践,为最终将教师养成与专业教育相剥离,实现学士后的教师教育即教师教育学院化转型,培养具有研究生学历的高素质研究型教师积累了经验。试办“励耘实验班”,进行跨学科宽口径人才培养模式改革的探索与实践,在部分院系实行按院系或专业大类宽口径招生的改革,实施宽口径、厚基础的通才教育。改革和完善教学管理制度,推进弹性学习制度,建立和完善教学质量监控与 保障体系。在研究生培养方面,积极探索部分专业研究生培养学制改革试点,加大支持研究生参加科学研究的力度,研究生业务素质和研究能力不断提高。在历届全国高校优秀教学成果奖和全国高校优秀教材奖评比中,我校获奖数量位于前列。 2001 年获全国普通高校教育教学成果奖国家一等奖 2 项、二等奖 8 项,北京市级一等奖 24 项、二等奖 19 项。 2004 年我校有 19 项教学研究成果通过了北京市教学成果一等奖的评审, 26 项教学成果获得了北京市教学成果二等奖的评审, 2005 年 5 月,有 9 项教学成果通过了教育部组织的国家教学成果二等奖的评审,其中有 2 项推荐国家一级教学成果奖。我校现有 4 门国家精品课程, 7 门北京市精品课程。“北京市精品教材立项”项目 31 项,另有 15 本教材荣获“北京市精品教材”。 1 名教师获得“国家级教学名师奖”, 3 名教师获得“北京市教学名师奖”。在 1999 年— 2005 年全国百篇优秀博士学位论文评选中,我校有 11 篇论文入选,入选数目位居全国高校前列。

五、科学研究

  北师大拥有雄厚的科研实力,是我国重要的科学研究基地之一。“九五”以来,我校人文社会科学共承担省部级以上纵向科研项目 639 项,其中,国家级项目 136 项,省部级项目 503 项。人文社会科学科研经费迅速增长,名列全国高校前列。 1998 年— 2003 年我校被 CSSCI 收录的论文共 4469 篇,人均绩效在全国高校中居于领先地位。“九五”以来共获省部级以上各类成果奖励 250 余项,其中,由 白寿彝 教授主编的 22 卷本宏篇巨著《中国通史》,被誉为 20 世纪中国史学的压轴之作,受到江泽民同志及其他党和国家领导人的高度赞扬。该书还获得了第三届中国高校人文社会科学优秀成果奖特等奖、北京市第六届哲学社会科学优秀成果奖特等奖、第四届吴玉章奖特等奖,都是唯一的特等奖。 赵光贤 教授所著的《古史考辩》、 陶大镛 教授的专著《世界经济新格局研究》、 顾明远 教授主编的《教育大辞典(增订合编本)》等许多成果分别荣获中国高校人文社会科学研究成果奖、国家社会科学基金项目优秀成果奖、北京市哲学社会科学优秀成果奖等。


  北京师范大学的自然科学研究已经成为国家科技创新的一支重要力量。在概率论与模糊数学研究、理论物理与系统科学研究、资源环境与可持续发展研究、生命科学尤其是生态学和蛋白质组学研究等方面,做出了重要贡献。李小文院士创建了“李- Strahler 几何光学模型”,奠定了国际二向性反射研究中几何光学学派的基础; 郑光美 教授主持的“中国特产濒危雉类生态生物学及驯养繁殖研究”荣获国家自然科学奖二等奖; 李洪兴 教授领导的实验室在世界上第一个成功地实现了四级倒立摆实物控制,在自适应模糊控制理论和实验研究两方面,均取得了突破性的成果,获得 2003 年教育部自然科学一等奖。 2002 年由北京师范大学和国家海洋局的两研究所共同完成的 “渤海海冰作为淡水资源的可行性研究”项目已通过教育部鉴定。该项成果是世界上第一个从资源利用的角度系统地完成海冰资源量估算和海冰脱盐淡化的研究成果,具有国际领先水平。

六、师资队伍

  北京师范大学现有专任教师 1300 余人。具有博士学位的教师占教师总数的 64% 。两院院士 19 人(双聘院士 11 人),国务院学位委员会委员 1 人,国家批准有突出贡献的中青年专家 17 人,国务院学科评议组成员 15 人,长江学者奖励计划特聘教授 11 人、讲座教授 3 人,国家杰出青年基金获得者 14 人,教育部跨世纪、新世纪优秀人才 59 人。 教授 468 人,副教授 522 人。近年来,学校通过实施“优秀人才引进计划”、“中青年骨干教师培养计划”、“人才资源共享计划”等举措,建立了一支结构合理、素质良好、富有活力的高水平教师队伍。

七、社会服务

  北京师范大学通过承担科研项目、参与国家和地方重大建设任务等途径,进一步密切与社会的联系,在技术推广应用和合作教育方面,先后与中央有关部门、地方政府、大学和企业开展了多种形式的共建、合作办学与合作开发研究。学校发挥沙漠化防治、景观生态、环境工程和水土保持等学科优势,联合在京的有关单位,开发和集成可行有效的防沙治沙、水土保持技术,为首都生态环境优化及绿色奥运做贡献。根据教育部、北京市政府重点共建协议,我校与北京市共同建设的北京文化发展研究院、首都教育经济研究院以及首都基础教育研究院,作为我校与北京市开展更进一步合作的平台,以促进北京率先基本实现现代化为目标,积极参与北京的文化与教育事业。我校还发挥基础教育资源和学科优势及其辐射、示范作用,为我国基础教育的改革与发展服务。与珠海市、云南省、内蒙古自治区、青海省等省区开展教育科技合作,与西北师范大学、新疆师范大学、西藏大学、新疆塔城师范学院开展对口支援,并于 2003 年被评为全国对口支援西部地区先进单位。

八、对外交流与合作

  北京师范大学坚持积极的国际交流合作政策。目前,学校已与 30 多个国家和地区的百余所大学、国际组织和企业建立了交流与合作关系。在合作办学方面,已先后与新加坡、马来西亚以及香港特别行政区的教育机构联合举办了多个学历和非学历教育项目。学校大力发展留学生教育,目前有来自 50 多个国家和地区的各类留学生 2000 余人,留学生规模居全国高校前列。


  学校鼓励本校师生与国外同行开展学术交流与合作。在许多领域,北京师范大学与国际教育科研机构开展合作研究项目,每年派出教师和学生 600 余人次赴国外及港澳台地区进行交流活动。同时,积极引进国外智力资源,加强交流合作,每年主办、协办国际会议 20 余次;近年来,邀请来校讲学、访问的外国及港澳台专家学者年均近 200 人次;并先后授予或聘请来访的诺贝尔奖获得者、著名专家、知名人士等 111 位海外人士为我校名誉博士、名誉教授 和客座 教授称号。

● 校史 沿革

北京师范大学的前身为创办于1902年的京师大学堂师范馆。

  19世纪末,清政府在中日甲午战争中失败,被迫签定屈辱的《马关条约》,之后帝国主义掀起瓜分中国的狂潮,民族危机日益严重。有识之士痛感时局之危急,急起救亡图存,开办新学培养人才,是措施之一。

  1898年,清政府制定《京师大学堂章程》,规定京师大学堂分普通学与专门学两类,同时设师范斋和编译局等部门。以后历经“戊戌政变”、义和团运动、八国联军侵占北京等变故,京师大学堂屡遭摧残,以致停办。1901年,清政府重建京师大学堂,先设速成科,下分“仕学馆”和“师范馆”。师范馆首先招生,于次年12月17日开学,校址设在景山东马神庙。1904年,师范馆改为优级师范科。

  1908年5月,京师大学堂优级师范科改名为京师优级师范学堂,校址迁往厂甸五城学堂。这是我国高等师范学校独立设校的开始。

  1912年5月,京师优级师范学堂改为北京高等师范学校。

  1920年北京高师开办教育研究科,招收高师和专门学校的毕业生及大学三年级优秀学生,开我国高等学校通过考试招收研究生之先河。1923年,又续办国文、英语、史地三部的研究科。至此,北京高师已经成为学科门类较齐全,不仅能培养师范与中等学校师资及教育行政人员,而且能够培养各科专门学术人员的高等师范学校。

  1923年,北京高师经教育部正式批准改为师范大学。始建于1908年的北京女高师亦于1925年改为北京女子师范大学。在国内其他高等师范学校都相继并入或改为普通大学的时候,北京高师和女高师先后改为师范大学,对我国高等师范教育体系的独立存在具有深远影响。

  1931年7月,北平师范大学与北平女子师范大学合并,定名国立北平师范大学,下设教育学院、文学院、理学院及研究院。

  1937年7月,卢沟桥事件发生,日本侵略军占领北平,北平师范大学迁往西安,与国立北平大学、国立北洋工学院组成西安临时大学。

  1938年春,西安临时大学迁至汉中,改名为国立西北联合大学,北平师大改为西北联大教育学院。同年8月,西北联合大学教育学院改为师范学院,并于次年改称国立西北师范学院。

  1940年,西北师院奉命迁往甘肃省兰州市。为减少损失和解决新校址房屋不足,从1941年起,老生在城固逐年毕业,新生在兰州招收。至1944年,西北师范学院全部搬迁兰州。

  1946年春,学校师生陆续迁回北平,部分教师留在西北,充任西北大学、西北师范学院教师,支持了西北的高等教育事业发展。同年11月迁回北平的学校开学。

1949年2月,北平解放。9月,北平改称北京,学校也相应改为北京师范大学。

  50年代初,全国高校进行院系调整,市体育专科学校、中国大学理学院、燕京大学教育系、中国人民大学教育研究室和教育专修班以及辅仁大学先后并入师范大学,著名历史学家陈垣任校长。师大的规模有了较大发展,教师增至340余人,在校生达2300余人;校舍增加近一倍,原和平门外新华街旧址称南校,定阜大街辅仁大学校址称北校,并在海淀区北太平庄建新校舍,占地82万平方米。

  1966年后,师大经历了10年文革动乱的浩劫。在十分困难的情况下,北京师大广大师生员工忠于职守,坚持科学研究工作,并取得了卓越成绩。

  1976年10月,党和人民一举粉碎了“四人帮”反革命集团。北京师范大学师生欢呼教育和科学的又一个春天到来。通过拨乱反正,学校的教学、科研、思想工作和后勤工作逐渐走上正轨。特别是党的十一届三中全会以后,学校明确提出了要把我校办成全国第一流、国际上有影响、高水平的师范大学的奋斗目标,并为此制定了一系列行之有效的措施,使学校的各项工作均有很大发展。

  夺回被“四人帮”耽误的十年时间,瞄准世界最先进的科学水平,北京师大先后增加了理论物理、固体物理、电化教学、计算机科学、非平衡态等专业和无线电电子学、心理学等系。北京师范大学已由“文革”前的12个系、18个专业、1个研究所,发展为19个学院、6个系、52个本科专业、127个硕士点、70个博士点和14个研究院/所/中心的教学、科研均衡发展的多学科的师范大学,有16个国家重点学科,14个一级学科拥有硕士、博士学位授予权,16个博士后流动站。教职工人数由“文革”前的2100人增加到近3000人,两院院士14人(双聘院士6人),其中,中科院院士11人,中国工程院院士3人。2002年5月,北京市第九次党代会决定实施首都新世纪重点建设工程,北京师范大学同北京大学、清华大学、中国人民大学一道被列入北京市重点支持建设世界一流大学的四所院校,写入党代会决议。到2004年,在校学生人数由过去的不足5000人增加到16000余人,其中本科生8000余人,研究生6000余人,长、短期留学生2000余人。

●도서관

北京师范大学图书馆始于1902年成立的京师大学堂图书室,历史悠久,馆藏丰富。现有馆舍建筑面积23800平方米。馆藏书刊总量290万余册,电子图书10万余册,各种数据库数百种。规模和馆藏总量在全国高校图书馆中居于前列。

  馆藏特色鲜明,精品荟萃。藏有清末以来政府及各地有关教育事业的法规、文件、图表、报告等,对中小学教科书有全面收藏,可为研究我国教育史及近现代教育事业的发展提供重要资料。古籍线装书藏量3万余种37万余册,其中馆藏善本3280余种;尤以地方志类和丛书类书为特色,其中省志82种、府志186种、州志215种、县志1800余种,丛书古籍1300余种。版本最早的为南宋刻本,另有元、明刻本,丽江府罗春的金泥写经本《大乘妙法莲花经》更属艺术珍品。馆藏羊皮封面装帧西文图书为18—19世纪乃至更早的西文古籍


●중점학과 개황

北京师范大学是国内重点高校,2002年成为教育部批准的首批拥有本科专业自主设置权限的六所重点高校之一。现设有本科专业52个,有127个硕士学位授权点、69个博士学位授权点、16个博士后流动站,14个一级学科拥有硕士、博士学位授予权,博士点数在全国高校居于前列。现有16个国家重点学科、6个北京市重点学科(重点学科见下表),这些学科无论在研究成果方面,还是在人才培养方面,都在全国享有很高的声誉,发挥着重要的影响

= 국가중점학과

马克思主义哲学,中国古代史,民俗学,理论物理,教育学原理,细胞生物学,教育史,生态学,比较教育学,系统理论,教育技术学,环境科学,发展与教育心理学,概率论与数理统计,文艺学,自然地理学

= 북경시중점학과

世界经济,无机化学,电影学,生物化学与分子生物学,凝聚态物理,,教育经济与管理

= 중점실험실

 截止2004年6月,我校已建成国家级、部市级重点实验室、工程中心等19个,其中包括2个国家重点实验室,7个教育部重点实验室,5个北京市重点实验室,1个教育部工程中心、1个教育部网上合作中心、1个教育部研究院,2个北京市工程中心。此外,学校还建有校级重点实验室76个。根据学校“十五”发展规划,将在今后5年内建设各类实验室100个左右,形成以国家重点实验室、部市级重点实验室和校级重点实验室相辅相成的三级实验室体系


= 국가중점실험실

遥感科学国家重点实验室, 水环境模拟国家重点实验室, 认知神经科学与学习国家重点实验室


= 교육부중점실험실

环境演变与自然灾害实验室生物多样性与生态工程实验室 , 射线束技术与材料改性实验室, 放射性药物实验室, 细胞增殖及调控生物学实验室 , 水沙科学教育部重点实验室


= 북경시중점실험실

实验心理学实验室, 基因工程药物及生物技术实验室, 生物资源开发与生物工业实验室, 应用光学实验室, 环境遥感与数字城市实验室


● 부속학교

北京师范大学实验幼儿园, 北京师范大学附属实验小学, 北京师范大学附属实验中学, 北京师范大学附属中学, 北京师范大学第二附属中学


●개설단과대학

文学院, 历史学院, 哲学与社会学学院, 经济与工商管理学院, 教育学院, 教育管理学院, 心理学院, 外国语言文学学院, 艺术与传媒学院, 汉语文化学院, 化学学院(公众网 教育网), 政治学与国际关系学院, 数学科学学院, 信息科学与技术学院, 生命科学学院, 地理学与遥感科学学院, 环境学院, 管理学院, 体育与运动学院, 资源学院, 继续教育与教师培训学院(公众网 教育网), 教育技术学院, 法学院, 物理系- 天文系, 材料科学与工程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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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24 19:39

    첫댓글 헉~~~이 어마어마한자료.....다녀온듯합니다....^^

  • 06.07.24 21:28

    오오... 어마어마한 정보!! 감사합니다~

  • 06.07.25 18:05

    와~짝짝짝....대단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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