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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핑은 부산ㆍ경남지역 등산의류의 대표 브랜드다. 노스페이스, 코오롱, 케이투 등 전국구 브랜드가 그대로 각 지방 도시에서도 우위를 지키지만 부산에서만큼은 콜핑이 ‘빅 스리’의 선두그룹에 속한다. 그것은 부산 사람들이 자기 것에만 특별히 애정을 주어서가 아니라 콜핑이 그만큼 ‘자기 바닥’인 부산에서 기반을 잘 닦았기 때문이다. 박만영(朴晩永) 사장은 그러나 부산에만 안주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대전에도 100여 평 규모의 대형 매장을 최근 3개 개설했고, 서울과 수도권에도 지속적으로 매장 수를 늘여가고 있어요. 일단 280개까지 늘일 겁니다. 우리 콜핑 스타일대로 밀고 가면 오래지 않아 서울지역에서도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매출 1천억 대 돌파가 일단 눈앞에 세워둔 목표죠.”
콜핑은 직영점 13개, 위탁대리점 70개, 그외 뉴코아, 세이브존 등 유통업체 입점 매장 100여 개 등 전국에 250개소의 판매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 부산ㆍ울산을 포함한 경남지역에만 65개 매장이 있다. 총 매출 500억 원 중 부산ㆍ경남에서만 올리는 매출이 150억 원쯤 된다. 현재 서울에는 직영점 5개를 비롯해 10개의 큰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조만간 매장 수를 크게 늘여 서울시장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중저가의 싼 콜핑 제품도 고급 소재를 써서 상대적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박 사장은 자신만만해 하는 이유를 말한다.
“1만 원대의 콜핑 티셔츠 한 번 입어보세요. 고가 브랜드에 비해 품질 절대 안 처집니다. 우리의 영업 정책이 그겁니다. 조금만 남기고 많이 팔자, 즉 박리다매죠. 콜핑 중저가품 입어보고 너무 좋다며 놀라는 분들 많습니다. 유명 브랜드나 원단이 같거든요. 한 예로, 젖어도 피부에 안 달라붙는 에어쉘 원단 재킷은 다른 몇몇 유명 브랜드도 쓰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가격이 고작 9만 원대예요. 어떤 유명 브랜드는 똑같은 소재인데 우리보다 갑절도 더 비싸죠.”
“콜핑 하이쿨바지, 유명 브랜드 10만 원대 못지않아”
박 사장은 봉제에서 또한 콜핑 제품이 비교 우위에 있다면서 스판 바지를 예로 든다.
“스판 바지는 봉제선을 당기면 선이 일그러지거나 튿어지는 것들이 적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콜핑은 전혀 그런 일 없습니다. 우리의 봉제 노하우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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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자인실에서 디자이너들과 올 겨울 제품 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박만영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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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핑의 하이쿨 바지는 월 2만 장 정도 판매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소비자 가격이 2만~5만 원으로 싼 편이지만, 품질은 10만 원대 유명 브랜드에 못지않음을 자신한다고 박 사장은 강조한다. 하이쿨 티셔츠 역시 15,000~19,000원 대의 스테디셀러로, 이태 전 여름에는 무려 40만 장이 팔려나갔다. 이밖에도 국내 유명 소재업체와 직접 기술제휴하여 제작한 전문가용 제품들도 전문 산악인들의 테스트를 거친 후 시판하고 있다.
콜핑(Kolping)은 외국 수입이 아닌 토종 브랜드라는 점에서 뜻밖이다. 국산 브랜드로 선전하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콜핑은 코리아와 캠핑의 합성어”라고 설명한다. 이 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콜핑은 캠핑용 텐트로 시작한 업체다.
박 사장은 요즈음 4년여만에 다시 텐트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고 밝힌다. “그간은 펜션에서들 휴가 보냈는데, 주머니가 얇아지면서 숙박비 안드는 캠핑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박 사장은 “경제 사정이 안 좋아졌다는 증거”라고 혀를 찬다. 그 덕에 작년과 재작년 재고 텐트까지 지금 거의 다 꺼냈다고 한다. 콜핑은 원터치 텐트폴에 특허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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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사 직영 매장에서의 박만영 사장. “콜핑 브랜드로 유럽 지역에도 곧 수출할 예정”이라고 박 사장은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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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은 경남 밀양 태생으로 현재 수몰된 밀양댐 안의 마을에서 6남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어려운 유년을 보냈다. “지게 지고 나무 하러 다닌 게 내 첫 등산이자 가장 힘들었던 등산 경험”이라고 박 사장은 말한다. 박 사장은 젊은 날 부산의 봉제회사들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그러면서 미싱과 봉제에 관한 한 ‘박사’가 되었다.
아는 것이라곤 미싱 관련 일뿐이던 그는 봉제전문회사를 차렸다. 8명이란 적은 수의 직원으로 시작, 일본으로 수출하는 업체의 임가공을 해주다가 86년 콜핑이란 상호를 등록하고부터 직접 수출길을 텄다. 그러면서 콜핑은 점차 규모가 커졌고, 85년부터 88올림픽 때까지 국내 캠핑 바람이 불어 텐트가 엄청나게 팔리면서 또한 박 사장은 큰 수익을 올렸다. 그때 하루에 순이익 200만 원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 200만 원은 별것 아니지만 그 때는 큰 돈이었다고 박 사장은 돌이킨다.
순조롭게 사업이 커져나가 박 사장은 1천만달러 가까이 수출하며 부산시장상을 받기도 했다. 그 무렵 박 사장은 유럽으로 사업차 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간편한 등산복장 차림인 것을 보았다.
“아, 이제 저거구나 싶데요. 등산을 좋아하든 않든 편하고 뛰어난 기능을 가진 것이면 누구나 좋아하기 마련 아닙니까? 그래서 등산의류를 시작한 겁니다.”
부산 벡스코에서 매년 콜핑 패션쇼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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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핑 원터치 텐트를 살펴보고 있는 박만영 사장. 콜핑 텐트는 원터치 특허를 적용한 텐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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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핑은 오래지 않아 직원 수가 600명에 이를 정도로 회사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95년 콜핑은 극심한 자금난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96~97년 IMF가 오기 직전의 일이다. 지리산 청학동 아래의 작은 마을에서 텐트를 치고 서너 달 혼자 지내며 실의의 나날을 보낸 박 사장은 다시 텐트와 등산의류 내수를 시작했다.
“IMF가 지나고나니까 등산 붐이 일면서 장사가 잘 됐어요. 당시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하는 중소기업 제품 판촉전 같은 데를 찾아다녔죠. 개나리색 조끼며 남방, 오버트라우저 같은 걸 만들어서 팔았는데, 울산 태화강변에서 대형 천막 치고 한 행사장에서는 TV가 생중계까지 해주는 덕분에 하루에만 3천만 원 매출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갔으니까요.”
1만 원짜리 지팡이만 하루에 1천 개가 나간 그 날 박 사장은 60리터 배낭을 돈으로 가득 채웠다. 그 다음날은 무려 5천만 원어치가 나갔다. 이런 식으로 1주일간 행사가 이어졌다.
이간은 방식에 재미를 들이고 노하우를 터득한 박 사장은 팔도강산 떠돌이 판매를 시작했다. 남해, 광주, 전주, 원주 등 전국의 큰 도시를 전전하며 2년간 점포를 빌려 제품을 대량 쌓아놓고 팔았다. 그러다가 직원을 수십 명 고용,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대량 박리다매 매장을 벌였고, 나중엔 물류창고 겸 매장들을 아예 매입한 뒤 직판도 했다. 이렇게 해 박 사장은 다시 콜핑을 일으켰다. 작년 10월 양산시에 5층의 커다란 본사 사옥을 세우는 것으로 사세가 일취월장하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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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에 있는 콜핑 본사 사옥 앞에 선 박만영 사장. 그가 남다른 땀과 꿈으로 일궈낸 콜핑의 상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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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콜핑은 본사 직원만 90명이며 부산에 직영공장을 가지고 있다. 부산 공장에서는 내수용 바지와 티셔츠를 주로 생산하며, 중국, 베트남, 미얀마 등지에서 주문생산해 오기도 한다. 물량에 비해 매출액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대표적 방수투습성 원단인 고어텍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박 사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고어텍스보다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투습성 좋은 원단들은 여러 가지 있어요. 그런 걸 써서 단가가 좀 낮은 제품을 내는 거지요. 입어보시면 안다고 어느 고객한테든 자신있게 권합니다.”
박 사장은 이를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본사 직영매장엔 수증기를 내는 기계를 비치, 고객들에게 엔트란트, 콜텍스 등 원단의 투습기능을 눈으로 직접 보여주도록 하고 있다.
박 사장의 제품 홍보 열의는 대단하다. 3년째 열고 있는 콜핑 패션쇼도 박 사장이 낸 홍보 아이디어 중 하나다. 부산 벡스코에서 매년 11월 열고 있는 콜핑 패션쇼는 매년 3,000여 명이 몰리는 대성황을 이룬다. “부산에서는 물론 전국에서도 유일한 아웃도어의류 패션쇼일 것”이라고 박 사장은 말한다.
부산시는 부산시의 전략 브랜드로 ‘테즈락(Tezroc)’을 공표했는데, 이중 등산의류와 등산화 부문은 콜핑이 맡아 전개하고 있다.
부인 감상숙 여사 또한 콜핑 홍보에 열성적이다. 인터넷 포탈 다음에 콜핑 카페를 개설, ‘여왕벌’이란 닉네임으로 300여 명 회원의 콜핑산악회를 이끌고 있다.
박 사장은 부인과도 더불어 종종 산행을 즐긴다. 매주 일요일은 콜핑산악회 회원들과 가능하면 안 가본 산을 찾아 오른다. 올 겨울엔 눈 덮인 한라산에 대한 궁금증을 풀 작정이다. 네팔 트레킹도 꼭 해보고 싶지만 장기간 시간을 낼 수 없어 훗날로 미뤄두고 있다. 등산을 그렇게 하면서도 평일 오전엔 골프를 즐기는, 사업이든 취미든 열성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박 사장은 골프를 시작하면서 홍콩과 말레이시아에 골프 웨어도 수출하고 있다. 현재 콜핑 디자인실에는 8명이나 되는 디자이너들이 있으며, 등산과 골프 모두에 적합한 제품을 현재 개발 중이라고 한다.
박 사장은 미국 뉴욕에 올 가을 50평 규모의 대리점을 연다. 덴마크와 프랑스로도 곧 콜핑 브랜드로 의류를 수출하게 될 것이라고 박 사장은 밝힌다. 지방에서 시작한 국산 브랜드의 놀라운 선전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