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 한해(情天恨海)/한용운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쏘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 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 하늘이
싫은 것만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恨) 바다가
병 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情) 하늘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널 수만 있으면
한(恨)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情) 하늘이 무너지고 한(恨)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情天)에 떨어지고 한해(恨海)에 빠지리라.
아아, 정(情) 하늘이 높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이마보다 낮다.
아아, 한(恨)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도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情) 하늘에 오르고 한(恨) 바다를 건느랴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한국 대표 명시 3, 빛샘]===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찌 정과 한이 없겠습니까?
정의 아름다움, 한의 오묘함은 너무나 깊고도 넓어서 인간으로는 닿지 못하는 경지에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정과 한은 때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정한(情恨)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감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가을에
하늘도 보고
바다도 보며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