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 그리고 이태석
나는 이 글을 몇 번의 망설임 후에야 쓰고 있다. 초등학교 모임공간에 고등학교 친구 이야기를 써야 하는 부담감이 그것이다. 그러나, 바로 우리가 자란 동네의 이웃 친구이야기라 여겨져 용기를 내어 본다. 초딩 친구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는 부산사람이다.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 출신이다. 우리 감초들과 같은 고향사람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나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으니 그것이 좀 더 깊은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의 삶의 역정은 대충 이렇다. 천마초등, 대신중, 경남고,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였으며, 군의관으로 군제대후 광주 카톨릭대를 거쳐 사제서품을 받고 아프리카의 오지 남수단의 톤즈에서 의사이고, 교사이며, 신부로서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하여 그의 드라마틱한 生과 死에 대하여 대충은 알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태석 신부, 아니 이태석은 남부민동 그 산허리, 소위 달동네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송도윗길 옛 송도상고 옆의 송도성당에 다니면서 종교적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친구들은 송도해수욕장이 바라다 보이는 천마산 끝자락에 위치한 구호병원(지금의 알로이시오 기념병원)과 소년의 집(前 국가대표 축구 골키퍼 김병지 선수의 모교) 등을 기억할 것이다. 이태석은 이곳에서 불우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고 봉사한 알로이시오 신부의 실천적 희생정신을 만나게 된다. 이태석의 인생여정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신적 기초가 여기 천마산 자락에서 영글어 갔던 것이다. 그는 일반적인 평범한 의사, 비교적 풍족한 생활이 보장되는 의사이기를 거부하고 2001년 카톨릭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났다. 남수단 톤즈에서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소외된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자기희생의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잠시 휴가를 이용하여 귀국한 2009년말 지인의 권유로 건강검진 받게 되는데 이 때 대장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가 2010.1.14일 48세의 생을 마감한다.
2010.1.14일 나는 짤막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인즉은 이태석 신부 선종, 발인(영결)미사에 참석할 사람은 연락해 달라는 고등학교 동기회 총무의 전언이다. 이태석? 이태석 신부? 내 친구 중에 천주교 신부도 있었나? 다음날 신문을 보다가 이태석 신부에 대한 소개글과 함께 부고기사가 눈에 들어와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었다. 부끄러울 수 있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더군다나 같은 반을 했다는 친구를 이름만으로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검색된 사진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앞면이 있는 얼굴이지만, 앨범속의 사진을 보고서야 고등학교 2학년 때 내 자리 뒤쪽에 앉았던 친구, 설악산 수학여행을 함께 다녀왔던 친구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딸아이가 하나 있는 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매주 한 번 아빠인 나의 구두를 닦으면 그 대가로 3천원을 주었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인 딸에게 중학생이 될 무렵인 올 초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제 중학생이 되니 구두 닦는 대가로 용돈을 5천원으로 인상해 주겠다. ‘그런데 조건이 있어’ 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도록 했다. ‘이태석 신부’를 검색하고, 또 ‘수단어린이장학회’를 검색하게 했다. 딸아이가 이태석 신부에 관한 기사내용을 다 이해했을 즈음에 제안내용을 밝혔다. 네가 받은 용돈 중에서 한 달에 5천원은 수단어린이장학회에 기부를 할 수 있겠어? 하고 딸아이의 의중을 물어봤다. 주저하지도 않고 흔쾌히 대답하는 것이다. 단돈 5천원이면 아프리카 수단에 있는 초등학교 어린이의 한 달간의 생활비, 교육비 등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데 놀라기도 하고, 어떤 사명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적어도 ‘비록 나에게는 적은 것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상상이상으로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큰 다행일 것이다.
참고로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수단의 어린이들의 생활과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결성된 장학회다. 현재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이태석 신부 사후에 엄청난 후원자가 몰리고 있고 더 많은 수단어린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언론 매체 등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의 실천적 나눔의 향기가 온 세상으로 퍼지는 것이리라.
돌아보면, 우리 친구들 대부분도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난한 시대에, 풍족하지 못한 부모밑에서 태어나 음으로 양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자라고 교육받고 성장했다는 점에서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반백이 다 되었다. 각자의 살아 온 길을 한 번 쯤 돌아볼 나이이기도 하다. 이웃사촌 이태석의 나눔의 실천적 삶이 전 세계적인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무심코 지나쳐지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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