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부경대 박소영 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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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기독교 영화 속의 기독교인
1970-80년대는 한국 영화에서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다룬 작품이 집중적으로 제작된 시기이다. 이때는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교회의 성장은 곧 신도의 증가였고, 영화계에 새로운 관람층의 등장이었다. 1970년대 이전에도 기독교인은 한국 영화에서 꾸준히 등장해왔다. 1884년 선교사 알렌(Horace Newton Allen)이 처음으로 조선 땅을 밟은 뒤로 개신교는 본격적으로 조선에 정착하였고, 이후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낯설기만 하던 서양의 종교는 점차 익숙해졌고 기독교인의 존재 또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기독교의 정착과 전개, 성장의 과정은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인규의 〈집 없는 천사〉(1941)에 등장하는 향린원의 방수원 목사는,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오래도록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피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복지의 영역을 오랜 시간 담당해왔다. 알렌이 의료선교 사업을 시작으로 선교활동을 진행했듯, 조선의 기독교는 아프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보살폈다. 이러한 사회적 역할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계속 요청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본질적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영화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과거 방수원 목사 시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기독교 사회 역시 크게 변했기 때문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영화에서 기독교인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70년대 후반 즈음이었다. 주기철 목사의 삶을 다룬 〈저 높은 곳을 향하여〉(임원식, 1977)를 시작으로 많은 작품이 제작되었다. 여수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의 삶을 그린 〈사랑의 원자탄〉(강대진, 1977), 소록도의 김정복 목사가 등장하는 〈사랑의 뿌리〉(강대진, 1978), 김유정 목사의 신앙기를 영화화한 〈석양의 10번가〉(강대진, 1979), 순복음교회 최자실 목사의 신앙기를 영화로 만든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김수형, 1982), 안이숙의 투옥생활을 그린 〈죽으면 살리라〉(강대진, 1982), 김진홍 목사의 빈민선교를 다룬 〈새벽을 깨우리로다〉(이기원, 1989) 등이다. 이렇게 많은 영화가 제작·개봉되었지만 사실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따로 있다. 본격적인 기독교 영화의 서막을 알린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더불어 이청준 소설 원작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이장호, 1982), 이문열 소설 원작의 〈사람의 아들〉(유현목, 1981)이다. 기독교 영화로 볼 수는 없지만, 빈민선교를 한 실제 인물 공 목사가 등장하는 〈꼬방동네 사람들〉(배창호, 1982)도 성공한 작품이다.
조선에 정착한 기독교는 격동의 한국사를 지나오며 한국 사회의 거대한 사건을 경험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생존을 위해 종교의 탈(脫)정치성을 강조했지만, 한편으로는 정권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를 긍정하기도 했다. 군사독재 시절이던 박정희 정권 당시 대형 집회가 가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류대영, 『새로 쓴 한국 기독교의 역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23), 356-357] 물론 기독교가 이데올로기에 영합하는 종교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도왔고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기도 했으며,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된 빈민과 노동자 계층을 위한 선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즉 기독교 역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은 한국 영화 안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와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신앙과 민족의 교집합
한국 기독교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이 주기철 목사인데,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하였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를 크게 존경했기에 적극적으로 영화화될 수 있었다. 그의 순교를 다룬 작품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이다. 이 작품 외에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생활을 한 안이숙이 주인공으로 나온 〈죽으면 살리라〉에도 그가 등장한다. 손양원 목사, 김정복 목사 역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수감된 분들인데, 이들의 삶도 〈사랑의 원자탄〉, 〈사랑의 뿌리〉라는 영화에서 다루어졌다.
1935년경 일제는 조선에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기독교계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맞서 조선에서는 기독교 사회를 중심으로 신사참배에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이를 거부한 몇몇 선교학교가 폐쇄될 정도로 엄혹한 시절이었다.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찬성한 교회는 없었으나, 거부운동에 참여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신사참배 거부란 천황을 거부한다는 의미였고, 일제강점기 조선인에게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선교학교가 모두 폐쇄된다면 조선 기독교가 중요시하는 교육 분야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인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특히 주기철, 손양원, 안이숙, 김정복은 더욱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어찌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신사참배 거부는 영화에서 단순히 종교적 행위로만 독해되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적 교리를 따르는 종교인을 넘어 일제에 저항하는 조선인으로서 이해되었다. 실제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교인은 일제에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이는 영화 안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즉 종교적 시련이면서 동시에 민족의 시련으로 관점이 확장되었다. 그로 인해 신사참배 거부는 곧 민족저항운동의 일환으로 그려지게 된다.
그래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기독교 영화의 시작이자 첫 흥행작이라는 점, 신사참배 거부와 관련된 인물에 대한 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신사참배 거부와 순교는 종교적 행위와 민족적 행위의 교집합이 되어 한국의 기독교인에게 종교 이상의 의미로 작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민족주의 가치를 획득하게 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역사적·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기독교라는 종교의 당위성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더 낮은 곳으로, 더 가난한 자에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 교회는 종교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를 동일시하며 세속주의를 내세웠다.[노치준, 『한국 개신교 사회학』(한울, 1998), 15-31 참조]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가난한 자는 더 이상 교회에 들어가지 못했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의 교회는 오히려 빈민가를 도시에서 내쫓았다. 이러한 빈민촌과 교회의 갈등은 이동철의 수기 『꼬방동네 사람들』과 『어둠의 자식들』에 잘 나타난다. 이 두 작품은 각각 배창호, 이장호 감독이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교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보살폈던 이들도 빈민이었다. 교회가 세속화되자 그에 대한 반발로 대안적인 실천신학이 부상했는데, 교회를 벗어나 밖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교회는 빈민선교를 매우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해나갔다. 영화 중에서는 〈새벽을 깨우리로다〉의 김진홍 목사나 〈꼬방동네 사람들〉의 공 목사가 가장 대표적이다. 실존 인물이기도 한 그들은, 빈민촌에 직접 들어가 사람들을 보살피고 계몽시키며 교화와 선교에 힘썼다. 하나님의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마을 운영도 함께 도왔다. 마을 사람들 간 갈등도 중재하는 등 이웃 사랑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는 빈민선교를 위해 빈민촌으로 들어간 기독교인이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안요한 목사, 〈석양의 10번가〉의 김유정 목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안요한은 시각장애인이 되었으나 절망을 극복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였다. 김유정은 전과 6범의 건달이었으나 기독교인이 되고 목사가 되면서 자신처럼 거리를 떠돌며 방황하는 아이들을 보살피게 된다. 이처럼 소외된 자들에게 직접 다가가 선행을 베푸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기독교가 단순히 물질주의를 긍정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편승하는 세속적 종교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종교적 열망의 극단은 영화 〈사람의 아들〉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요섭은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한 알의 약이 한센인을 치료하는 것”이라며 교회를 뛰쳐나가 천막교회를 세운다. 그는 예수를 거부하고 새로운 신을 창조하는 등 타락하여 잘못된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당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을 돕고 부모 없는 아이, 장애인, 성매매 여성, 빈민 등과 함께 살아간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어쩌면 그가 바라던 기독교인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독교 영화 속 기독교인 캐릭터는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을까? 이처럼 등장인물의 한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기독교 영화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왜 실존 인물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지 못하며 대중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확장성을 가지지 못할까?’ ‘왜 기독교 내에서만 존경받는 인물로 그치는 것일까?’ 이러한 한계를 온전히 파악해야 기독교 영화가 상업영화로 제작되지 못하고 교회 내에서만 소비되는 원인을 오롯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 만드는 기적이라는 모순
신앙은 영화에서 곧 기적이 된다. 영화에서 기독교인의 신앙적 깨달음은 기적으로 증명된다. 〈사랑의 뿌리〉의 김정복 목사는 한센병을 치료하고,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의 최자실과 〈새벽을 깨우리로다〉의 김진홍 목사는 지체장애인을 일으키고 병에 걸려 몸져누운 환자들을 치료했다. 〈죽으면 살리라〉의 안이숙 역시 가려움증으로 고통받던 죄수 ‘옴쟁이’를 기도로 치료하고 더 나아가 일제의 패망을 예언한다. 이처럼 한때 기독교에서 멀어지거나 신을 의심하던 교인(최자실, 김진홍)이 다시 기독교에 투신하여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 그들은 기적을 일으키고 종교적 방황은 완전히 종료된다. 성서 안에서 보던 신의 기적이 한국 사회로 와 목사가 보여주는 기적이 되었다. 목사의 기적은 예수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목사가 신격화되면서 예수는 자신의 자리를 잃는다. 신도들이 목격하는 것은 성서와 교리를 따르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목사의 삶이 아닌, 영험한 목사의 기적이다.
비종교인에게 목사의 기적이란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이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코미디 영화이지만 〈할렐루야〉(신승수, 1997)에서 가짜 목사 행세를 하던 주인공 양덕건이 교인들에게 목사로서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친구 오동팔의 추천으로 찾아간 사람이 사이비 종교 교주로 돈을 벌고 있는 사기꾼 뻐꾸기 형님이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새벽을 깨우리로다〉의 김진홍 목사가 종교적 회심을 하고 수감된 죄수의 다리를 치료해주는 장면은 그의 실제 수기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러한 장면을 만들어 그가 의도하지 않은 신격화를 시도한다.
한센병이 치료되고 시각장애인의 눈이 떠지며 지체장애인이 일어서는 기적이 평범한 사람의 믿음과 기도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물론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기적이라고 불리지만, 이것이 영화의 사건이 될 때 영화의 리얼리티는 훼손된다. 동시에 비기독교인 관객에게 기독교 영화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전락하며 설득력을 상실한다. 기독교인에게는 감동을 주는 장면이지만 비기독교인에게는 거부감을 주는 장면이라는 ‘모순’은, 기독교 영화가 기독교인에게만 소비되는 이유이다.
절대 선이라는 함정
기독교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에 등장하는 기독교인은 대부분 선량하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기독교 소재의 영화는 기독교인을 주요 관객으로 상정해 제작하고, 영화의 감독이나 배우 모두 기독교인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교회나 기독교 단체의 의뢰를 받아 제작되기도 한다.(〈죽으면 살리라〉는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으로 기독교 선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후원을 받았고,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는 순복음교회의 의뢰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현되는 기독교인은 절대 선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기독교 영화에서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반동인물)는 기독교인을 방해하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비기독교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죽으면 살리라〉의 안이숙에게 안타고니스트는 매우 모호한 존재가 된다. 신사참배 거부로 감옥에 갔지만 그녀에게 교도소는 박해의 공간이라 보기 어렵다. 교도소의 소장과 간수가 모두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독교인이 아닌 죄수는 그녀를 괴롭히지만 일본인 소장과 간수는 그녀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베푼다. 그래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와 고문은 주인공 안이숙이 아닌 다른 교도소로 수감된 다른 기독교인의 것이 된다. 안이숙의 고통이 강렬한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녀는 비록 독방에 갇히고 일시적으로 눈이 멀지만, 다른 죄수들과는 다르게 호의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수감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는 그녀의 고난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데 실패한다. 이로써 그녀의 신앙적 의지마저 약화된다.
절대 선의 영역 안에서만 존재하는 기독교인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없을뿐더러 현실적인 캐릭터도 될 수 없다. 영화는 갈등을 중심으로 한 서사인데, 이런 선량한 기독교인과의 갈등은 단순한 선악의 대립 외에는 다른 갈등 구조를 만들 수 없게 한다. 이는 곧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 서사 외에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흔들리기는 해도,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영화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신실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더 중요한 갈등 요소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신앙에 대한 내적 갈등은 부정(不正)한 것이기에 빠르게 부정(否定)되고 봉합된다. 물론 종교에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큼 투신하는 그들의 신앙심은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기독교인에게는 존경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 관객에게는 공감과 사랑을 받기가 어렵다.
나가며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종교이다. 기독교인은 한국 사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순응하기도 혹은 저항하기도 했다. 신앙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다양한 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라는 종교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렇기에 기독교 영화 속 기독교인은 그 시대의 기독교를 잘 보여주며 지금의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그러나 기독교 영화에서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자신 또는 종교에 대해 사유하지 못한다. 종교에 대한 의심은 곧 부정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심은 내적 갈등으로 진행되기도 전에 급히 해결된다. 기독교인은 비기독교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관객이 영화에서 보고 싶은 것은 신의 기적도, 신화화된 인물도 아니다. 대신 영화를 통해 ‘나’를 고민하고 ‘우리’를 사유하고자 한다. 그런데 영화 속 기독교인에게 기독교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며, 내적 갈등을 이끄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갈등 없는 믿음이란 개인에겐 축복일 수 있으나 영화의 서사에게는 축복이 될 수 없다. 영화의 시선은 신이 아닌 인간을 향해야 한다. 고민과 갈등은 나약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사유이며, 신앙과 믿음은 치열한 고민과 갈등 끝에 도착하는 종착지여야 한다.
박소영|고려대학교에서 “1960-70년대 수기문학의 영화화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공저로는 『융합의 시대: 메타버스-확산의 예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