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논*의 시간/김효선-
넓은 이마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
이마가 좁은 사람은 미끄러지기 좋은
기억은 통조림 같은 것
가라앉은 입술을 꺼내기 전에는
은밀한 둘레를 껴안는 의식을 치를 것
수많은 날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쉽게 물러지는 복숭아처럼
여전히 사랑은 경전에서 멀어진
이단
재미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거울은 재미없는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
웃는 나를 본다 울고 싶은데
사라졌던 계절이 이마 한가운데
자운영으로 그렇게 서로에게 몰려 있다
나는 좀 모자라서 발목을 빠뜨린다
입술을 꺼내어 기어이 덧을 놓는
죽어야 끝나는 관계는 어면 목숨의 종교일까
물기를 훔친 꽃들은
마음이 없는 곳으로만 고개를 꺾는
깻잎장아찌를 떼어 주거나 머리카락을 떼어 주는
사소함이 이마의 전부를 가릴 만큼
웅덩이에 고인 사랑, 하늘의 낮빛이 맑다
그래, 용서할게
*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에 위치한 한반도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