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성스러움을 잉태하고 있는 공간이다. 대부분은 고요하고 적막하지만, 일이 시작되면 놀라운 긴장감과 활력으로 가득 찬다. 땅 속에 몸을 숨기고 살거나 혹은 땅 위에 겨우 모습을 드러낸 어떤 것들 아니면 물 속에 거주하는 일체의 것들도, 주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된다. 그곳은 마법의 공간이다.
모든 주방에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에너지가 결집되어 있다. 기초 재료를 변형시키는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형태의 칼과 도마,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담는 그릇이 쌓여 있지만, 역시 주방의 핵심은 불이다.
불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주방은 주방이 된다. 그 불이 장작에 의해서 지펴지는 아궁이의 불이든, 검은 석탄으로 만든 연탄불이든, 아니면 가스렌지에서 튕겨져 나오는 파란 불꽃이든, 불에 의해서 모든 재료들은 가공이 된다. 새롭게 변형이 된다. 주방의 핵심은 불이다.
그러나, 탱고 오나다의 주방에는 불이 없다. 그곳에는, 물만 있다.
1.1
저녁 7시 30분. 탱고 오나다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 혹은 도우미들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연다. 탱고를 추기 위해 먼저 도착해서 계단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거나 길가의 가로수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탁탁, 발을 털고 계단을 내려온다. 어떤 땅게로들은 1층 화장실에 들려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매만진다. 탱고 오나다 내부에는 땅게로들을 위한 거울이 없기 때문이다. 탱고 오나다의 내부에는 남자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여자화장실만 존재한다.
1.2
건물이 지어질 때는 아마도 화장실 용도(혹은 1층에서 끝나는 엘레베이터 공간의 연장)이었을 것 같은 두 개의 공간은, 하나는 여자화장실로 사용되고 있고, 다른 하나는 탈의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탈의실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땅게라들이다. 아주 간혹, 땅게로들이 그곳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탈의실에 들어가는 땅게로들은 대부분 경력 4,5년차의 고수들이다. 왜냐하면 탈의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땅게라가 대부분이고 따라서 그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은 땅게라들의 영역을 넘볼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탈의실에 들어간다는 것은 땅게라들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초보 땅게로들은 그곳에 감히 근접을 못한다. 옷을 갈아 입어야 할 초보 땅게로들은 차라리 1층 남자화장실에 먼저 들린다. 그리고 비좁은 그 공간에서 힘들게 옷을 갈아 입은 뒤 오나다로 내려오는 것을 택한다. 땅게라들이 옷을 갈아 입으면서 배어 있을 땀 냄새와 향수 냄새, 체취를 같은 공간에서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한 땅게로들은 이미 그 공간이 친숙해져 있는 고수 땅게로들 뿐이다. .
땅게로들은 오나다 안으로 들어오면 주방 옆에 마련된 검은 의자에 앉아서 홀 내부를 관찰한다. 그러나 땅게라들은 곧바로 탈의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고치가 나비가 되어 껍질을 벗고 나오듯,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되어 홀 안으로 등장한다. 평범한 청바지를 입고 들어간 여인이 투명하고 얇은 날개 옷을 입고 눈부신 땅게로가 되어 문을 열기도 한다. 어떤 때는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던 여인이 홀로 나온 땅게로와 동일인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변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길 거리에 나갈 때는 감히 입을 수 없는 대담한 옷까지도, 그곳에서는 입을 수 있다.
탈의실의 문은, 성과 속의 경계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옷을 갈아 입으로 땅게라들이 그곳으로 들어갈 때, 마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벗겨지는 것같은 불안한 조급함이 그곳을 사로잡는다. 탈의실을 거치지 않고 홀에 앉아서 가방 속의 탱고 슈즈만 갈아 신는 땅게라들에게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탈의실의 그 진한 체취가 배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과제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1.3
땅게라들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굳이 오나다의 문을 열고 나가서 계단을 올라가 다시 엘레베이터 뒤편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오나다 한쪽 벽면에 위치한 문을 열고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올라간다. 가끔 부주의한 땅게라의 실수로 조금 열린 여자화장실 문의 틈새로 몇 개의 짧은 계단이 보이고 벽면에 붙은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땅게라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땅게라들의 화장실은 그러나 반드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데만 쓰이지는 않는다. 춤을 추는 동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기 위해서, 혹은 춤을 추기 전 다시 한 번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땅게라들은 그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오나다 내부에 존재하는 여자화장실은, 가끔 피난처의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땅게로들이 춤을 신청하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 그 낌새를 재빠르게 눈치 챈 땅게라들은 춤을 거절하는 불필요한 노력을 피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혹은 멋지게 춤을 마친 땅게라들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거두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들 끼리만의 은밀한 밀담을 나누기 위해 그 공간은 사용된다.
그곳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땅게로들에게는 신성불가침의 곳이다.
1.4
그러나 땅게로들은 오나다 안으로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오직 그 안에서만 거주해야 한다. 내부분의 땅게로들처럼 탈의실에 들려 대변신을 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고작 의자에 앉아 구두에서 탱고 슈즈로 갈아 신는 것만을 할 뿐이다. 홀에서 흘러나오는 탱고 음악을 들으며 홀의 보이지 않는 열기까지 밀려들어오는 탈의실이나 화장실에서 땅게라들이 머무는 동안, 땅게로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 춤을 추거나 홀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
2.1
오나다의 중앙에 위치한 주방은 오나다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마지막 퇴실자가 불을 끄는 순간까지 가장 밝은 공간이다. 그곳은 환한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천정에는, 달이 차도 기울지 않는 언제나 보름달인 노란 등이 켜져 있지만 오나다 주방의 불빛은 전적으로, 뒷면에 있는 유리로 된 냉장고에서 나온다. 게토레이나 콜라 등의 음료가 네 칸으로 나누어진 선반에 세워져 있는 냉장고의 환한 형광등 불빛은 오나다 내부를 따뜻하게 비춘다.
2.2
오나다 주방을 환하게 하는 것은 냉장고의 불빛만은 아니다. 벽면에는 나무로 된 세 칸 짜리 선반이 놓여 있고 그 선반 위에서 할로겐 불빛이 내려온다. 그 노란 불빛들은 오직 선반에 전시된 물품들에게 쏟아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오나다 주방의 하얀 형광등 불빛이 지나치게 투명한 시선으로 내부를 비추는 것을 중화시켜 주고 있다.
선반의 맨 윗칸 중앙에는 반도네온, 소리가 과연 울려나올지 의심되는 낡은 반도네온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놓여 있다. 그러나 불평하지 말자, 귀 밝은 사람들은 그 반도네온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노신사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꿈틀거리며 수많은 탱고 무대에서 다양한 탱고 음악들을 연주했을 그 반도네온은, 존재 그 자체로 탱고 오나다의 정치적 위치를 드러낸다.
반도네온을 중심으로 양쪽에 화려한 땅게로들의 탱고 슈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아래 칸에는 땅게라들의 탱고 슈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미 꽉 찬 느낌의 땅게로 구두에 비해서, 땅게라들의 발목이 들어가야 비로소 완성될 것 같은 하이힐들이 그 허전한 미완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맨 아랫 칸에는 깨끗하게 씻겨진 유리컵들과 쟁반이 놓여 있다.
2.3.1
오나다 주방 공간은 홀에서 주방으로 들어가는, 한 사람의 몸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좁은 틈을 경계로 순수한 주방공간과 시디플레이어 등 음향기기를 조작하는 디제이 공간으로 양분된다.
디제이 공간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바라봐야 할 정도이다. 디제이 왼쪽 벽에는 비상용 휴대용 손전등이 걸려 있다. 비상시에만 불을 켜라는 것이다. 보통 때는 어둠 속에 있어야 한다. 다른 땅게로들처럼. 뒤편 선반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용도의 물건들이 가득 차 있다. 어떤 때는 오나다의 어느 손님에게 배달된 것 같은 우체국 택배 박스도 쳐 박혀 있다. 그러나 그 물건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2.3.2
환한 주방이 땅게라들의 전용공간이라면,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디제이석은 땅게로들이 들어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은 면적 면에서도 땅게라들의 주방에 비해 턱없이 좁다. 가끔 땅게라가 시디를 플레이할 때는 그곳도 땅게라의 천국이 된다.
디제이가 땅게로라고 해서 모든 땅게로들이 디제이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오나다의 주인들이 앉아 있는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땅게로들은 역시 오나다를 수년 동안 들락거리며 주인들과 친분을 쌓은 극소수의 땅게로들 뿐이다.
가끔 디제이석과 주방 공간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가기도 하지만, 그러나 두 공간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각각 전혀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3.1
오나다의 주방에는 홀 전용의 높은 의자가 벽 쪽에 붙어서 두세 개 놓여 있다. 주방에서 음료를 서비스하는 땅게라들은 한가해질 때 그 높은 의자에 앉아서 홀을 바라본다. 누가 주방에 있는가? 누가 주방으로 향하는가?
주방에 있는 도우미 땅게라들의 동기, 혹은 선후배들은, 홀의 의자보다는 즐겨 주방으로 모인다. 홀에 있는다는 것은 일반 손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주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녀들은 손님에서 가족의 신분으로 위치 변동된다. 주방의 따뜻한 불빛으로 둘러쌓여 있는 그 공간은 그녀들에게 이곳이 잠시 지나쳐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의탁할 수 있는 자신의 또 다른 거점공간이라는 확인을 안겨준다. 나는 저들과 달라, 이런 특권의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친밀감의 유대적 표현이 그녀들을 주방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천 개의 혀를 가진 불의 욕망이, 그 숨김과 드러냄이, 그녀들을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3.2.1
주방과 홀의 경계선에는 니은 자로 설치된 가슴 높이의 바가 있고 그 위에는 땅게로스들이 마시고 놓은 음료수 잔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 가끔은 누구의 잔인지 몰라 자신의 잔을 찾는데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고 때로는 뒤섞이기도 한다.
3.2.2
주방공간에서 디제이 공간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 주방으로 출입하는 그 틈새 끝에 커피 메이커가 있다. 그것은 오나다 내부에서 불의 뜨거움이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다. 검은 물이 유리 주전자 안에 채워져 있고, 뜨거운 수증기가 흘러나온다. 불의 뜨거움을 원하는 사람들은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뜨거운 커피를 붓는다.
오나다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러므로 단순히 기호적 행위가 아니다. 아직 홀로 나가기 위해 충분히 워밍업이 되지 않은 땅게로스들은 커피를 마시며 가슴 속의 불을 지핀다. 뜨거운 불의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내장 속으로 내려가면서 피 속에 잠들어 있던 탱고의 리듬을 깨우고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충분히 춤을 추고 불의 열기로 가득 찬 땅게로스들이 커피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차가운 음료수를 원한다. 오나다의 주방은 극단적으로, 춤을 추기 전의 땅게로스를 위한 게 아니라, 춤을 추고 난 뒤의 땅게로스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불의 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한쪽 끝에 밀려난 커피에서 불의 힘을 빌려 오면 된다.
3.2.3
오나다의 주방이 불을 피하고 있는 이유는, 그곳에 오직 물 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홀 가득 불의 열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주방의 물은 너무나 뜨거운 홀의 불을 끄기 위해서 준비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곳은 땅게라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 이미 주방에 들어갈 정도의 땅게라들이라면, 불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다. 그녀들은 더 이상의 불을 원하지 않는다.(어쩌면 더 뜨거운 불의 열기를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녀들은 물로 둘러쌓인 곳에서 더 뜨거운 불에 대한 갈망을 숨긴다)
3.3
바빌론의 강가에서 나는 울었다.
3.4
가끔 몇몇 땅게로들이 주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의 좁은 틈 사이에 서서, 주방에 있는 땅게라들에게 수줍게 춤을 신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땅게라들은 그 높은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홀 안으로 내려간다. 마치 신이 높은 곳에서 강림하여 지상으로 내려가듯이, 그녀들은 성의 공간에서 속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녀들이 물의 공간에서 불의 공간으로 이동한 뒤, 탱고 음악 세 곡이 흘러나간다. 그리고 다시 물의 공간으로 회귀한다. 때로는 미처 회귀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다른 땅게로들의 집중 공격을 받기도 한다. 성의 공간 깊숙이 존재하는 땅게라들이 속의 공간으로 내려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땅게로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세 곡의 탱고가 끝나고 홀에서 주방으로 땅게라들이 걸어 들어가는 그 짧은 사이, 홀의 의자에 앉아 있던 땅게로들은 서로의 눈치를 슬쩍 본 뒤 경쟁자를 따돌리고 그녀가 주방의 좁은 틈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까이 접근하여 춤 신청을 한다. 아니면 땅게라들이 주방의 그 높은 의자에 앉기 전, 열기를 식히기 위해 서 있는 동안 춤을 신청하기도 한다.
그것이 주방 공간에 이미 들어가 자리 잡고 있는 그녀들에게 다가가 춤을 신청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심리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땅게라들이 주방의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그녀들은 세속의 공간에 거주하는 땅게로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거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3.5
그러나 초절정 고수 땅게라들은, 오히려 주방 밖에 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불과 물을 나누는 것도, 땅게라들과 땅게로들의 힘의 균형관계에 대한 역학적 분석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4.1
탱고족들은 탱고를 통해서 자신을 실재하는 인간으로 체험한다. 그들은 홀에서 춤을 추는 동안 우주와 자신이 일치가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어떤 부패한 외부세계도 그 속으로 끼어들지 못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몰입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먼저, 땅게로와 땅게라의 호흡이 일치되지 않으면, 그들의 영혼과 육체가 화합하지 못하면, 절대 몰입의 경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두 탱고족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서로의 도움 없이는 자아와 세계가 일치되는 순간의 희열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힘의 균형이며, 선과 후, 먼저 앞서가는 움직임과 그림자처럼 그 움직임이 발생하는 빈 공간을 채워주는 후면의 보완이다. 그것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면, 그들 사이에 시간차가 생기면, 이미 일체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역동적 무의식의 신비한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기려 해서도 안 된다. 세계의 복잡함을 그 구성단위들의 개별적 단순성으로 환원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4.2
남자의 손을 악기처럼 여자의 등에 갖다 대면
여자는 그 비밀을 깨닫고 스스로 춤을 추게 된다.
유순하게, 부드럽게, 거칠게, 자유롭게.
탱고는 잘라내듯 분리해서 추는 것
일단 등에 손을 대면 여자의 스텝을 이끌어내야 한다.
여자는 탱고를 추고
발은 훨훨 난다.
(영화 [탱고전쟁] 중에서)
4.3
탱고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가능성의 영역을 탐구하고 새로운 탱고 언어를 계발하기 위해서, 탱고족들에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뚜렷하게 존재하면서 동시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 그것만이 선과 후의, 힘의 이끔과 이끌림의 편차를 무화시켜 준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탱고는 서툰 장식에 불과하다. 화려한 수사학으로 가득 찬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이전에 우리는 제휴와 선택이라는 어려운 터널을 통과하여야 한다. 탱고는 매우 불확실한 춤이다. 우주의 카오스를 경험하게 하고 그 속에서 진화하는 생명체의 놀라운 신비를 체험케 한다.
4.4.1
춤은, 육체로 쓰는 영혼의 대서사시.
4.4.2
탱고는,
춤의 절벽 끝에서
두 팔 활짝 펴고, 새처럼
뛰어내리는
안전장치도 없이 단단하고, 차가운, 저 낮은 바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기 직전,
다시 거대한 힘으로
솟구치는
비상의 날개
깃털같은.
5.
탱고 오나다의 주방, 그곳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 그곳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탱고의 자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