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 충주의 법칙 ㆍㆍㆍ삼국간 치열한 각축 속에 꽃피운 문화… 코로나·수해 속에 꽃피는 마음 경향신문 | 글·사진 김종목 기자 2020.08.19... 이 글의 출처 ☞ 원문보러 가기 클릭 🌷🌷🌷🌷▒ 맨 아래로 가기 ▒🌷🌷🌷🌷 ↑ 칠층석탑(중앙탑·국보 제6호)은 통일신라 때 세워졌다. 너른 잔디밭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중앙탑사적공원에서 26점의 야외 조각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삼국시대 유물과 유적이 여럿 발견된충주시 중앙탑면 일대는 충주 역사 여행의 중심지다
충북은 강원·경기·경상·전라 등 한국의 모든 도와 접했다. 충주는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지배를 받았다. ‘국중원’ 같은 옛 지명과 고구려비 같은 유물이 이 지정학을 담아낸다.
↑ 한국 유일의 고구려비를 전시한 충주고구려비전시관
고구려 상징물 삼족오가 등장한 고분벽화, 말에 올라탄 ‘개마무사’를 재현했다. 전시관 자료는 “충주는 철을 생산한 고장이며, 남북을 왕래할 때 계립령과 죽령 같은 육로와 남한강을 이용한 수로 등이 있는 교통 요지였다”고 써놓았다.
고구려의 한강 이남 진출을 입증하는 유물이다. 돌기둥 하나를 두고 역사학계가 수십년 해석에 매달렸다. 마모된 글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 때인지, 장수왕 때인지, 문자명왕 때인지 건립 시기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2019년 동북아역사재단과 고대사학회 학자들이 3D 스캐닝 데이터와 RTI 촬영으로 판독한 결과라며 ‘397년’을 의미하는 연호(광개토대왕 영락 7년) 등 여덟 자를 읽어냈다고 발표(경향신문 2019년 11월21일 13면 보도)했다. 이후 역사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연구 대상이 됐다. 2020년 KCI 등재 논문만 9편이 나왔다.
금동제 귀고리 같은 장신구가 출토됐다. 고분군 주인이 진흥왕 때 이주한 신라 귀족과 부호들이라고 추정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통일신라 원성왕 때 나라의 중앙 지점을 설정하려고, 남북 극단에서 동일 시간에 출발시킨 사람 둘이 만난 곳이 중앙탑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충주 왕기를 진압·제어하려 세운 ‘진어탑(鎭御塔)’이라는 설도 있다.
대회 중계 목적으로 만든 수변 구조물엔 ‘무지개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야간에 무지개식 조명을 비춘다. 중앙탑 부근 지름 2m 크기의 달 풍선도 밤이면 밖으로 빛을 발산한다.
이성계가 보각국사를 기리며 세운 절이 청룡사다. 권선징악의 전설도 있다. 조선 말기 판서 민대룡이 조상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며 머슴을 시켜 절에 불을 질렀는데, 불 지른 이도 죽고, 이후 벌초하러 온 후손도 죽었다고 한다. 절터로 가는 길엔 풍수지리와 전설, 계곡이 함께 흘렀다. 호젓한 참나무 숲길이 이어졌다.
↑ 힐링·자연탐방지로 재탄생한 활옥동굴 중절모를 쓴 사내가 담배를 물고 뒷짐을 진 채 한복 입은 장정들의 채굴 모습을 지켜본다. ‘활옥동굴’ 입구엔 일제강점기 때 광산을 설명한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활옥동굴에선 고단했던 일제강점기 광산노동자들의 삶과 거리 두기·힐링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여가 생활이 교차했다. 일본인 소유자가 자본을 대고 조선인 덕대가 광부 채용·시설 운영을 맡았다. 자료는 “덕대는 광물 수탈 매개인이자 노동력 착취를 주도하는 하수인”이었다고 써놓았다. 가마니에 담긴 활석은 마차와 배로 탄금대 나루까지 옮겨졌다. 1922년 개통된 충북선이 활석을 부산으로 날랐다. 이 활석은 오사카 제분 공장으로 갔다. 산업화 시기에도 낮고 비좁은 갱도에서 20~30명의 광부들이 활석을 캤다고 한다. 당시 노동자를 재현한 인형도 전시했다. 화약취급소가 그대로 남아 당시 위험한 일터의 일단을 보여준다. 1919년 광산으로 개발됐다. 100년 뒤인 2019년 ‘힐링’을 표방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코로나19 이후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와 언택트(비대면) 여행지로 각광받는다. 동굴 평균 온도는 연중 11~15도다. 노폐물 배출 같은 황토석과 활석의 건강 효능을 적어놓은 안내글이 끌어낸 심리적 효과 때문인지 목적지를 오가며 쌓인 피로가 풀리는 듯도 했다 ↑ 산업시대 폐품 작품을 전시한 오대호아트팩토리
운동장엔 수m 크기의 로봇들이 즐비하다. 미래 유적을 미리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운동장 전시물 관람은 무료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는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한 이곳을 알리려 기자들을 초청했다.
↑ 야간조명을 비춘 탄금호 무지개길
충주호와 심항산을 잇는 종댕이길(7.5㎞), 억새꽃 군락을 이룬 비내섬을 볼 수 있는 비내길(21.5㎞), 등이 펼쳐진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꿈과 희망을 키우던 자택과 관아공원, 향교 등이 어우러진”으로 수식하는 ‘반기문 꿈자람길’(7.5㎞)을 만들고, 또 풍경길에 포함한 건 와닿지 않았다. ‘중원’의 유래와 ‘진어탑’의 역사가 ‘대권’을 향한 지역의 욕망과 이어지는 듯했다
↑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변 종댕이길의 출렁다리
차도로 심항산 전망대로 이동했다. 생태연못과 출렁다리는 내려가지 못했다. 둘레길로 우회해 출렁다리만 보고 나왔다. 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휘청거리긴 이곳도 마찬가지다. 충주시 관계자는 “자영업자 10명 중 3명꼴로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숲해설사들은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 만들었다”고 말했다. 수해와 코로나19 같은 악재에서도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염원을 느꼈다.
‘외출 시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환기 안 되고 사람 많은 밀폐·밀집·밀접(3밀)된 곳 가지 않기’ 등 2단계에 준한 ‘방역지침’은 여행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 실외에서도 2m 거리 두기가 어려우면 써야 한다. 다중시설에서 ‘마스크를 벗게 하는 행위(노래 부르기, 응원하기 등)’도 자제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18일 현재 별도 가이드를 내놓진 않았다. 정향미 문체부 관광정책과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코로나19 이후 여행 관련 가이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역지침에 따라 정한다. ‘외출·모임 자제’ 방침에 맞게 여행지침을 관련 기관 등과 다시 협의해 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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