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 한밭春秋
시가 풍요로운 사회
구재기(시인)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인상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 1917)는 시작詩作이 순조롭지 않거나 시의 여신女神이 그를 저버렸다고 생각되거나, 그가 시의 여신을 잊고 있어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에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달려가 불평도 털어놓고 조언도 구하곤 했다. 그는 때때로 에레디아(Jose Maria de Heredia.1842.~ 1905)에게나,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와 더불어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을 주도했던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 1842~ 1898)에게 달려갔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의 고통이나 갈망 등을 한참동안 털어놓다가 마침내는 자기의 무능력을 늘어놓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온종일 이 빌어먹을 소네트(sonnet. 14행시)를 쓰느라고 무던히도 애 썼다오. 나는 이 시를 써보려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제쳐놓고 완전히 하루를 다 바쳤다오. 그런데도 난 내가 바라던 것을 전혀 쓸 수가 없었소,. 이젠 머리까지 지끈거리고 있다오” 한번은 이렇게 말라르메에게 이야기를 한 후에 드디어는 이런 호소까지 털어놓았다. “난 왜 내가 짧은 시 한 편을 완성할 수 없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소.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흘러넘칠 듯이 많은 데도 말이오” 그러자 말라르메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하지만 드가, 시를 짓는 것은 생각들을 갖고 아는 것이 아니오. 시는 말들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오”.
인간으로서 인간의 삶을 누리면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생각. 그 생각의 연속으로 인간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느 한 순간이라도 생각을 하지 않고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그저 생각만으로 살아간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많은 생각들, 그렇게 연속되는 생각들이 모두가 뜻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무심코 생각하였다가 그냥 흘러버리고 잊혀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도 언뜻 가치 있는 뜻이 숨겨진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바로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그런 생각에 머무를 때 바로 이 생각은 시가 될 수 있다. 즉 가치 있는 생각이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시란 인간의 생각, 즉 뜻[志]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마음속의 생각이 뜻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다시 말로 나타나서 시가 된다. 새삼 ‘시는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는 백거이白居易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시가 단순히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 속의 일상에서 생각에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차라리 삶 그 자체만도 못하게 된다. 잠시 생각이 기쁨과 슬픔과 함께 머물러 스스로의 내부에 존재하는 모습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부정하는 모순으로 나타나고, 이 모순을 스스로 한층 더 높은 단계에서 긍정함으로써 보다 새롭고 가치 있는 것에 이르게 될 때에야 비로소 한 편의 시에 이르게 된다. 그러고 보면 한편의 가치있는 시는 어떤 진리에 접근되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한자의 ‘詩’는 ‘言’과 ‘寺’로 이루어져 있다. ‘言’, 즉 말은 생각을 표현하는 일종의 도구이다. 그러므로 이 말을 하나의 도구처럼 잘못 사용하여 배열을 잘못하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됨은 물론이요 의미에 따라 배열을 잘못하면 다른 효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또 ‘寺’는 곧 ‘사원寺院’을 말한다. 사원은 진리 탐구의 도량道場을 말한다. 그러므로 시란 곧 말로써 진리를 탐구함은 물론 진리를 통한 사상의 정립된 언어 표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언뜻 들으면 시는 매우 고차원적인 언어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만나는 희로애락의 가치 있는 언어 표현인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주역》《서경》《예기》《춘추》와 더불어 경전으로서 후세에 전해져 오고 있는《시경詩經》속의 시편들이 모두 충신, 효자, 열부, 친우들의 순박하고 정직하며 인정이 두터움을 표현하고, 서로가 가엽게 여겨 슬퍼하는 등 측달충후惻怛忠厚의 표현인 것만 보아도 시는 언제나 일상생활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나면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수없이 많은 시잡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서점에서는 오히려 시잡지를 구경하기가 힘들고, 수없이 많은 시집이 출판되고 있음에도 극히 그 일부만이 서점의 서가 한쪽에 몰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시가 소용되고 읽히는 사회, 독자들을 어지럽게 하는 시보다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안존과 즐거움을 찾게 해주는 세상, 그렇게 시가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 [한밭춘추] (대전일보. 2012.11.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