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퇴사 막기 위한 3대 키워드 ①약속 ②자율 ③성장 가능성”
[사표 품은 퇴준생들]〈하〉전문가 10인의 ‘퇴사 방지 해법’
① 계약된 근로조건 보장을… 워라밸 보장해주는 조치 지켜야
② 업무 자율성, 만족도와 직결… 강압-수직적 조직문화, 퇴사 지름길
③ 개인을 성장시키는 조직 돼야… 성취감 있는 업무-롤모델 리더 중요
“한 달 동안 매일 야근을 했어요. 계약서와 다르고 주 52시간 근무제도 어기는 거라 몇 번 싫은 내색을 했더니 사장이 눈치를 주더군요.”
생애 첫 직장으로 한 중소기업에 2021년 4월 입사했던 최재연(가명·26·여) 씨는 3개월 만에 선임이 퇴사하면서 온갖 일을 떠맡았다. 주말 출근에 주 6일 근무를 밥 먹듯이 하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지자 최 씨는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출퇴근 시간이 보장되는 곳으로 이직했다. 최 씨는 “전 직장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0점이었다면 현 직장 만족도는 90점”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최근 급증하는 ‘청년 퇴직’ 현상의 원인과 해법 등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4∼11일 재단법인 청년재단과 함께 ‘청년 이·퇴직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또 청년 29명을 대상으로 포커스그룹 및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고, 설문 및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전문가 10명의 조언을 들었다. 전문가들이 청년층 퇴사를 막기 위한 ‘3대 키워드’로 제시한 건 △약속 △자율 △성장 가능성이었다.
●“입사 때 약속한 내용 지켜야”
동아일보와 청년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만 19∼34세 청년 응답자 중 47%는 청년층 퇴사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근로환경 개선’을 첫손에 꼽았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은 입사할 때 약속과 다른 상황을 불합리하다고 받아들인다. 계약된 근로조건과 근무시간을 지키는 등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재택근무 폐지를 결정하자 노조 가입률이 상승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며 “그만큼 청년층이 워라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정대로 워라밸을 보장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봉준 미래인재연구소 소장은 “워라밸에 대한 욕구는 근무시간에만 대충 일하겠다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회사도 정해진 기준에 맞춰 성과를 끌어내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율성 살리는 직장 분위기로”
전문가들은 “수직적이거나 강압적인 조직문화는 청년층을 떠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최선민(가명·28) 씨는 2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20년 2월 새 직장으로 옮겼다. 최 씨는 “일선에서 경험한 걸 바탕으로 여러 차례 건의했는데 상사들은 ‘내가 너보다 잘 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견디다 못해 퇴사하겠다고 하자 회사는 ‘연봉을 100% 올려주겠다’고 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최 씨는 거절하고 이직을 택했다. 그는 “새 직장 급여는 예전과 비슷하다”며 “급여 못지않게 자율적이고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동아일보-청년재단 조사에서 청년 응답자들이 ‘근로환경 개선’에 이어 청년층 퇴사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꼽은 것은 ‘더 높은 임금’과 ‘수직적·강압적 조직문화 개선’(각각 21%)이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성세대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입사 초기 교육을 위해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며 “청년층이 왜 떠나려고 하는지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성장 가능성 있어야 안 떠난다”
입사 6개월째인 신입사원 김영민(가명·29) 씨는 도전적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핀테크 스타트업에 취직했지만 직장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0점이라고 했다. 김 씨는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며 “도전적이고 성취감을 느끼는 업무를 할 수 없다면 조만간 이직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규연(가명·28·여) 씨도 “현재 일하는 곳이 자아실현이 어려운 부서라 어학 공부와 대학원 입학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며 “6개월 내 퇴사할 생각”이라고 했다.
동아일보-청년재단 조사에서 청년들이 퇴사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열악한 근무환경’(27%)이었고 두 번째는 ‘개인의 낮은 성장 가능성’(19%)이었다. 전문가들 역시 “젊은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경영컨설팅회사 와이즈멘토의 조진표 대표는 “롤모델이 될 만한 리더가 얼마나 많은지도 청년층에게는 직장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라며 “보고 배울 수 있는 상사 밑에서 일해야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은 “청년층은 피드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정확한 피드백을 전달하면서 소통하고 성장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욱 기자, 김기윤 기자, 소설희 기자
최소한의 일만 하는 ‘조용한 퇴사’ 확산… 기업 “성과급여 강화 등 고심”
[사표 품은 퇴준생들]
MZ세대 중심 유행처럼 번져
19~34세 청년층 70% “긍정적”
“급여外 복지 등 공정보상 해야” 지적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지연(가명·28·여) 씨는 최근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를 결심했다. 이 씨는 “박봉과 업무 스트레스에 지쳤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스로 일을 찾아서 했지만 이제는 최소한의 일만 하고 있다”고 했다.
●‘조용한 퇴사’ 번지는 사무실
‘조용한 퇴사’는 실제 직장을 그만두진 않지만, 업무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할 일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화제가 됐는데 최근 국내에서도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장인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모습이다.
3년 차 비서 강수진(가명·26·여) 씨도 조용한 퇴사자다. 강 씨는 “내 생활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퇴근시간 후까지 남아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상사로부터 ‘우리 때는 안 그랬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패션 회사에서 일하는 김민지(가명·26·여) 씨도 “야근을 강요하는 상사 눈치를 보느라 새벽에 퇴근할 정도로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더 이상 이곳에선 성장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매일 칼퇴근한다”며 “업무 시간 외 연락도 일절 받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조용한 퇴사자를 바라보는 회사 내 시선은 곱지 않다. 프로그램 기획자로 4년째 근무 중인 이강은(가명·36·여) 씨는 “연초부터 동료들이 연이어 조용한 퇴사자가 된 것 같아 나까지 의욕이 떨어진다”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려고 해도 다들 안 되는 이유만 수백 가지를 찾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박민지(가명·27·여) 씨도 “급한 일이 생겨도 근무시간 외에는 일절 답하지 않는 동료들이 많다 보니 결국 나서는 사람이 남의 일까지 떠안게 된다”고 했다.
●조용한 퇴사, 청년층은 70%가 “긍정적”
동아일보와 청년재단이 함께 실시한 ‘청년 이·퇴직 인식조사’에서 청년층의 ‘조용한 퇴사’에 대한 청년층과 기성세대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렸다.
만 19∼34세 청년층의 70%는 조용한 퇴사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만 35세 이상 기성세대의 경우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66%에 달했고,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34%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입사 후 ‘공정한 보상체계’에 대해 실망한 청년들이 ‘조용한 퇴사’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자신보다 일을 덜 하는 반면 급여는 많이 받는 윗사람 등을 보면서 의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평판 조회 플랫폼 스펙터의 윤경욱 대표는 “청년층이 기성세대보다 공정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급여 외에도 휴가, 사내복지 등에서 공정한 보상체계를 갖춰 성과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기업들은 조용한 퇴사를 막고 청년 사원들의 근로 의욕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한 국내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조용한 퇴사를 막기 위해 성과와 업무에 따른 직무급여 차등 지급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진 않지만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 할 일만 최소한으로 하는 것
전혜진 기자, 최원영 기자,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