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중반 베트남 전쟁이 한참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애국심에 불타는 친구들은 공산화를 막기위한 사명감에서 월남 참전을 지원하였다. 나는 그 당시 해군에 복무하면서 조국의 바다를 지켰다. 가끔씩은 월남으로 참전용사를 수송하는 해군 함정이 수많은 환송객을 뒤로하고 진해 해군 부두를 떠나 기나긴 출동을 시작하는 광경을 지켜 본 적도 있었다. 그 전쟁이 미군의 철수로 종료되고 베트남은 공산화되어 우리의 기억과 관심에서 지워진 듯하여 20여년이 흘렀다.
전후 여러 아픈 상처를 겪은 통일된 베트남은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 지도에 그 얼굴을 나타냈다. 먼저 공산화되어 폐쇄적이고 독재적 정권의 북한이 세계 최빈국으로 또 국제적으로 깡패국가로 진화한 반면 베트남은 대외개방과 외자유치 정책으로 동남아의 떠오르는 국가로 발전하였으니, 같은 공산주의 라도 천양지 차이를 보여주는 국가로 변신하였다. 베트남전 동안의 폭격과 가난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현재는 우리의 제일의 교역 및 투자 대상국이고 관광 선호 국가로 변신하였으니 상전벽해 (桑田碧海)란 단어가 잘 맞는 것 같다. 베트남을 수차례 여행해 보면, 전쟁의 상흔은 이미 치유되고, 발전도상국의 풍모를 보여준다.
지난 20년간 나는 4-5년 주기적으로 베트남을 방문해 본다. 평화 시기의 월남참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參戰이 아닌 參展이라고나 할까? 전쟁으로 나의 관심사에서 잊혀졌던 베트남이 다시 관심지역으로 돌아 온 계기는 옛날 영국 런던 출장 시 시간 내어서 본 오페라 뮤지컬 미스 사이곤(miss Saigon) 이었다. 자연히 첫 출발지는 호지민 시티 (옛 사이공) 이었는데, 미국회사 근무 시 4박5일을 그곳에서 세미나 겸 미팅도 하고, 땅굴 지역도 관광하였다. 몇 년 후 2차 방문은 북부 하노이와 경치 좋은 하롱베이를 아내와 딸을 대동하고 즐거운 유람을 하였다. 아름다운 해안의 섬들과 석회암 동굴, 난빈에서의 뗏목 유람선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5년쯤 흘러 이번에는 남과 북의 중간 지역인 다낭과 후예, 호이안을 방문했다. 다낭은 한 5년전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한 새로운 관광지로 태평양을 낀 시원한 해안과 수많은 사찰 등 명소가 즐비한 매력적인 도시다. 대형 호텔 등이 하루가 다르게 위용을 뽐내고 건설되고 있다. 다낭은 남과 북의 중간 지역으로 과거 월남전 때 남쪽과 북쪽으로 전황에 따라 수시로 줄을 바꾸어 선 지역이기도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도 생각된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해 하자면 지역이 다른 도시나 성 (省)을 적어도 20번은 여행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내 경우는 20 차례를 넘어섰지만, 아직 구채구나 곤명, 성도나 신강 지역 우루무치, 만주의 할빈 등 몇 지역을 답사 못한 채로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중국여행은 중단되어 버렸으니 이젠 미완의 숙제로 남겨져 버렸다. 더군다나 중국은 무지막지한 중국 단체여행객의 소란스러움이 싫어져 버렸다. 중국이 최소 20번을 방문해야 한다면 베트남은 적어도 5-6번은 또 다른 지역으로 선택 방문해야 할 거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남부의 나트랑과 달랏 지역을 네번째 지역으로 골라 보았다.
나트랑은 태평양 바다를 낀 아름다운 도시이다. 월남전 동안은 미군 휴양지도 있었고, 한국군도 근처에 주둔한 지역인데, 다낭과 마찬가지로 20-30층 고층 빌딩과 호텔이 올라간 신도시로 승화하였다. 다낭에서 100키로 이상 떨어진 달랏은 1500m 고지에 있는 관광도시이다. 최근에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선선한 고지대에 유적과 놀이터가 많다. 나트랑에서 달랏으로 이동하는 관광버스는 3시간반 정도 산길을 운행하는데, 차창가로 계곡, 전원, 작은 폭포, 산악지대의 풍미를 선사한다. 산에서 도로로 쏟아지는 작은 폭포들은 마치 노르웨이 중북부를 달릴 때 만나는 대형 폭포들의 축소판 같은 인상을 준다. 멀리 보이는 장글은 베트남 전쟁터를 드론 타고 조망하는 기분도 준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이가 1900KM에 이르는 긴 나라로 남북한의 두배 반이다. 칠레만큼은 안되지만 지역별로 기후도 상이하다. 인구가 이제 일억명에 이르고, 전쟁으로 노인의 숫자는 적고, 젊은이의 인구 분포가 높아서 생산성도 높은 편이다. 인구 일억에 오트바이 숫자가 7천만대에 이르고, 오토바이의 80%가 일본 혼다 (Honda)제품이라고 하니, 혼다 오토바이가 일본을 먹어 살리는 셈이 된다. 하노이나 호지민, 다낭 등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차량, 오트바이, 자전거, 인력거, 트럭 등이 도로를 무질서하게 달리는데, 무질서 속에 질서와 규칙이 있는 듯 사고가 별로 없다. 한국처럼 작은 접촉시에도 신경질이나 고함 핏대도 없다. 매사 그러려니 달관하는 습성에 익숙한 듯하다.
달랏은 고산지대에 눈에 뛰는 것이 온통 밭들이 비닐 하우스 천지다. 비닐하우스 농사법은 한국의 농학교수가 도입 전파하여, 농사의 수준과 농가소득을 올린 것이니, 마치 축구의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수준을 올린 것과 비슷하다. 시골 살림 수준도 주변국 필리핀이나 라오스, 캄보디아 보다 생활 수준이 높은 듯하다. 농가소득, 축구, 삼성전자, 관광 등 한국에 감사할 일이 적지 않다. 달랏의 관광 명소 중에 월남전에 사용하다 버리고 간 미국의 4wheel jeep 로 계곡의 물길을 달리는 프로그램도 있다. 전쟁의 잔재품을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하는 재치로 부럽다. 달랏이 과거 프랑스 지배 시절 휴양지여서 낡는 연기가 폭폭 나는 느림보 기차의 탑승도 운치가 있고, 프랑스가 설계한 케이블카나 레일 바이크 설비도 재미가 있다. 옛날 대학 산악부 시절 Rock climbing 이나 군대 훈련 받을 때 유격, 공수 훈련 받은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레이 바이크로 절벽 길을 초 스피드로 즐기는 동심으로 돌아간 모험도 해 보았다.
이제 package 여행을 가면 어느덧 어르신 계층으로 분류되는데, 일행 중에 80 먹은 부부가 있었다. 내가 본 중에 최고 고령인 듯한데, 경기도 외곽에서 농사도 짓고, 임대업도 한다고 하는데, 젊은이 못지 않게 모험을 즐긴다. 여행도 많이 한 듯한데, 60-70대에 더 많이 다녔 어야 하는데 모자라 지금도 시간만 나면 해외를 다닌다고 하니, 별종인지 인생의 맛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 인지 존경스럽기도 하다. 이분들 돈도 없는데 돌아 다니는 내가 더 부럽다고 맞장구 친다.
태국이나 베트남으로의 여행은 비행시간 5-6시간이고, 음식도 맞고, 시차도 적고, 가성비도 좋은 편이어서 이즈음 가장 적당한 여행지로 생각된다. 쌀국수는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코로나 대유행이후 일본, 구미 지역의 항공료와 여행경비가 두 세 배 인상된 현상에 비하여 물가변동도 적은 편이다. 유럽, 중동, 남미 등에 비하여 나이에 따른 체력 부담도 적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따라다니는 중국 단체 관광객 모습이 안보이니 천만 다행이다.
베트남의 다음 여행지를 생각해보니, 이제 최 남부의 푸쿠옥 바닷가가 생각이 난다. 베트남에 11년 째 살고 있는 가이드는 다음번에 등산하는 친구들과 그룹 지어 북부 베트남 사파산으로 오라고 강권 추천한다. 사파산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에서 자세히 본 바 있어 매력적인 곳으로 알고 있다. 높이 3천 메타 이상의 고지대로 케이블카로 오를 수도 있지만, 하노이에서 버스로 6시간 소요되는 점과 마지막 산정에서 수백 개 계단을 걸어 오르내려야 하니 무릎에의 부담 때문, 생각 좀 해보겠다고 약속을 미루었다. 여하튼 베트남 여행의 매력에 내년에 또 베트남 가는 비행기를 탈 것 같다. 쌀국수 생각이 나서 인지, 푸른 아오자이를 입고 오트바이 뒤 자석에 앉아 알리는 잘록한 허리의 처녀의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2023.1.14)
첫댓글 ip, 카페에 글쓰는 거, 매우 간단하니 손수하기를~
<본문은 복사하여 붙이고, (사진)도 첨부하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