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따수운 펭귄색의 그녀들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매일같이 꼬박꼬박 느끼는 것이 있다.
빽빽한 서울만 조금 벗어나면 아직도 인정과 사정이 통하는 곳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사방이 벽인 도시에 익숙해져 있을 때는 '말해봐야 짤없겠지...'하며 부탁할 생각조차 없다가 용기내서 한마디 터진 이후에는 '어라?이것봐라?'하게 되었다. 그뒤로 물달라, 차세워라, 쉬고 갈란다, 빨래 좀 하겠다며 참 많은 부탁을 했다.
점점 뻔뻔해져간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점점 사람들을 믿게 되었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심지어 부탁하지 않아도 먹을것 마실것을 주는 사람들도 참 많이 있었다.
그렇다. 오늘은 그 따수움의 절정이라 할만한 일이 있었다.
펭귄색 옷을 입은 꽃동네 수녀님들이 걷는 우리를 히치하신 것이다.
수녀님들은 지나가다 우리 대열을 보시고 시원한 검은콩두유와 카스타드빵 잔뜩을 사오셨다.
수녀님은 모자라면 어쩌나, 하셨지만 검은콩 두유에 빨대를 세번까지 뚫는 사람을 나는 보았다. 카스타드빵을 배에도 쟁여넣고나서 주머니와 배낭에도 챙겨넣는 사람을 나는 보았다.
아...뭐 내 배 찼으니 시비걸 일은 아니다. 두유라는 고급음료를 얼마만에 목으로 넘겨보는지...!!!!!! 대장도 두유에 약간 동요되었는지 눈을 번뜩이며 급제안을 했다.
"우리 꽃동네 봉사활동 하고갈까?"/"콜(10기 다수)" 훈훈한 제안과 열렬한 호응 속에는 뭐 겸사겸사 숙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자그마하게 담겨있었겠다.
그런데 5분 거리라는 꽃동네는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수녀님들은 시속 120 이상의 스피드를 즐기시는 모양이다.
생긴게 대학캠퍼스 같은 게 어쩐지 배부른 집단일거란 예상은 들었다만. 꽃동네는 봉사활동 전에 미리 신청해야 한단다. 그래서 다음날 봉사활동하기로 했다.
2일 꽃동네에서 '체험 삶의 현장'
각 조별로 나누어 히치해서 꽃동네까지 이동한후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체력과 사지의 상태에 따라
완전환자팀, 환자팀, 멀쩡한팀, 완전멀쩡한팀으로 나뉘었는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완전환자팀이 봉사활동하러 간 곳이 가장 멀리있었다. 또 와서보니 완전멀쩡한 팀은 비교적 약한 강도의 노동을 하고 왔다. 나는 선희, 주희, 득주, 재은, 호근과 함께 완전멀쩡한팀을 따라갔다. 우리는 노인병원에 가서 화장실청소를 가뿐하게 끝내고 이런저런 일을 했는데 주로 밭일 위주였다; 병원에서 밭일을 하게 될줄은 몰랐다. 두런 두런 둘러앉아 깻잎과 고추를 땄는데 그와중에 일산에서 온 고등학생들과 쪼인할 기회도 있었다. 두 상큼이들이 내 차림에 대해 의아해 하길래 다음에서 국토순례를 검색하라고 알려줬다.
농작물을 따며 선희와 주희에 대해서도 좀 더 알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지만 어른스러운 생각들을 하고 있었고, 둘다 어쩐지 인생경험은 나보다도 풍성해보였다.
오후 3시30분까지 모이기로 하고 내려가는 길에 커피한잔을 먹으려는데 캔커피말고 자판기커피가 그렇게나 먹고 싶은 거였다. 주희도 나랑 마찬가지였다. 어딘가에서 본 것만 같은 자판기 커피를 찾아 걸어갔지만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
각 병동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은 모이지마자 국순인답게 가장먼저 오늘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부터 자랑을 했고, 그 다음에야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슴이 짠해서 울었다는 팀도 있고, 대화봉사를 간절히 하고 싶었는데 말을 못하는 이들과 함께해서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아라와 막내가 있다. 봉사활동을 가서 봉사를 받고왔다며 병원 세탁기로 살균세탁한 국순티와 스폰받은 물집터트림용 주사바늘을 꺼내보였다. 좋텐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우리는 남은 길을 또 걸어갔다.
3일 노숙의 맛
화장실 인심이 그 마을의 얼굴이다. 참, 슈퍼에 가도 가정집에가도 마을회관을 가도 화장실이 고장났거나 없다고 그런다. 샤넬모텔은 뭐 대낮부터 만원이라 빈 화장실이 없다 그런다. 오현과 여신님은 좀 급한 상태였다. 우린 두꺼워진 얼굴로, 아니,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민가를 습격했으나와 어쩜 저래? 화장실이 없다는 걸 믿으라고?
그럼 니들은 그거 뭐... 저...어떡하니?하고 싶었으나 그만뒀다. 그동안 베품을 너무 당연한듯 받아왔기 때문인지 섭섭함이 더 컸나보다.
오늘은 이마트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마트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부대찌개 끓임이라는 낯설은 행동을 해야 했지만 두꺼워질대로 두꺼워진 얼굴 덕에 조금도 부끄럽진 않았다. 오늘 우린 야간행군을 할거란다. 조별로 야식거리를 사오는 미션이 주어졌다. 우리조는 빵이랑 쿨피스랑 캔커피 과자를 샀다. 야간행군은 처음이라 약간 들뜨고 말았다. 배낭이 든든하니까 걷는길이 무섭지도 않다. 귀신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공포영화에 어울리는 비명효과음도 내주며 우리는 즐거운 야간행군을 했다, 두타임쯤 걸었을까? 개짖는 소리가 없는 초등학교 앞에서 침낭을 펼쳤다. 두어시간 자다 갈 계획이었다. 가방가득한 저 먹거리를 먹는 타이밍은 언제오나? 생각하며 나는 침낭에서 순식간에 잠에 또 빠져들었다.
4일 요정과의 선봉
아무도 알람을 듣지 못했다.
예정시간보다 1시간 정도 더 잔건데 뭐 어쨌든 동이 텄다.
잠겨있던 학교 교문이 열린 것으로 보아 누군가 줄줄이 누워있는 우리 침낭을 목격한게다.
깨우지 않은걸로 보아 우릴보고 기겁을 하진 않은 모양이다. 꽤나 담력있는 관리인이다.
너무 추워 따듯한 물이라도 얻겠다고 학교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엄청 많은 물에 소량의 커피를 넣고 커피국을 끓였다.
커피국은 앵간해선 추워서라도 마셨을 텐데... 향은 똑같은데 참 그랬다.
뭐 어쨋든 이동! 아침은 역시 엄청 많은 물에 소량의 스프를 넣은 스프국과 식빵을 먹었다.
식사타임은 브런치타임, 메뉴는 유럽식, 맛은 국순식! 다국적, 특수집단 형태다.
오늘 우리는 양근대교까지 히치를 했다. 양근대교는 신과 구가 있었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대장은
오늘의 방문객 선배기수의 오토바이를 타며 길잃은 대원들을 바른길로 인도했다.
나는 오현이와 성원형님과 한조가 되었고 역시나 바른길 대신 다른길로 간 우리는 남은 거리를 걸어갔다.
아이스크림 하나 까면서 다리를 건너니까 선배기수들이 더운데 고생한다고 아이스크림을 쐈다. 또 먹었다.
아이스크림먹고나니까 선봉이 되었다. 오늘의 선봉은 히치의 요정 다정과 함께다.
요정과 함께하는 하루는 어떤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히치는 노력이 아니다. 히치는 과학이다. 요정은 위치선정부터 손짓의 크기까지 이미 다 계산해 놓은 듯 일사분란했다.
팔은 너무 크게 젓지 않고 짧고 굵게, 덜덜 떨듯 흔들며 운전자의 심리를 다급하게 만들어 차를 세우도록 했다.
우리는 면사무소 앞까지 히치에 성공했고 숙소도 금새 잡았다. 마을회관에 계시던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을 주셨다.
또또 먹었다. 조금은 배가 아픈 것 같다.
뭐 우리는 어떤 승리감에 도취되어 그만 대장에게 섣부르게 승전고를 알렸다.
벌써잡았어? 그럼 다시와~ 사뿐한 그분의 말씨. 에이~ 진짜요? 재차 확인했으나 역시 농담은 아니다.
우린 잠시 마주보았고 어쩔지를 고민하다가 그만 치킨집 간판에 눈이 멈췄다.
다정아 쌩맥 딱 한잔만 할까?/출발하려는데 이장님이 가스비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해요/
치킨집인데 맥주만 마시는 건 좀 예의 없어 보여 치킨도 반마리 시켰다.
땅콩과 맥주를 먹다가 주머니에 나도 몰래 땅콩을 한웅큼 집어 넣고 맥주를 또 먹고 아무리 기다려도 치킨은 오지 않고 시간은 점점 흘러 자꾸 시계만 봤다.
히치가 잘 안된거에요/ 다정인 정말 믿음직 하다.
결국 오랜 끝에 치킨 반마리가 나왔고
언니 빨리 먹을 수 있죠?/응 할 수 있어!/우리 오늘 일은 무덤까지에요. 닭튀김을 앞두고 뭔가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나오면서 치킨집 아주머니에게 우리와 같은 옷입은 사람들이 오늘밤 이 마을에 올텐데
혹시 그 무리들과 섞여있는 우리 둘을 보아도 모르는 척 해달라는 부탁까지 잊지 않았다 ㅋㅋㅋ
주머니에 든 땅콩을 꺼내 먹으며 요정이 위치를 선정하더니만 히치를 또 금새 성공했다.
본대와 합류하고 조금 걸으니 고기집앞에 멈춘다. 오늘 저녁은 거기서 먹는단다.
이래서..이래서 우리를 부른거였구나... 가슴이 뜨끈뜨끈하다.
다정이랑 남기면 들킨다는 눈빛을 빠르게 교환하고 본대도 남긴 밥을 선봉은 다 먹었다.
해냈다...ㅠ
함께걸으니 숙소까지도 금방이다. 숙소에 도착하고 씻고 나오니 이건 또 뭐냐,
수박이 3통이요 맥주가 여러병에 과자가 지천에 깔렸구나.
오늘 죽는구나, 나 이렇게 가는구나.
또, 또, 또 우린 빼면 들킨다는 눈빛을 주고 받고 본대도 빼는 술을 선봉은 넙죽넙죽 마셨다.
넘쳐나는 수박으로 수박먹기 대회까지 하는 오늘은 정말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하루다 ;;
사랑해 게임도 하고 참 잘 놀았다.
5일 국물없는 라면과 선희의 생일
양평은 고급식당과 커피숍이 즐비하다. 걷다가 쉬는 맛이 으뜸인 지역이다. 오침장소도 초등학교가 아닌 목장이었다. 좋은 빨래터가 있어 다들 빨래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어느날부턴가 빨래에 오침을 양보하는 일을 극도로 피하고 있었다. 늘어지게 한숨 자고 또 걷기 시작. 이제는 걷기위해 '시동'이란게 필요한 시점이다. 내 몸에선 출발 후 10분간 삐걱삐걱소리가 난다. 이런걸 신체리듬이라 한다지?
오늘은 마을까지 히치를 했다. 나는 버스를 탔다. 히치도, 버스도 거부한채 걷기로 한 조가 하나 있는데 그 조에는 역시 앉은뱅이도 걷게한다는 그 재은이가 속해있었다. 아라, 소영, 재은은 약속장소에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보니 도착은 빨리했는데 중간에 약속장소가 한번 바뀐 것을 핸드폰이 없었던 그들은 전달받을 길이 없었다. 온동네를 헤메다가 간신이 본대를 만난 아라는 그만 뿔났다.
서울이 가까워 올 수록 정말 숙소가 잘 안구해 졌다. 걷고 걸어 찾아간 옥탑방. 난간마다 안전망대신 거미줄망이 믿음직하게 드리워져 있는 곳이다. 저녁으로 먹은 라면은 신기하게 국물이 한방울도 없었다. 우리는 그런 라면에 밥도 말아먹었다. 아, 비벼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 맛이 생각나 애써 라면을 불려보았지만 국물이 한방울도 없게 끓이는 건 불가능했다.)
선희의 생일이다. 길위에서 생일을 맞아 생일 본전은 못건졌겠다만 10기 전체에게 빠짐없이 축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도 생일선물로 빠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두고 입으로 떼운다고 하더만.
라면을 먹고 조촐하게 선희의 생일맞이 오예스 케잌에 불을 켰다. 이날 둥글게 앉아 '하고싶은말'을 했다. 미처 몰랐던 그들의 내막도 있었고, 서운했던 것, 못마땅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슬쩍 나왔다. 난 눈치가 없는편이라 슬쩍나온 말들을 잘 이해못해서 그 시간 이후 오히려 궁금증에 시달려 해답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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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나보다 더 기록쟁이처럼 많이도 썼네!! ㅋㅋ 분발해야겠다 ㅋㅋㅋ
이여자 .. 정말 너무 매력적이다 .. 더 .. 더 .. 친해지고 싶다 ..
ㅋㅋㅋㅋ 콜! 근데 다정아 너무 여자한테만 매력을 느끼지 말라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