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게 세 까먹는` 아지매, "40년 과일장사 이런 불황 처음"

[광역매일]

"밤 9시면 길거리 사람 無…집ㆍ전기세 나오면 버티겠다"
조선업 불황…울산 동구 현장 르포

본지는 조선업 불황에 허덕이는 울산 동구지역을 현장 취재하고 생생한 민생을 지면에 싣기로 했다. 특히 현대중공업 노사의 임단협 타결 불발로 직접 타격을 받는 음식점ㆍ주점ㆍ청과물 가게 등 소비재 업종을 집중 취재한다.

식생활과 직결된 식료품은 어떻게든 구입하지만 이외 소비재 지출은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게 현재 다수 동구 주민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여유 지출이 감소하면서 동구 지역을 구축하고 있는 남목동, 일산동, 방어동 거리가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상) 남목동 옥류천 복개 거리

▲동구 남목동 옥류천 복개 거리

지난 13일 오후 6시 동구 남목동 남목 초등학교 건너 편 옥류천 사거리 복개 골목은 입구부터 컴컴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 쪽에 불 꺼진 삼계탕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문틈에 끼인 일간지 중 하나에 1월 3일자가 찍힌 것으로 봐 적어도 지난 10일 이상 동안 이 곳 영업장 주인이 가게에 다녀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입구에서 바라본 거리 양쪽 약 40여 동의 건물 가운데 2층 이상 불이 켜진 곳은 4~5동에 불과했다. 주점, 노래방, 당구장 등 유흥 공간이 주로 2층 이상부터 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남목 지역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게 돌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골목 거리 입구와 맞붙어 있는 `ㅈ` 청과물 가게 주인 곽 모씨(여)는 취재기자에게 "나는 `집세 까먹는` 아지매"라면서 "이 일대에서 40년 동안 과일 가게를 했지만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한 달 동안 벌어도 집세ㆍ전기세 70만원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달에 70~80만원만 벌어도 버텨보겠는데 이제 포기 상태"라고 했다.

인근 지역 아파트 주민 상당수가 현대중공업 근로자이다 보니 한창 조선 경기가 좋을 때는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아파트 가정집으로 배달하는 과일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업 불황에다 중공업 임단협 타결까지 불발 돼 일부 단골손님을 제외하고는 과일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그는 또 "중공업 임단협이 타결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는데 부결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나마 야간 업소에 들어가던 과일 주문마저 끊겼다"며 "중공업 사람들이 서민들 생활도 좀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에 타결됐으면 3천억원인가 4천억원이 나온다던데 그거라도 나오면 좀 나을게 아니냐"고 하소연도 했다.

수년전 현대중공업이 한창 잘 나갈 때만 해도 옥류천 사거리에서 한국 프렌지 앞까지 약 300ｍ 구간 길 양쪽에 있는 음식점, 주점들은 근로자들로 가득 찼다.

특히 금ㆍ토요일 주말에는 직장 단위 회식이나 동향ㆍ동창 모임 등으로 일부 업소는 사전 예약을 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이날 거리에는 토요일임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한 시간 여 가까이 취재하는 동안 만난 사람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추운 날씨 탓도 없진 않겠지만 거리 상가 자체에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인적은 뜸한데 승용차들이 도로 양쪽을 가득 메우고 있어 인근 편의점 점원에게 물었더니 "대부분 저녁에 문울 여는 인근 가게 주인들 차"라고 했다.

음식점, 주점을 찾아온 손님들 차가 아니라 야간에 문을 여는 각종 `업소 주인들 차`라는 것이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들여다 보니 1층에 자리 잡은 전문 음식점들 가운데 손님이 2좌석 이상을 채운 곳은 손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한두 군데 정도만 4~5석을 채웠을 뿐 나머지지는 1~2 석에 불과했다.

복개 천 거리 중간 지점에서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는 옥류 2길 골목은 20여 곳 점포 가운데 한 집 건너 한 집 씩 불이 꺼졌거나 `임대 딱지`가 붙어 있었다. 과메기 집, 레스토랑, 카페. 영양 식당, 칼국수 가게 등이 어두운 거리를 더욱 스산하게 했다.

골목 중간 지점에 있는 뒷 고기 집 주인은 "중공업 불황이 가장 큰 타격"이라며 "가족 단위로 이전부터 찾아오던 손님을 제외하면 술손님은 80%이상 줄었다"고 했다. "주머니에 단돈 몇 천원이라도 있어야 한잔씩 할 텐데 중공업 직원들 월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오고 싶어도 못 올 것"이라고 말했다.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근 한 영양식당에선 기자가 주인으로부터 된 통 퇴박을 맞았다. "취재 나온 기자"라고 했더니 "취재하면 가게 다시 살릴 수 있느냐"는 핀잔을 내 놨다.

현대중공업 불황과 노사 임단협 잠정 합의안 부결이 지역 서민들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기사입력: 2018/01/14 [18:54]  최종편집: ⓒ 광역매일

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209620&section=sc31&section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