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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향연의 설국, 행복한 일본 여행기
*여행 일시: 2023년 2월 7일(화)~14일(화) 7박 8일 *여행 인원: 문방사우 4명 *여행 지역: 홋카이도(北海島) *여행 일정: 1일차: 인천공항~신치토세 공항~삿포로~에어비앤비 숙소 2일차: 삿포로~후라노~비에이~대설산~백금온천~청의 호수 3일차: 홋카이도 대학~시계탑~오타루~삼각시장~운하~오르골당 4일차: 마루야마 공원~북해도 신사~오도리공원~JR타워~스스키노 5일차: 삿포로~하코다테~모토마치 마을~국천다방~해광방 6일차: 고료카쿠 공원~전차~유노카와 온천지역~카네모리 쇼핑센터 7일차: 하코다테~노보리베츠~타마노유~지옥계곡 8일차: 노보리베츠~공항버스~~신치토세 공항~인천공항 |
<첫째 날> 2월 7일(화)
이번 일본 여행은 두 번째다. 2007년 1월엔 일본 중남부 지역을 여행하고, 16년 세월 후 이번엔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지역을 다녀왔다. 우리는 그때의 자유여행과 다름없이 이번에도 일본에 대하여 잘 알고, 일본어에 능통한 이재원 선생님을 여행단장으로 모시고 동고동락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먼저 일본 훗카이도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알아본다.
*면적: 83,453㎢ / 인구: 약 525만 명
*역사: 본래 훗카이도는 오랫동안 토착민족인 아이누족의 터전이었다. 에조지(蝦夷地)라고 불렸던 이 지역을 19세기부터 혼슈지방의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훗카이도’로 개칭하였다.
*요약: 일본 최북단 행정구역이자 일본 열도에서 혼슈 다음 두 번째로 큰 섬. 주도는 삿포로(札幌)로 행정 중심지이며 산업·상업·관광 중심지이다. 그밖의 하코다테(函館)·오타루(小樽)·왓카나이(稚內) 등의 항구도시가 있다.
자, 지금부터 7박 8일 일본 여행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티웨이 항공)를 타고 기분 좋게 출발, 항공기의 속도만큼 우리 문방사우(問訪四友) 마음도 두둥실 신나게 날고 있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파란 하늘은 완전 쾌청하고, 뭉게뭉게 펼쳐진 포근한 구름은 언제나 행복감을 안겨준다.
3시간 만에 신치토세 공항(新千歲空港)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 절차를 밟은 후,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한 JR 티켓(Japan Rail pass, 여행자 철도자유이용권)을 이용하여 열차를 탄다. 일본은 어느 곳이나 열차문화가 잘 발달되어 특히 여행객들은 열차를 이용하면 여행하기에 아주 좋다. 지정석까지 정해져 있어 편히 앉아서 간다. 40분 정도 달려 삿포로역에 도착, 다시 시내 전철로 갈아타고 기타산주요조역에서 내려 주소만 가지고 예약한 숙소를 찾는다.
말로만 듣던 삿포로(札幌), 삿포로는 홋카이도 여행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으로 볼거리, 맛집, 쇼핑 등 여행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는 화려하고 찬란한 도시다. 타국만리 낯선 곳이지만 캐리어를 끌고가는 기분은 참 좋기만 하다. 하늘에선 주먹만 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우리 일본여행을 축복이나 하는 듯 하얀 토끼털처럼 보송보송한 눈꽃송이가 하늘하늘 내린다. 그야말로 서설(瑞雪)이 아닐 수 없다. 눈은 내리는데 바람은 없어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첫인상이 아주 좋다.
주민에게 주소를 물으니 눈이 폭포수처럼 내리는데도 아주 친절하게 앞장서서 도와준다. 일본인들의 친절미(親切美)에 또 한번 감탄. 물어물어 마침내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 체크인 한다.
원더풀! 최고최상 분위기의 럭셔리한 숙소로, 여기서 4박을 할 예정이다. 우리는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며 내일의 일정을 꼼꼼히 논의한다. 일본 술 사케도 한잔씩 마시면서 "즐거운 일본 여행을 위하여!" 경쾌하게 술잔을 부딪친다. 이런저런 웃음꽃 피우며 일본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둘째 날> 2월 8일(수)
아침 08시에 흰그림자투어 여행사 봉고차가 숙소 앞에 도착한다. 우리는 오늘 하루만 여행사 가이드를 활용하기로 예약을 한 상태다. 오늘 우리 일행을 단독으로 태우고 홋카이도의 꽃이라 불리는 후라노와 비에이 지역을 관광한다. 왕복 약 400km를 함께 여행할 金가이드는 부산 출신으로 이곳 홋카이도에서 20여 년째 가이드 생활을 한 베테랑이다. 삿포로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설국 세상이다. 한겨울의 눈부신 은빛 향연이 끝없이 펼쳐진다.
한참을 달리니 미카사시(三笠市)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은 눈이 10m 이상 쌓여 자기 집을 찾지 못한 경우도 가끔 있단다. 산에도 들판에도 온통 눈으로 덮여있으며 나뭇가지에도 목화송이처럼 탐스런 눈이 소복소복 열려 있다. 미까사 가스라자와 드넓은 호수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원더풀 투더풀! 우린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흙 한 점 보이지 않고 인간의 흔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의 세계요 최고의 설경이다. 동화 속에 나오는 눈의 왕국 그 자체다.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눈에 가슴에 카메라에 원없이 담고 또 담는다. 남는 건 오로지 사진뿐이라는 듯~
이 지역 도로에는 야생동물이 많이 출몰하는데 특히 곰과 사슴이 많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을 듣는 순간 도로 옆 눈 속에서 야생 사슴 몇 마리가 우릴 쳐다보고 있다. 모가지가 긴 사슴이 아니라 비교적 목이 짧고 엉덩이는 흰색을 띠고 있다.
도로 곳곳에서 트럭과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제설작업을 한다. 이곳 차량들은 4륜 구동 스노우타이어를 사용하여 교통사고가 거의 없으며 도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체인은 사용하지 않는다 한다.
끝없는 길, 끝없는 설경은 계속된다. 이제 아시베츠산 계곡길로 접어든다. 호젓한 깊은 산속에 우리 차량만 단독으로 신나게 달리고 있다. 가끔 스키장, 골프장도 보인다.
아름다운 계곡길을 벗어나 이제 후라노(富良野)로 접어든다. 광활한 들판에 끝없이 전개되는 설원(雪原), 바다처럼 가슴이 확 트인다. 단순함의 극치, 단 하나의 색으로만 덮여 전혀 때묻지 않은 신선하고 성스러움마저 느낀다.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눈에 가슴에 카메라에 멋진 풍경을 열심히 담는다. 마음속까지 하얗게 정화된 듯하다. 아, 표현의 미흡함이여!
우측 저 멀리 장엄한 대설산(大雪山)이 우뚝 서있다. 저 산은 홋카이도의 지붕으로 가장 높다고 한다. 어떤 대규모 농장으로 들어서는데 라벤더 꽃밭으로 유명한 팜도미타 농원이다. 보라색 꽃밭이 바다처럼 넓게 펼쳐져 꽃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데 지금은 온통 눈밭이다. 우리는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멋진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는다. 남기는 건 발자국만, 가져가는 건 추억만~~♬
이제 비에이(美瑛)로 접어든다. 아름다울 美, 옥빛 瑛,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정말 아름답고 멋진 곳임을 실감한다. 후라노가 평지의 도시라면, 비에이는 언덕·야산이 많은 곳이다. 인구는 약 1만 명으로 우리 강원도처럼 밭농사를 많이 지어 옥수수·감자·메밀을 많이 수확하고, 양목장도 많아 양고기를 많이 섭취한다고 한다.
패치워크길을 달리는데 특별한 모양의 나무들이 엄청 많다. 세븐스타 나무(일본 담배 ‘세븐스타’에 등장하여 유명세를 탄 나무), 오야코 나무(엄마·아이·아빠 한 가족이 나란히 서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 켄메리 나무(우리 미루나무와 비슷), 나 홀로 서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하얀 자작나무 숲길, 그리고 파노라마 언덕길의 풍경, 호쿠세이 언덕 전망대, 15m 이상 높이의 흰 관음보살상도 보인다.
이 지역의 맛집 '학희(鶴囍)' 식당에 들어가 가츠도지(돈까츠) 소반을 먹는데 독특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다. 점심 식사 후 스노우 모빌 타는 곳으로 이동한다. 2명씩 1개조로 은빛 설원을 누비면서 한 시간 운전하는데 그야말로 스릴 만점이다. 이보다 더 즐겁고 행복할 순 없으리라.
비에이역 앞을 통과한 후 金가이드가 명명한 눈덮인 아우토반길도 달린다. 활주로처럼 시원스레 쫙 뻗은 시골 도로인데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가이드가 지급해준 스패츠를 착용하고 대설산 국립공원으로 들어간다. 뽀드득뽀드득, 사람 다닌 흔적이 없는 산길로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깊은 계곡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데 그 굉음(轟音)이 굉장하다. 아름드리 전나무 군락지에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나무들이 이등변삼각형 자태를 이뤄 아주 멋진 장관을 이룬다.
우리는 은빛 심설(深雪) 속에서 이름하여 '혹한기 훈련'을 실시한다. 金가이드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온갖 장난을 다한다. 가이드는 그 장면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준다. 어렸을 적 고향에서 죽마고우(竹馬故友)들과 눈밭에서 뒹군 후 이렇게 나이 들어 박장대소하며 원없이 눈장난하니 일생일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보다 더 신명난 눈밭 체험은 없으리라.
이제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 금세 어두워진 느낌이다. 차를 달려 블루리버다리에 도착, 황홀한 야경의 긴 다리를 건넌다. 저 아래쪽 흰수염폭포(바위 틈에서 흘러내리는 물 모습이 마치 하얀 수염 같음)가 불빛 속에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근처에 위치한 유모토 시로가네 온천(白金溫泉)에 들어가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긴다. 유황냄새 풍기는 매끈매끈한 수질은 피부 미용효과가 있어 여성들이 특히 좋아한단다. 노천탕에서 목화송이처럼 탐스렇게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야외욕도 즐긴다. 우화등선(羽化登仙), 따뜻한 물로 온천욕 하니 온몸이 날아갈 듯 개운하다. 삽시간의 황홀, 여행으로 인한 피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
돌아오는 길에 ‘靑의 호수’도 들러 비록 눈덮여 물은 보이지 않지만 신비한 조명 속 호수도 구경한다. 원래 이 호수의 물빛이 에메랄드빛(옥색)으로 빛나 옥빛 영(瑛)자를 써서 아름다운 비에이 즉 '美瑛'이란 지명을 가졌다 한다.
오늘 홋카이도의 꽃이라는 후라노와 비에이 지역을 관광하며 아름다운 은빛 설원과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여러 마을을 구경하였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 10시, 일본에서의 두 번째 밤으로 달콤한 꿈나라를 항해한다.
<셋째 날> 2월 9일(목)
화창 청명한 최상의 날씨, 겨울답지 않게 퍽 포근하다. 좋은 아침, 상쾌한 아침. 우리는 홋카이도 대학(北海島大學) 탐방길을 출발한다.
지하철을 타고 삿포로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니 대학이 나온다. 눈부신 설경의 대학 캠퍼스를 걷는데,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명언의 주인공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흉상이 서있다. 이분의 동상이 왜 여기에 있는가? 클라크 박사는 원래 미국 메사츄트대학 농과대학장이었는데 1876년 이 홋카이도 대학이 개교할 때 교감으로 초빙되어 1년간 근무하며 훌륭한 업적도 남기고 인재를 많이 배출하였다.
개교식 때 학생들 앞에서 강연 중 그 유명한 “Boys, be ambitious!”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은 우리 고교시절 눈에 불을 키고 공부했던 <알기 쉬운 삼위일체> 영어 자습서 서문에 실려있어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15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대학에선 지금도 클라크 박사의 정신을 계승함과 동시에 학교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다. 5층까지 전시된 종합박물관을 관람하며 홋카이도의 역사와 자연과 삶에 대하여 꼼꼼히 살펴보는 좋은 기회였다.
대학을 나와 구경도 할 겸 걸어서 삿포로역 근처의 JR타워에서 360도로 펼쳐진 시내를 조망하며 쇼핑도 하고 커피도 마신다. 오도리공원쪽으로 걸으니 유서 깊은 시계탑이 나온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탑(時計塔, 1881년 조성)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조금 더 가노라니 드넓은 오도리공원(大通公園)이 나온다. 시내 중심부에서 길게 뻗은 아름다운 공원으로 산책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동상·조각상 등 조형물이 많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저 앞에 높이 147m의 삿포로 TV탑이 위용을 자랑하며 위풍당당 우뚝 서있다. 마치 파리의 에펠탑처럼~ 1957년 방송국 전파송신탑으로 세워졌다니 내 나이와 맞먹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탑이다.
다시 삿포로역으로 와서 JR선 열차를 50분 정도 타고 오타루로 간다. 오타루(小樽)는 무역과 경제의 중심이었던 과거의 영광을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화려한 도시다. 특히 대표적인 일본 영화 <러브레터> 촬영지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1999년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하여 흥행에 성공한 영화, 학창시절 풋풋한 첫사랑을 가슴 시리게 그려 심금을 울린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바로 이 지역이다.
오타루역에서 내려 바로 근처의 대표적인 수산시장 삼각시장(三角市場)으로 들어간다. 구경을 하는데 우리 한국어로 “어서 오세요! 값싸다! 맛나다!”라 적힌 식당이 있어 훨씬 친근감을 준다. 우린 그곳으로 들어가 싱싱한 해산물 요리와 회덮밥을 맛있게 먹는다. 여행 중 뿌듯한 포만감,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식사 후 아기자기한 풍경을 자랑하는 관광명소 오타루 운하(運河)로 향한다. 이 운하는 홋카이도 개척 시절 석탄 등 물자 운송의 거점으로 1980년대부터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해질 무렵 여기저기 가스등 켜지는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운하 옆 돌담길을 걷는데 특유의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 가히 환상적이다.
다음은 대표적인 명소 오르골당으로 간다. 얼어붙은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스레 걷는다. 오르골은 ‘소리 내는 장난감 악기’라는 뜻으로 수천수만 점의 각양각색 예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3층 목조건물의 커다란 공방으로 음악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상점 앞의 은은한 가로등과 신비한 시계탑은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우린 다시 JR선 열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오늘은 우리 이재원 단장의 생일, "생일 축하합니다~♬" 간소한 파티로 함께 자축하며 달콤 쌉싸름한 시간을 갖는다.
<넷째 날> 2월 10일(금)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마루야마코엔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마루야마공원(円山公園)이 나온다. 이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원시림이 눈밭에 가득히 서있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아름드리 삼나무 군락지, 1400그루의 벚나무, 지금은 겨울철이라 하얀 눈꽃을 피우고 있지만 봄부터는 정말 울울창창 형형색색 참으로 멋진 장관을 연출하리라.
누군가가 크고 작은 눈사람을 재밌게 만들어 놓고, 또 어떤 나무 둥치에는 눈으로 만든 북극곰·다람쥐·사슴벌레를 귀엽게 붙여놓았다. 날씨가 포근하여 관광객들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며, 너나없이 카메라 앵글 맞추느라 여념이 없다.
북해도신궁(北海島神宮)으로 들어선다. 향내음이 진동한다. 홋카이도에서 참배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1869년 메이지(明治) 일왕이 북해도 개척민들을 지킬 수호신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이날도 수많은 탐방객들이 진중한 태도로 소원을 빌고 기도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 유명한 마루야마 동물원도 있지만 우린 시간 관계상 입구에서 발길을 돌린다.
다시 전철을 타고 오도리역에서 내려 어제의 오도리공원을 한번 더 여유롭게 천천히 구경한다. 바로 그때, “안녕하세요. 우리 사진 좀 찍어주세요.” 반갑게도 한국 사람을 만난다. 남양주 퇴계원에 사는 모녀(母女)로 여기서 우연히 만나니 엄청 반갑다. 우린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오도리 라면골목으로 들어가 일본 라면을 먹는데 맛이 구수하며 깔끔하다. 그 식당 사장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아와 고맙다며 허리를 굽힌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여행하는 나라는 일본으로 뽑힌다. 코로나19로 막혔던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일본은 우선 가깝고, 항공권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고, 비자도 필요 없고, 또한 엔저의 영향으로 엔화 가치가 떨어져 물가도 싸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삿포로 지하상가와 종합 할인매장 메가돈키호테를 둘러본 후 JR타워로 올라가 이곳저곳을 관람하며 향 좋은 커피도 마시는 등 유유자적 여유를 즐긴다. 이게 바로 삶의 진정한 행복이렸다.
다음은 삿포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흥가 스스키노를 한바퀴 돌아본다. 대낮인데도 쇼핑객·관광객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며 발걸음들이 분주하기만 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클럽 간판도 더러 눈에 띈다. 이렇게 휘황찬란한 환락가가 밤에는 얼마나 북적거릴지 상상을 초월할 듯하다.
우리는 전철을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다섯째 날> 2월 11일(토)
삿포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의 4박, 참으로 럭셔리한 분위기에서 행복한 일정을 보냈다. 체크아웃한 후 전철과 JR선을 타고 이제 하코다테를 향해 달린다. 쾌속질주, 열차 안에서 본 바깥 풍경 또한 일품이다. 눈덮인 산야, 삼림지대를 끼고 돌아 바닷가를 시원스레 달린다. 끝없는 바다, 가슴이 확 트인다. 비상하는 갈매기 무리도 보인다. 동영상도 찍는 등 전혀 지루하지 않은 여정, 신나고 즐거운 낭만열차 여행이로세.
3시간 40분을 달려 마침내 아름다운 하코다테역에 도착한다. 국제 항구도시답게 대단히 화려하고 휘황찬란하다. 바닷가인데도 바람이 불지 않아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다. 하코다테(函館)는 나가사키, 요코하마와 함께 일본의 3대 항구도시로 일찍이 서양문화를 적극 수용한 결과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매력적인 곳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매우 높은 도시라 한다.
역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단자쿠(男爵俱樂部) 숙소에 여장을 푼다. 커피 한잔씩 마신 후 곧바로 행동개시, 택시를 타고 모토마치 공원까지 간다. 모토마치(元町)는 항구에 인접한 옛 마을로 서양문물이 빠르게 유입되어 번성을 누렸고, 당시 형성된 이국적 분위기의 마을풍경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뿔싸, 오늘 폭설 등 기상악화로 로프웨이(케이블카) 운행을 하지 못한단다. 우리 계획은 로프웨이를 타고 하코다테산(334m) 정상으로 올라가 찬란한 야경을 감상할 생각이었다. 일행은 근처 마을의 예쁘게 단장한 여러 다양한 언덕을 관광한다. 공회당, 정교회, 가톨릭교회, 妙福寺, 구 영국영사관, 고코쿠 신사, 니시고등학교 등 두루두루 구경한다. 학교 앞에서 그곳 고등학생들과 활짝 웃으며 사진도 찍는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는다. 주황빛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관광 도중 고풍스런 분위기의 국천다방(菊泉茶房)으로 들어가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 100년 전에 건축된 전통가옥에 다방을 차려 옛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다다미 바닥에 전통화로, 전화기, 다리미, 옛서적, 축음기 등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골동품을 많이 비치해 놓았다. 창문 밖엔 노을빛을 배경으로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려 환상적 분위기 그 자체다. 그렇게 눈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맛 또한 그윽하기만 하다. 이 어찌 도취되지 않을 수 있으랴.
역동적인 삶의 현장인 하코다테는 예로부터 홍콩, 나폴리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과 찬란한 야경(夜景)을 자랑하는 도시다. 은빛 가루를 뿌린 듯 반짝반짝 야경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특히 모토마치(元町) 언덕에서의 야경은 아름다운 선율을 그리듯 찬란한 금빛으로 변신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저 앞쪽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 물결에 빛의 은하수를 이루며 윤슬로 반짝거린다. 유려한 자태로 스며드는 은은한 빛은 우리들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탐방한 어떤 곳의 진면목(眞面目)을 보고 싶다면 그 골목과 밤 시간을 여행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지역의 낭만적인 겨울 노을과 야경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미리 예약한 해광방(海光房) 식당에서 싱싱한 해산물로 저녁 식사를 한다. 생선회·연어알·성게알·게살·미소된장국을 냠냠 맛있게 먹는다. 숙소에 들어와 잊지 못할 하코다테에서의 첫밤을 기분좋게 보낸다.
<여섯째 날> 2월 12일(일)
아침시장 아사이치(朝市)로 들어가 성게와 게살을 올린 해산물 덮밥 가이센동으로 맛깔스러운 아침 식사를 한다. 하코다테역에서 JR선 열차를 타고 고료카쿠 코엔미에역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고료카쿠공원(五稜郭公園)으로 들어간다.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성곽 공원으로 다이쇼시대(1910년대)부터 심어진 왕벚나무 1600그루와 솔바람 향기 그윽한 소나무숲이 울울창창하다. 눈꽃을 소복이 뒤집어쓰고 있는 겨울나무 풍경이 참으로 장관을 이룬다. 함박눈은 펑펑 하염없이 내리고, 뽀드득뽀드득 끝없이 펼쳐진 은빛 향연의 공원길을 걷고 또 걷는다. 영화의 한 주인공처럼~
단순함의 극치, 단 하나의 색으로만 덮여 있어 전혀 때묻지 않은 신선하고 성스러움마저 느낀다.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눈에 가슴에 카메라에 공원 풍경을 열심히 담는다. 마음속까지 하얗게 정화된 듯하다. 아, 표현의 미흡함이여!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오각형 별 모양의 성곽(城郭)과 해자(垓字)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성곽을 오각별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양쪽에서 적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옛날 수많은 전쟁에 휘말렸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유적지임을 실감케 한다. 하코다테 부교쇼(奉行所)를 비롯해 대포·성벽·비석 등 역사적 흔적이 공원 곳곳에 남아 있다.
공원을 나와 전차(電車)를 타고 이제 유노카와로 향한다. 오늘 아침 하코다테역에서 노면전차 1일 승차권을 구입하였기에 하루종일 전차를 무제한 이용 가능하다. 땡~땡, 소리도 정겹고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차. 특이하게도 뒤로 탑승하고 앞으로 하차하는 구조다. 유노카와는 예로부터 온천지역으로 유명하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숙박시설과 관광명소가 많은 곳이다.
전차에서 내리니 바로 근처에 무료로 이용하는 따끈따끈한 족탕소(足湯所)가 있어 우린 30분 정도 즐겁게 이용한다. 지붕이 있는 간이시설로 되어 있는데, 함박눈이 그 족탕까지 나풀나풀 날아들어와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지역의 영주(領主)가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이곳에서 온천을 발견하여 이 온천물로 아들을 금시에 살렸다 한다.
근처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으로 우동을 먹는다. 식당 주인댁의 친절하고 예쁜 따님이 한국말을 제법 잘해 대화를 나눠보니 요즘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단다. 무척 반가워 함께 기념 사진도 찍는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살펴보니 일본인이 우리 한국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과 관심도가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최근 8년 사이 최고치에 달했다 한다. 매우 긍정적·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홋카이도는 해가 참으로 짧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후 4시만 되면 벌써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우린 다시 전차를 타고 하코다테 시내로 들어와 카네모리 아카렌카 창고군(群)에서 쇼핑을 한다. 140년 전에 만들어진 하코다테 최초의 영업용 창고로 붉은 벽돌과 장난감 같은 겉모습이 퍽 매력적인 건물이다. 특히 각 건물마다 붉은 외관벽에 ‘삼(森)’자가 쓰여진 게 흥미롭다. 창고업이 쇠퇴하면서 지금은 미술관·패션 잡화·오르골·수제공예품·비어홀 등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우린 1925년에 창업하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시지 맛집 ‘칼 레이몬’에 들어가 독일식 전통 방법으로 만든 소시지에 커피를 마신 후 숙소로 돌아온다.
<일곱째 날> 2월 13일(월)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려 온통 순백의 세상, 흙이 보이지 않는 백설공화국이다. 우리는 단자쿠(男爵俱樂部) 숙소를 체크아웃한 후 하코다테역에서 JR 상행선 열차를 타고 노보리베츠를 향해 신나게 달린다. 그제와 마찬가지로 차창 바깥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눈덮인 호젓한 시골 풍경, 들판과 산, 바다와 하늘 등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雪國> 소설에 나오는 한 대목이요,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 열차 여행의 아늑함, 겨울 낭만여행의 최절정, 잔잔한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다.
2시간 30분을 달려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 노보리베츠역에 도착한다. 완전 시골역 같은 분위기. 노보리베츠(登別)는 자연적 온천을 활용한 숙박시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일본 굴지의 온천관광지로 우뚝 성장한 곳이다.
우린 택시를 타고 타마노유(Tamanoyu)로 간다. 일본은 친절한 나라임을 다시금 실감한다. 택시를 승차·하차할 때마다 기사 아저씨는 우리들의 캐리어나 배낭 이런 짐들을 번쩍번쩍 들어 도와준다. 마치 내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택시도 매우 청결할 뿐만 아니라 거리엔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숙소에 도착하여 방으로 들어가니 일본풍 분위기가 역력하다. 깔끔한 다다미방에 산뜻한 침구류가 정성껏 준비돼 있다. 우린 여장을 풀고 곧바로 지옥계곡 탐방에 나선다. 산 쪽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니 계곡이 나타나는데 유황냄새가 풀풀 풍긴다. 더 깊숙이 들어가니 이젠 유황연기가 온 계곡을 뿌옇게 덮는다. 여기가 바로 ‘지옥계곡(地獄溪谷)’, 온천수와 뿜어나오는 수증기가 구름처럼 어우러진 그 풍경이 마치 도깨비가 사는 지옥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슴푸레 어둠이 내리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빙판길을 걸으며 관광을 한다. 너나없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지옥계곡을 나와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에 들어가 이 지역의 특산품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처음 입어보는 유카다! 일본 전통 의복 유카다를 차려입고 2층 식사처로 간다. 와우, 럭셔리한 가이세키(일본 정통 코스요리)로 생선회, 연어알 샐러드, 조개국 등 저녁 식탁이 정갈하고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다.
유카다 복장으로 이렇게 분위기 좋고 맛깔스러운 식사를 하는데 술이 빠지면 도저히 안 될 일, 우리는 고급 사케를 따라 “이기자!”(이러한/ 기회를/ 자주 갖자.) 건배사(乾杯辭)에 맞춰 경쾌하게 술잔을 부딪친다. 이번 여행에서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닐 수 없다. 진시황이 부럽지 않고, 이태백이 부럽지 않다.
식사 후 포만감 상태로 숙소 안에 있는 온천장으로 들어가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긴다. 따뜻하면서도 강한 유황천에 몸을 담그니 그동안의 여독이 금방 풀리는 듯~ 물론 노천욕(露天浴)도 즐긴다.
일본 여행에서의 마지막날 밤, 알콩달콩 행복한 밤은 깊어만 간다.
<마지막 날> 2월 14일(화)
오늘은 7박8일 일본여행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기상하여 곧바로 1층 온천장에서 온천욕을 즐긴다. 한 시간 동안 고요하고 느긋한 상태로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이곳에 다시 오기 어렵다는 듯이~
온천을 마치고 엊저녁처럼 료칸식사(숙소 안에서의 식사)를 맛있게 한 후 짐을 꾸려 체크아웃한다. 숙소 바로 앞에서 공항행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 신치토세 공항(新千歲空港)에 도착한다. 출국 수속 절차를 밟은 후 면세점에서 선물용으로 사케 두 병과 빵·과자 등을 구입한다.
티웨이 항공 비행기에 탑승, 부~웅 마침내 귀국길에 오른다. 3시간 30분 후 우리네 인천국제공항에 안착한다. 8일 만에 밟아보는 우리 땅… 아, 그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수고했어요.”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네요.” “또 다음을 기약하세!” 특히 우리 여행단장 이재원 선생님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누구나 가끔은 여행(旅行)을 꿈꾼다. 여행은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며, 옛사람들의 숨결에서 느림의 미학을 배우고, 위대한 자연과의 만남인 것이다. 토마스 풀러는 “우매한 자는 방황을 하고, 현명한 자는 여행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속에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정신과 드넓게 펼쳐진 경이로운 자연에서 무한한 감동을 배운다.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은 마음의 영토를 넓혀준다. 꽃에는 향기로운 꽃 향기가, 바다에는 청량한 바다 향기가, 내 인생에는 내 삶의 향기가 있듯 여행에도 여행의 향기가 있다.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여행, 배낭 메고 지도 한 장 들고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 두근두근 가슴 벅차지 않은가. 낯선 곳에서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직접 체험하고 또 그것들에 대하여 배운다는 면에서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번 일본여행이 꼭 그러하였다. 7박 8일, 짧지만 긴 여운과 강한 인상을 남긴 즐거운 여행,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자, 행복한 삶의 여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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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클라크 박사의 명언은 세계적으로 퍼졌는데
인생은 하숙셍 같아서 언젠가 떠나는데 하늘의 뜻이라 봐요.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2024년호 충성문학 편집에 반영하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