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에서 주인공은 내면의 존재인데 반해 주인공을 막아서는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현상적인 존재들이며,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왔던 주체세력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빈치 코드’는 내면의 탐색모티브를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물리적이고 현상적인 세계에 대한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세계, 폭력적인 남성에 대한 비폭력적인 여성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빈치 코드’처럼 내면의 탐색모티브는 자칫 지루하게 흐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기에서 부수적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역사를 바꾸어놓았으며, 잘못 된 역사를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하는 세력인 로마 카톨릭 교황청이고 그것에 대한 하수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오푸스 데이’인 것이다.
이들은 ‘예수’의 신성성을 유지하기 위해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만든 사람들이며, 만일 진실이 밝혀진다면 설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며, 살인도 불사하는 그런 집단이다.
주인공이 진실을 밝혀서 드러내려는 쪽의 탐색자라면 이들 집단은 진실을 덮으려는 쪽의 탐색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집단의 부딪힘이 바로 이 작품의 기본 구도를 형성하고, 긴장과 갈등, 그리고 그것의 해소를 통해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본이 된다.
둘째, 이중성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기호, 사물들은 모두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등장인물의 이중성, 주제의 이중성, 인간 자체의 이중성, 기호의 이중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후예로 그려지는 ‘소피’는 물론이거니와 ‘티빙 경’과 ‘사일러스’, 그리고 ‘아링가로사’가 모두 이중적인 존재들이다. ‘소피’는 삶과 죽음, 신성성과 인간성 등의 이중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리고 ‘티빙 경’은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이지만 베일에 가려진 인물로 역시 이중적이다.
백피증 환자로 공포와 연민을 함께 느끼도록 하는 암살자인 ‘사일러스’ 역시 두 얼굴을 지닌 이중적 존재이며, 성스러운 일을 한다고 하면서 돈으로 거래를 하는 성직자인 ‘아링가 로사’ 역시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등장인물이 지닌 이러한 이중성은 모두 성배의 이중적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성배는 물리적인 의미의 잔이라는 것과 예수의 피를 이어받은 여성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위에서 말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성배의 이중성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이중성은 모두 성배의 진정한 의미인 ‘예수의 피를 이어받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한 대립일 수밖에 없게 된다. 진실을 은폐하여 자신들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드러내어 숭배하려는 사람들의 이중적 대립구도가 바로 등장인물의 이중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음으로는 주제의 이중성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000년을 넘게 숨겨온 비밀로 인해 2000년 동안의 세계 역사는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잘못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제는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는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역사가 함께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즉, 막달라 마리아가 부정되면서 만들어진 과거의 왜곡된 역사와 마리아의 긍정을 통해 다시 서야 하는 미래의 올바른 역사가 이 작품 속에 이중적 의미로 녹아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 의하면 과거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로마교황에 의해 편집된 성경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성성만이 부각되면서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로 취급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종교전쟁과 마녀사냥 등을 통한 역사의 왜곡이 2000년을 넘게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과거의 역사는 신 중심과 남성 중심으로 꾸며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결코 예수께서 바라던 사회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쟁과 살육, 그리고 고통을 강요해왔던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성배를 찾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성배의 진정한 의미와 함께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왔던 예수의 인간성과 신의 씨앗을 담은 그릇인 여성이 지닌 신성성이 함께 부각되는 세상이 바로 미래의 역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주제의 이중성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는 사물이나 기호의 이중성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물의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일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일종의 기호나 마찬가지다.
또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블레이드의 정삼각형’, 여성성과 성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챌리스’, 고대 이집트의 ‘앙크’, ‘자가와 그리스 십자가’, ‘백합문양’, ‘로즈라인’ 등은 모두 상징이며, 기호이다. 이것들은 모두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다빈치의 그림인데, ‘최후의 만찬’과 ‘암굴의 성모’, 그리고 ’모나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호를 간직하고 있으며, 각각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에서 모나리자 그림을 컴퓨터와 X선 촬영 등의 장비를 통해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와 거의 같으며, 밑그림에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였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작품의 모델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실존 인물이 아니라 다빈치가 상상해서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여 그린 그림에서는 여러 번 수정한 흔적이 발견되는 것이 정상인데, 모나리자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나리자라는 그림은 다빈치가 마음속에 생각한 이상의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그 인물이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며, 베드로가 손을 칼처럼 해서 목에 대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된다.
최후의 만찬에 성배가 없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오른쪽에 앉아있는 막달라 마리아로 보이는 여성의 사이는 유달리 넓은 공간이 V자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공간이 바로 성배의 상징이며, 여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의 구도를 기호로 나타내면 영어로 M이 되는데, 이것은 결혼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는 남녀관계였으며, 그녀는 예수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배로 기호화된 것인데, 이것은 예수의 핏줄을 이어받은 여성, 즉 왕의 혈통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호를 그림 속에 숨긴 다빈치야말로 예수그리스도의 인간성과 막달라 마리아의 신성성을 믿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인간 자체의 이중성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중적인데,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체와 정신의 결합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훨씬 더 복잡성을 띤다.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육체는 과거의 역사를 움직여온 남성성으로 볼 수 있고, 감성과 신성을 상징하는 영혼은 미래의 역사를 움직일 여성성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의 역사는 전쟁과 살육과 마녀사냥이 중심을 이루는 정복과 폭력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을 지니는 인간이야말로 지구와 우주를 움직여갈 핵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성질만이 강조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잃어버린 한쪽의 이중성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성배를 찾는 진정한 의미가 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셋째, 여성성이 강조되고 여성이 지닌 신성성이 중시되어야 사실이다.
유전학적으로 볼 때 자식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훨씬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것은 자식들이 성장해서도 어머니에 대하여 훨씬 애틋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혈통의 계승은 여성으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세계 역사, 즉 과거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최소한 2000년 정도의 역사는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을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혈통의 계승은 말할 것도 없고, 핵심 권력이나 신에 대한 경배 등에서도 여성은 항상 뒷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전체가 그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중심으로 하는 천주교와 기독교문화권에서 더욱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성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불과하다.
예수의 후예를 말살하기 위해서 마녀를 수도 없이 만들어내어 마녀사냥으로 얼마나 많은 여성을 죽였는지 조차도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천주교와 기독교가 수천 년간 숨겨온 이 비밀이 사실이라면 미래의 역사는 여성 중심의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이 바로 ‘다빈치 코드’를 통해 소설의 작가와 영화감독이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핵심적인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에서 필자가 제시한 점들을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가운데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성당의 식당에 그려진 벽화다. 다 빈치의 그림들 중에는 미완성 작품이 많은데, <최후의 만찬> 역시 예수의 얼굴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
학문적, 예술적으로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뛰어난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과학자, 음악가, 무대연출가,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이렇게 다방면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미완성이 많을지도 모른다.
<최후의 만찬>은 미완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손상된 부분도 많고 심하게 오염돼 있어서 만찬에 나온 요리가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99년에 세정작업을 하면서 마침내 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칙칙해서 보이지 않았던 작은 접시 위에는 생선 토막이, 큰 접시에는 몇 마리의 생선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최후의 만찬>에 오른 메인요리는 생선으로 밝혀졌다.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진 날은 유월절이라는 유대인의 기념일이었다. 예루살렘 신전에서는 그날 희생물로 어린양을 신에게 바치고 그것을 통째로 구워 순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따라서 예수와 제자들이 실제로 그날 저녁에 먹은 요리는 양고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다 빈치 이전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 그림들에는 양고기 요리가 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다 빈치는 왜 양고기 요리가 아닌 생선 요리를 그린 것일까?
그리스어로 물고기는 ‘ICHTHUS’ 인데 그것은 ‘예수 Iesus’, ‘그리스도 Christos’, ‘하나님의 아들 Theon Uios’, ‘구세주 Soter’ 라는 단어의 첫글자를 연결해 만든 것이다. 이러한 단어의 조합에 의한 말장난으로 기독교 미술에서 생선은 예수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았던 시대에는 예수의 모습을 드러내놓고 그리지 못했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은 예수 대신 생선을 그려 받들었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 식탁에서 예수는 빵과 와인을 자신의 살과 피에 비유하며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이로 인해 기독교의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전통이 생겨났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신에게 바친다면, 만찬의 요리는 예수 자신을 상징하는 생선이 어울린다는 발상이 생겨났다. 즉 <최후의 만찬>에 그려진 생선 요리에는 기독교 박해의 역사와 함께 예수 그 자신이 표현된 것이다.
다 빈치는 실제로 예수와 제자들이 먹었을 가능성이 높은 양고기 요리 대신 생선을 그림으로써 ‘희생양’으로서의 예수의 이미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다빈치코드>에서 ‘오푸스데이’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에 낳은 후손들(성배)을 지키는 시온수도회원들을 살해하는 조직으로 설정돼 있다. 예수의 신성을 믿는 현 가톨릭의 교의와 체계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조직을 제거하는 단체로 그려진 것이다.
이에 대해 오푸스데이 한글사이트(www.opusdei.org)는 ‘<다빈치코드>에 대한 미국 오푸스데이의 입장’이란 글에서 “오푸스데이가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지상적 재화와 권력을 얻는 데 혈안이 되어가는 집단으로 몰아가는 거짓된 묘사를 일삼고 있다”면서 “회원들의 고행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실천 행위를 지나치게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 교황 때 공식화 가능성
세계 60개국 8만명 활동… ‘가톨릭 근본주의’라 불려
‘하느님의 사업’이라는 뜻을 지닌 오푸스데이는 1928년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에 의해 설립됐다. 로마에 본부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8만여 명의 회원이 있다.
오푸스데이는 수도사들이 있는 수도회와는 다르다. 그들은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성성을 추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그래서 ‘가톨릭 근본주의’또는 ‘가톨릭 우익 운동’이란 평을 받기도 한다.
오푸스데이는 평신자들의 역할을 중시한다. 오푸스데이의 사제도 평신도회원 중에서 선출된다. 오푸스데이에선 6년 간의 철저한 수련을 거쳐야 종신회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창설자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1975년 선종했는데, 전 세계 주교 3분의1이 넘는 1300여명의 주교들을 포함한 세계 수천 명 신자들의 청원에 따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의해 1992년 복자가 되고, 2002년 성인으로 추대됐다. 전 세계 60개국에서 공식적으로 활동 중인 오푸스데이는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절 로마 가톨릭이 보수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푸스데이가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1986년 11월 27~29일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42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한국오푸스데이 세미나’가 열린 것이 최초다. 당시 혜화동성당 사목위원장은 국회의장 비서실장 출신으로 훗날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이 된 박정훈씨였다.
이들은 다음해 초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해 허가지원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공식 조직으로 허가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창립자의 전기인 <길>이 부산교구쪽에서 유포됨에 따라 부산 쪽에서 활동이 더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의 한 관계자는 “현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전임 교황의 뜻을 잇고 있는 만큼 현 교황 재임 때 한국에서도 오푸스데이가 공식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오푸스데이는 일상 속에서 뜻을 펼치는 특성상 뚜껑이 열리면 가톨릭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평신도 단체의 지도자 중에서 회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첫댓글 아따! 머가 이렇게 긴겨?.............간단하게 하면 안되겠니?.........허긴 옛날에 어떤 유명인이 어흠! 한마디를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는데...후세 얼간이 들이 어흠! 한마디를 연구해서 책으로 내 놓은게 250쪽이 넘었다든가....ㅋㅋㅋㅋ
읽다가 포기했다. 간단 명로 하게.........
누가 어떤말을하든 남녀관께든 아니든 종교로인해 마음에 평화를 누린다면 그것이 전부아닐까? 너무 이기적인생각인지... 난 종교로인해 마음의 안정을 많이 느꼇거덩..